서정적 비극(Tragedie Lyrique): 륄리에 의해 성격이 분명해진 프랑스 고유의 오페라는 이탈리아 오페라와 구분하기 위해 '서정적 비극'이라 불리게 된다.
오페라는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바로크시대 프랑스음악의 성격을 확립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서유럽의 다른 나라들처럼 바로크 초기에는 프랑스 역시 이탈리아 오페라를 그대로 수입하여 공연하였다. 그러나 165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 오페라가 프랑스인들의 정서에 맞지 않다는 비판이 거세진다. 특히 이탈리아어가 프랑스어에 비해 악센트가 강해서 듣기에 거북하다는 점, 이탈리아에서 오페라단을 초청하는 데 드는 경비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카스트라토에 대한 거부감이 이탈리아 오페라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후 강력한 왕권을 내세웠던 루이 14세가 등장한 1670년대 프랑스는 정치, 외교에서의 주체성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프랑스 고유의 문화와 예술적 가치를 반영하는 프랑스 고유의 오페라 개발에 주력하게 된다. 특히 륄리(Jean Baptiste Lully, 1632~1687)가 왕실음악을 관장하면서 프랑스 오페라는 왕실의 권위를 반영하고 동시에 이탈리아 오페라와 구분되는 프랑스 고유의 특성을 띄면서 발전하게 된다. 소설적인 상상이 가미되었지만 영화 <왕의 춤(Le Roi Danse,2000)>을 보면 예술(춤과 음악)을 통해 왕의 권위를 과시하고자 한 루이 14세의 의도가 잘 드러난다.
륄리에 의해 성격이 분명해진 프랑스 고유의 오페라는 이탈리아 오페라와 구분하기 위해 '서정적 비극(Tragedie Lyrique)'이라 불리게 된다. 서정적 비극은 오페라 공연이 시작된기 전에 관현악으로 이루어진 프랑스 서곡(French overture)을 연주하였는데 언제나 느린 부점리듬으로 시작되는 프랑스 서곡은 오페라 공연을 보기 위해 입장하는 루이 14세와 왕족, 귀족들의 느린 행진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막으로 이루어진 서정적 비극은 왕에 대한 찬양, 프랑스와 관련된 영웅들의 낭만적이고 신기한 모험을 주제로 삼았다. 그리고 춤을 아꼈던 루이 14세의 취향을 고려하여 프랑스 오페라는 극의 내용이나 전개와 상관없이 극 중간에 발레를 삽입하였는데 루이 14세와 륄리 사후에도 한동안 발레는 프랑스 오페라의 관습으로 남게 된다. 륄리를 비롯한 많은 왕실작곡가들은 이탈리아어와 달리 비음과 연음이 많은 프랑스어를 정확하면서도 예술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레치타티보를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륄리 사후 서정적 비극은 '화성론(Traite de I'harmonie,1722)'의 저자 라모(Jean Philippe Rameau,1683~1764)에 의해 그 전통을 이어가지만,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를 찬미하는 백과전서학파와 4차례의 논쟁을 치루면서 고전, 낭만시대에 새로운 형태로 변화, 계승, 발전된다.
[음악의 이해와 감상/김종수 권도희 김성혜 이지선 유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