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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철화 끈무늬 병/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철화 끈무늬 병/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철화 끈무늬 병/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철화 끈무늬 병/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철화 끈무늬 병/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060호 '백자 철화 끈무늬 병'은 조선 전기 백자 병이 가진 특색인 풍만한 양감과 곡선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잘록한 목에서 시작해 아래로 내려올 수록 볼록한 형태를 그리는 곡선미와 마치 한가닥의 끈을 묶어 늘어뜨려 놓은 듯 거침없는 굵은 선으로 표현되어 있는 끈무늬는 철화 안료를 사용한 것이다.

백자 특유의 여백과 단순하면서도 과감하고 절제된 표현과 구성은 도자기 공예의 차원을 넘어 세련된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말설임 없이 사성 방향으로 힘차게 그어 내린 끈무늬는 단순하지만 백자 전면에 걸쳐 강한 인상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굽 안 바닥에는 철화 안료로 '니나히'라는 한글이 씌어져 있는데, 뜻은 명확하지 않지만 이를 통해 '백자 철화 끈무늬 병'이 한글 창제를 전후한 작품으로 추측할 수 있다.


높이 31.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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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92호 청동 은입사 물가 풍경 무늬 정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92호 청동 은입사 물가 풍경 무늬 정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92호 청동 은입사 물가 풍경 무늬 정병/국립중앙박물관]



고려시대 정병은 대체로 몸체가 계란형으로 매끈하게 빠진 긴 목 위로 뚜껑 형태의 둥근 테가 놓인다. 그 위로 다시 대롱형의 물을 빼는 첨대(尖臺)가 솟아 있으며, 몸체 한쪽에는 중간을 잘록하게 좁힌 귀때가 붙어 있다.

'청동 은입사 물가 풍경 무늬 정병'은 무늬로 물가 풍경을 넣었는데, 길게 늘어진 버드나무와 노를 저어가는 어부와 낚시꾼 등 잘 표현되어 있으며, 모든 그림은 홈을 파 은선을 두드려 넣은 은입사 기법이 사용되었다.

전체적으로 청동의 색과 은입사로 표현된 무늬가 묘한 분위기를 자랑하고 있다.


정병(淨甁)은 인도에서 에서 승려가 먼길을 떠날 때 메고 다니던 물을 담은 물병에서 유래되었으며, 훗날 승려가 가지고 다니는 필수품의 하나로 쓰이게 되었다.

그러다 차츰 부처님 자비의 상징으로 변화되었는데, 바로 정병 속에 들어있는 물을 통해 중생들의 목마름과 고통을 덜어준다고 하는 상징적 의미의 공양구의 용도로 인식하게 되었다.

정병을 만드는 재료는 주로 청동과 도자기가 사용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불교을 숭상하던 고려시대에 특히 많이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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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15호 청자 상감 국화 넝쿨 무늬 완/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15호 청자 상감 국화 넝쿨 무늬 완/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15호 청자 상감 국화 넝쿨 무늬 완/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15호 청자 상감 국화 넝쿨 무늬 완/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15호 청자 상감 국화 넝쿨 무늬 완/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15호 '청자 상감 국화 넝쿨 무늬 완'은 높이 6.2cm 입지름 16.8cm로 12세기 고려시대 유물이다.

1159년(의종, 毅宗 13)에 죽은 병부상서 등을 지낸 문공유(文公裕, ?~1159)의 무덤에서 묘지와 함께 출토된 유물로 제작 연대를 짐작할 수 있는 상감청자 가운데 가장 오래된 유물이며,

상감기법의 발전 과정을 알 수 있는 편년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대접의 안쪽 바닥 가운데에 국화꽃잎을 백상감하고 안쪽 면 전체를 넝쿨 무늬로 역상감하였으며 입구 둘레에도 넝쿨 무늬 띠를 장식하였다. 굽 안 바닥에는 규석 흔적이 남아 있는데, 유약과 태토가 정성된 12세기 전반 청자에 비하면 빙렬(氷裂:얼음이 금가고 갈라진 모양)도 있고 유약도 두꺼웠지만, 상감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투명한 유약을 추구해 가는 노력을 확인할 수 청자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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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1168호 청자상감매화대나무학무늬매병/국립중앙박물관]


[보물1168호 청자상감매화대나무학무늬매병/국립중앙박물관]


[보물1168호 청자상감매화대나무학무늬매병/국립중앙박물관]


[보물1168호 청자상감매화대나무학무늬매병/국립중앙박물관]


[보물1168호 청자상감매화대나무학무늬매병/국립중앙박물관]



'청자 상감 매화 대나무 학 무늬 매병'은 보물 1168호로써 높이 33cm, 입지름 5.2cm, 바닥지름 11.7cm의 크기로 12세기 후반~13세기 고려시대 유물이다.

전체적인 모습으로는 입구 아래에서 풍만한 어깨선이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자연스러운 곡선미를 자랑하는 전형적인 고려청자 매병이다.

몸체에는 양쪽 면에 대나무와 매화나무가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는데, 대나무는 마치 바람에 날리는 듯 한쪽 방향으로 뻗어있고, 매화나무의 가지는 양 갈래로 뻗어 있어 그림의 전체적인 구도에 균형 역할을 하고 있다. 대나무와 매화나무의 주변에는 학이 날아 오르는 모습과 아래로 내려오는 모습 그리고 땅위에서 학이 깃털을 손질하는 그 특유의 모습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넓은 공간감과 짜임새 있는 구도가 돋보이는 표현이 희화적이면서 귀족적인 아취가 함축되어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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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1061호 백자 철화 풀 무늬 각배/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061호 '백자 철화 풀 무늬 각배'는 15세기 조선 백자로 소뿔 모양을 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도자기 입 부분은 안쪽으로 밀린 듯이 처리했으며, 뿔의 뾰족한 끝 부분에서 시작한 풀 모양의 무늬는 전체 길이 1/3 정도만 들어가 있다.

황색을 띠는 회백색의 유약은 다소 두터우며, 불투명한 느낌을 주는데, 이러한 뿔 모양의 도자기는 우리나라에서 삼국시대 이후 소량 제작되었으며, 특히 백자로 만든 것은 매우 희귀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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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관꾸미개(은화관장식)/국립부여박물관]



[백제 관꾸미개(은화관장식)/국립부여박물관]


[백제 관꾸미개(은화관장식)/국립부여박물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능안골 고분군(공설운동장부지) 돌방무덤에서 출토된 백제시대 은화관장식 유물은 은으로 된 판의 가운데를 접어 꽃봉오리와 줄기모양으로 좌우대칭이 되도록 오린 것으로, 남자는 줄기에 곁가지가 장식된 것을 착용했으며, 여자는 곁가지가 없는 단순한 모양의 꾸미개를 착용하였다고 한다.

줄기의 밑부분을 머리에 쓰는 관모의 정면 테두리 부분에 꽂아 장식하였으며, '수서(隋書)','구당서(舊唐書)' 등에 나와있는 '백제의 나솔 이상은 은꽃으로 관을 장식한다.'라는 기록으로 알 수 있듯이 은화관장식은 실제로 사용되었던 관모 장식이다.


세로 길이 20.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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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金銅半跏思惟像)은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 성행했던 특정한 형태를 보이는 하나의 독립적 형식으로 만들어진 조각상으로 보살사유상이라고도 하는데, 보통 왼쪽 발은 내리고 오른발은 그 무릎 위에 얹는 반가좌법(半跏坐法)의 형태로 팔꿈치로 무릎을 짚고 손가락으로 빰을 고이고 있는 자세를 한 보살상을 말한다.

이러한 상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기 전 태자로 있을 때 인생의 덧없음을 사유하던 모습에서 유래되었으며, 따라서 중국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상을 태자사유상이라고 하였다.


입가에 머금은 생기 있는 미소와 살아 숨쉬는 듯한 얼굴 표정, 부드럽고 유려한 옷주름, 상체와 하체의 완벽한 조화, 손과 발의 섬세하고 미묘한 움직임 등 모든 것이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된 동양불교 조각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금동반가사유상은 일본 교토에 있는 고류사(廣隆寺)라고 하는 절에 잇는 목조반가사유상과 그 모습이 유사하여 서로간의 영향적 관계에 대해 주목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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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96호, 청자 거북이 모양 주자/국립중앙박물관]


[국보 96호, 청자 거북이 모양 주자/국립중앙박물관]


[국보 96호, 청자 거북이 모양 주자/국립중앙박물관]


[국보 96호, 청자 거북이 모양 주자/국립중앙박물관]


[국보 96호, 청자 거북이 모양 주자/국립중앙박물관]



국보 96호 청자 거북이 모양 주자는 함경남도 개성에서 출토된 청자 상형 주자로, 연꽃 받침 위에 앉아 있는 거북이 모양으로 제작되었다. 

몸통은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지만, 얼굴과 목의 형상은 용의 머리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고려시대 돌로 만든 비석의 귀부(龜趺)에서 찾아 볼 수 있는 형태이다.

수염, 갈기, 이빨, 비늘, 이마의 뿔 등이 정교하게 표현돼 있으며 눈에는 철사 안료를 써서 검은 점을 찍은 것 또한 특징이다.

거북 등 껍질 육각형 무늬 안에는 왕(王)자를 문양처럼 새겨 넣었는데, 이는 이 주자를 사용하는 사람의 신분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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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110호,익재 이제현 초상화/국립중앙박물관]


[국보110호,익재 이제현 초상화/국립중앙박물관]


[국보110호,익재 이제현 초상화/국립중앙박물관]


[국보110호,익재 이제현 초상화/국립중앙박물관]


[국보110호,익재 이제현 초상화/국립중앙박물관]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며 유학자로 본관은 경주 이며, 호는 익재(益齋)·역옹(櫟翁) 이다.

충렬왕 13년에 태어나 공민왕 16년까지 활동한 인물로써, 당시 고려를 대표하는 정치가이자 학자이며, 고려 최고의 관직인 문하시중의 자리까지 올랐다.

   

국보 110호 이제현 초상화는 고려 충선왕(忠宣王, 1275~1325)과 함께 중국을 유람하던 시기 1319년에 충선왕이 진감여(陳鑑如)라고 하는 원나라 화가를 시켜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후 귀국을 하면서 이 그림은 가져오지 못했다가 21년 후에 우연히 그림을 다시 보게 되자 그 감회를 시로 읊었다.



我昔留形影

옛날에 남겨둔 나의 초상은


流靑靑兩鬢春

양쪽 귀밑머리 푸르렀다오.


傳幾歲月

얼마나 많은 세월 흘러갔던가


邂逅尙精神

우연히 또 만나니 정신이 새로워라.


此物非他物

    이 물건 다른 물건 아니라


前身定後身

전신이 곧바로 후신이라네.


兒孫渾不識

아희들은 도무지 알아보지 못하고


相問是何人

이게 누구냐 자꾸 물어보누나.

 


그림에는 이 시와 함께 그림에 대한 원나라 문장가 탕병룡의 찬과 함께 쓰여 있다.


초상은 왼편을 향하고 있는데, 상의 왼쪽에는 주역(周易)과 고대 청동기가 놓여져 있는 칠기로 된 탁자가 있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분홍빛의 홍조를 띠고 있으며, 별다른 음영의 표현은 없다. 심의는 흰색 옷에 옷깃과 소매 끝 밑단 등의 푸른색의 선으로 둘러져 있으며, 옷의 모양새가 전체적으로 풍성하고 둥글다. 교의는 칠기에 화려하게 조각을 한 후 다시 붉은 색을 칠하여 매우 화려해 보인다.

이제현의 초상화는 비록 원나라 화가가 그린 초상화이지만 현재 전해지는 초상화 중 매우 이른 시기의 초상화라는 의미와 더불어 고려와 원나라의 교류를 통한 문화적 산물로서도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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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관해방총도/국립중앙박물관]


[청구관해방총도/국립중앙박물관]


[청구관해방총도/국립중앙박물관]


[청구관해방총도/국립중앙박물관]


[청구관해방총도/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군사지도인 청구관해방총도(보물 1582호)는 북쪽을 지도의 윗쪽으로 배치하는 현대의 방식과 다르게 한반도를 옆으로 눕혀 그린 것으로 시점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동쪽을 지도의 위쪽에 배치하는 지도도 일부 만들었다.

총구관해방총도의 전체적인 크기는 '동국대전도(東國大全圖)'에 가까운 크기(285cmX86.3cm)로 아주 큰 편에 속하며, 동국대전도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지도의 오른쪽(남쪽)에는 일본의 위치도 간략하게 나타내고 있으며, 지도의 여백에 국경지역과 관련한 중요한 사항들을 붉은 글씨로 나타내고 있다.

산(山)지는 주로 산줄기를 강조하여 이어진 모양으로 표현했고, 백두대간의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또한 압록강, 두만강 이북까지 지도상에 포함하고 있는 것도 동국대전도와 비슷하며, 특히 의주에서 산해관에 이르는 도로를 표시하였고, 몽고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울타리가 그려져 있으며, 울타리의 문이 비교적 자세하게 표현돼 있는데, 이는 국경지역에 대한 군사적 관심이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내부 지역에는 군사 기지인 진보(鎭堡)와 성곽들이 잘 그려져 있고, 붉은 선으로 중요 교통망을 표현했으며, 해안에는 방어시설과 관련된 백명을 단위로 하는 군대 편제인 초(哨)와 당(塘)이 각기 표시돼 있다.

당시 중요 통신망이였던 봉수는 횃불모양으로 표시했고, 요충지는 깃발모양으로 표시하는 등 직관적인 표현도 특징이다.

다만, 당시 섬이었던 안면도는 여전히 곶으로 표현하는 등 이전 시기 지도에서 나타나는 불완전한 부분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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