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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 어린 충절은 특별한 선물이지, 칼 같은 사업 거래가 아니다. 행여 사랑 담긴 충성이 거래처럼 취급된다면 그 인간관계에 개입된 모든 이들의 행복이 줄어들고 만다.

 

돈으로 산 충절은 돈으로 파괴될 수 있다.
-세네카(Seneca)-

 

매년 여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자기 클럽에 평생의 충성을 서약하며 지난 열 달을 보냈던 축구 선수들, 그 클럽의 팬, 그리고 팀 동료들은 클럽을 이리저리 맞바꾼다. 그러면서 선수들은 새로 몸담게 된 클럽에서 뛰는 게 꿈이었다고 말하며 새로이 충성을 맹세한다. 그리고 다음 해엔 또 다른 변화가 생긴다. 프로 축구팀의 세계는 늘 이런 패턴으로 흘러간다.

 

대개의 경우 이 축구 선수들이 충성을 맹세하는 진짜 대상은 인상을 약속받은 몸값이다. 선수들이 다른 나라 다른 리그로 이적해갈수록 평생의 충성 서약, 아니면 최소한 경력상의 충성 서약은 바로 눈앞의 사람들을 향하게 돼 있다. 에이전트,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 스폰서, 변호사 등등.

 

어떤 선수는 자기 클럽에 과장된 충성 서약을 바친다. 해당 클럽을 절대 떠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런 서약을 하는 선수를 향해 축구팬들이 조롱을 보내는 표현이 있다. '배지 키서(Badge Kisser)'가 바로 그것. 최근 축구 역사에서 가장 웃긴 얘기 중 하나가 바로 영국 축구 선수 애슐리 콜(Ashley Cole)에 관한 내용인데 그가 한때 배지 키서처럼 군 적이 있다. 그가 쓴 자서전에 박장대소할 만한 구절이 나온다. "내 마음과 영혼은 단단한 매듭처럼 아스날에 묶여 있었다. 감히 후디니(탈출 묘기의 일인자)도 그 매듭을 풀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뒤 아스날이 새 계약서에 고작 주당 5만5000파운드라고 명시하자 애슐리는 주저 없이 진로를 변경해 첼시의 계약서에 사인했다.

 

축구의 세계에서 사랑이 매매 가능한 상품이라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고이 사랑을 전하는 우리의 동기는 종종 진의가 의심된다. 러셀이 설명하듯 사랑을 주거나 사랑을 즐기는 우리의 동기가 본인의 주장과 같지 않다면 우리는 절대 행복할 리 없다.

 

자신이 배를 타고 해안을 유람 중이라고 가정해보자. 아마 애정 어린 눈으로 해안선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배가 가라앉고 당신은 애정 어린 눈으로 다시 한 번 해안선을 바라보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변을 향해 헤엄쳐 가는 물에 빠진 사람의 애정이다.

 

두 시선의 차이는 명확하다. 자신 있고 안전한 상태에서 비롯된 첫 번째 애정, 그리고 두려움에서 나오는 두 번째 애정. 후자는 곧 자기중심적인 애정이다.

 

다르게 풀어보자. 우리는 가족, 친구, 동료, 축구 클럽 같은 여러 가지 집단 속에서 사랑과 충성을 표현한다. 이 모든 집단 속에는 안정감과 불안감이 혼재돼 나타난다. 즉 러셀의 분석대로, 아낌없이 정성스럽게 전해지는 사랑에 열정까지 보태진 안정감과 해변을 향해 헤엄쳐 가는 물에 빠진 사람이 느끼는 불안감이 있다. 후자의 경우에서 사랑은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 기초한다. 두려움이 더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이런 상황 속에서는 행복한 관계가 성립되지 못한다.

 

계약을 통해 얻게 되는 무언가 때문에 사랑을 준다면 이건 진짜 사랑이 아니다. 기대했던 걸 얻지 못하거나 경쟁자가 더 큰 클럽에 영입되는 등 다른 사람이 똑같은 상황에서 더 좋은 제안을 받는다면 실망감이 따라올 뿐이다.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행복을 불러일으키는 충성스러운 사랑은 분명 특별한 선물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용기이기도 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조심과 경계 가운데 사랑에 대한 경계야말로 진정한 행복에 가장 치명적일 것이다."

 

모든 인간관계를 업무적으로 대하기란 오히려 쉬운 일이다. "네가 저걸 하면 내가 이걸 할게" 단계는 그나마 미약한 수준이지만, 이 단계가 "네가 저걸 '안' 하니까 나도 이걸 '안' 하는 거야" 단계로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면 이젠 슬슬 새로운 친구, 직장, 애인을 찾아 나서라는 신호가 온 건지도 모른다.

-러셀의 행복 철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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