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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문화재 486호 채용신 필 운낭자 초상/국립중앙박물관
등록문화재 486호 채용신 필 운낭자 초상/국립중앙박물관
등록문화재 486호 채용신 필 운낭자 초상/국립중앙박물관

이 그림은 1914년에 채용신(蔡龍臣)이 그린 것으로 운낭자상(雲娘子像, 蔡龍臣筆雲娘子肖像)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 초상화의 실제 주인공은 최연홍(1785~1846)이라는 기녀이다. '운낭자'는 최연홍의 초명이다.

운낭자는 원래 평안남도 가산고을의 청기(廳妓, 수청을 드는 관기)로서 1811년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 군수와 시아버지가 사망하자 그녀의 남편과 시부모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지내고 시동생을 극진히 간호하여 회생케 하였다고 하며, 이 일로 홍경래의 난이 평정된 후 나라에서 그녀를 표창하여 기적(妓籍, 기생들의 등록 대장)에서 제외시키고, 그 초상화를 계월향의 사당인 평양의 의열사(義烈祠)에 함께 봉안하였다고 전한다.

 

단정하게 빗어내린 쪽머리에 잠을 꽂고 짧은 저고리에 풍성한 치마를 입고 있다. 통통하게 살이 찐 아이를 안고 있는 저고리 아래로 젖가슴이 살짝 보이는 것은 당시 풍속(아들을 낳아 엄마가 자랑으로 젖가슴을 살짝 드러냈던 것)으로 추정 된다. 치마주름 사이로 살짝 드러난 반달 모양의 흰버선이 나타나는 특징은 18~19세기의 미인도에 흔히 표현되는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동아대학교 소장 <미인도>와 전 채용신 작품인 <팔도미인도병(八道美人圖屛)>의 양식과 부분적으로 유사하며, 그림의 우측에 있는 '운낭자이십칠세상' 이라고 하는 제기(題記, 작품에 적힌 제목)를 통해 운낭자가 27세의 젊은 엄마였던 시기에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채용신은 칠곡군순, 정산군수 등을 지내고 종2품관까지 지낸 인물로 조선말기 우국지사나 항일투사의 초상화를 많이 제작했으며, 고종의 어진과 고종대한제국동가도(高宗大韓帝國動駕圖) 등을 그렸으며, 운낭자이십칠세상(雲娘子二十七歲像), 황장길부인상(黃長吉夫人像) 등의 여인상도 그렸다. 그의 화법의 특징은 극세필을 사용해 얼굴의 육리문 묘사에 주력하고, 서양의 데생작업과 유사한 많은 필선을 사용해 요철, 원근, 명암 등을 표현한 점 등이 특징으로 꼽힌다.

그림 크기

전체 120.5X6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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