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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최익현 선생 초상/채용신 작품/국립중앙박물관]


[면암 최익현 선생 초상/채용신 작품/국립중앙박물관]


[면암 최익현 선생 초상/채용신 작품/국립중앙박물관]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 1833~1906) 선생의 초상화로 1905년 석지 채용신(石芝, 蔡龍臣 1850~1941)이 그린 작품이며, 보물 1510호이다.

초상화 우측 상단에 씌어있는 '勉菴崔先生 七十四歲像 毛冠本 면암최선생 칠십사세상 모관본, 乙巳孟春上澣 定山郡守時 蔡石芝圖寫 을사맹춘상한 정산군수시 채석지도사' 라는 기록을 통해 1905년에 채용신이 그린 최익현의 74세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초상화에서 최익현은 겨울철에 사냥꾼들이 즐겨 사용하는 가죽 감태를 쓰고 심의를 용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얼굴은 갈색선을 수없이 그어 요철과 명암을 표현했으며, 얼굴 표정과 주름은 물론 감태 특유의 털 느낌도 세밀하면서 대담하고 입체감 있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옷 부분은 흰색으로 채색했는데, 옷주름은 선으로 그린 것이 아닌 흰색 채색을 통해 배경색을 그대로 살려 표현한 것이다.


그림 크기

전체 82.2X55.0cm/ 그림 81.5X41.5cm



채용신은 칠곡군순, 정산군수 등을 지내고 종2품관까지 지낸 인물로 조선말기 우국지사나 항일투사의 초상화를 많이 제작했으며, 고종의 어진과 고종대한제국동가도(高宗大韓帝國動駕圖) 등을 그렸으며, 운낭자이십칠세상(雲娘子二十七歲像), 황장길부인상(黃長吉夫人像) 등의 여인상도 그렸다.

그의 화법의 특징은 극세필을 사용해 얼굴의 육리문 묘사에 주력하고, 서양의 데생작업과 유사한 많은 필선을 사용해 요철, 원근, 명암 등을 표현한 점 등이 특징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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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국립중앙박물관]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국립중앙박물관]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국립중앙박물관]


5세기 신라시대 유물인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보물 632호)는 갑옷의 부속품으로 전장에서 팔뚝을 보호하기 위해 착용하는 것이다. 전체적인 모양은 팔뚝 모양처럼 팔꿈치 쪽이 넓고 손목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로 손목 부분을 감싸는 곳은 안쪽에서 끈을 걸어 고정시킬 수 있도록 3개의 걸이가 있다. 중심선은 따라 꽃봉오리 무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으며, 비슷한 모양의 팔뚝가리개 유물로 금동제, 은제, 철제도 출토되었다.


길이 34.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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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862호 지자총통/국립중앙박물관]


[보물 862호 지자총통/국립중앙박물관]


[보물 862호 지자총통/국립중앙박물관]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부윤리에서 출토된 보물 862호 '지자총통'은 조선시대 화포로써, 불씨를 손으로 점화하여 발사하는 유통식화포(有筒式火砲)이다. 크기가 천자총통 다음인 고유의 화포이다. 

총통에 새겨져 있는 음각된 글자를 통해 1557년(명종 12년)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는데, 포가 발사되는 총구에서 화약을 넣은 약실(약통)로 갈수록 두께를 두껍게 했으며, 두 개의 손잡이가 달려있었던 흔적이 있지만 손잡이는 모두 소실되어있다. 대나무 마디와 유사한 형태의 마디는 총구 부분과 합해 모두 10개로 되어 있으며, 앞에서부터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마디는 서로 붙어 있는데, 약실(약통)과 격목통을 구분하는 것이다.

격목통은 화약을 넣은 다음 포탄(철환)을 넣기 전, 원기둥 모양의 나무를 포 속에 박아 넣는 곳으로 화약의 폭발력을 보다 강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장군전/두산백과]


[조란탄/e뮤지엄]



화약 20냥을 사용해 조란탄(鳥卵彈)이라고 하는 둥근 공 모양의 철환 200개 또는 쇠로 만든 화살인 장군전(將軍箭)을 주로 발사했는데, 장군전의 경우는 그 무게가 29근(600gX29근=17,400g)에 달할 정도로 무거웠는데 지자총통을 통해 발사했을 때 800보(약 1km)까지 날아갔다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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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개와 강아지/이암/국립중앙박물관]


[어미개와 강아지/이암/국립중앙박물관]




어미개와 강아지 그림(구도狗圖)을 그린 정중 이암(靜仲, 李巖, 1499-?)은 세종대왕의 넷째아들 임영대군 이구(李璆)의 증손자이며, 왕족으로 두성령(杜城令)에 봉군되었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지만, 개와 고양이 같은 동물 그림을 잘 그렸으며 뛰어났다고 한다.

인종실록에서 그는 이상좌와 함께 중종의 초상을 그릴 화가로 승정원에 의하여 추천되기도 하였을 정도로 그림 실력이 뛰어났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의 동물 그림은 한국적인 정취를 독자적인 화풍을 잘 보여 주는데, 이 그림에서도 어미개와 강아지의 모습을 젖먹이 자식을 품고 있는 따뜻한 분위기로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림의 사실적 표현의 한 예로 어미개와 강아지의 털 색깔이 바뀌는 부분이 자연스럽게 번지게 표현하여 매우 사실적인 느낌을 준다. 다만, 그림의 주 피사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과는 달리 배경의 나무는 간략하게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크기 전체 163.0X55.5cm/그림 73.5X42.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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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면제갑옷/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면제갑옷/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면제갑옷/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면제갑옷/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면제갑옷/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면제갑옷/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후기 총탄을 효율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갑옷으로 등록문화 459호로 지정되어 있다. 면제갑옷은 면을 여러 겹 겹쳐 만든 갑옷으로 탄성이 큰 섬유조직을 이용해 총탄을 방어하는 원리가 적용된 면으로 만든 갑옷이다.

무명을 30장 이상 겹쳐 만들었는데, 안쪽에 소유자의 성명으로 추정되는 먹으로 쓴 글씨가 남아있는데, '공군옥(孔君玉)'이라고 쓰여 있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전해오는 면제갑옷으로 우리나라 갑옷 발달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유물이며, 군사사적, 사료적 가치 또한 큰 갑옷 유물로 평가받는다.


면제갑옷 크기 가로 100cm, 세로 1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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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89호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9호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9호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9호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9호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국립중앙박물관]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는 평안남도 대동군 석암리 9호분에서 출토된 순금제 버클로 국보 89호이다. 낙랑 유물 중 단연 최고의 수작으로 꼽히는데, 타출된 금판 위에 미세한 금 알갱이와 가는 금사를 누금기법으로 붙이고 그 위에 푸른 옥을 박아 화려한 장식을 추가했다.

주요 문양으로 가운데에 큰 용 한 마리가 있고, 큰 용 주변부에 작은 용 6마리가 각각 배치되어 있으며, 용의 윤각선은 비교적 큰 알갱이를 붙여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띠고리 전체에 모두 41개의 청록색 터기석을 붙여 장식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있지만, 현재는 7개만 있고, 왼쪽에 뚫려있는 호형의 구멍은 띠를 넣은 곳이고, 가로지르는 순금제 교침을 통해 띠를 고정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띠고리의 총 길이는 9.4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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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61호 청자 어룡 모양 주전자/국립중앙박물관]

 

[국보 61호 청자 어룡 모양 주전자/국립중앙박물관]

 

[국보 61호 청자 어룡 모양 주전자/국립중앙박물관]

 

 

국보 61호인 청자 어룡 모양 주전자는 상상 속의 동물인 어룡(漁龍)- 머리는 용의 형상을 하고 몸통은 물고기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 물을 힘껏 박차고 날아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인물이나 동식물의 형상을 본따 만든 전형적인 '상형청자'이다.

상형청자는 모본이 되는 형상의 대표적인 특징을 골라 묘사했으로 어떤 경우에는 모본의 느낌보다 더 강한 느낌을 주는 경우도 있다.

 

높이 24.3cm 바닥지름 10.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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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60호 청자 사자 장식 뚜껑 향로(청자사자개향로)/국립중앙박물관]


[국보 60호 청자 사자 장식 뚜껑 향로(청자사자개향로)/국립중앙박물관]


[국보 60호 청자 사자 장식 뚜껑 향로(청자사자개향로)/국립중앙박물관]



고려청자로 국보 60호인 청자 사자 장식 뚜껑 향로는 화로에서 피운 향이 뚜껑에 나있는 구멍으로 들어가 사자의 입으로 나오도 식으로 제작되었다. 뚜껑에 장식되어 잇는 사자가 가운데 아닌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은 사자를 조각한 후 뚜껑에 붙이면서 옆으로 미끄러져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이며, 향로 형태는 뚜껑의 경우 윗면에 한 단을 더 만들어 그 위에 사자를 올렸고, 단이 형성된 가장자리에는 여의두문을, 측면에는 초화문을 음각으로 새겼고, 규서을 받쳐 구웠다. 화로의 몸체 여백에는 넓게 퍼진 구름문을 가득채워 음각했다. 뒷다리를 구부려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습과 크고 동그랗게 뜬 눈에 철화 안료로 표현한 눈동자, 낮게 숙이고 있는 귀, 등에 올려붙인 꼬리 등은 매우 친근감 있는 사자의 형태로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청자 사자 장식 뚜껑 향로와 같은 상형 청자는 고려청자의 최정성기였던 12세기에 제작된 특색을 보이는데, 고려청자 특유의 아름다운 비색과 세련된 조형으로 당시 고려 공예의 높은 기술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높이 21.2cm 입지름 11.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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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신촌리 금동관/국립중앙박물관]


[나주 신촌리 금동관/국립중앙박물관]


[나주 신촌리 금동관/국립중앙박물관]


[나주 신촌리 금동관/국립중앙박물관]


[나주 신촌리 금동관/국립중앙박물관]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 9호 무덤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백제 금동관으로 국보 295호이다. 신촌리 금동관은 내관과 외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관은 반원형의 동판 2장을 맞붙이는 형식으로 만들었으며, 겉면에는 인동문을 테두리로 구획하고 그 안에 여러 개의 꽃모양 장식을 만들어 놓았다.

외관은 관테의 앞면과 옆면에 하트형의 끝장식이 있는 풀꽃 모양의 세움 장식이 못으로 고정되어 있는데, 관테의 윗면과 솟은 장식의 앞면에는 달개가 달려있어 신라의 관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지만, 머리띠에 꽂은 장식이 신라 관의 뫼산(山)자 모양과는 다른 복잡한 풀꽃 형상을 하고 있어 확연히 구분 된다.


금동관 높이 18.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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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총 금허리띠/국립중앙박물관]


[금관총 금허리띠/국립중앙박물관]


[금관총 금허리띠/국립중앙박물관]



경상북도 경주시 노서동 금관총에 출토된 국보 88호 금허리띠는 신라시대 유물로, 얇은 금판으로 제작된 40매의 허리띠꾸미개와 허리띠고리, 허리띠끝장식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금허리띠 그리고, 금허리띠에 화려하게 달려 있는 총 17줄의 허리띠드리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허리띠꾸미개는 혁대에 고정되는 사각형 판에 심엽형(풀이나 나무 우듬지의 가운데에서 돋아 오르는 잎 모양) 장식이 달려 있으며, 금판 위에 인동무늬를 간략화시킨 세잎무늬를 표현했고, 둥근 달개를 금실로 꼬아서 매다는식으로 보다 화려하게 보이도록 한 것이 특징입니다.

허리띠드리개는 타원형 판과 방형 판을 교대로 연결했는데, 가장 긴 것은 타원형 장식이 10개로 구성되어 있고, 끝에는 3개의 방울이 매달려 있습니다.

나머지 장식 가운데 13줄은 3개의 타원형 장식과 5~6개의 방형장식을 연결했으며, 맨 아래에 곱은옥, 용무늬 맞새김장식, 물고기장식 등이 매달려 있습니다.

나머지 3줄은 사슬과 속이 빈 금구슬을 사이사이에 연결해 드리웠으며 끝부분에는 향주머니가 달려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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