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깊은 슬픔이란 언제나 병적인 상태이다. 그러한 감정을 자극하는 우매한 행동을 그치지 않는 한, 슬픔은 분명히 병이다. 이것저것 까닭이나 곡적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의 병으로 간주하고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슬픔은 정복될 것이다. 자기 정화를 위해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탐지한 지혜 앞에서, 불가사의한 존엄 앞에서, 이 헤아릴 길 없는 정의 앞에서 경건한 사람들은 사상을 던져 버렸다. 정성껏 기도를 하면 반드시 소득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흥분을 가라앉힌다. 이런 가상적인 아편을 마시는 것은, 양식(良識)으로서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죽음을 당하는 것은 산 자뿐이며, 불행의 무서운 짐을 주체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행복한 사람들뿐이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의 불행보다는 남의 불행을 더 절실히 느끼는 겨우가 있다. 이것은 위선은 아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인생에 대한 그릇된 판단이 생기므로 조심하지 않으면 그것이 인생을 해롭게 한다. 비극을 연출하는 대신에 곰곰이 당면한 현실을 생각해야 한다.


[알랭]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플라톤에게서는 여러 개의 옛날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국가 제10편에 나오는 용사 에르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에르는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지옥에서 돌아와 그곳에서 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에르가 지옥에서 겪은 가장 무서운 시련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영혼 또는 망령은 넓은 평원으로 끌려간다. 그리고 그 눈앞에 많은 자루가 내던져져 있는데 그 안에는 각자가 선택해야 할 운명이 들어 있다. 영혼들은 아직 그들이 살아온 과거의 추억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각자 욕구나 혜안에 따라서 운명을 선택한다.


 무엇보다도 돈이 탐났던 자들은 돈이 가득한 운명을 선택한다. 그리고 돈을 많이 얻었는데도 더욱 많이 손에 넣으려고 한다. 향락을 즐기려 하는 자들은 쾌락이 가득 들어 있는 자루를 찾고 야심가들은 제왕의 운명을 찾는다.


 드디어 저마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내고 새로운 운명을 어깨에 짊어지고 떠난다. 그리고 레테, 즉 망각의 개울물을 마시고 각자 선택한 데에 따라 살기 위해 다시금 인생의 나라를 향해 떠난다. 이것은 기묘한 실현이자 괴상한 형벌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무서움은 겉으로 얼른 보기와는 달리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행복과 불행의 참된 원인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자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행복의 근원인 이성을 마비시키는 정욕들, 재물, 권력, 쾌락은 지성의 빛을 흐리게 하고 결국은 행복을 없애 버린다. 그러므로 현자들은 외관상 아름다운 자루들을 조심스럽게 뒤져본다. 그것은 자기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리지않고, 애써서 획득하고 간직하고 있는 분명한 정의감을 헛된 운명 속에서 조금이라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명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누구나 원치 않는 평범한 그러나 자신만의 소중하고 가치 있는 운명을 짊어지고 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생 동안 자기 욕망만을 쫓아온 사람들은 더 많은 맹복과 허위와 무지와 부정을 택하는 길을, 그 운명을 다시 선택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재판관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부터 더욱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


 지금쯤 어떤 부자는 저 대평원에 있을지 모른다. 그는 거기서 무엇을 선택하기를 원할까.[알랭]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생활이 다소 고생이 되더라도 너무 평탄한 길은 걷지 않는 것이 좋다. 왕이라고 해서 만사가 생각대로 되는 것이라면 참 가엾은 존재라고 하겠다. 행복이란 분명히 자기 자신에 대하여 눈뜨게 하는 불안이나 정념, 또한 어느 정도의 고통을 언제나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의 세계보다 기대와 상상의 세계를 통해 우리는 더욱 행복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실제 행복을 손에 넣으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해서 주저앉아 버리기 때문이다. 재물에는 두 가지가 있다. 주저앉게 하는 재물은 인간을 권태롭게 만든다. 마음을 즐겁게 하는 재물은 다시 계획이나 일을 요구한다.[알랭]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슬픔에 잠긴 사람이 만일 스피노자를 읽은 적이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슬플 때에는 절대로 즐거울 수가 없는 법이다. 그것은 나의 기분, 피로, 연령, 기후의 형편에 따라서 다르다." 좋다. 그것을 당신 자신에 향하여 말해 보라. 그것을 진심으로 말해 보라.

 슬품을 참된 원인에게 돌려주라. 그렇게 하면 바람에 불려 다니는 구름처럼 당신의 괴로운 생각도 날아가 버릴 것이다. 당신은 슬픔을 육체에 돌려준 것이 될 것이다. 이에 의하여 당신의 생각은 깨끗해진 셈이다. 혹 이렇게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즉 사유(思惟)는 슬픔에 날개를 주고, 그것을 날아가는 슬픔으로 만든다. 그런데 반성은-그 반성이 겨냥을 바로 하였다면 -날개를 꺾고 땅을 기어 다니는 슬픔으로 만들 뿐이다. 슬픔은 여전히 내 발밑에 있다. 그러나 이제 눈앞에는 있지 않다. 다만 우리는 높이 날아가는 슬픔을 언제나 원하고 있다.[알랭]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즐거움과 기쁨과 친절을 본받게 되면 불쾌감이나 심지어 위장병이 걸렸을 때까지도 적잖은 도움이 된다.(이는 심리적인 것과 신체적인 구조 관계를 이야기 하고 있다.) 고개를 숙인다든가 인사를 한다든가 반색을 한다든가 포옹을 한다든가 하는 신체적 운동들은 그 반대의 것들, 즉 화를 낸다든가 의심을 품는다든가 슬퍼한다든가 하는 심리적인 것들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므로 사교를 한다는 것, 기쁘게 방문하는 것, 기쁜 모임을 갖는다는 것, 축제에 참가한다는 것, 이런 것들은 우리들을 기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살아 있는 육체는 더욱 아름다우며 관념에 의해 괴로움을 당하고 행동에 의해 생기를 얻는다. 그러나 이것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참된 사회는 까다로운 논리 외에 극복해야 할 것이 또 있다. 사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곤경이다.(논리나 사상은 깊이 생각하고 망설이게 하지만, 곧바로 무언가 행동하지 않으면 안되는 곤경을 통해서 우리들의 생각이나 경험은 보다 넓고 깊어지기 때문이다.)


[알랭]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경험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마음을 무겁게 하고 또 하나는 마음을 가볍게 한다.
침울한 사냥꾼은 토끼를 놓치고는 내 운수니까 할 수 없지라고 말을 잇는다.
이런 꼴은 나만 당하지.
그러나 쾌활한 사냥꾼은 토끼가 날쌔게 줄행랑을 치고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 감탄한다.
그는 토끼의 천직이 인간의 냄비에 고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으니까.
[알랭]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바람이 북동쪽에서 불어올 때 손을 비비는 것은 이중으로 좋은 일이다. 이 경우에 본능은 지혜만큼이나 가치가 있으며 육체의 반응은 우리에게 기쁨을 표시해 준다. 추위에 대항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추위에 만족하는 일이다. 그리고 기쁨을 달관한 스피노자 투로 말하자면 내가 만족을 느끼고 있는 것은 따스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만족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따스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이와 같이 자기 자신에게 타일러야 한다. "나는 성공하였기 때문에 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만족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라고. [알랭]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유쾌감 속에는 좀 더 많은 주의력과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 이것은 젊은이의 풍요함만으로는 당해 낼 수 없을 때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울하여 남의 기쁨을 조금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폭군은 무엇보다도 큰 기쁨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패배를 당하고 정복되는 일이 흔히 있는 것이다. 모든 장식은 기쁨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의 동류인 인간은 우리에게 가장 즐거운 것밖에는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의는 생활의 지혜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이다.[알랭]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대부분의 경우 사상을 감정에 종속시켜 공포나 분노 속에 몸을 마구 내던지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정념으로 말미암아 병을 더 치르게 되는데 그것은 참된 체육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운명이다. 참된 체육이란 그리스인들이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육체운동에 대한 이성의 올바른 지배이다.[알랭]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바람이 북동쪽에서 불어올 때 손을 비비는 것은 이중으로 좋은 일이다. 이 경우에본능은 지혜만큼이나 가치가 있으며 육체의 반응은 우리에게 기쁨을 표시해 준다. 추위에 대항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추위에 만족하는 일이다. 그리고 기쁨을 달관한 스피노자 투로 말하자면 내가 만족을 느끼고 있는 것은 따스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만족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따스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이와 같이 자기 자신에게 타일러야 한다. "나는 성공하였기 때문에 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만족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라고..[알랭]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