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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람이 말하고 행하고 생각한 것에 마음 쓰지 않고, 오직 자신이 행하는 것이 올바르고 신의 마음에 들도록 마음 쓰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 여가를 버는가. 선한 사람이라면 주위의 나쁜 성격들을 둘러볼 것이 아니라, 좌고우면하지 말고 목표를 향해 곧장 달려가야 한다.


복수하는 최선의 방법은 네 적(敵)처럼 되지 않는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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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천천히 찾아가고 불행에 빠졌을 때는 발리 찾아가라.

[다마케토스, 그리스 현인]


실패한 사실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도전하지 못한 비겁함은 더 큰 치욕이다.

[로버트 슐러]


빠져나갈 길이 하나도 없는 불행은 거의 없다. 사람은 희망보다도 절망에 속기가 쉽다.

[우웨날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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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 생명이 있는 모든 물상들은 모두가 일체이다. 우리는 모두 손이나 발이나 위나 뼈처럼 말하자면 커다란 육체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이유에서 태어났고 다 같이 선을 원한다. 또한 서로 죽이는 것보다도 서로가 돕고 사는 편이 서로에게 이롭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가슴에는 똑같은 사랑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건물을 형성하고 있는 돌과 같은 것으로 서로 돕고 의지하지 않는다면 곧 멸하도록 모두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세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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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은 객관적으로 살아가고, 자유로운 애정과 광범위한 흥미를 갖고 이를 통하여 자기의 행복을 소유하는 자요, 자기가 남에게 흥미와 애정의 대상이 되어 행복을 느끼는 자이다. 남의 사랑을 받는 것은 행복의 커다란 원인이 된다. 그러나 대체로 애정을 요구하는 자는 사랑을 받지 못하는 법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남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남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다.[러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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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자유로운 행동에 있어서만 행복한 것이다. 즉 인간은 자기가 자기에게 부여하는 규울에 의해서만 행복한 것이다. 요컨대 축구 경기의 경우나 학문의 연구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 수련을 받아들이는 데서 행복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임무는 멀리서 보면 재미가 없다. 뿐만 아니라 불쾌감을 느끼게 한다. 행복이란 칭찬을 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오는 칭찬인 것이다.[알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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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아에 대한 집념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러나 가장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죄인,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 과대망상증에 걸린 사람의 세 가지이다.

 자기도취나 과대망상에 빠지는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은 알지 못하지만, 행복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떠한 방법을 취하든지 도취를 추구하는 사람은 희망 대신에 망각밖에는 손에 넣을 수 없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우선 행복의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러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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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솔직해 보십시오.

 도대체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세상이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이 아닌

 내 안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남들에게 행복하게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이 정말로 행복한 것이 중요합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中/혜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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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조용한 생활이 위인들이 특징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들의 기쁨은 밖에서 볼 때 신이 나는 것이 아니었다. 꾸준한 노력이 없는 곳에 위대한 업적이 있을 수는 없다. 그런데 그 노력에는 정신의 집중과 고난이 따른게 마련이다. 그들은 애를 쓰고 힘을 들여서 오락을 취할 수 있을 정도로 정력이 남아 있지는 않았다. 휴일이 되면 건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적당한 오락을 취할 뿐이었다. 알프스의 등산은 좋은 보기가 될 것이다.[레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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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불행이 닥칠 때 실제로 그것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라. 능히 일어날 수 있는 이러한 불행을 정면으로 노려본 다음에, 결국 그 불행이 그다지 두려운 것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를 스스로 찾아내라. 그러한 이유는 언제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껏해야 내 한몸에 일어나는 일이 결코 우주적인 의미를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동안 최악의 경우를 내다보고 '그까짓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고 자신 있게 중얼거리게 되면, 당신의 고민은 거의 사라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하여 이러한 과정을 여러번 되풀이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최악의  경우를 당했을 때 자중하면 고민의 자취는 완전히 사라지고 명랑한 기분을 갖게 된다.[러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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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런적 불행의식(러셀)

 러셀은 행복을 방해하고 불행을 야기하는 심리상태 중 첫번째로 바이런적인 불행의식을 제기하고 있다. 바이런은 영국의 염세적인 시인이다. 러셀이 바이런적인 불행의식을 일차적인 불행의 원인으로 꼽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염세적 세계관 그 자체가 우선 병이기 때문이다. 바이런적인 불행이라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 불행감이 자기의 심리적인 내면의 불행의식에 불과한 것임에도, 마치 그것이 우주적 성질에 근원하는 것인 양 크게 확대시켜 형이상학적으로 관조하면서 그것을 즐기듯 자기 자신을 미혹에 빠뜨림으로써 생기는 불행이다. 러셀은 그러한 염세주의적 세계관은 터무니없을 뿐 아니라, 정서적인 면에서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비판한다. 허무주의자들은 마치 행복을 달관한 양 생각하면서 오히려 외부 세계와 능동적인 소통보다는 내면으로 파고들어 가서 실존적인 자기 해탈 속에서 행복을 찾아 나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러셀은 그러한 생각은 증명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세계가 허무하다는 주장 또한 일부 사람들의 개인적인 관점과 체험을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자신도 인생의 비밀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우리를 불행으로 이끄는 허무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그러한 세계관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다. 만약 인간에게 어떤 피할 수 없는  결핍이 있다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바탕 위헤서 인생을 아주 신선하고도 새로운 기쁨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나름대로 진취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인 생각에 빠져 있으면 끊임없이 스스로를 꾸짖어야 하며, 자신의 정열과 흥미를 외부로 향하게 하여 진취적인 자세로 구체적인 행복을 쟁취해야 한다. 러셀의 행복론에 '정복'이라는 말이 붙은 것도 그러한 까닭에서이다. 다시 말해 소극적으로 자기 자신 안으로 퇴행적으로 물러서면서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불행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것을 객관화하여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이성적으로 분별해서 적극적으로 불행을 제거해 나가는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에 이르는 지혜, 이정호/러셀의 행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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