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감호(金現感虎) : 김현이 호랑이를 감동시키다.
신라 풍속에 해마다 음력 이월(仲春)이 되면 초여드렛날에서 보름날까지 서울의 남녀들이 다투어 흥륜사(興輪寺, 법흥왕 때 신라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절로 고구려 승려 아도阿道가 지은 것이라 전한다. 지금은 1980년대에 새로 지은 절이 있다.)의 전탑을 돌면서 복을 빌었다. 원성왕(元聖王, 신라 제38대 왕, 재위 785~798년)에 화랑 김현(金現)이 밤이 깊도록 혼자 쉬지 않고 탑돌이를 하고 있었다. 이때 한 처녀가 염불을 외면서 뒤따라 돌다가 서로 눈길을 주고 받았다. 그들은 탑돌이를 마치고는 조용한 곳으로 가 정을 통했다. 처녀가 막 돌아가려 하자 김현이 따라가려 했다. 처녀가 사양했으나 김현은 억지로 따라갔다.
서산 기슭에 이르러 한 초가집으로 들어갔는데, 노파가 있어 처녀에게 물었다.
"따라온 사람이 누구냐?"
처녀는 사실 대로 말했다.
노파가 말했다.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없었던 것만 못하구나. 그러나 이미 저질러진 일이니 어쩌겠느냐? 은밀한 곳에 숨겨 주어라. 네 오라비들이 나쁜 짓을 할까 걱정된다."
처녀는 김현을 구석진 곳에 숨겨 주었다.
얼마 후 호랑이 세 마리가 으르렁거리며 오더니 사람의 말로 얘기했다.
"집에서 비린내가 나니 요기를 했으면 좋겠다."
노파와 처녀가 꾸짖었다.
"너희들 코가 어떻게 되었구나. 어찌 미친 소리를 하느냐?"
이때 하늘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너희들이 남의 생명을 빼앗기를 좋아하니, 마땅히 한 놈을 죽여 악행을 징계하겠다."
세 호랑이가 이 말을 듣고 모두 근심하는 빛을 띠자 처녀가 말했다.
"만약 세 오라비가 멀리 피해 스스로 뉘우친다면 제가 대신 그 벌을 받겠습니다."
모두 기뻐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꼬리를 치며 도망갔다. 처녀가 들어와 김현에게 말했다.
"처음에 저는 낭군께서 저희 집에 오시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오지 못하게 했던 것인데, 지금은 숨길 것이 없으니 감히 속마음을 털어놓겠습니다. 비록 제가 낭군과 같은 부류는 아니지만 하룻밤의 즐거움을 같이 했으니 그 의리는 부부의 결합처럼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 오라비의 악행을 이미 하늘이 미워하니, 우리 집안의 재앙을 제가 감당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손에 죽는 것이 어찌 낭군의 칼에 죽어 은혜를 갚는 것과 한가지겠습니까? 제가 내일 거리로 들어가 사람을 심하게 해치면 나라 사람들은 저를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대왕께서는 반드시 높은 벼슬을 내걸고 저를 잡으려 할 것입니다. 그때 낭군께서 겁내지 말고 저를 쫓아 성 북쪽 숲 속으로 오시면 제가 낭군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김현이 말했다.
"사람이 사람을 사귀는 것은 인륜의 도리지만, 다른 부류와 사귀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었으니 진실로 하늘이 준 운명인데, 어찌 차마 배필의 죽음을 팔아서 요행으로 한세상의 벼슬자리를 바라겠습니까?"
여인이 말했다.
"낭군께서는 그런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지금 제가 일찍 죽는 것은 하늘의 명이고 저 또한 바라는 바입니다. 낭군의 경사고 우리 가족의 축복이며 온 나라 사람들의 기쁨입니다. 하나가 죽어 다섯 가지 이로움이 있게 되는데 어찌 꺼려하겠습니까? 다만 저를 위해 절을 짓고 강론하여 좋은 업보를 얻는 데 도움이 되게 해 주시면 낭군의 은혜는 더없이 클 것입니다."
김현과 처녀는 서로 울면서 헤어졌다.
다음 날 과연 사나운 호랑이가 성안으로 들어와 사람들을 사납게 해치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원성왕은 그 소식을 듣고는 명을 내렸다.
"호랑이를 잡는 사람에게는 2급의 벼슬을 주겠다."
김현이 궁궐로 가서 아뢰었다.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원성왕은 벼슬을 내리고 그를 격려했다.
김현이 칼 한 자루를 들고 숲 속으로 들어가니, 호랑이는 처녀로 변신하여 웃으면서 말했다.
"어젯밤 낭군과 함께 은근히 나눈 말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 제 발톱에 다친 사람들은 모두 흥륜사의 간장을 바르고 그 절의 나팔 소리를 들으면 곧 나을 것입니다."
말을 마친 처녀가 김현이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스스로 찌르자 바로 호랑이가 되었다. 김현이 숲에서 나와 말했다.
"지금 여기에서 호랑이를 쉽게 잡았다."
사정은 말하지 않고 단지 호랑이가 일러 준 대로 사람들을 치료하게 하니, 그 상처가 모두 나았다. 지금 풍속에서도 호랑이에게 입은 상처는 이 방법으로 치료하고 있다.
김현은 등용된 후 서천(西川) 가에 절을 세우고 호원사(虎願寺, 현재 경주 황성공원에 터가 남아있다.)라 했다. 항상 <범망경(梵網經, 색계 제4천인 마혜수라대범천궁(摩醯首羅大梵天宮)에 있는 그물 이름을 붙여서 부르는 경전의 이름이다. 알려져 있기를 욕계 도리천 제석천궁에는 인타라망(帝網)이란 그물이 있고 색계 대범천궁에는 범망이라는 그물이 있다 한다.-불교신문>을 강론하여 호랑이의 명복을 빌고, 스스로를 희생하여 어짊을 이루어 준 은혜를 갚았다. 김현이 죽을 즈음에 전에 있었던 이상한 일에 매우 감동하여 전기를 적었으므로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그리하여 그 기록을 <논호림(論虎林)>이라 불렀고, 지금도 그렇게 부른다.
정원(貞元, 당나라 덕종德宗 이괄李适이 785년~805년 8월까지 사용한 세번째 연호이자 마지막 연호) 9년(793년)에 신도징(申屠澄, 신도징은 불교와는 큰 관련이 없는 인물로 다음 이야기는 송나라 원래 태평광기太平廣記 429권에 실려 있던 것이다.)이 야인(野人)으로 서 한주(漢州)의 십방현(什邡縣, 중국 촉한 유비의 본거지였던 사천성의 작은 현)의 현위가 되어 부임지로 가는데, 진부현(眞符縣) 동쪽 10리 남짓 되는 곳에 도착하였을 때였다. 갑자기 눈보라와 매서운 추위를 만나 말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길가에 초가집이 있어 들어가니 안에 불이 피워져 있어 매우 따뜻했다. 등불이 켜진 곳으로 가 보니 늙은 부부와 처녀가 불 가에 둘러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그 처녀는 열네댓 살쯤 되어 보였다. 비록 헝클어진 머리와 때묻은 옷을 입었지만 눈처럼 하얀 살결에 볼이 꽃처럼 부드럽고 몸가짐이 고왔다.
노부부는 신도징이 오는 것을 보고 급히 일어나 말했다.
"손님이 추위와 눈을 무릅쓰고 왔으니, 앞으로 오셔서 불을 쬐시지요."
신도징이 한참 동안 앉아 있었으나 날은 이미 어두워졌는데 눈보라가 그치지 않았다. 신도징이 말했다.
"서쪽 현까지 가기에는 아직도 머니 여기서 자고 가게 해 주십시오."
노부부가 말했다.
"진실로 초가집이 누추하다고 여기시지 않는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신도징이 말안장을 풀고 이부자리를 폈다.
그 처녀가 바르고 단정한 손님의 행동을 보고는 얼굴을 곱게 단장하고 장막 속에서 나오는데, 아름다운 자태가 처음보다 훨씬 더했다. 신도징이 말했다.
"어린 낭자의 총명함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납니다. 다행히 미혼이라면 감히 청혼을 하고 싶은데 어떠하십니까?"
노부부가 말했다.
"뜻밖의 귀한 손님께서 거두어 주신다면 어찌 정해진 연분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신도징은 사위의 예를 올리고 타고 온 말에 여자를 태우고는 길을 떠났다.
부임지에 가 보니 봉록이 매우 적었지만 아내가 힘써 일하여 집안을 꾸려 나갔으므로 항상 마음에 즐거운 일뿐이었다. 그 후 임기가 끝나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미 1남1녀를 두고 있었다. 아이들이 매우 총명하였으므로 신도징은 안래를 더욱 존경하고 사랑했다.
일찍이 아내에게 주는 시를 지었는데 이렇다.
한 번 벼슬하니 매복(梅福, 한나라의 학자로 왕망王莽이 집권하자 처자를 버리고 구강九江으로 가서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에게 부끄럽고,
삼 년이 지나니 맹광(孟光, 중국 동한의 양홍梁鴻이라는 학자의 아내이며, 중국 고대 4대 추녀 중 한 사람이지만 어진 아내의 대표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에게 부끄럽다.
이 정분을 어디에 비유할까.
시냇가에 원앙새는 날아다니는데.
그의 아내는 종일 이 시를 읊조리며 화답하는 듯했으나 소리 내어 읊지는 않았다. 신도징이 벼슬을 그만두고 가족을 데리고 본가로 돌아오려 하자, 아내가 갑자기 슬픈 기색으로 신도징에게 말했다.
"이전에 시 한 편을 주셨으니 화답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읊었다.
금실 같은 정이 비록 중하다 하지만
숲 속의 뜻이 절로 깊다.
시절이 변하는 것을 언제나 근심하고
백 년을 함께 살 마음 저버릴까 저어하네.
그 후 함께 예전에 아내가 살던 집을 찾아가 보니 아무도 없었다.
아내는 매우 그리워하며 하루 종일 눈물을 흘리다가 갑자기 벽 모서리에 호랑이 가죽 한 장이 있는 것을 보더니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 물건이 아직도 여기 있을 줄 몰랐다."
아내가 그것을 재빨리 뒤집어쓰자 호랑이로 변해 으르렁거리며 할퀴다가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신도징이 놀라 피했다가 두 아이를 데리고 간 길을 찾아 산림을 바라보며 며칠 동안 통곡했으나 끝내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오호라! 신도징과 김현이 사람이 아닌 종류를 접했을 때 사람으로 변해 아내가 된 것은 같으나, 신도징의 호랑이가 사람을 저버리는 시를 주고 나서는 울부짖으며 할퀴며 달아난 것이 김현의 호랑이와는 다르다. 김현의 호랑이는 부득이해서 사람을 해쳤으나 좋은 약방문으로 사람을 구했다. 짐승도 그처럼 어질었는데 지금 사람으로 태어나 짐승만도 못한 자가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일의 앞뒤를 꼼꼼히 살펴보면, 절을 도는 중에 사람을 감동시켰고, 하늘이 악행을 징계하려 하자 자신이 대신했다. 또 신기한 방법을 전하여 사람을 구했고, 절을 세워 불계(佛戒)를 강론하게 했다. 비단 짐승의 성품이 어질었을 뿐만 아니라 대개 부처가 미물에 감응하는 방법이 여러 방면이어서 김현이 정성껏 탑을 돌자 감응하여 보답하고자 한 것이니, 그때 복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
다음과 같이 기린다.
산골집 세 오라비의 악행이 모질어도
고운 입에 한 번 맺은 가약 어찌 감당하리.
의리의 중함이 몇 가지 되니 만 번 죽음도 가벼이 여기고,
숲 속에서 맡긴 몸은 떨어지는 꽃처럼 없어졌네.
-삼국유사 권제5, 감통(感通) 제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