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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 토지 등의 재산을 둘러싼 소유권 싸움 못지않게 많이 나타나는 사건은 채무관계이다. 여기에는 채무 이행 요구, 물건의 매매대금 지급 관련 등이 있다. '빌린 돈(債錢)'을 갚으라는 요구에도 다양한 채무관계가 있겠지만, 민간에서 행해지던 고리대에 관한 것도 적지 않았다. 빈농들은 농사를 짓거나 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고리대를 쓸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채무는 직접적인 채무가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먼 길을 함께 다녀온 족인(族人)이 경비를 갚지 않았다거나 때로는 약을 먹고 약값을 내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반면에 빌린 돈을 갚고 난 뒤에는 다시 추급요구를 할까 걱정하여 관에 입지성급(立旨成給, 관에서 공증하는 문서)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입지(立旨) 문서/ⓒ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 밖에 물건의 매매대금에 대한 내용도 적지 않으며, 목화, 약재, 목재, 포, 생견, 철물, 당물과 등의 물품값을 둘러싼 송사가 일어났으며, 더불어 이 시기의 다양한 상품의 매매 실태도 함께 알 수 있다.

또, 옥사(獄事, 크고 중대한 범죄를 다스리는 일 또는 그 사건)에 따른 비용을 물리는 것도 채무관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는데, 옥사(에 따른 비용은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 또는 가족이 부담하게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특히 살옥(殺獄, 살인 사건에 대한 옥사)에 대해 초복검(시신의 첫 검안과 재검안)에 사용한 부비(浮費, 일하는 데 써 없어지는 비용)를 가족, 친지에게 물려서 결국 집안 물품과 전답까지 사용한 예까지 있다. 그래서 정약용은 살인이 일어나도 검안에 따른 비용 때문에 관에 알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였다.

 

또, 대가를 받고 소를 먹이다가 소가 죽은 경우도 있었는데, 소를 먹이는 과정에서 소가 죽으면 당연히 배상을 요구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 소 주인도 손해를 보지만, 먹여 기르는 사람도 그간 들였던 노동력에 대한 대가는 받을 길이 없어지게 된다. 이런 경우 관에서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 액수를 정하라고 하고, 관에다가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채무관계 외에 농민적 권리와 관련된 갈등도 많은데 여기에는 소작권, 초지, 수리 이용권 등이 있다.

이 시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작인의 경작권이 인정되었는데 주주의 갑작스러운 이작, 탈경에 대해 작인이 호소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 점은 '목민서'에서도 매우 중요시하였는데, 특히 파종 이후에는 경작권을 빼앗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 지주가 소유권을 휘두르는 과정에서 때로는 파종 이후까지 자의에 의해 작인의 경작권을 빼앗는 일이 발생하여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다. 또 이 과정에서 새로이 경작권을 얻게 된 농민이 구 작인의 항해와 저항 때문에 경작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호소하기도 하였다.

 

경작권 이외에도 농업과 관련 있는 초지, 수리 등의 이용권을 둘러싼 갈등도 보인다. 특히 수리의 확보를 둘러싸고 면리 간의 갈등이 야기되어 집단적인 등소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때로는 공동수리시설이 개인의 토지에 피해를 입힘으로써 촌리민과 개인이 대립하기도 하였다. 보를 축조함으로써 개인의 토지에 피해를 가져오게 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참고 : 조선시대 민장의 내용으로 보는 갈등들-① 부세 운영에 대한 호소]

[참고 : 조선시대 민장의 내용으로 보는 갈등들-② 민간의 갈등]

 

[참고 : 조선시대 민소(재판)의 절차와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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