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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율곡 이이(1536~1584)/네이버 두산백과]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조선의 대표적인 주자학자로 강원도 강릉의 외가에서 태어나 어머니 신사임당의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났다. 13세에 초시에 급제하고 16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3년상을 마친 뒤 19세가 되던 해에는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는가 하면 23세에는 당대의 노사숙유(老士宿儒)로 일컬어지던 이황을 찾아 가르침을 청하기도 했다. 그해 겨울에는 별시에 응시하여 장원급제했는데 이때의 담압지가 유명한 '천도책'이다.

 이이는 비교적 젊은 시절 중앙의 정치 무대에 나간 이래 20여년 동안 이조좌랑,호조판서,부제학,대제학 등 국가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아울러 임진왜란 발발 이전에 십만양병론을 주장하면서 각종 화약 무기를 개발하고 전함을 건조하여 왜의 침략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유성룡 등의 유학자들로부터 아무 일도 없는데 병력을 양성하는 것은 그자체가 화근이라고 비판을 받았지만 나중에 전쟁이 일어나자 선견지명을 가진 성은으로 찬양받기도 했다.

 

[사진 초충도/어머니 신사임당은 학문과 그림으로 명성을 떨쳤다./네이버 공부에미친16인의조선선비들]

 

 이이는 49세로 비교적 일찍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중에서도 '성학집요(聖學輯要)'와 '격몽요결(擊夢要訣)'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조선 성리학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지만 그 외에도 정치, 경제, 교육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뛰어난 방책을 제시하였다. 예를 들어 1577년 저술한 '격몽요결'은 초학자들을 위한 성리학 지침서라고 할 수 있는데 충실한 내용과 완성도 높은 체제를 갖추고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배우는 자들은 반드시 성현이 되겠다는 뜻을 세워야 한다는 입지장(立志章), 나쁜 습관을 버려야 한다는 혁구습장(革舊習章), 올바른 몸가짐을 강조한 지신장(持身章), 책을 읽4는 방법을 논의한 독서장(讀書章), 어버이 섬기는 도리를 논한 사친장(事親章) 등 모두 10장으로 구성 되어 학문의 목적부터 구체적인 방법과 실천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논의하고 있어 조선시대 내내 초학자들의 필독서로 여겨졌다.

 이 책의 입지장에서 그는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성인(聖人)과 같은 존재가 되겠다는 뜻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였는데 여기에서 그의 학문관이 주자학의 정신을 철저히 이어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그는 이치는 따져 보지 않고 단지 스승의 설이라고 해서 믿고 따르는 독경주의를 비판하고 스스로 의미를 찾는 자주적인 학풍을 주장했다. 그는 이런 학풍에 입각하여 이황에게 다른 사람의 견해를 모방하는 경향이 있음을 비판하고 아울러 "주자라 할지라도 정말 이(理)와 기가 상대해서 각각 발출한다고 생각했다면 주자 또한 잘못한 것"이라고 할 정도로 자주적인 학풍을 중시했다.

 또 그는 벗이었던 성혼과 인심도심(人心道心) 논쟁을 진행했는데 이는 학국철학사상 이황과 기대승 사이에 일어난 사단칠정 논쟁과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논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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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학과 양명학의 차이점

 

1.본성이 이치인가 마음이 이치인가

 주자학의 기본명제는 "본성이 곧 이치이다."라는 의미의 '성즉리(性卽理)'이고, 양명학의 기본명제는 "마음이 곧 이치이다."라는 의미의 '심즉리(心卽理)'이다. 주자학에서는 모든 사물이 각각의 이치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사람에게는 사람의 이치가 있고, 개에게는 개의 이치가 있으며, 꽃에는 꽃의 이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치는 하늘이 정한 것이다. 하지만 양명학은 각각의 사물에 하늘이 정한 이치가 들어 있다는 생각을 부정한다. 모든 이치가 각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맹자가 "만물이 내게 갖추어져 있다."라고 한 말의 연장인 셈이다.

 

[사진 왕수인(왕양명)/네이버 지식백과]

 

 한번은 왕수인이 친구와 함께 유람할 때 한 친구가 절벽에 피어 있는 꽃나무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세상에 마음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였는데 꽃나무는 깊은 산속에 있으면서 제 스스로 피고 지는 것이니 과연 내마음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러자 왕수인은 "그대가 이 꽃을 보기 전에는 이 꽃과 그대 마음이 모두 고요할 뿐이었지만, 그대가 와서 이 꽃을 보았을 때 비로소 꽃빛깔이 일시에 또렷해졌으니, 곧 이 꽃이 그대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겠는가?"라고 답하였다.

이런 왕수인과 친구가 절벽에 핀 꽃을 보면서 나눈 대화가 양명학의 '심즉리'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사진 주희/네이버 지식백과]

 

 이런 점에서 본다면 주자학과 양명학 모두 이(理)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유체계는 똑같이 관념론에 속한다. 다만 양자를 구분한다면 주자학은 내 밖의 사물이 객관적으로 있다고 보는 입장이므로 객관적 관념론이라고 불리고, 양명학은 객관적 존재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주관적 관념론이라고 불린다.

 주자학과 양명학은 모두 유학이며 유학의 가장 큰 특징은 인본주의이다.

인본주의란 세계 만물의 기준을 사람으로 보는 인간중심주의를 뜻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하였다. 이 말은 사물에 대한 감각과 인식이 인간 개개인의 판단에 달여 있기 때문에 그 개별 인간 하나하나가 만물을 재는 자가 된다는 뜻이다. 얼핏 보면 유가의 인간중심주의와 같아 보인다. 그러나 유학의 또다른 특징은 도덕중심주의이다. '성즉리'와 '심즉리'의 이가 자연법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도덕법칙인 것이며 그런 점에서 '성즉리'의 성은 도덕성이고, '심즉리'의 심은 도덕심이다.

 주희는 '성즉리'를 깨달아 가는 과정이 '대학'에 나오는 격물치지(格物致知)라고 보았다. 하지만 예전부터 전해 오는 '대학'에서는 격물치지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다고 보고 정이천의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더하여 새로 134자를 만들어 넣었다.

 '격물치지'는 '사물에 나아가(格物)' '앎을 완성한다.(致知)'는 뜻이다. 이 말만 보면 앎의 대상이 사물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궁극적인 탐구대상은 사물이 아니라 그 사물 속에 들어 있는 이(理)이다. 그렇기 때문에 '격물궁리(格物窮理)'라고도 한다. 주희는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상만물은 모두 각각의 이를 지니고 있고 사람에게는 그것을 파악할 수 있는 신령한 앎의 능력이 마음속에 있다. 그렇기 때문 모든 천하의 사물에 나아가 이미 알고 있는 이치를 바탕으로 매일매일 탐구해 가다 보면 마침내 하루아침에 모든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사물의 겉과 속, 정교하고 미세한 사물과 거친 사물 할 것 없이 사물의 이치가 다 깨달아질 것이며 내 마음의 온전한 본 모습과 그 마음의 활용이 밝아지지 않음이 없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주희의 말처럼 온 세상 만물을 다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주희는 독서를 통해 깨닫는 것과 함께 유추법을 제시하였다. 유추법이란 10개 가운데 7~8개를 깨달으면 나머지는 저절로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얼핏 보면 천하 만물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쉽게 이해 되지 않는다. 이 점은 이렇게 생각해 보자. 개와 고양이와 나무와 돌의 이치는 모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모습과 역할이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개의 이치는 어떤 것일까? 본래 성리학에서는 이치는 변하지 않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선(善)이라고 본다. 따라서 개의 이치를 따지는 일은 어떤 개가 가장 좋은(착한) 개인지를 찾는 일과 같다. 가장 좋은 개는 주인 잘 따르고 집 잘 지키는 개일 것이고 주인을 물거나 도둑을 보고 겁을 내는 개는 나쁜 개가 된다. 그리고 이런 평가 원칙은 지금 우리집에서 기르는 개만이 아니라 옆집 개와 뒷집 개,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다른 나라 개들까지도 모두 해당되며, 이미 죽은 개나 앞으로 태어날 개에게도 해당된다. 그렇기 때문에 성리학에서는 이치가 사물 존재보다 앞선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착한) 고양이는 어떤 고양이일까? 쥐 잘 잡고 주인 잘 따르는 고양이가 착한 고양이일 것이며 이 원칙도 이미 죽은 고양이나 앞으로 태어날 고양이에게까지 해당된다.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목재로 쓰기도 좋으면서 예쁜 꽃과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나무가 좋은(착한) 나무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개와 고양이와 나무의 이치는 다르지만 좋은 나무, 좋은 고양이 좋은 개로 생각을 넓히면 그 이치는 모두 같아진다. 따라서 모든 만물의 이치는 결국 선의 이치라는 점에서 같다는 결론이 나오며 이러한 이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사실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사물의 이치를 따지는 것은 사람 중심의 논리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중심주의인 유학의 입장에서는 이상할 것이 없다. 그래서 깨달은 궁극의 진리는 그 이치가 내 속에 들어 있는 사람다움의 이치와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희는 만물의 이치를 다 합친 것이 태극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격물치지를 통해 궁극에는 태극을 깨닫는 것이 된다.

 그러나 젊어서 주자학을 공부했던 왕수인은 주희의 격물치지 이론을 직접 실험해 보았다. 1주일 동안 대나무 앞에 앚아서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대나무만 바라보며 대나무의 이치를 탐구하다가 병을 얻었다. 그런데도 대나무는 대나무대로 나는 나대로 있음을 경험하였다. 왕수인이 깨달은 것은 내 마음이 대나무에게 갈 때 대나무가 비로소 존재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내 마음 속에 들어 있는 타고난 양지를 잘 기르면 그만이라는 것이었다. 이 같은 왕수인의 생각은 생 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여우는 하던 이야기로 되돌아 갔다. "내 생활은 단조로워. 나는 닭을 쫓고, 사람들은 나를 쫓지. 닭들은 서로 비슷하고, 사람들도 모두 비슷해. 그래서 난 좀 권태로워. 그러나 네가 날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햇빛을 받은 것처럼 밝아질 거야. 다른 발자국 소리와는 다르게 들릴 너의 발자국 소리를 나는 알게 될 거야. 만일 다른 발자국 소리가 나면 나는 땅속으로 숨을 거야. 네 발자국 소리는 음악 소리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저길 봐! 밀밭이 보이니? 나는 빵을 먹지 않아. 밀은 나한테 쓸모가 없어. 밀밭을 보아도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아. 그래서 슬퍼! 그러나 네 머리카락은 금빛이야. 그래서 네가 날 길들인다면 정말 신날 거야! 밀밭도 금빛이기 때문에 밀은 너를 기억하게 해줄 거야. 그래서 밀밭을 스치는 바람 소리까지 사랑하게 될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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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리학과 양명학의 의미와 사상사적 영향

 성리학은 중세 시기 동아시아 3국 모두의 보편적 세계관이 되어 700년 이상을 이어 왔고, 양명학 또한 인간 주체와 실천을 강조하면서 근대적 사유의 싹이 되었다. 그러나 주자학은 명대 이후 사회구조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교조주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양명학 또한 인륜이나 사회기강을 거부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사진 태극도설/네이버 지식백과]

 

 주자학은 특히 중세 봉건왕조의 대표적인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면서 사상적 유연성이나 새로운 발전의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고착화하는 경향을 보였고, 양명학 또한 개인 주체를 강조하고 실천을 중시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래서 명말 청초에 이르면 양명학의 폐단을 비판하면서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갖는 새로운 학문 경향이 등장한다.

 

[사진 황종희/네이버 서울대학교철학사상연구소]

 

[사진 고염무/네이버 지식백과]

 

 그러한 경향의 처음을 연 사람은 황종희, 고염무, 왕부지 등이다. 황종희는 양명학의 폐단을 비판하고 개인적 도덕 수양의 한계를 넘어선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면서 계몽사상가적 정치 이론을 전개하였다. 고염무 또한 경전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세론을 찾으려 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훈고학과 비슷한 고증학을 새로운 학문 방법으로 내놓았다. 그리고 왕부지는 고대부터 내려온 기철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상을 마련하였으며 이러한 흐름은 대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들어 서양 문물의 유입과 함께 근대로의 전환이 일어났으며 그 과정에서 서구의 충격과 그에 대한 대응이 복잡하게 전개된다. 크게는 봉건제를 유지하면서 성능이 우월한 무기를 중심으로 서구의 우월한 과학기술만을 받아들이려는 양무파(洋務派)와 이를 넘어서서 정치,경제의 개혁까지를 주장한 변법파(變法派)가 대립하였다. 주자학과 양명학은 모두 근대 이전까지 사회를 이끄는 사상으로 기능하였으며 서구 문물의 유입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오늘날 다시 서구 중심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대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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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자학과 양명학의 관계

 양명학의 발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주자학과 양명학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양명학이 주자학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에 계승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주자학에 대한 반성에서 나왔기 때문에 극복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사진 주희/네이버 지식백과]

 

 전자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약간이 차별성이 있기는 하지만 공통적으로 봉건사회의 이데올로기 역할을 했다는 측면을 중시하여 모두를 이학(理學)이라고 부른다.그러나 후자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관학이었던 주자학의 엄숙주의,귄위주의에 반기를 든 것이 양명학으로서 이러한 변화 과정이 이지(理智)에 입각한 규제에서 서정(抒情)에 입각한 자연주의로, 이치가 바깥 사물에 있음을 인정하는 객관에서 내 마음속에 들어 있다고 보는 주관으로, 전통에서 반전통의 자유주의로 나타났다고 보고, 주희의 이학(理學)과 구별하여 심학(心學)이라고 부른다. 또 일부에서는 크게 보면 후자의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양명학의 심학 체계 속에 명말 청초에 유행하는 기학(氣學)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 있다는 입장에서 기학의 범주에 넣기도 한다.

 

 


[사진 왕양명(왕수인)/네이버 지식백과]

 

 

 또 다른 문제는 고대 유가사상과 주자학,양명학의 연관에 대한 이해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주희가 성선설을 기반으로 삼음으로써 유가의 전통을 순자가 아니라 공자에서 맹자로 이어진 것으로 보았지만 오히려 학문 내용을 보면 주지주의적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 순자 사상의 영향으로 이해되며, 이와 달리 왕수인의 학문은 맹자의 양지양능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유가 전통에 더 가깝다는 주장이 있다. 그 밖에도 왕수인 사상과 육상산의 사상에 유사성이 많기 때문에 육왕학(陸王學)이라고 표현을 쓰면서도 두 사상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학자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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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들은 철학 사상을 이해할 때 그 사상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의 입장과 일치될수록 깊이 잇는 이해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론의 논리적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배해 다른 사람들은 그 사상을 배태한 지리적,역사적 배경을 객관적으로 먼저 파악해야 그 사상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환경이나 현실과 독립되어 성립하는 사상은 없다는 것이다. 앞의 경우가 '안으로 부터의 접근'이라면 뒤의 경우는 '밖으로 부터의 접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우리는 이 두가지의 어느 측면도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사진 공자/네이버 지식백과]

 

 예를 들면, 우리는 불교를 이해할 때 근본불교의 교리로서 사성제나 삼법인 등 석가의 사상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불교를 낳은 인도의 자연과 사회를 파악하는 것은 불교를 이해하는 데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가령 인도의 무더운 기후는 인도에서 발생한 거의 모든 종교와 철학들이 명상을 중시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해 준다. 고대로부터 사제들을 비롯한 지배층은 시원한 나무 그늘이나 석굴 속에서 명상을 하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이해하는 것은 인도에서 발생한 종교와 철학들을 고찰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사진 석가모니/네이버 지식백과]

 

 따라서 어떤 철학 사상에 접근할 때, "한 발은 안에, 한 발은 밖에 두고 보라"라고 말한다. 만일 우리가 안에서만 본다면 우리는 주관적, 관념적으로 흘러서 그 사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또 만일 두 발을 모두 밖에 두고 본다면 우리는 그 사상의 배경만 이해할 뿐 심오한 내용까지는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김교빈 외 13인, '동양철학은 물질문명의 대안인가', 웅진출판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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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필적/한국민족문화대백과]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은 평생 은거했던 서경덕과는 달리 25세때 부터 적극적으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는데 1530년 사간으로 재직시에 권신들의 배척을 받아 쫓겨났다가 복귀하는 등 정치적으로 여러 차례의 질곡을 겪었다. 말년에는 권신 윤원형 일파의 미움을 받아 강계로 유배된 뒤 그곳에서 학문에 전념하여 주요 저술을 남겼다.

 서경덕이 기철학을 열었다면 회재 이언적은 이(理)의 철학을 중심으로 불교와 도교로 대표되는 비주자학적 사유를 극복함으로써 조선 주자학의 이론적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그는 당시 손숙돈과 조한보 간에 주자학의 주요 개념인 무극과 태극에 관한 편지글이 오가는 것을 보고 이른바 무극태극 논쟁을 제기하여 두 사람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논쟁의 시대를 열었다.

 그는 이 논쟁을 통해 주자학에 대한 불교적,노장적 이해를 비판했는데, 무극과 태극은 이(理)를 지칭한 것이지 기를 지칭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동시에 이(理)는 형질이 없지만 결코 무(無)는 아니라고 하여 이(理)를 무(無)로 이해하는 노장적 풍조를 경계하여 철저하게 주자학적 사유에 입각하여 무극과 태극을 설명함으로써 주자학의 순수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였다.

 한편 학문 방법론에서도 조한보가 태극의 본체를 단번에 깨친다는 논의를 비판하고 거경을 중심으로 한 주자학적 학문론을 전개하였다. 아울러 그는 이(理)는 지극히 높고 지극히 묘하지만 그 실체가 깃들어 있는 곳을 찾는다면 지극히 가깝고 지극히 현실적인 곳에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일상생활을 떠나서 이(理)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학문 수행 또한 일상생활을 떠나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또 이(理)의 절대성을 특별히 강조하였는데, 사람과 사물은 형질이 있지만 이(理)는 형질이 없기 때문에 이(理)는 생사와 시종도 없는 존재라고 하여 이(理)를 무시무종의 궁극적 존재자로 규정하는 등 이(理)의 실재성과 주재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주자학을 해석함으로써 훗날 같은 이(理)의 철학자인 이황으로 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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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네이버/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우리 선비]

 

 위에 있는 푸른 것(하늘)과 아래에 있는 누런 것(땅)은 모두 의식이 없는 사물이다. 그것들은 해와 달과 산과 강과 똑같이 기의 바탕이 이룬 것일 뿐이며, 영묘한 앎이라는 주체적 작용이 전연 없는 것들이다. 성인이 이치를 밝힘에 있어 어찌 그것들을 아비로 섬기고 어미로 섬기라는 이치가 있겠는가? 오직 위대한 상제만이 모양도 바탕도 없으면서 나날이 여기에 임해 있으며, 하늘과 땅을 통어하고 뭇 사물의 할아비이자 뭇 귀신의 우두머리로서 우뚝하고 환하게 저 높이 임해 있다. 이에 성인은 정밀한 마음자세로 상제를 발게 섬겼으니, 이것이 곧 하늘제사(교제郊祭)가 생겨난 유래이다. 이에 온갖 명신들이 상제의 명을 받들어, 어떤 명신들은 해와 달과 별과 별자리와 바람과 구름과 우레와 비를 맡고, 어떤 명신들은 땅과 곡식과 산과 내와 언덕과 큰 언덕과 숲과 연못을 관장한다. 그 맡은 바 일이 위에 있는 명신을 하늘귀신이라 하고, 그 맡은 일이 아래에 있는 명신을 땅귀신이라고 부른다.

[정약용, '춘추고징(春秋考徵)','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제3책]

 

[사진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제1집 오학론/정약용이 당대의 주요 학문 경향인 성리학,훈고학,문장학,과거학,술수학의 다섯을 들어 그 폐단을 비판한 논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진 춘추고징(春秋考徵)/정약용이 '춘추'에 대하여 고징한 저서. 1936년 김성진이 편집하여 간행되었다. 4권. 규장각도서/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성(性)을 제대로 알아서 밝힌 것은 오로지 맹자 한 분인가 한다. 하늘이 내려준 성은 선(善)과 의(義)를 좋아함으로써 영명이 스스로를 살찌우도록 되어 있다. 그것은 기질의 성이 고기를 좋아함으로써 몸이 스스로를 살찌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좋아하는 것을 성으로 규정할 때에만 이 뜻은 제대로 밝혀진다.(중략) 하늘이 주신 이 성은 선을 즐거워하고 악을 부끄러워한다. 한 가지 일에 마주칠 적마다 그 선함과 악함이 바로 앞에 놓여 있으니, 이 성이 향하고자 하는 쪽을 한결같이 따른다면 아무런 잘못이나 어그러짐이 없을 것이다.(중략) 만일 이 성이 없다면 아무리 지혜롭기가 신명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평생토록 실오라기 하나만큼의 선도 행할 수 없을 것이다.

[정약용, '염씨고문소증백일초(閻氏古文疏證百一抄)','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제3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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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초정(楚亭) 박제가/네이버]

 

 북경의 유리창 좌우 십여 리 및 용봉사 시장 등에 언뜻 보아도 찬란하게 번쩍거리며 형용할 수 없는 것들이 있으니, 이것은 모두 옛 제기와 옥, 서화 등 기묘한 것들이다.(중략)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부유한 것이기는 하지만, 백성들을 살리는 데는 도움이 안된다. 모두 불태워 버린들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한다. 그 말이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대저 푸른 산, 흰 구름은 모두 먹고 입는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사랑한다.(중략)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문이 과거 시험을 벗어나지 못하고, 안목이 국격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하여 불경을 적은 종이를 더럽다 하고 밤색 화로를 더럽다 하여, 점점 문명하고 단아한 세계와 스스로 인연을 끊는다. 꽃에서 사는 벌레는 날개와 수염에서 향기가 나지만, 더라운 곳에서 사는 것은 꿈틀거리고 숨쉬는 모양이 아주 추하다. 만물이 실로 이러하니 사람 또한 당연히 그러하다. 봄볕 같고 비단 같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먼지 구덩이 더러운 곳에 빠져 있던 사람과는 반드시 다른 데가 있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수염과 날개가 향기를 지니지 못할가 두렵다.

[박제가, '고동서화(古董書畵)', "북학의(北學議)"]

 

[사진 박제가 북학의(北學議)/네이버/한국의고전을 읽는다]

 

 신은 농사를 관장하는 관리입니다.(중략) 다만 고을 백성이 편하게 살면서 생업을 즐겁게 여기며, 개천과 봇도랑을 법에 맞게 하고, 집 주위를 가지런하게 정리하며, 모습과 언사가 조촐하고 미더우며, 그릇과 의복이 견고하고 갖추어져 있으며, 수목이 번성하고 모든 가축이 잘 자라며, 남자와 여자가 게으르지 않아 각자 일거리가 있으며, 장인(匠人) 장사꾼이 모여들고 도둑들이 물러가며, 다리와 주막과 뒷간도 수리하지 않은 것이 없고, 낚시와 사냥하는 데에 배도 있고 수레도 있으며, 아이들은 역질을 앓지 않고 늙은이는 노래하고 글을 읊조리게 되기를 원할 뿐입니다. 이것은 모두 근본을 두텁게 하고 농사에 힘쓴 후의 효과로서, 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하게 된 뒤의 일이오니, 중화(中和)와 위육(位育)도 대개 이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박제가, '응지진북학의소(應旨進北學議疏)',"북학의(北學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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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네이버/연암집,박지원의 시문을 모은 문집으로 총17권6책으로 구성(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옛것을 본떠 글을 짓는 것은 사물을 거울에 비추는 것과 같으니, 형체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가? 좌우가 서로 반대이니, 어찌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중략) 그러니 끝내 비슷해질 수 없는 것이다. 대체 어찌해서 비슷해지기를 구하는가? 비슷함은 참이 아니다. 천하에 이른바 '서로 같다'는 것은 반드시 '꼭 닮았다'라고 해야 하며, '분별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 또한 '참에 가깝다'라고 해야 한다. 참을 말하고 닮음을 말할 때는 가짜와 다름이 그 안에 있는 것이다.

[박지원, '녹천관집서(綠天館集序)', "연암집(燕巖集)"]

 

 본 것이 적은 사람은 해오라기를 기준으로 까마귀를 비웃고 오리를 기준으로 학을 위태롭다고 생각한다. 만물은 스스로 괴이할 것이 없는데 내가 공연히 걱정을 하고, 하나라도 같지 않으면 만물을 모함해 댄다. 아! 저 까마귀를 보라. 덧없이 검은 깃털이 갑자기 흰빛으로 물들고 다시 녹색으로 반짝이며, 햇빛이 비치자 자주색으로 변했다가 눈이 부시면서 비취색으로 바뀐다. 그러니 내가 푸른 까마귀라 해도 무방하고, 다시 붉은 까마귀라 해도 무방하다. 그것은 본래 정해진 색이 없는데 우리가 눈으로 먼저 정해 버린다. 심지어는 눈으로 보지도 않고 먼저 마음에 정해 버린다. 아! 까마귀를 검은색에 가두어 버리는 것도 그렇더라도, 까마귀를 가지고 천하의 모든 색을 가두어 버리는구나! 까마귀는 과연 검은색이로되, 이른바 푸르고 붉음이 색 가운데의 빛임을 누가 다시 알겠는가!

[박지원, '능양시집서(菱洋詩集書)', "연암집(燕巖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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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사용중인 통신사 약정이 만료되었거나 이사 또는 신규로 인터넷가입이 필요할때 각 지역별로 인터넷설치 가능지역 조회가 필요합니다. [올레KT,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SK텔레콤)] 통신3사 가능지역을 조회해 보세요~! (참고:도로명주소와 일반번지 주소 모두 조회가 가능하며 큰건물의 경우 건물명으로 조회가 가능합니다.)

 

[제공:인터넷가입사이트, 브로드몰]

 

 


 

[올레KT 인터넷가입, 인터넷설치 가능지역 조회]

 


 

[SK브로드밴드(SK텔레콤) 인터넷가입, 인터넷설치 가능지역 조회]

 


 

[LG유플러스(LGU+) 인터넷가입, 인터넷설치 가능지역 조회]

 


 

유선 인터넷설치 일정의 경우는 인터넷 설치 신청을 하면 보통 접수완료 후 아래와 같이 설치 일정(기간)이 소요 되므로 참고하세요~!(올레KT,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SK텔레콤 동일)

 

대도시 가입 및 설치 일정(기간)

서울특별시,인천광역시,대전광역시,광주광역시,대구광역시,울산광역시,부산광역시 등은 고객님 스캐쥴과 상관없이 빠른일정으로 진행시엔 일반적으로 인터넷설치 신청 접수완료 후 1~2일(당일설치 가능한 경우도 있음)이 걸립니다.(단, 관할지역 설치팀 일정상 다소 변경이 될수 있습니다.)

 

중소도시 가입 및 설치 일정(기간)

경기도:광명시,구리시,부천시,용인시,수원시,화성시,김포시,군포시,의왕시,시흥시,성남시,의정부시,평택시,이천시,고양시,포천시,동두천시,양주시,남양주시,하남시,안양시,안산시,광주시,일산시 등

강원도: 춘천시,원주시,태백시,삼척시,동해시,강릉시,속초시 등

충청북도:충주시,청주시,제천시 등

충청남도:당진시,아산시,천안시,세종시,보령시,계룡시,서산시,공주시 등

전라북도:군산시,전주시,정읍시,남원시,익산시,김제시 등

전라남도:목포시,여수시,광양시,순천시,나주시 등

경상북도:영주시,문경시,안동시,상주시,김천시,구미시,영천시,경산시,포항시,경주시 등

경상남도:밀양시,양산시,김해시,진해시,창원시,마산시,거제시,사천시,진주시,통영시 등

제주도:제주시,서귀포시 등

 

중소도시의 경우는 고객님 스캐쥴과 상관없이 빠른일정으로 진행시엔 일반적으로 인터넷설치 신청 접수완료 후 1~3일(당일 설치 가능한 경우도 있음)이 걸립니다.(단, 관할지역 설치팀 일정상 다소 변경이 될 수 있습니다.)

 

※그외 군단위나 소규모의 지역의 경우에도 현재는 보통 늦어도 2~3일이면 설치완료 및 개통이 가능하니 참고하세요! 요즘은 설치팀 인프라 구축이 잘 돼 있어 지역에 크게 상관없이 인터넷가입과 인터넷 설치가 아주 신속하게 진행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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