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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남북국시대 발해영토/네이버]


 말갈(勿吉)과 발해

 '통전 通典'에서 이렇게 말했다.

 "발해渤海는 본래 속말말갈粟 末靺 鞨인데, 그 추장 조영(대조영을 말함) 때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진단震旦이라고 불렀다. 선천先天 연간(현종 임자년712년이다.)에 비로소 말갈이란 이름을 버리고 발해라고 했다. 개원 開元 7(719년)에 조영이 죽자 시호를 고왕 高王이라고 했다.

 세자가 왕위를 이어받자 명황明皇이 그를 책봉하여 왕위를 잇게 했는데, 사사로이 연호를 인안仁安으로 고쳐 마침내 해동성국 海東盛國이 되었다. 그 땅에는 5경15부62주가 있었는데, 그후 당나라 천성天 成 초에 거란의 공격을 받아 격파된 뒤로 거란의 통제를 받았다.

 '삼국사'에서 말하기를 '의봉3년 고종 무인년에 고구려 잔당들이 군사를 모아 북쪽으로 태백산 아래에 의지하여 국호를 발해라 했는데, 개원20년경에 명황이 장수를 보내 발해를 토벌했다. 또 성덕왕32년, 현종 갑술년에 발해와 말갈이 바다를 건너 당나라의 등주를 침략하니, 현종이 토벌했다.'라고 했다. 또 신라 '고기古記'에 '고구려의 옛 장수 조영의 성은 대大氏인데, 남은 군사를 모아 태백산 남쪽에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발해라 했다.'라고 했다. 이상의 여러 글을 살펴보면 발해는 바로 말갈의 다른 종족으로서 다만 갈라지고 합함이 같지 않을 뿐이다. '지장도'를 살펴보면 발해는 장성(長城)의 동북쪽 모서리 밖에 있다고 했다.

 [당나라] 가탐賈耽의 '군국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발해국의 압록, 남해, 부여, 추성 네부는 모두 고구려의 옛땅인데 신라의 천정군泉井郡(지금의 용주)에서 부터 추성부에 이르기까지는 39개의 역驛이 있다."

 또 '삼국사三國史'에서 이렇게 말했다.

 "백제 말년에 발해, 말갈, 신라가 백제 땅을 나누었다."

 신라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북쪽에는 말갈이 있고 남쪽에는 왜가 있고 서쪽에는 백제가 있어 나라에 폐해가 된다."

 또 말갈 땅은 아슬라주阿 瑟羅州에 이어져 있다고 했다.

 또 '동명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졸본성은 땅이 말갈과 이어져 있다. 신라 제6대 지마왕 14년(125년)에 말갈 군사가 북쪽 국경으로 들어와 대령大 嶺의 목책을 습격하고 이하 泥 河를 건너갔다."

 '후위서'에는 말갈을 물길勿吉로 썻다.

 '지장도'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읍루와 물길은 모두 숙신이다."

 흑수黑水와 옥저沃沮는 동파東坡의 '지장도'를 깊이 고찰해 보니, 진한의 북쪽에 남북 흑수가 있다.

 살펴보면 동명제는 즉위한지 10년 만에 북옥저를 멸망시켰고, 온조왕 42년에 남옥저 20여 호가 백제에 투항했으며, 혁거세 52년에 동옥저가 와서 좋은 말을 바쳤으니 또 동옥저도 있었던 것이다. '지장도'에 흑수는 만리장성 북쪽에 있고, 옥저는 만리장성 남쪽에 있다고 했다.[삼국유사]


말갈족은 숙신,읍루라 불리던 종족으로 여진족이라 불렸고, 청나라를 세웠으며 현재 중국에서는 만주족으로 불리는 민족이다. 만주족의 역사는 한민족의 역사와 뿌리가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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