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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1907년 광화문 앞 풍경(국립민속박물관)
1907년 창덕궁 존덕정에서 영친왕과 일행(국립고궁박물관 www.gogung.go.kr)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순종황제를 모시고 조선 서북순행 길에 올랐을 때 찍은 사진(국립고궁박물관)
1909년 순종 서북순행 사진(국립고궁박물관)
1909년 순종 서북순행 사진(국립고궁박물관)
1909년 순종 서북순행 사진(국립고궁박물관)
1909년 순종 서북순행 사진(국립고궁박물관)
1909년 순종 서북순행 사진(국립고궁박물관)
1913~1915년쯤 찍은 것으로 추정. 왼쪽부터 의친왕 이강, 순종, 덕혜옹주, 영친왕 이은, 고종, 순종의 왕비 순종효황후 윤씨, 의친왕의 왕비 덕인당 김씨, 의친왕의 큰아들 이건. 대한제국 황실은 경술국치 뒤 일본으로부터 이왕가로 책봉받아 식민지 기간 동안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서울역사박물관)
1918년 영친왕의 조선 방문 당시 황실 가족과 총독부 관료들이 연회 뒤 덕수궁 석조전에서 찍은 기념사진. 왼쪽부터 당시 조선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 영친왕, 고종, 순종(서울신문 DB)

 

고종(왼쪽)과 영친왕이 덕수궁 함녕전에서 함께 찍은 사진(국립고궁박물관)
영친왕의 어머니, 고종황제의 후궁 순헌황귀비(국립고궁박물관)
덕혜옹주의 어머니, 고종의 후궁 귀인양씨(국립고궁박물관)
고종황제(국립고궁박물관)

 

고종황제 어진(국립고궁박물관)
고종황제와 신하들(시사오늘)
1918년 군복차림의 영친왕(광복회미서북부지회)
남여를타고 석조전으로 향하는 고종황제(광복회미서북부지회)
대한문 앞에 모인사람들(서울대박물관)
대한제국 황실 양악대(장애인뉴스)
덕수궁 석조전 중앙홀에서 기념 촬영하는 영친왕(앞줄왼쪽에서네번째)(문화재청)
영친왕이 기념 촬영을 했던 덕수궁 석조전 중앙홀이 복원된 모습(문화재청)
덕혜옹주(국립고궁박물관)
덕혜옹주(뉴시스)

 

덕혜옹주와 의친왕(경북신문)
도자기에 휘호하는 영친왕(광복회미서북부지회)
사진기로 창경원 하마를 촬영하는 영친왕(광복회미서북부지회)
상중의 이건(뉴시스)
순종황제어차와 순종효황후어차. 순종황제와 순종효황후(국립고궁박물관)
순종황제어차(국립고궁박물관)
순종황제어차(국립고궁박물관)
순종황제어차(국립고궁박물관)
순종황제 장례식(광복회미서북부지회)
순종황제 장례식(광복회미서북부지회)
순종황제 장례식(광복회미서북부지회)
순종황제 장례식(광복회미서북부지회)

 

영친왕과 사무관 고희경(국립고궁박물관)
영친왕비와 아들 이구(국립중앙박물관)
영친왕의 아들 이구와 일행(국립고궁박물관)
영친왕의 아들 이구와 줄리아 리(국립고궁박물관)
영친왕의 아들 이구와 줄리아리(국립고궁박물관)
영친왕 이은과 이방자 여사(국립고궁박물관)
왼쪽부터 덕혜옹주, 이방자 여사, 윤황후, 순종, 영친왕 ,영친왕의 아들 이진, 이진을 안고 있는 사무관(광복회미서북부지회)
운현궁 양관(뉴시스)
의친왕(고종의 다섯 째 아들)의 자손들(서울시)
의친왕의 둘 째 딸 이해원 옹주 결혼식 때 모습(대한제국황족회)
의친왕의 차남 흥영군 이우(국립고궁박물관)
의친왕 이강(세종대왕신문)
의친왕 이강(국립고궁박물관)
의친왕 이강의 장남 이건(국립고궁박물관)
의친왕 이강의 장남 이건(국립고궁박물관)
의친왕 이강의 장남 이건과 일본인 부인(국립고궁박물관)
의친왕 이강의 장남 이건과 일본인 부인(국립고궁박물관)
이구와 줄리아 리 일행(국립고궁박물관)
이승만 대통령이 명성황후로 지명한 사진(광복회미서북부지회)
흥영군 이우왕자와 박찬주 공비
일본 오사카에서 육군 사단장으로 복무하던 시절의 영친왕과 오른쪽으로 아들 이구와 영친왕비(국립고궁박물관)
일본으로 떠나는 덕혜옹주(제주일보)
좌측부터 의친왕 이강(義親王 李堈, 1877~1955년), 순종(純宗, 1874~1926년), 덕혜옹주(德惠翁主, 1912~1989년), 영친왕(英親王 李垠, 1897~1970년), 고종(高宗, 1852~1919년), 순종의 계비 순정효황후 윤씨(純貞孝皇后 尹氏, 1894~1966년), 의친왕 비 덕인당 김씨(德仁堂 金氏, 1880~1964년), 의친왕의 큰아들 이건(李鍵, 1909~1990년)(국립고궁박물관)
창덕궁 상궁들과 기모노 복장의 일본 여인(광복회미서북부지회)
창덕궁 인정전 앞 순종과 관료들(국립고궁박물관)
창덕궁 인정전 앞 순종과 관료들(국립고궁박물관)
홍릉 입구의 홍살문. 홍릉에 배치된 3조의 홍살문 중 하나로 현재 전하지 않는 문이다(광복회미서북부지회)
훈련원에 마련된 고종황제 장례식장(서울대박물관)
훈련 중인 대한제국 군대(매일신문)
흥선대원군 노년 모습(국립현대미술관)
흥영군 이우 왕자와 박찬주 공비 그리고 두아들(국립고궁박물관)
황실가족(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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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1618호 국새 칙명지보/ⓒ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18호 국새 칙명지보/ⓒ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18호 국새 칙명지보/ⓒ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81호 국새 칙명지보(國璽 勅命之寶 또는 금은제 칙명지보金銀製 勅命之寶)는 1897년 10월 당시 조선의 국왕이었던 고종이 서울에 있는 환구단(圜丘壇,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에 올라 대한제국이라는 국호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 이후 기존의 조직과 관직, 제례 등을 황제국의 품격에 맞도록 다시 만드는 조치를 하였는데, 그 중 하나의 조치로 새롭게 만들어진 국새이다. 따라서 기존에 사용해왔던 거북이 장식을 버리고 황제를 상징하는 용의 형상을 넣어 장식하였으며, 천은(天銀, 순도가 100%인 은을 십성은十成銀 또는 천은天銀이라고 한다.)에 금을 도금하여 만들었다. 국새를 허리에 찰 수 있도록 만든 끈 장식인 인수(印綬)는 잃어버린 상태이며, 일제강점기 후 일본에 빼앗겼던 국새와 어보(御寶, 국가와 왕권을 상징하는 예물로 보통 왕·왕비·왕세자 등 왕실의 의례용 도장을 통칭한다.)는 해방 후 총무처에서 관리하다 625전쟁 당시 많이 잃어버리고 현재는 대원수보(大元帥寶, 군대 운영과 관련된 업무에 사용), 제고지보(制誥之寶, 고급 관원의 임명에 사용), 칙명지보(勅命之寶, 통신조서에 사용) 3개만이 남아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크기

가로 9.2cm X 세로 9.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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