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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판갑옷과 투구/국립중앙박물관]


가야(5세기) 갑옷과 투구는 경상북도 고령 지산리 32호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로 투구, 어깨라리개, 판갑옷으로 각각 구성돼 있다. 투구는 사각형과 삼각형의 철판을 못으로 연결했으며, 어깨가리개는 좌우 2매로 가장자리에는 가죽 끈을 연결하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다. 갑옷은 네모모양의 긴 철판을 인체공학적으로 구부려 연결했다.





[김해 양동리 76호분 출토 가야 판갑옷과 투구/동의대학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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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527호, [단원풍속도] 행상/국립중앙박물관]


[보물 527호, [단원풍속도] 행상/국립중앙박물관]


[보물 527호, [단원풍속도] 행상/국립중앙박물관]



보물 527호 [단원풍속도첩] 행상은 27.2cmX23.7cm의 크기로 부부관계로 보이는 두 남녀 상인이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다. 낡은 벙거지를 쓰고 지게에 나무통을 지고 있는 남편 상인과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있는 부인이 각자 지게막대와 긴 나무막대를 들고, 움직임이 좋게하기 위해 한복의 바짓가랑이를 감아 매는 행전(行纏)을 하고 있어 다른 먼 곳으로 행상을 떠나기 전 서로 헤어지며 잠깐의 담소를 나누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특이한 것은 부인의 등에 업혀 있는 아기가 저고리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모습이 당시의 이채로운 생활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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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631호 황남대총 남분 은관/국립중앙박물관]


[보물 631호 황남대총 남분 은관/국립중앙박물관]


[보물 631호 황남대총 남분 은관/국립중앙박물관]


[보물 631호 황남대총 남분 은관/국립중앙박물관]


보물 631호 '황남대총 남분 은관'은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은제 관으로 높이 17.2cm, 머리띠 너비 3.2cm, 지름 16,6cm의 크기로 되어 있다.

머리띠 위의 장식은 세 갈래로 가지가 뻗어있는 형태로 전통적인 신라 관모에서는 보지 못하던 독특한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은관의 전체 모양을 보면 가운데 가지의 위에는 돌기가 있고, 활처럼 휘어지며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마름모 형태의 은판이 붙어 있고, 좌우에는 반달형 은판을 붙이고, 바깥쪽을 일정한 폭으로 오려낸 다음 하나 하나 꼬아 마치 새의 깃털을 꽂아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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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239호, 송시열초상/국립중앙박물관]


[국보 239호, 송시열초상/국립중앙박물관]



국보 239호 '송시열초상'은 전체 188cmX79cm(그림 89.7cmX67.6cm)의 크기로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 선조 40∼숙종 15)을 그린 초상화 중에서도 뛰어난 수작으로 손꼽히는 초상화다.

평상복 차림에 복건을 쓴 이 작품은 주름과 수염에 보이는 섬세한 얼굴 표현을 비롯한 사실적인 묘사가 특징이다.

몸 부분의 다소 과장돼 보이는 채구와 윤곽을 그린 견고한 필선, 그리고 음영을 표현하지 않은 직선 위주의 간명한 옷 주름은 조선 중기 학문과 사상을 휘어잡았던 걸출한 정치가의 이미지를 아주 잘 전달하고 있다.

얼굴과 복식에서 음영 처리가 나타나지 않는 점 등은 17세기 초상화의 특징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림의 윗부분에는 1778년에 정조가 지은 찬시가 예서로 씌어 있고, 오른쪽에는 송시열이 45세 때 지은 글이 해서체로 씌어 있다.

이 작품은 정조의 어제로 미루어 보아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지만, 17세기 초상화의 특징이 남아 있어 정조 연간에 원본에 충실하게 옮겨 그렸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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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1488호 심득경 초상/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488호 심득경 초상/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488호 심득경(沈得經, 1673~1710) 초상은 젊은 나이에 요절한 심득경을 애도하여 윤두서(尹斗緖, 1668년∼1715)가 그린 작품이다.

심득경과 윤두서는 절친한 친구이자 친인척관계로 심득경의 어머니가 너무도 유명한 고산 윤선도의 딸이며, 윤선도는 윤두서의 증조부가 된다.

이런 심득경이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자 윤두서는 이를 슬퍼하며 생전의 모습을 생각하며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해 석달만에 그림을 완성하는데,

완성된 초상을 심득경의 집에 보내 벽에 걸었더니 마치 죽은 사람이 되살아 온 것 처럼 모두가 놀라서 울었다고 전해진다.

<<남태응의 '청죽화사(聽竹畵史'>>


그만큼 묘사와 표현이 살아 생전의 실물과 매우 닮아 있기 때문이다.

심득경 초상은 조선시대 전통적인 초상화 양식을 따랐지만 기존의 초상화와는 달리 필치가 부드럽고 담채가 은은하여 문인화가의 솜씨다운 면모가 두드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림에 쓰인 찬문((贊文)에서도 이 초상이 심득경의 실제 모습뿐만 아니라 인품까지도 아주 잘 나타내고 있다고 감탄하고 있는데,

찬문 중에 심득경의 친구 서예가 이서(李敍 1662~?)가 지은 글을 보면,

'눈이 맑고 귀가 단정하며 입술이 붉고 이빨이 촘촘하다.'

'물에 비친 달은 그의 마음이요, 얼음 같은 옥은 그의 덕이다'

'잘 묻고 힘껏 실천했으며 깨달은 것은 확고했다'

라는 글을 통해 심득경의 실제 모습과 한결같은 그의 품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림 크기 160.3cmX7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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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66호 백자 철화 매화 대나무 무늬 항아리/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66호 백자 철화 매화 대나무 무늬 항아리/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66호 백자 철화 매화 대나무 무늬 항아리/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66호 백자 철화 매화 대나무 무늬 항아리/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66호 백자 철화 매화 대나무 무늬 항아리/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66호 '백자 철화 매화 대나무 무늬 항아리'는 '백자철화매죽문호(白磁鐵畫梅竹文壺)'라고도 하며, 높이 41.3cm, 입지름 37.9cm의 크기로 품격있고 장중한 형태와 뛰어난 그림으로 널리 알려진 16세기 조선시대 대표적인 철화 백자이다.

도자기에 표현된 문양은 문양이라기 보다는 한폭의 그림으로 감상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이 작품을 통해 16세기 화단의 사군자 기법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몸체에는 대나무와 매화나무를 사실적인 필치로 묘사하였는데, 대나무는 몰골법(沒骨法)-윤곽선을 나타내지 않고 색채나 수묵을 사용해 형태를 그려내는 화법. 을 사용해 농담을 살려 그렸으며, 가늘고 곧게 뻗어있는 대나무 잎과 휘어짐 없이 사방으로 벌어진 줄기를 통해 대나무의 강한 절개와 고결한 기상을 나타내고자 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반대편에 있는 매화나무는 둥글게 휘어 올라가는 등걸과 위로 곧게 치솟은 잔가지의 대조적인 표현이 서정적이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세련되고 우아한 필치로 미루어 궁중 화원의 솜씨가 분명해 보이며, 왕실용 자기 제조를 담당하는 관청인 사옹원 소속 관리가 매년 도화서(圖畫署)-조선시대 그림 그리는 일을 담당했던 관청. 의 화원을 인솔하고 관요(官窯)-왕실용 도자기를 구워내기 위해 정부에서 직영으로 관리했던 가마. 에 나가 도자기의 그름을 그리게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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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97호 청자 음각 연꽃 넝쿨 무늬 매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97호 청자 음각 연꽃 넝쿨 무늬 매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97호 청자 음각 연꽃 넝쿨 무늬 매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97호 청자 음각 연꽃 넝쿨 무늬 매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97호 청자 음각 연꽃 넝쿨 무늬 매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97호 '청자 음각 연꽃 넝쿨 무늬 매병'은 '청자음각연화당초문매병(靑磁陰刻蓮花唐草文梅甁)'이라고도 하며, 12세기 고려시대 청자이다.

높이 43.9cm, 입지름 7.2cm, 바닥지름 15.8cm의 크기로 연꽃무늬를 감싸고 있는 넝쿨무늬의 윤관석은 조각칼을 뉘여서 음각하였기 때문에 반양각(半陽刻)기법-문양의 윤곽을 가늘게 음각한 후, 외곽 부분을 깎아내어 양각처럼 보이게 하는 조각 기법. 으로 처리를 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반양각 기법은 12세기 고려청자의 특징적인 형태로써, 고려청자에 사용된 음각기법은 초기에는 가늘고 예리한 음각 무늬지만, 고려청자 전성기인 12세기 중엽이 되면 이와 같이 선이 굵어지고 반양각된 것처럼 처리하는 특징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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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114호, 청자 상감 모란 국화 무늬 참외 모양 병/국립중앙박물관]



[국보114호, 청자 상감 모란 국화 무늬 참외 모양 병/국립중앙박물관]


[국보114호, 청자 상감 모란 국화 무늬 참외 모양 병/국립중앙박물관]


[국보114호, 청자 상감 모란 국화 무늬 참외 모양 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14호 '청자 상감 모란 국화 무늬 참외 모양 병'은 '청자상감모란국화문과형병' 이라고도 하며, 12세기 후반~13세기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청자이다.

높이 25,6cm, 입지름 9.3cm의 크기로 참외 모양의 몸체를 한 것이 고려 인종의 장을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는 참외 모양 병과 유사하지만, 선의 흐름이나 단아한 맛은 조금 줄어든 듯한 느낌을 준다.

참외 모양 몸체에서 세로로 만든 골은 총 8개로, 각면에 국화와 모란꽃을 한 줄기씩 교대로 흑백으로 상감하였다.

참외 모양의 몸체 아래에는 역상감 기법(그려진 문양이나 무늬를 상감처리 하는 것과 반대로 배경 부분을 상감으로 메워 무늬가 청자색을 띄도록 하는 상감기법)의 연꽃잎 무늬 연판문(蓮瓣文) 띠를 돌렸으며, 어깨에는 여의두 무늬([如意頭文, 전자(篆字)의 心(심)자를 나타내는 고사리모양의 장식문양) 띠를 두른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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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16호 청자 상감 모란 넝쿨 무늬 조롱박 모양 주전자/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16호 청자 상감 모란 넝쿨 무늬 조롱박 모양 주전자/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16호 청자 상감 모란 넝쿨 무늬 조롱박 모양 주전자/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16호 청자 상감 모란 넝쿨 무늬 조롱박 모양 주전자/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16호 청자 상감 모란 넝쿨 무늬 조롱박 모양 주전자/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16호 청자 상감 모란 넝쿨 무늬 조롱박 모양 주전자/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16호인 '청자 상감 모란 넝쿨 무늬 조롱박 모양 주전자'는'청자상감모란당초문표형주자(靑磁 象嵌 牡丹唐草文 瓢形 注子)'라고도 하며, 12세기 고려시대 작품이다.

크기는 높이 34.3cm, 입지름 2cm, 바닥지름 9.7cm이다.

고려청자 가운데 조롱박 모양의 주전자가 많은데, 이러한 형태는 중국의 당과 송의 도자기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고려만의 산뜻한 조형미를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몸통 부분에 모란 넝쿨 문양이 도안화(패턴)된 것 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에 가까운 모란 문늬를 역상감(逆象嵌) 기법으로 표현했다.


※역상감이란 문양이나 무늬를 상감처리 하는 것과 반대로 배경 부분을 상감으로 메워 무늬가 청자색을 띄도록 하는 상감기법을 말한다.


모란 꽃잎과 잎사귀에 가는 음각선을 사용해 꽃맥과 잎맥을 표현했고, 몸체 윗부분에는 운학문(雲鶴文)-구름과 학의 모양을 표현. 을 상감처리 했고, 입 둘레는 뇌문(雷文)-선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무늬. 띠와 연판문(蓮瓣文)-끝을 각지고 뾰족한 모양으로 표현한 연꽃잎 무늬. 띠를 둘렀다.

또, 물을 붓는 귀때부리의 배와 밑둘레는 무늬를 도드라지게 찍는 퇴화(堆花)-도자기 표면에 물감을 두껍게 올려 무늬를 표현하는 것. 기법으로 흰 점을 만들어 넣었으며, 유조는 빙렬(氷裂)-얼음에 금이 갈라진 것 처럼 생긴 얇은 금. 이 없는 회청색계의 비색이며 광택이 은은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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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57호, 무령왕비 금귀걸이/국립중앙박물관]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송산리고분군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무령왕비 금귀걸이'는 6세기 백제시대 유물이다.

무령왕릉은 백제 25대 무령왕(재위 501~523)과 왕비의 무덤으로써 1971년에 처음 발굴이 진행되었는데, 벽돌로 만든 무덤에서는 금제관식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국보 157호로 지정된 '무령왕비 금귀걸이'는 모두 네쌍이 출토되었으며, 머리쪽에서 출토된 두쌍은 중심고리, 중간장식, 끝장식 등을 갖추었고, 발치 쪽에 출토된 두쌍은 중심고리와 끝장식만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머리 쪽에서 출토된 것은 노는 고리에 2점의 귀걸이를 매달아 만들었는데, 길쭉한 귀걸이는 영략을 붙인 사슬모양 연결 금구에 현재의 총탄과 흡사한 모양의 끝장식을 매달았다.

짧은 귀걸이는 중간 장식으로 투작 반 구체를 덮어씌운 담녹색 유리구슬을 사용했으며, 사슬형 금구에 사익형의 끝장식을 연결했다.

한편 발치쪽에서 출토된 것은 왕비의 발치 북쪽에서 팔찌와 함께 출토되었는데, 그 크기는 아주 작으며, 중심 고리에 금실을 두 번 감은 다음 횡으로 두세 번 감아 마무리를 한 것이 특징이다.


전체 길이 11.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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