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는 그의 저서인 <판단력 비판>에서 미에 관한 판단, 즉 취미 판단은 대상의 객관적 성질에 관한 논리적인 개념적 인식 판단이 아니라 미감적인(ästhetisch) 판단, 즉 주관의 쾌, 불쾌의 감정과 관련된 판단이라고 규정한다. 그에 의하면, 이 같은 주관의 만족감과 결부된 판단에는 감각적인 쾌적함에 관한 판단과 선(goodness-칸트에 의하면 선에는 어떤 것을 위해 유용하다는 의미에서 선한 것과 그 자체로서 선한 것이 있다.)에 관한 판단, 그리고 취미 판단이 있다. 그런데 앞의 두 판단에서의 만족감은 관심(interest)과 결부되어 있는 반면에, 취미 판단에서의 만족감은 무관심적인 즐거움이다. 그래서 칸트는 다음과 같이 언명한다.
취미란, 어떤 대상 또는 어떤 표상방식을 일체의 관심을 떠나서 만족 또는 불만족에 의해 판정하는 능력이다.
한편 감각적인 쾌적함에 관한 판단과 취미 판단은 둘 다 대상에 대한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주관적 판단이지만, 선에 관한 판단과 관련된 만족감은 목적 개념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그리고 감각적인 쾌적함에 관한 판단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것이지만, 미란, 일체의 관심을 떠난 만족의 대상이므로 취미 판단은 주관적이면서도 보편성에 대한 요구를 수반할 수 있다. 이를 칸트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미란, 개념을 떠나서 보편적으로 만족을 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설명을 통해 우리는 칸트가 미적 판단의 '독자성'과 '보편성'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즉 미에 관한 취미 판단은 대상에 대한 개념적 판단이 아닌 주관적 판단이라는 점에서 감각적인 쾌적함에 관한 판단과 공통적이고, 선에 관한 판단과는 차별적이다.
하지만, 그 즐거움이 관심과 결부된 것인가의 여부를 따지자면, 선에 관한 판단과 감각적 쾌적함에 관한 판단은 관심과 결부되어 있는 데 반해 미에 관한 판단은 무관심적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이 무관심적인 것이기 때문에 미에 관한 판단은 개념적 판단이 아닌 주관적 판단이면서도 감각적인 쾌적함에 관한 판단과는 달리 보편성을 요구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칸트 미학이 합리론과 취미론의 난점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지만, 아직 취미론과의 차별성이 완전히 드러난 것은 아니므로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도록 하자.
취미론에서는 취미를 인간의 내적 감관으로 규정했는데, 이때의 감관이란 미에 관한 판정이 즉각적이며 직관적이라는 것을 함축한다. 이에 비해 칸트는 '쾌의 감정이 대상의 판정에 선행하는가, 아니면 대상의 판정이 쾌감에 선행하는가'라는 문제를 해명하면서, 감각적인 쾌적함에 관한 판단에서는 쾌의 감정이 선행하는 데 반해 미에 관한 판단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따라서 미에 관한 판단에서는 대상의 판정을 위해 우리의 선천적인 인식능력으로서의 구상력과 오성이 함께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칸트는 취미론과 차별적이면서 또한 합리론적인 전통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왜나하면 칸트가 말하는 선천적인 인식능력은 합리론의 입장에서 인간의 보편적인 능력으로서 상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미에 관한 판단이 이루어질 때 선천적인 인식 능력으로서 구상력과 오성이 함께 작동하지만, 그렇다고 개념적인 판단은 아니므로 구상력이 오성의 개념에 종속됨이 없이 '구상력과 오성의 자유로운 유희'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에 관한 판단에서는 인간의 선천적인 인식 능력들이 작동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리고 그 인식능력들은 보편적인 것이라고 상정함으로써 칸트 미학은 미적 판단 기준의 객관성을 확보한다는 점이 취미론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한편, 취미 판단의 대상인 미에 관해 칸트의 규정은 다음과 같다.
미는, 합목적성이 목적의 표상을 떠나서 어떤 대상에 지각되는 한에 있어서의 그 대상의 합목적성의 형식이다.
칸트가 미를 왜 이렇게 규정하였는가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칸트는 미를 어떤 대상의 합목적성이라는 측면과 연관시킨다. 취미 판단은 감각적인 쾌적함에 관한 판단과는 달리 대상의 판정을 위해 선천적인 인식 능력들이 작동한다는 점에서, 주관적 만족감과 관련된 판단들 중 선에 관한 판단에 더 가깝다. 그런데 선에 관한 판단은 일정한 목적의 개념에 관한 개념적 판단이면서도 그 대상이 그러한 목적에 부합됨으로써 갖게 되는 주관적 즐거움과 결부된 판단이기도 하다. 즉 선에 관한 판단에 있어서 그 대상은 어떤 일정한 목적의 개념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는 객관적 합목적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유용성일 경우 외적인 객관적 합목적성이고, 대상의 완전성일 경우 내적인 객관적 합목적성이다.
반면, 미에 관한 판단은 개념적 판단이 아니기 때문에 그 대상은 객관적인 합목적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주관적인 합목적성, 즉 목적 없는 합목적성을 그 규정 근거로 갖는다.
이처럼 미를 목적 없는 합목적성의 형식으로 규정하는 것에는 좀 더 광범위한 철학적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선적으로 언급해야 할 점은 칸트가 취미 판단을 논할 때 그 일차적 대상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관한 판단이라는 사실이다. 즉 자연의 어떤 대상이 누군가의 목적에 따라 지어진 것처럼 합목적적인 것으로 느껴지지만, 칸트 철학의 전체 체계에 의하면 그 목적은 결코 인간의 '순수 이성'에 의해 인식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 이전의 사상가들은 미를 형이상학적 배경에서 비롯된 완전성의 개념으로 규정한 데 반해, 칸트는 그것을 목적 없는 합목적성, 즉 형식적인 합목적성이라고만 규정했다. 여기서 우리는 '목적 없는' 이라는 구절을, 우리의 인식적 주관이 결코 그 목적을 개념적으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나온 표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칸트의 미학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관한 미적 판단이 그 일차적 대상이었기 때문에 그의 미에 대한 규정이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에도 똑같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보완적인 개념, 즉 '천재'라는 개념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어떤 대상이 인간에 의한 예술의 산물로서 주어진다면, 그 대상에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목적, 즉 예술가의 목적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목적에 의해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고 판단되려면, 그 대상은 '목적 없는 합목적성'의 형식을 그 규정근거로서 지녀야 한다. 따라서 예술가의 목적은 우리가 개념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조건을 위해서 칸트가 제시한 개념이 '천재'이다.
천재는 예술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으로서, 그 규칙이 개념적으로 규정될 수 없는 대상을 산출해 내는 독창성이 천재의 본질적 속성이다. 다시 말해, 어떤 목적에 의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만들어 낸 규칙이 독창적인 것이어서 우리는 그 규칙을 개념적으로 정식화할 수 없어야만 그 대상에 관한 판단은 칸트가 규정한 미적 판단의 범주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칸트에 의해서 종합적으로 완성된 근대 미학의 성과 혹은 의미에 대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점들을 언급할 수 있다. 근대 미학에 의해 제시된 '무관심적 쾌'의 개념은 결국 미에 대한 우리의 경험이 인식이나 도덕 혹은 현실적 유용성 등으로부터 독립된 '자기 충족적(self sufiicient)' 영역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예술의 가치는 인식이나 도덕의 잣대로 혹은 현실적 유용성이라는 기준으로 잴 수 없는 고유한 가치, 즉 '미'라는 가치를 지닌다는 관점을 근대 미학은 우리에게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와 병행하여, '형식적 혹은 주관적 합목적성'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 작품에는 자기 완결적 체계라는 의미가, 또 '천재'라는 개념을 통해서 예술가에게는 일상적인 사고나 요구에 구애됨이 없이 활동하는 자유로운 상상력의 창조자라는 의미가 부여된다. 이로써 하나의 독립된 사회적 제도로서의 파인 아트 체계에 대해서, 그러한 체계의 독자성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하는 이론적인 토대가 마련될 수 있었다는 것이 바로 근대 미학의 성과 혹은 의미이다.
[문화 비평과 미학-최연희·정준영 공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