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건강은 신체의 여러 부분들이 서로 자연의 이치에 따라 지배하고 지배받는 관계에서 확립되며 반면 질병은 그렇지 않은 관계에서 생겨난다. 마찬가지로 정의는 혼에 있어 여러 부분들이 자연의 이치에 따라 서로 지배하고 지배받는 관계에서 확립되며 부정의는 그렇지 않은 관계에서 생겨난다. 그러고 보면 덕은 일종의 혼의 건강이요 아름다움이며 좋은 상태인 반면, 악은 일종의 혼의 질병이요 추함이며 허약함이다.

[플라톤/'국가' 444d-e]


참된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에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되고 삶에 애착을 가져서도 안 된다. 그것에 관해서는 신께 맡기고..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하면 가능한 최선의 삶을 살 수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플라톤/'고르기아스' 512e]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플라톤에게서는 여러 개의 옛날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국가 제10편에 나오는 용사 에르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에르는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지옥에서 돌아와 그곳에서 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에르가 지옥에서 겪은 가장 무서운 시련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영혼 또는 망령은 넓은 평원으로 끌려간다. 그리고 그 눈앞에 많은 자루가 내던져져 있는데 그 안에는 각자가 선택해야 할 운명이 들어 있다. 영혼들은 아직 그들이 살아온 과거의 추억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각자 욕구나 혜안에 따라서 운명을 선택한다.


 무엇보다도 돈이 탐났던 자들은 돈이 가득한 운명을 선택한다. 그리고 돈을 많이 얻었는데도 더욱 많이 손에 넣으려고 한다. 향락을 즐기려 하는 자들은 쾌락이 가득 들어 있는 자루를 찾고 야심가들은 제왕의 운명을 찾는다.


 드디어 저마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내고 새로운 운명을 어깨에 짊어지고 떠난다. 그리고 레테, 즉 망각의 개울물을 마시고 각자 선택한 데에 따라 살기 위해 다시금 인생의 나라를 향해 떠난다. 이것은 기묘한 실현이자 괴상한 형벌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무서움은 겉으로 얼른 보기와는 달리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행복과 불행의 참된 원인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자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행복의 근원인 이성을 마비시키는 정욕들, 재물, 권력, 쾌락은 지성의 빛을 흐리게 하고 결국은 행복을 없애 버린다. 그러므로 현자들은 외관상 아름다운 자루들을 조심스럽게 뒤져본다. 그것은 자기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리지않고, 애써서 획득하고 간직하고 있는 분명한 정의감을 헛된 운명 속에서 조금이라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명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누구나 원치 않는 평범한 그러나 자신만의 소중하고 가치 있는 운명을 짊어지고 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생 동안 자기 욕망만을 쫓아온 사람들은 더 많은 맹복과 허위와 무지와 부정을 택하는 길을, 그 운명을 다시 선택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재판관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부터 더욱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


 지금쯤 어떤 부자는 저 대평원에 있을지 모른다. 그는 거기서 무엇을 선택하기를 원할까.[알랭]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그들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우연적인 일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지혜와 더불어 온화함으로 대한 사람들로서, 진실되고 아주 고매한 정신을 소유하고 있었네. 그런 까닭에 덕 이외에 모든 것을 경시하였으며 갖고 있는 재산 같은 것도 하찮게 여긴데다가 막대한 황금이나 그 밖의 재물 같은 그런 무거운 짐도 거뜬히 감당해 냈지. 그래서 그들은 부의 사치스러움에 취해 자제심을 잃어 자신을 망쳐 버리는 일이 없었으며, 오히려 깨어 있는 정신으로 이러한 모든 것이 우애로운 교분을 통해 덕과 함께 불어나는 것임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있었다네. 반대로 부와 사치스러움을 얻고자 안달하고 그것들을 떠받들면 오히려 덕은 줄어들고 급기야는 그 덕 자체도 그들에게서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말일세.[플라톤/크리티아스,121a]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사진 행복한 토끼/온라인 커뮤니티]

 

 플라톤의 행복론은 그리스 고유의 전통적 세계관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것으로 온갖 다양한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그렇게 하면서 자신의 몫을 누리면서 다른 것들과 조화와 공존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하늘의 모습이고 사람이 또 본래 살아야 할 모습이며 나라가 추구해야 할 가장 올바른 상태이다. 이러한 모습을 플라톤은 정의로운 상태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정의롭다는 것과 행복하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같은 의미를 갖는다. 정의롭고 올바르고 도덕적인 사람은 받으시 행복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행복한 그리스 공동체란 발칸반도 곳곳에 산재한 각각의 도시국가들이 제 나름의 특징과 역할을 가지고 다른 이웃 도시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고, 행복한 나라라 함은 한 도시국가에 속하는 여러 다른 계층, 즉 통치자 계층, 전사 계층, 생산자 계층들이 서로 상대방의 역할을 간섭하거나 침해하지 핞고, 그들 각자의 본성과 소질에 맞게 자기 역할을 최고의 상태로 수행하면서 서로 조화와 공존을 이루면서 그 나라 전체의 평화와 평온을 이룩하며 사는 것이다.

 요컨데 사람이 사회적으로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여러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의 역할을 잘하고 자기가 누려야 할 것을 잘 누리고, 동시에 다른 사람의 것도 침해하지 않으면서 서로 조화와 질서를 이루고 공존해 가는 것이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데 플라톤은 이러한 원리에 의해서 인간 각각의 내면의 행복한 상태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즉 개인적으로 행복하다는 것은 인간 내면의 세 가지 측면, 즉 냉철한 이성의 측면과 자존심과 명예를 중시하는 기개의 측면, 그리고 감각적인 욕심과 충동에 따라 살려는 욕망의 측면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말한다. 플라톤은 이런 세 가지 서로 다른 부분이 인간 영혼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들 가운데 어떤 한 부분이 나머지 부분을 억누르거나 지배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플라톤이 이성주의자라고 해서 개인 내면의 이성이 나머지 기개나 충동을 억눌러서 금욕적으로 사는 것을 플라통이 말하는 행복한 삶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신나게 노는 자리에 가면 욕망의 측면이 조화를 이끌어 가면서 잘 놀아야 하고 자존심 내세우거나 용기를 발휘해야 할 곳에서는 기개의 측면이 그렇게 해야 한다. 이처럼 개인적으로행복하다는 것은 인간 내면의 영혼의 세 부분이 각각 훼손됨이 없이 각각의 부분이 마치 오케스트라가 조화를 이루면서 때로는 빠른곡, 때로는 평정한 곡을 연주하듯 내적인 조화를 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플라톤에 의하면 제멋대로 본능을 충족시키거나 금욕주의자처럼 일체의 본능을 따르지 않거나 하는 것은 모두 행복한 삶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플라톤의 행복론은 인간의 다층적인 측면을 모두 고려하고 있는 매우 균형잡힌 행복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진 플라톤/네이버 지식백과]

 

 플라톤이 말하는 행복론의 요체는 '수분자족(守分自足) 하며 살아야 한다.' 즉, '분수를 지키고 스스로 넉넉함을 느낀다'라는 동양적인 금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자기 분수와 직분, 자기 할 일을 잘 알고 그것에 충실하고 만족하며 사는 것이다. 물론 수분자족하며 살자는 말은 자기는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분수를 알고 그 정도로나마 만족해야지 하는 패배주의적인 자기 위안 내지 자기 합리화로 들리기도 한다. 하기는 강자나 지배자는 수분자족이란 말을 잘 쓰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말은 강자가 약자를 업신여기면서 하는 말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플라톤이 말하는 행복론, 이른바 수분자족론은 약자에게만 강요되는 것이 아니고, 하늘의 별들이 각각 제자리에서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코스모스를 이루듯이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계층에게 요구되고 적용되는 것이다. 통치 계층은 나라를 잘 다스리려는 욕망과 흥미를 가지고 있으니 적성과 소질대로 나라를 잘 다스리면 당연히 행복할 것이고, 군인 계층은 소질대로 용기와 명예를 가지고 나라를 지키는 것이니 통치자의 역할을 넘보거나 생산자의 물건들에 눈을 돌리지 않고 나라를 잘 수호하기만 하면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생산자 계층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적성과 소질에 따라 신발을 만들거나,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잘하면 당연히 그 때문에 행복할 것이다. 이렇게 한 사회는 서로의 적성과 소질을 실현해 가면서 서로 의지하고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다. 적성과 소질은 각각 다른 뿐 어느 것이 보다 좋은 것인가는 문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사람 사는 사회를 채우고 귀하고 소중한 가치이고, 각자는 누구의 간섭이나 침해 없이 자신의 적성과 소질에 따라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기가 맡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각자가 자신의 적성에 따른 고유한 역할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해 가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기본적으로 행복한 나라, 행복한 개인이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