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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대 작곡가들이 단원수가 많은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곡 작곡에 몰두한 데는 만하임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삼마르티니(Giovanni Battista Sammartini, 1700~1775), 슈타미츠(Carl Philipp Stamitz, 1745~1801) 같은 음악가들의 영향이 크다. '만하임 악파(Mannheim school)'로 불렸던 이들은 신곡, 새로운 자극을 좋아하던 당시의 청중을 위해서 곡의 마지막 부분의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다이내믹의 변화를 이용하였다. 다이내믹을 이용한 만하임 악파의 독특한 마무리는 '만하임 크레셴도(Mann-heim crescendo)'로 불리면서 당시 많은 인기를 끌었다.

 

 

 

크레셴도(crescendo) : 점점 세게

 

크레센도는 '점점 세게'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인데 만하임 크레셴도는 곡의 피날레(finale) 부분이 시작될 때, 제1바이올린 파트가 연주하고 이후 먼저 연주하던 제1바이올린 파트와 함께 제2바이올린 파트가, 그리고 다시 앞서 연주하던 제1,2바이올린 파트와 함께 비올라 파트가 연주하는 것같이 오케스트라의 악기파트들이 중첩(overlap)되면서 음량이 점층적으로 커지는 기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만하임 크레셴도 연주법에 표시는 되어 있지만 실제 베토벤을 제외한 고전작곡가들은 매우 세게(ff)나 매우 여리게(pp)와 같은 극단적인 다이내맥을 선호하지는 않았다.

 

만하임 그레셴도 연주법

ppp 제1바이올린
pp 제1,2바이올린
p 제1,2바이올린 + 비올라
mp 제1,2바이올린 + 비올라 + 첼로
mf 제1,2바이올린 + 비올라 + 첼로 + 더블베이
f 제1,2바이올린 + 비올라 + 첼로 + 더블베이 + 목관악기
ff 제1,2바이올린 + 비올라 + 첼로 + 더블베이 + 목관악기 + 금관악기
fff 제1,2바이올린 + 비올라 + 첼로 + 더블베이 + 목관악기 + 금관악기 + 타악기

 

만하임 악파에서 유래한 점층적인 음량의 변화는 고전과 낭만시대 교향곡에 영향을 주어 만하임 크레셴도로 끝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교향곡은 오케스트라 전체가 큰소리로 연주하면서 마치게 된다. 그리고 곡의 마지막 부분에 팀파니같이 큰 음량을 내는 타악기를 부가함으로 청중들과 연주자 모두 하나가 되어 같이 흥분하고 음악의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데 만하임 크레셴도는 연주자가 '세게'와 '여리게'를 모두 다 표현하는 오늘날의 다이내믹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베네치아 악파의 이중합창에서 유래된 '테라스 다이내믹'처럼 만하임 크레셴도도도 악기의 수에 따라 음량이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다이내믹이 섬세하고 풍부한 음악적 표현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악곡에 다이내믹을 표기하기 시작한다. 바로크시대의 음악에 다이내믹 표시가 없는 것과 달리 모차르트 음악에 표시된 아기자기한 다이내믹 표시, '점점 세게' (cresc.)와 '점점 여리게' (dim. 또는 decresc.) 등은 원작자가 표기한 것이므로 연주할 때 다이내믹 표시를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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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 1862~1918), 프랑스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 프랑스


드뷔시와 라벨로 대표되는 프랑스 인상주의는 19세기 낭만사조와 20세기 현대음악어법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1894)>과 <바다(1903)>, 라벨의 <볼레로(1928)>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1899)> 같은 작품은 고전, 낭만의 음악과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사실 드뷔시는 자신의 음악이 '인상주의'로 불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독일식의 지나친 감정표현과 전혀 다른 프랑스문화에 나타나는 단순하고 우아하면서 자연스러운 느낌과 잘 맞는다 하여 드뷔시의 음악을 인상주의라고 부르는 것이다.

초기의 드뷔시는 바그너의 음악에 경도되었지만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접한 자바(Java)의 가믈란(gamelan)음악에사용된 5음 음계와 다양한 타악기 음색이 조화를 이루는 것에 크게 감동을 받고 음악적 취향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인상주의 음악은 조성음악의 I도와 V도의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장단조 음계 대신 온음 음계(wholetone scale, 도-레-미-파#-솔#-라#), 5음 음계(도-레-미-솔-라), 선법 그리고 화성법에서는 금지하는 병진행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전까지의 작품과 전혀 다른 음향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빠른 아르페지오와 피아노에서 손톱으로 건반을 미끄러지듯이 연주하는 글리산도(glissando) 음형을 자주 사용하여 하나의 음을 정확하게 소리내기보다 미끄러지듯이 연주하여 넓은 음역을 사용한 점이 특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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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음악에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은 소나타 형식이라는 하나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집의 인테리어를 현대적 감각과 용도에 맞게 변경하는 개조와 보수작업을 '리모델링(remodeling)' 혹은 '리노베이션(renovation)'이라고 하며, 그리고 집이 너무 오래되어 완전히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을 '재건축(rebuilding)'이라고 한다.

고전과 낭만의 교량약할을 한 베토벤 작품을 가리켜서 종종 리모델링과 재건축에 비유하는데, 베토벤 초기작품은 소나타 형식이라는 집의 구조 중 마음에 들지 않는 일부분만을 변형한 것이기에 '리모델링'에 비유한다. 반면 후기작품은 '재건축'에 비유하는데 그 이유는 기존의 형식(집)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전 말기 베토벤이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음악을 위해 전통적인 형식을 해체하고 새로운 형식을 세우기 위해 보여준 시도는 19세기 작곡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음악을 통해 개인이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과 사적인 경험을 표현하고자 했던 19세기 작곡가들은 소나타 형식의 미리 정해진 악장의 수, 2개의 주제, 각 악장의 형식, 그리고 소나타-알레그로 형식에 나타나는 조성의 관계로는 개인마다 다르게 느끼는 섬세한 감정을 담아낼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릇(형식)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나 하는 관심보다 '무엇'으로 그릇을 채우느냐, 즉 내용에 대한 관심이 우선이었던 19세기 작곡가들은 내용물에 맞게 그릇의 모양을 바꿔나가게 된다. 다라서 고전시대의 음악이 주로 소나타 형식(그릇)에 내용물을 맞춘 것과 달리 19세기 작곡가들은 내용에 맞는 모양의 그릇, 형식들을 개발하고 찾아가는 작업에 주력한다.

그래서, 19세기에는 여전히 소나타 형식의 틀을 고수하는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 멘델스존(Jak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1847),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같은 작곡가와 아울러 가곡(lied), 교향시(symphonic poem), 악극(music drama), 성격적 소품(character piece) 같은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서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하려는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같이 상반된 목표를 추구하는 작곡가들이 공전하는 것이다.

따라서, 19세기 음악은 형식 자체를 무시하거나 거부한 것이 아니고 내용에 맞는 형식을 추구하고 만들어 내는 데 관심이 있었다는 말이 더 적합한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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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음악과 고전음악을 비교하면서 전자는 표제음악(program music), 후자는 절대음악(absolute music)이라고 한다.

표제음악은 제목이 있는 음악이라는 뜻이고, 절대음악은 음악의 내적 형식(대개 소나타 형식을 가리킨다.)이 아닌 다른 것과는 무관한 음악이란 뜻이다. 따라서 음과 음사이의 관계, 전체 작품의 통일성, 유기성을 강조하고 문학, 미술, 자연, 감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음악을 말하는 것이다.

반면 표제음악이란 말 그대로 작품에 제목이 있다는 뜻이다. 작곡가가 정한 표제는 작품의 주제나 내용을 암시하거나 미술, 시, 소설, 자연 등을 경험하면서 개인이 느끼는 감정과 사상(생각)들을 드러내는 음악이다.

그러나 표제는 어떤 사물 혹은 미술작품에 대한 감상, 문학(시, 소설)의 줄거리를 그대로 묘사허거나 모방한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작가의 다양한 느낌과 경험, 막연한 상념, 어떤 종류의 시적 기분의 발생을 하나의 표제로 한정지을 수 없기 때문에, 표제음악도 절대음악과 마찬가지로 추상적인 느낌을 준다.

절대음악으로 불리는 고전음악 중에도 표제가 붙은 작품들이 많은데 작곡자가 직접 붙인 제목은 그리 많지 않다.

작곡가가 제목을 붙인 경우에도, 제목과 직접 연관되는 내용을 다루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베토벤 교향곡 제3번 <영웅>, 제5번 <운명>, 제6번 <전원>의 표제들은 작곡가가 느낀 영웅, 운명, 혹은 전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이 음악을 들은 평론가나 애호가들이 작품에서 받은 느낌을 토대로 나중에 제목을 붙인 것이므로 표제와 작곡가의 의도와는 상관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초연장소에 따라 표제가 정해지기도 했고(<프라하>, <린츠>), 후원자의 이름(<발트슈타인>, <라주모프스키>), 작품에 나오는 특징적인 음색이나 음형(<군대>, <드럼롤>, <시계>, <터키> 행진곡) 혹은 주제음형(<운명>) 때문에 붙은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운명>이라는 표제 덕분에 우리는 "솔솔솔미 b~"로 시작되는 제5번 교햑곡을 들을 때 줘진 운명과 맞서는 작곡가의 불굴의 의지와 투쟁을 떠올리지만, 다른 문화권에서는 이 곡을 들으면서 운명과 전혀 상관없는 다른 것을 연상할 것이다.

이처럼 절대음악에 붙여진 표제와 작품을 연관시켜서 듣게 된다는 건 결국 절대음악이 완전히 음과 음의 구성이라는 추상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말이 될 것이다.

대대수 19세기 작곡가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음악적 감성과 독창성을 표현하고자 소나타 형식이 아닌 새로운 형식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였다.

대개 표제음악을 대표하는 장르로 가곡, 교향시, 악극을 꼽는데, 이 세가지 장르는 소나타 형식처럼 고정된 하나의 틀을 갖는 것이 아니고 성악, 관현악, 오페라를 통해 낭만주의적 이념을 실현하려는 작곡가들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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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서양음악 그리고 낭만주의시대?


일반적으로 서양음악사에서 19세기는 낭만주의시대라고 한다. 18세기 후반 고전음악과 상반된 가치를 추구하였다 하여 낭만주의로 일컬어지는 19세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주의라는 하나의 특징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성격의 음악이 공존했던 시기이다.

따라서 19세기와 낭만시대는 동의어가 아니고, 낭만주의는 19세기에 나타나는 다양한 음악사조 중 하나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다.


낭만주의는 19세기에 나타나는 다양한 음악사조 중 하나이다.


18세기 후반 빈을 중심으로 유행한 음악을 고전주의라 부르게 된 배경에는 지나치게 주관적인 감정과 사적인 경험을 중시하는 19세기 낭만사조에 대한 거부감이 깔려 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이상적인 음악'이란 뜻의 '고전(클래식)'이란 이름을 붙여 낭만보다 더 우월하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음악으로 칭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시기상으로 고전이 낭만보다 앞서지만, 실제 고전이란 이름은 낭만주의시대에 붙여진 이름이었고, 그 이전까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은 빈에서 유행했던 음악으로 회자되었다.

19세기 유럽사회는 프랑스혁명에 의해 의식화된 시민계급의 대두로 프로아스처럼 극단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시민사회로 전환하는 과도기의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산업혁명 이후 전통사회가 아닌 산업사회로 바뀌게 되면서 도시화와 자본주의를 형성해가고 있었던 시대였다.

경제적 변화, 기술과 과학의 진보, 생물학의 발달은 다윈의 '진화론(1859)' 같은 파격적인 주장으로 이어지면서 19세기 유럽사회는 기본적인 가치관과 질서가 흔들리는 불안한 상황을 맞게 된다.

또한 나폴레옹의 등장 이후 계속된 전쟁은 1870년 보불전쟁, 식민지 쟁탈전으로 이어지면서 유럽은 정치, 사회 ,사상 등 모든 분야에서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하게 된다.

사회 전반의 불안감과는 대조적으로 19세기 중반까지 '음악은 낭만적 예술이다.'라는 믿음이 지배했고 음악은 주관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대상이자 주체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과거와 달리 음악이나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것을 바로보는 주체(개인)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사물 자체가 아름다움이란 속성을 지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독일 중심의 낭만주의 이념과 비독일계의 음악가들의 새로운 움직임


특히 독일에서는 정치, 사회적 불안을 현실과 동떨어진 낭만적인 신화, 과거, 환상을 주제로 하는 낭만성 짙은 음악들이 중심이 되어 낭만주의 이념을 발전시켜 나간다.

그러나 독일 중심의 낭만주의를 거부하는 새로운 움직임들이 19세기 중반 이후 비독일계 음악가들의 작품에 나타나게 되면서 19세기 음악은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우선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아름다운 것만을 모방하고 표현하려는 예술의 기본전제를 거부하고 아름답지 못한 추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예술의 의무라는 사실주의(리얼리즘)문학이 도래한다.

이에 오페라 같은 극음악분야에서 사실주의적 경향이 나타나면서 독일의 낭만주의와 상반된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후기 낭만에 대한 거부감과 그와 구분되는 고유한 음악 양식의 확립과 발전

[드뷔시 (Achille Claude Debussy)/Wikipedia, Nadar]


그리고 그동안 유럽에서 문학적으로 소외되었던 러시아와 체크(보헤미아) 같은 동유럽, 노르웨이이나 핀란드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독일의 정치적, 문화적 지배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고유한 음악적 감수성과 전통에 기반을 둔 톡특한 민족음악샹식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또한 바그너를 중심으로 하는 독일 후기 낭만의 극단적인 주관성, 개인주의에 거부감을 느낀 이탈리아와 프랑스 역시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의 오페라와 드뷔시의 인상주의 기법을 토대로 독일 후기 낭만(바그너)과 구분되는 고유한 음악어법과 양식을 확립, 발전시키려는 민족주의적 경향에 간접적으로 동참한다.

19세기 내내 유럽의 모든 나라와 작곡가 개개인이 낭만주의 이념을 추구했던 것이 아니므로 다양한 음악적 실험과 형식, 주장들이 어우러진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19세기 유럽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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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시(交響詩, symphonic poem)
표제음악의 일종으로 시,전설과 같은 문학적 내용이나 풍경 따위의 회화적인 내용을 관현악으로 표현한 자유로운 형식의 악곡.


교향시는 '관현악으로 연주하는 시'라는 의미의 교향시는 소나타 형식을 따르는 기존 교향곡이 4악장으로 이루어진 것과 달리 단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교향시가 단악장인 이유는 형식과 관습에 의한 인위적인 악장구분이 곡의 흐름을 단절시키고 작곡가가 추구하는 표제의 내용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데 방해가 되기 대문이다.


시가 구체적인 대상이나 제한적인 의미보다 주관적 해석을 하는 것처럼, 교향시 역시 제목이 내포하는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주관적 감정을 그려내고자 한다.

따라서 교향시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다양한 주제를 반복, 발전, 변형시켜 문학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자극하고 표제에 내포된 아양한 의미들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리스트에 의해 확립된 교향시의 개념은 고전시대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과 악장 구분이 없는 '에그몬트 서곡' 같은 곡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진다.


특히 1830년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1869)'환상 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에서 사용된 '고정악상(idee fixe:기억에 남는 주제가 반복적으로 등장)' 기법과 표제와 관련된 무한한 표현의 가능성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리스트'전주곡', 그리고 민족주의 계열의 체코 작곡가 스메타나(Bedrich Smetana, 1824~1884)의 6개의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 '무소르크스키(Modest Musorgskii, 1839~1881)'민둥산의 하루', R.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5~1949)'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시벨리우스(Johan Sibelius, 1865~1957)'핀란디아',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7)'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바다' 등이 대표적인 교향시 작품이다.


19세기 작곡가들 중에서 교향시보다 고전교향곡을 계승, 새로운 시도를 보인 작곡가들 또한 상당수에 이르는데 가장 대표적인 작곡가가 멘델스존, 브람스와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이다. 멘델스존은 낭만적 고전주의자로 불리는데 '스코틀랜드', '이탈리아' 같은 표제가 암시하듯이 교향곡을 통해 풍경화 같은 색채감을 표현하는 데 주력하였다. 또한 제1번 교향곡에서 베토벤'합창'을 연상시키는 주제를 사용하여 흔히 베토벤과 비견되는 브람스는 시대의 조류를 벗어나서 조성적 틀을 유지하는 고전형식과 바로크 대위법을 자신의 음악에 수용, 4개의 교향곡을 완성하였다.


9개의 교향곡을 작곡한 말러바그너와 고전주의 작곡가들의 음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대지의 노래''천인 교향곡' 같은 작품을 통해 교향시, 교향곡, 가곡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새로운 시도와 조성의 규칙을 파괴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선보임으로 쇤베르크(Arnold Schonberg, 1874~1951), 쇼스타코비치(Dmitrii Shostakovich, 1906~1975) 같은 20세기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대지의 노래'는 가곡적인 성격이 강한 교향곡으로 이태백, 왕유의 시에 곡을 붙여서 동양적인 사색, 자연에 대한 예찬과 삶의 무상함을 노래한 작품이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교향악단의 규모가 확대되고 특별하게 악기개량이 이루어지지 않아 오늘날의 교향악단과 거의 동일한 음향을 갖게 된다. 또한 관현악단에 다양한 악기가 사용되면서 악기이 수, 악기편성, 다양한 음역을 나누는 방식(division)에 대한 내용을 다룬 관현악법이 발달된다.


베를리오즈는 금관악기이 힘과 표현범위를 극대화하는데 기여하였고, 특히 19세기 후반의 말러는 '천인 교향곡' 같은 작품에서 관현악이 추구할 수 있는 극한의 음향과 음량을 시도하고 그 외에 '대지의 노래'에서는 동양의 악기들과 서양관현악단의 조화를 이루는 시도들을 하였다. 이 시기 장식적인 기능, 청중의 관심을 끌 만한 자극적인 요소로 사용되던 관악기들과 타악기가 오케스트라의 음색과 음역의 변화를 이끄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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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퐁논쟁

(Querelle des Bouffons) 1750년대 초 프랑스 파리를 무대로 펼쳐진 음악논쟁.

[부퐁논쟁 이후, 오페라 개혁에 대해 읽기]




 바로크시대 오페라는 자국의 음악양식을 대표하는 민족음악적인 성격을 보였다. 특히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는, 교황의 내정간섭을 거부하고 왕을 중심으로 하는 근대국가를 확립하기 위해, 자신들 고유의 오페라 전통과 어법을 만들고자 많은 공을 들였다. 이런 이유로 이탈리라 오페라가 프랑스에 소개된 초기를 제외하고 프랑스에서는 왕실의 비호하에 프랑스식 오페라, 서정적 비극이 유행하였고 이탈리아 오페라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1752년 이탈리아 오페라단이 페르골리시의 <마님이 된 하녀>를 공연한 후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태도가 돌변한다. 백과전서학파로 불리는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이탈리아 부파의 '보편적인' 성격의 인물, 서정적이면서 꾸밈이 없는 아리아, '자연스러운' 억양의 레치타티보를 찬양하면서 오페라를 둘러싼 이탈리아와 프랑스 지지자들 사이에 격한 논쟁이 시작된다. '부퐁논쟁'으로 불리는 오페라 전쟁은 이탈리아 부파를 지지하는 백과전서학파와 륄리가 확립한 서정적 비극, 왕실 오페라의 전통을 지지하는 왕당파로 나뉘어져 이후 20년 동안 4차례의 논쟁으로 이어진다. 다른 말로 '전단' 전쟁이라 불릴 만큼 이탈리아 부파를 지지하는 입장과 프랑스 오페라를 지지하는 두 파는 상대방을 비방하는 문구를 넣은 전단을 뿌려대면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고자 애를 썼다.

 부퐁논쟁에서 백과전서학파가 프랑스 오페라를 비난한 배경에는 '자연성'을 추구하는 계몽주의 사고가 깔려있다. 운율과 강세가 분명한 이탈리아어는 태생적으로 음악적인 언어지만 프랑스어는 노래 부르기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비록 이탈리아어가 외국어라 뜻을 알아들을 수 없지만 오페라는 무조건 이탈리아어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 루소를 비롯한 백과전서학파의 공통된 주장이었다. 이 오페라 전쟁에서는 백과전서학파가 승리를 거두고 프랑스는 한동안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에 푹 빠진다.

[음악의 이해와 감상/김종수 권도희 김성혜 이지선 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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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악음악의 발달 그리고 '클래식'

'특정감정표상법'이란 이론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17세기 후반에서 19세기에 작곡된 서양음악은 기악곡이 많다.

 이는 이전 시대 까지 내려온 전통적인 시각 즉, 인간을 감정적으로 치우치게 하는 위험하고 자극적이며 비이성적인 음악이라는 고대 그리스의 사고와 이후 종교적인 믿음, 철학적인 전통에 따라 기악음악을 천대하고 금지하던 천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후, 바로크시대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이 기악음악을 다른시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부터 시작된 것이다.

 바로크음악을 '누오베 무지케'로 부르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시기에 기악음악이 성악과 다른 독자적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과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바로크시대에 들어서면서 기악음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바뀌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오랫동안 기악을 천대했던 바로 그 이유, 즉 추상성과 감정을 자극하는 음악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바로크시대 기악음악은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된다.

 기악음악의 발전은 합리론을 주장함으로 17세기 유럽사상을 주도했던 데카르트와 관련이 있다. 서양철학의 전통을 계승한 데카르트는 이성을 인간의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규정하고 그동안 이성과 다른, 반대되는 영역으로 취급되던 감정을 이성의 하위영역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말년에 저술한 '마음의 정념에 관한 논고(Traite des passions de l'ame, 1649)'에서 데카르트는 "감정은, 이성과 달리, 자발적으로 발생하지 못하고 외부에서 자극을 주어야지만 유발되는데 음악, 특히 가사가 없는 추상적인 선율은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감정을 작동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서술한다.

 데카르트의 가설을 받아들인 당시의 음악론가들은, 성악음악은 감성의 자극보다 가사의 의미를 전달하는 기능을 먼저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기악음악보다 감성을 자극하는 능력이 열등하다고 주장하게 된다. 또한 6가지 '기본감정(기쁨,슬픔,미움,사랑,욕망,감탄)'을 자극하는 '특정음형'을 들려주면 잠자고 있는 감정이 발생한다는 데카르트의 주장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하나의 '특정감정'과 연관된 '특정음형들'을 찾아내는 작업으로 이어지면서 '특정감정표상법(Doctrine of Affection)'이란 이론이 힘을 얻게 된다. '특정음형으로 특정 감정을 그린다.'는 뜻의 특정감정표상법에 따르면, '기쁨'의 감정을 유발시켜줄 수 있는 '기쁨'의 음형을 들려주면 마음속에서 '기쁨'이 만들어져서 듣는 사람이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다.



 특정음형 한 개를 반복해서 들려줌으로 특정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바로크적 사고는 바흐의 '푸가(Fuga)'나 '인벤션(Invention)'이 왜 한 가지 유형의 음형과 리듬, 다시 말해 단일주제(mono theme)로 이루어졌는지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동일한 음형과 리듬패턴을 곡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하는 바흐의 '푸가'나 '인벤션'이 바로크음악의 이상을 음으로 구체화한 거란 사실을 알게 된다면 감상시 조금 다른 느낌이 들 것이다.

 철학적인 주장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화, 적용시킴으로써 결국 기악음악이 성악음악보다 열등하지 않은 음악이며 성악이 할 수 없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가치관이 확산되면서, 바로크시대 기악음악은 성악과 별개로 독자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바로크 기악음악의 발달을 '해방'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가사에 대한 종속관계에서 벗어나 기악음악이 독자적인 역할과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이다.[음악의 이해와 감상/김종수 권도희 김성혜 이지선 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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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타'와 '소나타-알레그로형식'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과 함께 고전음악 하면 '소나타'라는 말이 금방 떠오를 것이다. 소나타는 원래 소나타-알레그로형식을 첫 악장으로 하는 여러장의 기악곡이라는 뜻이다. 3~4악장으로 이루어진 기악곡을 지칭하는 '소나타'라는 용어와 제시부(expositon), 발전부(development), 재현부(recapitulation)로 이루어진 '소나타형식'을 구분하기 위해 소나타의 첫 악장은 소나타-알레그로형식으로 부른다.


[사진 하이든/네이버지식백과]


 소나타-알레그로형식은 제시부,발전부,재현부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제시,발전,재현의 주체는 2개의 주제(Theme)이다. 즉 제시부는 2개의 주제가 제시되는 부분이라는 의미이고, 발전부는 2개의 주제가 다양한 조성으로 변형, 발전된다는 의미이다. 마지막으로 재현부는 첫 부분에 제시되었던 형태 그대로 2개의 주제가 다시 등장한다는 뜻이다.


[사진 모차르트/네이버지식백과]


 여기서 2개의 주제란 곡 전체에 반복적으로 등장함으로써 긴 곡이 산만해지거나 일관성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음악적(선율,리듬,조성)으로 그 그곡을 대표하는 주인공 역할도 담당한다. 연극이나 드라마로 말하면 주인공 역할을 맡고 있는 2개의 주제는 서로 상반된 성격을 갖는다. 2개의 주제를 극명하게 대비시키기 위해서 소나타 형식에서는 이 2개 주제의 리듬, 선율, 그리고 조성에 반드시 차이를 두도록 한다. 조성의 차이가 2개의 주제를 대비시키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2개의 주제 중 먼저 제시되는 제1주제는 하앙 으뜸음조(I)로, 그리고 나중에 제시되는 제2주제는 대개 딸림음조(V)의 성격을 갖는다.

 제1주제와 제2주제가 원형 그대로 등장하지 않고 중간부분에서는 모양을 바꿔서 등장하는 부분을 '발전부'라고 부르는데, 이때 두 개의 주제는 처음 시작했던 조와는 다른 조성으로 계속 변하면서 등장한다. 조의 성격이 바뀌는 것을 전조(transposition)라고 하는데, 전조는 조를 마구잡이로 바꾸는 것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화성법'이라고 부르는 규칙에 따라 변형되어야 한다. 발전부가 끝난 후 두 주가 처음에 제시되었던 형태로 다시 등장하는 부분을 '재현부'라고 하는데, 재현부는 발전부에서 모호해졌던 주제의 조성, 리듬, 선율의 특성을 재확인해주는 역할을 한다.


[사진 베토벤/네이버지식백과]


 고전작곡가들은 2개의 주제가 원형 그대로 혹은 변형되어서 등장할 때 청자가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게 하기 위해 2개의 주제를 기억하기 쉬운 선율로 작곡하였다. 그런 이유에서 <운명>,<전원>,<합창> 같은 베토벤의 교향곡에 나오는 제1주제는 기억하기가 쉬운 것이다. 악보를 한참 들여다 보거나 연주하는 사람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를 선택하지 않고, 고전작곡가들은 두세 번 들으면 금방 '귀에 붙는', 그래서 흥얼거릴 수 있는 선율을 주제로 사용하였다. 실제로 하이든이 1790년대에 런던의 시민을 위해 쓴 교향곡(제94~104번)을 묶어서 '런던 교향곡' 이라고 부르는데 이 중 제103~104번의 주제는 당시 런던에서 유행하던 대중적인 노래에서 따온 것이다.

 작품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개 소나타 악곡은 4악장을 기본으로 한다. 각각의 악장의 형식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제1악장은 소나타-알레그로형식이고, 제2악장은 대개 2부분으로 나누어지는 가곡형식(song form)이다. 가곡형식은 빠른 알레그로의 제1악장과 달리 느리고 여유 있는 아다지오 안단테의 템포이다. 제3악장은 미뉴에트나 스케르초(scherzo) 형식으로, 가운데 부분이 대조적인 3부분(ABA)으로 나누어진 후, 각각의 부분이 다시 3개(aba/cdc/aba)로 나누어지는 겹세도막형식이다. 이때 가운데 대조적인 부분(B)을 가리켜서 '트리오(trio)'라고 한다. 마지막 악장은 특벽한 형식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대개 론도(rondo)형식, 아니면 론도-소나타형식을 취하는데, 가장 빠른 템포인 비바체(vivace)나 프레스토(presto)로 활기차게 곡을 마무리 한다. 반복이란 뜻의 론도는 동일한 주제(A)가 여러 번 반복되면서 사이사이에 삽입구를 끼워넣어 대조를 이루는 구조를 말하는데, 구조는 ABACABA를 이룬다.

 4악장으로 이루어진 소나타형식은 하이든, 모차르트의 다양한 시도와 베토벤에 의해 확립된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은 소나타형식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형식을 자유롭게 응용, 해석한 것으로, 위에 설명한 소나타-알레그로형식과는 차이가 있다.

[음악의이해와감상/김종수,권도희,김성혜,이지선,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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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Classic)'의 사전적 의미는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는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대상 이라는 뜻이다. 18~19세기 서유럽의 예술음악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의 사전적 의미대로 오늘날 클래식음악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만국공통어'일까? 1970년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던 앙드레 프레빈이 미국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 광고에 등장한 적이 있다. 이 광고가 의도한 것은 프레빈이 연주하는 클래식음악이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공통어(universal language)'인 것처럼 아멕스 카드 역시 세계 어디에서나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과 일본, 이스라엘과 터키, 브라질과 가나의 언어와 풍습, 문화가 다른 것처럼 국가와 민족마다 음악에 대한 생각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어떤 문화에서는 악보 없는 즉흥연주가 보현화되어 잇거나, 전문음악가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듣기에는 분명히 선율과 리듬이 있는데 중동사람들은 음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종교음악도 있다. 우리를 들여다 보아도 아이돌 그룹의 스타일 아니면 랩이나 힙합 같은 대중문화만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있는가 하면 베토벤도 이효리도 모르지만 <밀양아리랑>과 트로트는 맛깔나게 부르는 농촌의 어른들도 있다. 어쩌면 이들 모두에게 '클래식음악'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소리일 수도 있을 것이다. '클래식'에 담긴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가치가 이들에게는 전달되지 않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양예술음악을 '클래식' 이라고 부른다.

 

[음악의 이해와 감상(김종수,권도희,김성혜,이지선,유영민 공저) 내용中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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