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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암 조광조/위키백과]

 

 조광조는 후세의 사림파 유학자들로부터 계파를 초월하여 조선 성리학의 도통을 잇는 인물로 높이 평가받는 학자이자 정치가이다. 그는 당시의 군주였던 중종에게 중용되어 중앙정계로 진출하자 "내 임금을 요순으로 만들고 내 백성을 요순의 백성으로 만든다."는 구호를 내걸고 유교의 정치, 곧 지치(至治)를 당시 조선 사회에 실제로 구현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개혁정치를 주도해 나갔다.

 그는 사림파 자체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사림파의 경제적 토대를 이루고 있었던 향촌 사회를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주자가 정리한 향약을 보급해, 향촌 사회를 자율적으로 통치하는 기틀을 수립하였다.

 아울러 주자학적 이념에 충실한 인재들을 선발했으며, 사림파의 정치적 기반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 일종의 추천제인 현량과를 설치하여 향촌에서 성장한 신진 학자들을 대거 발탁하는 등 다방면으로 전면적인 개혁을 단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광조는 기존의 기득권 세력인 관학파 유학자들의 비리를 공격하고 그들의 부당한 포상을 삭제하는 한편, 국가기관이지만 도교적 풍습에 근거하던 소격서를 혁파하는 등의 공격적 개혁을 진행시켰다.

 조광조의 이 같은 개혁은 정치적으로는 훈구파 세력의 과도한 국가권력 독점을 방지하려고 한 것이었으며, 학술적으로는 주자학 이념에 입각하여 관학파 유학자들의 무능과 부패를 비판함으로써 주자학 이념에 입각하여 관학파 유학자들의 무능과 부패를 비판함으로써 주자학 이념에 걸맞은 사회를 조선에 구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조광조의 개혁은 기존 훈구파 세력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기묘사화라는 비극으로 종결되었다. 1519년 남곤, 심정, 홍경주 등이 조씨가 왕이 되려고 한다는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을 조작하여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를 비롯한 다수의 사림파 유학자들이 희생당하면서 사림파는 다시 시련을 겪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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