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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평永平(후한 명제 유장劉莊의 연호) 3년 경신년(60년)- [탈해왕9년] 8월4일에 호공瓠公이 밤에 월성 서리를 지나다 시림(구림鳩林 이라고도 함) 속에서 카다란 빛이 밝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하늘에서 땅까지 자줏빛 구름이 드리워지고 구름 속으로 보이는 나뭇가지에 황금 상자가 걸려 있었다. 상자 안에서 빛이 나오고 있었고 나무 밑에는 흰 닭이 울고 있었다. 호공이 이 사실을 왕에게 보고했고 왕이 숲으로 가 상자를 열어 보니 사내아이가 누워 있다가 바로 일어났는데, 혁거세의 고사와 같았기 때문에 알지閼智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삼국사기에 의하면 탈해왕9년(65년)에 시림에 닭의 신이한 변화가 있어 이때부터 시림을 계림鷄林이라고 고쳐 부르고 국호로 삼았다고 한다] 알지는 향언鄕言으로 어린아이['아기' 라는 뜻으로 해석] 라는 뜻이다. 왕이 알지를 수레에 싣고 대궐로 돌아오는데 새와 짐승이 서로 뒤따르면서 춤을 추었다.

 왕이 길일을 가려 태자로 책봉했으나 나중에 파사왕에게 양보하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그는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씨金氏로 정했다. 알지가 세한勢漢(이병도는 알지와 동일인물로 파악함) 을 낳고, 세한이 아도阿都를 낳고, 아도가 수류首留를 낳고, 수류가 욱부郁部를 낳고, 욱부가 구도俱道(혹은 구도仇刀라고도 함)를 낳고, 구도가 미추未鄒를 낳았다. 미추가 왕위에 오르니 신라의 김씨는 알지로 부터 시작되었다.(삼국유사)

 

이 설화는 박·석 양씨보다 먼저 경주에 정착했으나, 정치적으로는 그후에야 비중이 커지게 된 김씨 부족이 그들의 토템인 닭과 조상을 연결시켜 만들어낸 것으로 추측된다. 근래에는 'Ar'부족, 즉 '금'(金)부족의 족장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의 7대손 미추이사금 때부터 신라 왕족에 김씨가 등장했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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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연합뉴스]

  

 지난 3월22일 허재호 전 대주그룹회장이 뉴질랜드에서 입국해 인천공항에서 붙잡혀 유치장에 구금됐습니다.

수백억원대의 세금을 탈세하고 회삿돈을 횡령한뒤 2010년 재판을 받던 중 돌연 뉴질랜드로 도피한 그는 국내에서 붙잡히기 전 대기업 총수답게 뉴질랜드에서 호화생활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허전 회장이 납부해야할 벌금 249억원을 49일 노역으로 탕감받게 됐다고 합니다. 벌금을 노역일수로 환산하면 일당이 무려 5억원이나 되는 셈인데 정말 너무나 비상식적인 판결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 사람들 기준에서는 참 돈벌기 쉽고 벌금 내기도 쉬운 세상이 아니겠습니까?

 일반인은 하루 죽어라 고생해도 5만원에서 왔다갔다 하는 일당을 받는 반면 대기업 총수는 간단한 노역만으로 일당 5억을 받습니다.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 판결 아닙니까?

 일반인이 허전회장 같은 경우를 당해도 몇백억원의 벌금을 그렇게 환산해서 탕감을 시켜줄까요? 정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속을 조금 더 들여다 보면 정말이지 가관입니다.

광주지검은 애초에 1천억원대의 벌금형 선고유예를 구형했고, 국세청은 허전 회장의 부동산을 가압류 하고서도 3년이 넘게 공매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는 명백히 국가기관에서 특정인을 봐주기 했다는 것으로 밖에는 설명이 안되는 사실이라고 보여집니다.

이런식의 재벌이나 고위층 봐주기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정상적으로 일하고, 세금을 따박따박 내고 사는 사람은 또한번 바보가 되어버렸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법앞에 평등하지 않다는걸 세상사람들은 이제 너무나 잘 알지만,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최소한의 양심은 어디로 가버린것인지.. 한번 되묻고 싶습니다.

 

관련기사보기: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3/23/0200000000AKR20140323049951054.HTML?input=117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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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OSEN]

 

최근 피겨여왕 김연아선수가 청룡장(체육훈장1등급)을 받지 못한다는 소식에 안타깝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내용을 보면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서훈규정을 강화하면서 점수미달로 우리나라 체육계에 큰 영향을 끼친 김연아 선수마저 해당사항이 아니도록 만들어 버렸다는데 있고, 또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도 못받는 청룡장을 나경원 평창스페셜올림픽조직위원장이 받았다는 이유 때문에 국민들의 많은 반발을 사게 된것이지요..

일반국민들이 단순히 보기에도 정치인은 너무나 쉽게 받는 청룡장을 진정 받아야할 영향력있는 선수는 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너무나 불합리하게 비춰집니다.

이런 보도가 나간 후 문화체육관광부는 소치올림픽에서 국위를 선양한 김연아선수를 비롯해 이상화, 박승희 등 일부선수에게는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청룡장을 수여 하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들을때마다 참 안타깝습니다. 뒷북행정은 언제쯤 고쳐질까요?

그런데, 대한민국이 낳은 우리나라 수영계의 간판스타인 또 한명의 안타까운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박태환선수입니다. 박태환 선수는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우리나라 수영계에 굵직한 획을 그은 선수입니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했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자유형 400m 은메달, 200m 은메달,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자유형 400m 경기에서는 금메달을 따냈으며, 자유형 2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는 등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등의 국제대회에서 수많은 메달을 따낸 그야말로 수영계에서 불세출의 영웅이였습니다.

지금도 그는 수영연맹과의 불화 등을 겪으면서도 굵은 땀을 흘리며 훈련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아직 체육훈장은 한번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물론, 기존 서훈기준(1,500점)을 훨신 상회하는 점수(3800점)을 가지고도 말이죠..

이는 우리나라 수영계에서 지대한 공헌을 한 박태환 선수에 대한 대한수영연맹의 명백한 불찰이자 무관심으로 밖에 설명이 안되는 부분입니다.

너무나 안타깝지만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단한 재능을 가졌더라도 그 재능을 더욱 발현시켜주기는 커녕 어떤 단체에서 줄을 잘못서거나 밉보이거나 하면 바로 '왕따'로 전락해 버리는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현실이죠..

런던올림픽 포상금을 18개월이나 지난 후에 받았다고 하니.. 우리나라 수영연맹도 빙상연맹못지 않게 참으로 대단하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관련기사내용보기:OSEN http://osen.mt.co.kr/article/G110981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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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LG유플러스,올레KT,SK텔레콤 이동통신 3사의 영업정지가 이슈입니다.

이는 한정된 시장안에서 과다경쟁이 낳은 결과이자, 현재진행형인 사회적 이슈라고 생각됩니다. 일반 고객의 입장에서는 불법이든 합법이든 보조금 혜택을 못본다면 당장 피해 아닌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이런 보조금 혜택을 줄이면서 통신요금이 하락하게 된다면 생활의 필수품인 통신상품을 보다 안정적인 통신요금으로 이용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조금 먼 얘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앞선 언급한것 처럼 통신은 생활의 필수품이 된지 오래입니다. 인터넷이나 핸드폰 사용자가 엄청납니다. 거기에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1인당 통신요금은 예전보다 오히려 늘어나 각각 집이며 사무실이며 통신요금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런 이유로 요즘 가계통신비 절감이라는 말이 시대적 트랜드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트렌드를 통신사에서는 놓칠리가 없겠죠?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올레KT의 ALL-IP올라잇, 뭉치면올레 같은 핸드폰(스마트폰)과 유선 인터넷결합상품입니다. 이는 비단 올레KT의 올아이피(ALL-IP)올라잇 상품만이 아니고, 

LG유플러스에서는 온국민은요YO, 한방에요YO라고 하는 상품이 있고, SK텔레콤,SK브로드밴드에서는 한가족결합할인TB끼리온가족할인 이라는 인터넷무료요금제가 있으며, 온가족프리라고 하는 핸드폰(스파트폰)과 유선 인터넷결합상품이 각각 나와 있습니다.

 

좀 복잡해 보일 수도 있는 이 상품들은 모두가 핸드폰(스마트폰)과 유선 인터넷을 특정한 기간동안(예:3년약정) 사용을 한다는 조건인 결합요금제로 신청이 들어가면 유선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서 요금을 할인해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제는 통신요금도 뭉치면 가격이 싸진다는 말입니다.  

 

일단, 예로 가장 큰 통신사인 올레KT의 ALL-IP올라잇 상품으로 한번 가보겠습니다.

아마 티비에서 광고로 많이 접해 봤을겁니다. '올아이피 올라잇~' 이라는 CM송이 귓가에 맴도네요..^^

 

 

ALL-IP올라잇은 인터넷+LTE 결합을 통해서 인터넷을 반값 또는 무료로 이용이 가능하게 해주는 결합상품입니다.

가족 2명이 LTE 이용자이면 인터넷이 기본 제공되고, 거기다가 TV까지 할인이 됩니다.

월 27,200원 할인으로 파격적이기 까지 합니다.

LTE 결합 회선 수에 따라 요금할인과 인터넷 속도 증설(50메가를 100메가로), TV결합시 2,200원 할인, 그리고 요구가 많은 인기채널(tvN,엠넷),스포츠채널,다큐 등의 유상 채널을 기본제공합니다.

이 ALL-IP올라잇 요금은 LTE 요금제와 회선수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월정액 67,000원 이상 요금제를 사용하면서 2회선을 사용중인 경우 25,000원까지 할인, LTE를 3~4회선 사용하고 있다면 요금제와는 무관하게 25,000원이 할인이 됩니다.

또, LTE 요금제 없이 인터넷 올라잇 + olleh tv live 올라잇만 결합 시에는 7,700원 할인 혜택이 제공됩니다.(3년약정 기준)

 

 

이런.. 요금할인이나 공짜,무료이용도 좋지만 그냥 보기에도 조금 복잡하죠? 글을 작성하면서도 조금 헷갈리기는 하네요^^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어차피 사용을 해야만 하는 통신요금을 조금이라도 더 절감할수 있다고 하니, 한번 관심을 가져보는것도 나쁘진 않을것 같습니다.

 

위에 설명한 내용은 아래 주소에서 좀더 정확하게 확인이 가능하니 참고하세요~

[브로드몰 http://www.broadmall.co.kr/shop_skin/skin1/product/goods_view.php?category=001009000000&code=129&sid=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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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훼손되기 직전의 모습을 담고 있는 사진들..

 

경복궁의 서쪽문인 영추문 붕괴사고 현장, 성벽 한쪽이 허물어져 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1927년 조선총독부 건물이 들어서면서 이전되기 전의 모습.

 

창덕궁의 원래 위치인 보루각에 있을당시의 물시계 모습(하단부)

 

창덕궁의 원래 위치인 보루각에 있을당시의 물시계 모습(상단부)

 

1929년 건춘문 일대로 옮겨진 광화문에서 바라본 경복궁 동쪽 전경과 건춘문, 동십자각의 모습, 왼쪽 중학천의 모습과 반대편에 빽빽히 들어선 민가들이 보인다.

 

1935년 경복궁 건천궁 터에서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짓기 전 지진제를 지내는 모습, 일본의 전통 신도의 절차에 따라 제를 지내고 우가키 가즈시게 총독이 제를 올리고 있다.

 

1922년 일본 도쿄에서 살던 영친왕(이은)과 영친왕비(이방자) 일행이 일시귀국해 희정당으로 들어서는 모습

 

맨앞이 순정효황후,영친왕(이은)과 영친왕비(이방자)가 차례로 창덕궁 후원을 거닐고 있다.

 

경복궁의 자경전에 새겨진 꽃문양

 

일시 귀국한 영친왕 일행이 동경으로 다시 돌아가기전 창덕궁 인정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복궁 근정전 주변의 모습, 지금과는 달리 전각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다. 

 

경복궁 자경전의 모습,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1867년 조대비를 위해 지은 전각 이후 두차례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고종15년(1888년) 재건되었다.

 

창덕궁 인정전 앞모습, 일제에 의해 박석들이 파헤쳐지고 있다. 대한제국 문무고관들이 황제에게 하례를 하던 상징적인 공간이 일제에 파괴되고 있다.

 

지금도 경복궁이건 창덕궁이건 조선의 궁궐을 방문을 해보면 원래의 모습과 많은 차이가 있다. 이전 사진들에서 보듯 빽빽히 들어찬 전각의 모습들은 이제 그 터만 남긴채 빈터로 남아있다. 치욕의 역사인 일제강점기 상징적인 국가의 중심 공간이던 궁궐은 그 수난을 피해가지 못한채 뜯기고 헐리고 원형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모습으로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조금이나마 복원이 진행되었고, 또 진행계획이 일정부분 잡혀있다는 것이다. 비록 예전 원래의 모습을 100% 되찾기는 사실상 불가능 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원형에 가깝게 복원이 되면 웅장하고 자랑스럽던 옛 궁궐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니 복원이 끝나는 그날이 기다려진다.

복원 작업이 잘 진행돼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으로 남게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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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萬海,卍海) 한용운(한유천),시인]

 

 

오직 민족을 위해 살다간 민족시인, 만해 한용운의 유명한 술회 내용..

 

나는 왜 중이 되었나?

 나는 왜 중이 되었나? 내가 태어난 이 나라와 사회가 나를 중이 되지 아니치 못하게 하였던가? 또는 인간 세계의 생사병고 같은 모든 괴로움이 나를 시켜 승방에 몰아넣고서 영생과 탐욕을 속삭이게 하였던가? 대체 나는 왜 중이 되었나? 중이 되어 가지고 무엇을 하였나? 무엇을 얻었나? 그래서 인생과 사회와 시대에 대하여 어떠한 도움을 하여 왔나? 이제 중이 된 지 20년에 출가의 동기와 그동안의 파란과 현재의 심경을 생각하여 볼 때에 스스로 일맥의 감회가 가슴을 덮는 것을 깨닫게 한다.

 나의 고향은 충남 홍주였다. 지금은 세대가 변하여 고을 이름 조차 홍성으로 변하였으나, 그때 나는 어린 소년의 몸으로 선친에게서 나의 일생운명을 결정할 만한 중요한 교훈을 받았으니, 그는 국가 사회를 위하여 일신을 바치는 옛날 의인들의 행적이었다. 그래서 마냥 선친은 스스로 그러한 종류의 서책을 보시다가 무슨 감회가 계신지 조석으로 나를 불러다가 세우고 옛사람의 전기를 가르쳐 주었다. 어린 마음에도 사상에 밫나는 그분들의 기개와 사상을 숭배하는 마음이 생기어 어떻게 하면 나도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되어 보나 하는 것을 늘 생각하여 왔다. 그러자 그해가 갑진년 전해로 무슨 조약이 체결되어 뜻있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경성을 향하야 모연든다는 말이 들리었다. 그래서 좌우간 이 모양으로 산속에 파묻힐 때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하루는 담뱃대 하나만 들고 그야말로 폐포파립(弊袍破笠)으로 표연히 집을 나와 서울이 있다는 서북 방면을 향하여 도보하기 시작하였으니, 부모에게 알린 바도 아니요, 노자도 일푼 지닌 것이 없는 몸이며, 한양을 가고나 말는지 심히 당황한 걸음이었으나 그때는 어쩐지 태연하였다. 그래서 좌우간 길 떠난 몸이매 해지기 전까지 자꾸 남들이 가르쳐 주는 서울길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하였다.

 그러나 날은 이미 기울고 오장의 주림이 대단하게 되자 어떤 술막집에 들어 팔베개 베고 그 하룻밤 자느라니 그제야 무모한 걸음에 대한 여러 가지 의구가 일어났었다. 적수공권으로 어떻게 나랏일을 돕고 또한 한학의 소양 이외에 아무 교육이 없는 내가 어떻게 소지를 이루나, 그날 밤 야심토록 전전반측하며 사고 수십 회에 이를 때에 문득 나의 아홉 살 때의 일이 유연히 떠오른다. 그것은 아홉 살 때 [서상기]의 통기 1장을 보다가 이 인생이 덧없어 회의하던 일이라, 영영일야(營營日夜) 하다가 죽으면 인생에 무엇이 남나? 명예냐, 부귀냐? 그것이 모두 아쉬운 것으로 생명이 끊어짐과 동시에 모두 다가 일체 공이 되지 않느냐. 무색하고 무형한 것이 아니냐. 무엇 때움에 내가 글을 읽고 무엇 때문에 의식을 입자고 이 애를 태우는가 하는 생각으로 5,6일 밥을 아니 먹고 고로(苦勞) 하던 일이 있었다.

인생은 고적한 사상을 가지기 쉬운 것이라, 이에 나는 나의 전정을 위하여 실력을 양성하겠다는 것과 또 인생 그것에 대한 무엇을 좀 해결하여 보겠다는 불같은 마음으로 한양 가던 길을 구부리어 사찰을 찾아 보은 속리사로 갔다가, 다시 더 깊은 심산유곡의 대찰을 찾아간다고 강원도 오대산의 백담사까지 가서 그곳 동냥중, 즉 탁발승이 되어 불도를 닦기 시작하였다.

[三千里, 1930.5.1]

 

비밀(한용운)

비밀입니까, 비밀이라니요. 나에게 무슨 비밀이 있겠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대하여 비밀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마는,

비밀은 야속히도 지켜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나의 비밀은 눈물을 거쳐서 당신의 시각(視覺)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의 비밀은 한숨을 거쳐서 당신의 청각(聽覺)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의 비밀은 떨리는 가슴을 거쳐서 당신의 촉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밖의 비밀은 한 조각 붉은 마음이 되어서 당신의 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밀은 소리없는 메아리와 같아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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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독일보]

 

얼마전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서울 송파구에 석촌동에 거주하던 60세 어머니와 그녀의 두딸, 세모녀가 생활고를 이기다 못해 동반자살을 했던 것인데요..

이들 세모녀는 12년전 아버지가 방광암으로 사망하면서 얻은 많은 빚 때문에 이렇게 생활고에 시달렸고, 설상가상으로 두 딸은 고혈압과 당뇨 등의 병으로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아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운 상태였다고 합니다.

생활을 위해 카드빚을 지게되고 두 딸은 그로인해 신용불량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앞길이 막막하던 세모녀는 밀린 공과금 70만원과 함께 집주인 앞으로 짧은 유서를 남기고 동반자살을 택합니다.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두 딸중 작은 딸의 필체로 확인이 된 짧은 유서의 내용입니다.

주위에 도움의 손길도 받지 못하고 생활고로 인해 가족이 동반자살을 택했을 때는 얼마나 절박한 심정이였을까요?

 

최근 이 세모녀의 동반자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이로인한 베르테르 효과를 불러오고 있다고 합니다.

더 이상 세모녀 사건과 같은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빈곤,빈민층 뿐만 아니라 주위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들에 대한 우리 모두의 세심한 관심이 필요할 때인것 같습니다.

또, 이번 일을 계기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려운 입장에 처할수도 있다는 역지 사지의 마음으로 여러방면으로 다시 한번 살피고 일시적인 도움이 아닌 지속가능한 도움을 위한 복지정책, 행정적 제도의 마련도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 또는 카피캣 자살(copycat suicide)은 유명인의 자살이 있은 후에 유사한 방식으로 잇따라 자살이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텔레비전 등의 매스미디어에 보도된 자살을 모방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1974년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David philips)가 창안했으며, 용어는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이름 '베르테르' 에서 유래했다.

괴테가 1774년 발표한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주인공 베르테르가 다른 사람의 약혼녀 로테를 사랑하여 결국 권총 자살을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괴테를 순식간에 전 유럽에 알린 이 소설은 18세기 당시에도 5개국어로 번역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유럽 곳곳에서 베르테르를 모방한 자살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는데, 이작품을 읽고 베르테르의 자살을 모방하여 자살한 사람은 지금까지 전 세계 2,00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한다.[위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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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김연아 선수가 체육훈장 중 1등급인 청룡장을 못받는다고 합니다.

김연아 선수 정도 되는 세계적인 선수라면 충분히 받을만한 자격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는 여유롭게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되었지만, 올해 서훈 규정이 강화되면서

김연아 선수는 소치올림픽에서 완벽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홈텃새에 은메달을 따내는 아쉬움에 이어 국내에서도 76점이 모자라 체육훈장 중 청룡장이 아닌 맹호장에 만족해야만 하는 불운을 겪게 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네요.. 규정도 좋지만, 우리나라 체육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김연아 선수도 받지 못하는 체육훈장 서훈 규정은 과연 누구를 위한 규정인지..이렇듯 불합리한 국내의 행정이 특정분야를 떠나 하나 둘이 아니지만, 올해 들어 새롭게 규정을 강화했다는 체육행정에서도 큰 안타까움을 느끼게 합니다.

http://w3.sbs.co.kr/news/newsEndPage.do?news_id=N100229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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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방 음악은 거문고를 중심으로 가야금,대금,세피리,해금,장구 등을 하나씩 편성한다는 점에서 궁중의 대규모 관현편성과 차이가 난다. 거문고 중심의 이런 편셩을 줄풍류라고 말한다. 때로는 양금과 단소를 첨가하기도 한다.

 

가곡(歌曲)

흔히 가곡이라고 하면 <봉선화>나 <가고파> 처럼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벨칸토 창법으로 부르는 노래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가곡은 거문고,가야금,대금,세피리,해금,장구 등의 반주에 맞추어 전통가곡 발성법으로 시조시를 노래 부르는 것이다. 일정한 선율에 여러 개의 시조시를 얹어서 부르는 점은 시조창과 같지만, 시조는 3장형식, 가곡은 5장형식으로 부른다.

 현재는 가곡에 초삭대엽(初數大葉),이삭대엽(二數大葉),삼삭대엽(三數大葉)과 같은 삭대엽과 그 파생곡들이 노래로 불리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삭대엽 외에 만대엽(慢大葉)과 중대엽(中大葉)이 있었으며, 이 악곡들 또한 영산회상이나 보허자처럼 궁중에서 연주되었던 곡들인데, 민간풍류에서 연주됨에 따라 여러 파생곡을 낳게 되었다.

 17세기 초만 해도 만대엽과 중대엽만 노래로 불리고, 삭대엽은 춤반주로만 연주되었다. 17세기 중엽으로 들어갈 무렵 만,중대엽과 함께 삭대엽이 노래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17세기 후반에는 만대엽보다 중대엽과 삭대엽을 선호하여, 만대엽 곡조는 늘어나지 않았으나 중대엽과 삭대엽은 각각 세 곡조로 늘어났다.

 18세기에 만대엽은 자취를 감추고 중대엽보다는 삭대엽을 선호하게 되었다. 영조때의 학자 이익(1681~1763)은 [성호새설(星湖塞說)에서 당시 풍조에 대해 "만대엽은 극히 느려서 사람들이 싫어하여 없어진 지 오래고, 중대엽은 조금 빠르나 역시 좋아하는 이가 적고, 지금 통용되고 있는 것은 삭대엽이다."라고 말했다.

 여항인들의 적극적인 동호인 활동과 후원자의 후원으로 생겨난 전문적 예능인의 활동으로 삭대엽의 변주곡이 더욱 늘어났고, 새로운 풍의 유흥성 곡조들이 생겨났다. 솟구치듯 부르는 소용, 삭대엽과 같은 엄격한 창법이 아닌 흐르는 물과 같이 치렁치렁한 멋이 있는 낙(樂)의 곡조, 흥청거리는 창법으로 부르는 농(弄)의 곡조, 삭대엽의 16박 한 장단을 10박으로 변화시킨 편(編)이 그것이다. 19세기에 이삭대엽을 변주한 태평가 및 두거,중거,평거,농과 낙에 변화를 준 언롱,언락,편락,편에 변화를 준 언편 등이 생겨났으며, 19세기 후반에 중대엽은 자취를 감춘다.

 우조음계로 이루어진 초삭대엽,이삭대엽,중거,평거,두거,삼삭대엽,소용 등을 부른 다음에 계면조로 된 초삭대엽, 이삭대엽,중거,평거,두거,삼삭대엽소용,언롱,평롱,계락, 등을 거쳐 태평가까지 일정한 순서에 의하여 한꺼번에 부르는 연창형태가 원칙적이다. 연창순서는 남창과 여창이 별도로 부르는 방식과 남창과 여창이 교대로 부르는 방식이 있다.

 

<우조소용>

불 아니 땔지라도 절로 익는 솥과

여무죽 아니 먹여도 크고 살져 한걷는 말고

길삼 잘하는 여기 첩과 술새 암는 주전자와 양부로 낳는 감은 암소

평생에 이 다섯 가지를 두량이면 부러울 것이 없애라.

 

<우조언락>

벽사창이 어룬어룬커늘

님만 여겨 펄떡 뛰어 나가보니

임은 아니 오고 명월이 만정헌테 벽오동 젖은 잎에

봉황이 완서 긴 목을 후여다가 깃다듬는 그림자로다.

마초아 밤일세만정 항여 낮이런들 남우일번 하여라.

 

<반우반계 편락>

나무도 바히 돌도 없는 메에 매게 휘쫓긴 가톨의 안과

바다 한가운데 일천석 실은 배에 노도 잃고 닻도 끊고

용총도 걷고 키도 빠지고 바람 불어 물결치고 안개 뒤섞여

잦아진 날에 갈길은 천리만리 남고 사면이 검어

어득 저뭇 천지적막 가치놀 떳는데

수적 만난 도사공의 안과 엊그제 임여힌

나의 안이사 이따가 가를허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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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사회에서의 근대화와 그로 인한 급격한 도시화 등으로 인해 새로운 문제점들이 부상하게 된다. 아래는 19세기 중반 산업화 시기, 프랑스의 의사 빌레르메가 묘사한 릴의 빈민가의 구체적인 모습들이다.

 의사들은 업무상 다른 중간 계급의 사람들이 거의 가볼 기회가 없는 노동자 거주지에 빈번히 드나들었다. 프랑스인 내과의인 루이 빌레르메(Louis Villerme)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생활 여건과 빈민가의 상황에 대하여 광범위한 기록을 남겼다. 아래에서 인용하고 있는 구절은 면방직 공업의 중심 도시인 프랑스 북부 릴에서 특히 악명이 높았던 구역에 대한 것이다.

 

[오토 그리벨(Otto Griebel, 1895~1972)의 인터내셔널 가를 부르는 노동자들]

 

 민들은 지하실 아니면 지붕 바로 아래 방에 산다. (중략)..보통 방의 높이는 기껏해야 6피트나 6피트 반 정도이고, 너비는 14피트 내지 15피트 밖에 되지 않는다.(1피트는 30.48센티미터). 이렇게 볕도 들지 않는 음침한 공간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먹고, 잠자고, 일을 한다.

 보통 그들의 세간은 일에 필요한 연장들과 함께 찬장, 식료품을 올려 두는 선반, 스토브가 고작이고..(중략)..간혹 항아리 몇 개, 작은 테이블, 허름한 의자 두서너 개, 낡은 담요와 지푸라기로 꾸민 초라한 잠자리 정도이다.

 러한 방들은 통풍과 환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온갖 폐기물을 벽의 마감 재료로 사용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감염의 온상이 되고 있다.(중략)..간혹 침대가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먼지와 때에 절어 원래 색을 알아볼 수 없는 천이나, 축축하고 썩은 내 나는 니푸라기로 조잡하게 만든 침상에 불과하다.(중략)..가구는 하나같이 못이 빠져 흔들거리고, 그 위에는 케케묵은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다.(중략)..정리 정돈은 생각할 수도 없어 좀은 실내는 난장판이다.(중략)..언제나 굳게 닫혀 있는 창문은 종이와 유리를 덧대 놓아 빛 한 줄기 들어올 수 없게 되어 있다.(중략)..도처에 온갖 종류의 쓰레기 더미가 악취를 풍기며 널려 있고, 동물들의 거처마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중략)..마치 가축의 우리를 방불케 하는 이곳의 쿠퀴한 공기는 숨쉬기가 곤란할 정도이다.

 렇다면 이러한 빈민굴에 사는 이들은 대체 어떤 족속들이다. 그들은 입으나 마나한 누더기를 걸치고, 한 번도 벗어 본 적 없는 머리로 먼지 구덩이 작업장에서 일한다. 그렇다면 피부는?(중략)..온갖 분비물에 뒤덮여 있어 당신이 그들의 맨 얼굴을 본다는 것은 아마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출처:Louis Rene Villerme, Tableau de l;etat physique et morale des employes dans les manufactures de coton de laine et de soie(paris, 1840); Donald Kagan et al.,The Western Heritage,p.734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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