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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필사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걸 원할 거야, 하고 판단한 뒤 우리 기준에 맞춰 행동한다면 뜻밖의 당황스러운 상황과 맞딱뜨릴 수 있다. 그렇다고 평지풍파를 일으킬 거라는 두려움에 맥없이 휘둘릴 수만은 없다.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질 수 없다.
하지만 극한의 공포에 허둥지둥하지 않으면서 침착함을 유지할 방법은 있다.
바로 이성적 사유와 평가야말로 두려움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이다.
-배너바 부시(Vannervar Bush)

 

러셀이 지적하듯 언제나 여론은, 누가 봐도 분명 여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향해 보다 폭압적으로 힘을 행사한다. 러셀은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개를 이용해 겁을 주며 해코지하는 상황과 여론의 권련 행사를 비교한다.

 

종종 유명 인사들은 옳고 그름에 대해 자기 확신을 갖기보다는 대중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예측함으로써 자신의 행보를 정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공인 입장에서는 자기네가 대중의 압제와 괴롭힘을 당한다고 여길 수 있는데, 만약 그렇다면 우리 대중은 기꺼이 폭군처럼 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오해 아닌 오해 때문에 공인들이 피하려고 애쓰는 문제가 종종 야기된다.

 

정치인들은 단순히 여론의 분위기에 맞춰 입맛 따라 변해야 하는 노예가 아니다. 그보다는 기민하게 여론을 감지하도록 조율돼야할 존재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민감해지고자 스스로 자기 운명을 결정한 무리다. 직장, 가정 등 우리의 책임을 필요로 하는 그 어떤 조직 내에세도 우리는 대중의 찬성을 바라고 있으므로 정치인들 못지않게 통제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린다.

 

위기 상황에서는 이 두려움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 피터 샌드먼(Peter Sandman)은 권력 당국이 공황 상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정통한 전문가다. 그는 우리가 위기라고 인식하는 상황들이 사실은 반드시 두려워해야 할 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위기 상황이라고 적혀 있는 기나긴 목록을 살펴본 뒤 사람들이 얼마나 동요하는지에 따라 위기 상황의 순서를 매겨보라. 그런 다음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해를 끼치는지를 기준으로 각 위기 상황의 순서를 다시 잡아보라. 그리고 두 순위표의 상관관계를 따져보라. 그러면 0.2라는 눈부신 수치를 얻게 될 것이다." 0.2라는 상관관계를 비전문가가 쓰는 말로 풀자면, 우리는 중대 위기와 사소한 위기를 거의 똑같이 걱정한다는 말이고 우리가 크게 우려하는 위기 상황이라는 게 비교적 대수롭지 않은 경구가 많다는 뜻이다. 우리는 초조함을 느끼는 것을 결정하는 데 실질적 피해보다는 뭔가 다른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우리가 조류독감, 흉기 범죄, 식품 내 수은 함량 같은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동요한다고 해서 이 감정이 실질적 위기를 반영한다고 볼 수는 없다. 직감은 좋은 길잡이가 아니다. 다라서 직감을 중시하는 어떤 실권자나 우두머리들처럼 직감을 좇아가다가는 잘못된 길에 들어서기 십상이다.

 

샌드먼은 '분노'라고 분류되는 감정을 정의하는데, 이는 '위해성'과 그리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 한다. 문제는 높은 수준의 격렬한 분노와 낮은 위해성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샌드먼의 말에 다르면, 여론을 향해 과민 반응을 보이는 통치 기관들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한다. "공식적인 '공포를 위한 공포' 조성은 인류 역사에서 흔히 나타나는 일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무리는 툭 하면 대중이 공포에 떨고 있다느니 조만간 공황 상태에 바질 거라느니 멋대로 추정한다... 그들은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자기들 손에 꼭 쥐고만 있다. 대중을 안심시키려고 지나치게 애쓰며 대중의 두려움에 경멸을 표한다." 우리가 몽땅 엉덩이에 불이 붙은 듯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상황을 상정하는 '공포를 위한 공포', 다시 말해 도가 지나친 공포는 우리를 절대 안심시키지 못한다. 더군다나 실행활에서 우리의 건강과 안녕에 악영향을 끼치기까지 한다.

샌드먼의 말대로 우리는 사람들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되 책임감 있는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대중이 진실을 알지 못하게 꽁꽁 감추려고 할 때보다 오히려 사람들의 두려움 지수나 불행 지수가 더 낮아질 것이다. 우리는 정보 전달을 올바로 한 다음 책임감 있는 지도자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 우리가 혹시 여론을 잔뜩 성난 개처럼 생각하고 두려워한다면 아예 물어달라고 살살 성을 돋우는 꼴이다.

 

핸드먼은 위기 상황에서 가장 이상적인 리더십을 보여준 인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윈스턴 처칠을 꼽는다. 처칠은 당면 문제를 호도하거나 냉혹한 진실을 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음번에 당신이 나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면 '처칠이라면 어떻게 할까?'라고 생각해보자.

(러셀의 행복 철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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