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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1581호 대동여지도 목판/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581호 대동여지도 목판/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581호 대동여지도 목판/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581호 대동여지도 목판/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581호 '대동여지도' 목판은 12매가 현존하고 있다.(국립중앙박물관 11매, 숭실대학교 1매) 대동여지도를 간행할 당시에 목판은 총 60매 정도가 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현존하는 12점은 그것의 1/5 정도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12점 중 국립중앙 박물관이 소장한 11점의 목판은 1923년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최한웅(崔漢雄)에게서 사들인 것이며, 숭실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목판 1점은 김양선(金良善, 1907-1970)이 수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동여지도' 목판은 김정호(金正浩, ?-1866)가 1861년(철종 12년)에 새겨 만든 것으로 처음 제작 후 여러번에 걸쳐 수정을 거친 것이다. 대동여지도 목판에서도 당시 고쳐 수정한 흔적들을 여러 부분 찾아볼 수 있는데, 고친 흔적의 대표적인 예로 함경도 장진의 십만령 부근 경계, 경상도 초계의 삼학진, 경상도 성주의 안언역 등이 있다.

대동여지도 목판은 피나무를 사용했으며, 숭실대에서 소장하고 있는 1매의 목판과도 재질이 같다.

대동여지도는 각종 지명, 산줄기, 하천, 관방, 역원, 봉수 등의 다양한 지리적 요소들을 기호를 통해 표시하고 있는데 판각의 기법 또한 매우 정교하다.


그런데, 김정호가 조선 역사상 최고의 지도를 만드는 피나는 노력을 했음에도 당시 무능한 권력에 의해 국가기밀 누설이라는 죄를 받아 허무하게 희생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어독본'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제작하자 흥선대원군이 그를 국가 기밀누설죄로 감옥에 가두고 지도의 판목은 모두 압수하여 불태웠다고 쓰여 있는 것을 바탕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김정호의 옥사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고, 실제로 여러 개의 목판이 남아 있는데, 이들 목판에는 이후에 수정했던 흔적도 남아 있어, 지도상 오류를 고치고 다듬어 보다 나은 지도를 제작하고자 했던 김정호의 열정을 엿볼 수 있다.


1장 크기 가로 32cm X 세로43cm X 두께 1.5cm




[보물 850-3호 대동여지도/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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