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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이 생각하기에 최고의 직업은 계속해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직업이다. 일이 배움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기회를 포착할 필요가 있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라. 그러면 일평생 단 하루도 일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공자

 

자기 직업을 좋아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을 이미 충분히 만나봤다면 이번에는 자기 직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그 일을 좋아하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라. 러셀은 두 가지 이유를 찾아냈다.

 

첫째, 자기 일에 만족하는 사람들의 직업은 기술을 습득하고 연습할 기회를 제공한다.

 

러셀이 말하길, 우리는 기술을 습득하고 그 기술을 사용하는 걸 좋아한다. "물구나무를 설 줄 아는 소년은 어느덧 두 발로 서 있길 꺼리게 된다."

 

기술을 습득해 꾸준히 연습하며 샐행에 옮기는 건 우리에게 크나큰 만족감을 준다. 때론 그 기술이 경쟁이라는 이름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자신이 변호사나 정치인이라면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나 경쟁자에게서 더 나은 부분을 배워 자기 역량을 더 키우게 된다.

 

어려운 일을 수행함으로써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에 기술을 습득하는 경우도 있다. "비행기 조종 묘기를 부릴 줄 아는 사람은 매우 정교한 조종 기술을 통해 만족감을 얻는다." 뭐, 겁에 질린 여행자 350명이 그 조종사 뒤쪽에서 비명을 지르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행복감을 선사하는 기술이 있다면 그 기술로 인해 큰 보상을 받을 필요도 없고, 자기 분야 외의 사람들에게 높이 칭송받을 필요도 없다. 러셀은 본인이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자기 일에서 행복을 느끼는 배관공들 얘기를 인상 깊게 들었다.

 

하지만 어떤 기술이 계속해서 기쁨의 근원이 되려면 그 안에 변화 발전의 가능성이 포함돼 있어야 한다. 변호사나 정치인은 수년에 걸쳐 어느 위치를 향해 계속 올라갈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 직업은 특정 시간이 지나면 그 이상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진 않는다.

 

그럼 우린 뭘 해야 하나? '지겹지만 먹고살게 해주는' 틀 안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고 새로운 기술을 계속 개발할 수도 있다. 정부가 산출한 프레젠티즘(Presenteeism) 비용, 즉 일하러 직장에 와서 앉아 있긴 하지만 능률적이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손실은 영국의 경우 연간 9억 파운드(약 1조 4,375억 원)라고 한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닐 수 있다. 러셀이라도 충분히 제기했을 만한 내용이 있다. 9억 파운드라는 숫자로 산출된 비용보다도 훨씬 더 큰 비용이 제기되는데, 이 비용은 삶에 대한 열정 손실이라는 항목으로 매겨질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잘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서 기쁨을 얻지만 그렇게 기쁨을 얻는 구조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위태로워진다. 일 자체는 계속 변한다. 신제품, 새로운 체계, 참신한 생각, 신기술 등은 우리가 애써서 습득한 기술을 서서히 약화시킨다. 경제 추세는 우리 일의 가치를 감소시킨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어떤 일은 '단순화'되고 있고 또 어떤 일은 외주 제작에 맡겨진다. 그보다 많은 일들은 평범한 방식에 따라 수행되도록 서로 합해진다. 우수성을 목표로 삼기보다는 규모의 효율성에 더 많이 좌우되는 팀들이 일을 맡는 것이다.

 

평생 동안 배움을 이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고용주가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하는 수밖에 없다. 업무 시간을 쪼개야 한다면 분명히 얼마간 경제적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더 이상 한 가지 기술만으로 만족스러운 이력을 채워갈 수 없다.

훈련이나 직업 교육을 받고는 싶은데 자금이 걱정된다면 정보 검색을 통해 여러 가지 창구를 찾아보라. 국가 차원의 교육 프로그램도 있고 교육비를 어느 정도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도 여럿 있다.

-러셀의 행복 철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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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인 것만으로 행복해질 수는 없다. 이는 역사가 우리에게 전하는 교운이다.

 

 

청년기는 12월31일 밤에 늦게까지 있는 걸 허락받는 시기이고 중년기는 그날 밤 의무적으로 늦게까지 있어야만 하는 시기이다.-빌 본(Bill Vaughn)

 

 

러셀의 책 '행복의 정복' 전반부는 우리가 왜 불행한지 그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러셀의 관점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얘기는 천천히 들어보기로 하자. 일단 러셀은 "만약 당신이 지금 행복하다면 당신 친구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행복할까 자문해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불행은 언제 어디서든 당신과 마주친다"고 덧붙인다.

 

모든 사람들이 너무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행복해지겠노라 마음먹는 통에 그 누구도 마음껏 즐길 수 없는 사교 모임에 참석해본 적 있는가? 그것만큼 짜증나는 경험도 없다. 새해 첫날이야말로 가장 좋은 예다. 하지만 비슷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얼마든지 더 있다. 가족 생일(특히 자기 생일), 총각 파티나 처녀 파티, 친척집 방문, 친구 애들까지 가세한 모임, 호화스러운 휴가 등등.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느라, 혹은 불행을 밀어내느라 엄청난 노력과 돈을 쏟아 부으며 숨을 헉헉댄다. 러셀이 지적하듯 우리는 병적일 정도로 지나치게 촉각을 곤두세워 행복을 탐색하거나 불행을 거부하는 와중에, 정작 우리 자신이나 친구들에 관해서는 외면한다. 중요한 걸 놓친 상태에서 뭔가가 바뀔 거라는 희망을 품은 채 우릴 행복하게 해주지도 않을 일들을 미련하게 되풀이하며 산다.

 

우선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게 있다. 우리 대부분은 종종 행복하지 않은 순간과 맞닥뜨린다. 최소한 더 행복해질 수 있는데 그러질 못하고 산다. 이건 수치스러운 일도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러셀이 조사하지 못한 부분을 하나 짚고 가야 한다. 대체로 우리의 외부 환경은 행복감과는 크게 상관없다는 점이다. 미국의 퓨 리서치센터는 사람들이 지난 40여 년 동안 경기 불황과 호황, 의료 및 과학기술의 발전을 겪으며 얼마나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지 꾸준히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수치는 희한하게도 항상 비슷하다. 미국 국민의 절반 정도는 꽤 행복하고 약 30퍼센트는 매우 행복하다고 답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불행을 열거하자며 책 한 권으로는 모자랄 하위 집단이 늘 있기 마련이다. 노숙자, 만성 질병을 앓는 환자, 부당하게 감옥에 갇힌 사람, 정신 질환자 등등. 이런 사람에게 불행은 상당 부분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런데 그 외 나머지 사람들이 느끼기에 우리 주변 환경은 40년 전에 비해 놀랄 만큼 좋아졌다. 하지만 퓨 리서치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자가용, 해외여행, 인터넷, 위성 텔레비전, 리필 방향제도 행복 지수를 높이지는 못한다고 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러셀의 희망사항을 실행해보자고 마음먹을 수 있다. 즉 바깥세상의 애매한 즐거움 속에서만 행복을 찾으려 아등바등하는 걸 그만두기로 해보자. 가끔은 무력감을 느낄 때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에겐 변화의 힘이란 게 있다. 우리는 자기 주변을 관리하고 인생을 통제할 수 있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박차를 가해 더 많이 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일은 덜 할 줄 아는 능력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러셀은 새해 첫날 '행복해지기로 굳게 다짐하며' 외출했던 1930년대 사람들을 잘 알고 있다. 물질적인 것이 행복을 전해주지 못하는다는 걸 깨닫지 않는 한, 현대를 사는 우리의 하루하루도 행복감보다는 부담감과 비장함이 가득한 매해 12월31일과 같을 것이다.

주기적으로 인내심을 요구하면서 억지로 웃어줘야 하는 모임, 약속, 혹은 친구 관계가 있는가? 당신이 그걸 싫어하고 늘 싫어했고 앞으로도 계속 싫어할 거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라. 그 모임이나 관계에서 벗어나기가 그리 녹록하진 않겠지만,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기 전까지는 그만큼 불행의 시간이 하염없이 연장될 뿐이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탈출을 시도하라.

-러셀의 행복 철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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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의 행복 철학, 두 마음

러셀은 어떤 일을 계속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무의식을 여러 가지 문제 해결에 착수하게 만든다. 그는 이 멀티태스킹이 우리한테도 가능한 얘기라고 말한다.

 

예술은 의식과 무의식의 긴밀합 결합이다. -장 콕토(Jean Cocteau)

 

어느날 아침 눈을 떴는데 몇 주 동안 갈피도 못 잡고 있던 문제의 답이 번뜩 떠오른 적 있는가? 지난달 그 문제 때문에 밤낮으로 애를 태우며 고민하던 때를 생각해보면 어떻게 이 답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을까 이해가 안 될 정도다.

 

러셀은 이 문제 해결 과정이 전혀 우연이 아니라고 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동안 일종의 문제 해결 기계처럼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풀지 못한 문제를 부여안고 걱정 끝에 잠이 들면 다음 날 아침 또다시 불행한 상태로 잠에서 깨어난다. 이는 마치 괴로운 습관과 같다. 골치 아픈 문제는 여전히 고집스레 해답을 내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다시금 괴롭고 언짢은 마음으로 잠이 든다. 단순히 문제 해결에 실패하는 것뿐 아니라 너무 기진맥진해서 해결할 힘조차 소진돼버리고 만다. 심지어 낮 동안 다른 문제들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른다.

 

결국에는 문제 자체를 그냥 내버려두지도 못하면서 어떤 통찰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이도저도 아닌 일종의 평형 상태에 도달한다. 다소 몽롱한 상태에서 이것저것 다른 일을 한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회의 준비를 하고 작년에 했던 일과 대동소이한 일을 하면서 평정심을 찾으려고 한다.

 

이상의 내용이 우리의 모습이라면 러셀은 전혀 달랐다. 복잡한 문제 해결에 관한 한 러셀은 수학의 달인이었고 윤리학의 도사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단 몇 시간, 또는 며칠 동안 가장 최대치의 집중도를 가지고" 의식적으로 생각에 임한다고 한다. 그런 다음 자기 무의식에게 명령하기를 "수면 아래에서 작업을 진행하라"고 한 뒤 몇 달 동안은 그 문제에 대해 또다시 생각하지 않는다. 나중에 그가 자기 머릿속 서류 정리함에서 그 문제를 자아내면, 이미 무의식이 그 서류를 꺼내 말끔히 해결한 다음 다시 서류함에 정리해서 넣어놓은 걸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우리는 단지 러셀처럼 우리 생각이나 마음을 개념화하는 데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러셀의 방법을 찬찬히 살펴보라. 실제로 이 과정이 적용되는 예는 상당히 많다. 가령 6개월 전에 작성했지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꺼내서 다시 봤더니 구조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면 당신은 이미 의식적 사고 없이 문제 해결 과정을 진행시킨 것이다.

 

러셀의 방식을 적용하려면 다음 요소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1. 계획 수립 : 혹시 몇 주 동안 자신의 결정을 소금에 절이듯 시간 속에 놔둘 생각이라면 전 과정을 일찍 시작해야 한다.

2. 강도 : 러셀은 문제를 마음대로 갖고 놀라는 말을 했던 게 아니다. 초기 처리 과정을 시행하는 데 자신의 모든 능력을 강도 높게 쓰라는 얘기였다. 최소한 문제가 뭔지 취합해서 정리해두고 해야 할 일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 정도는 처음부터 필요하다는 뜻이다.

3. 훈련 : 계속 방해를 받는다면 무의식은 제 할 일을 해내지 못한다. 자신감을 가지고 무제를 그냥 내버려두라.

4. 현실성 : 우린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 우리의 무의식 처리 장치가 우리 자신보다 더 나을 리는 없다. 무의식 장치는 그저 훼방받지 않고 정신 산만해지지 않는 상태의 우리 자신일 뿐이다. 말도 못하게 어려운 문제는 전문가에게 일임하고 싶겠지만 그렇다 해도 결과는 미지수다.

 

그래도 시도해보자. 분명 효과가 있다. 혹시 실패할 경우 도움을 청하거나 다시 본인 능력들을 불러 모을 회의를 소집하면 된다.

 

리포트를 쓰거나 학술적 연구를 진행하고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작성해야 할 때, 일단 일에 착수하기 전에 몇 주 동안 대략적 밑그림을 그리는 습관을 들이라. 전체적인 그림을 쭉 훑어보거나 다른 이들에게 조언을 듣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개선이 필요한 데가 어딘지 확인하라. 그리고 최소 며칠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

-러셀의 행복 철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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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레인지 빌트인 설치/SK매직샵

 

요즘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다 전기레인지로 바꾸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기존 가스레인지가 설치되어 있는 형태와 주방 싱크대의 재질이나 사이즈, 구조 등에 따라 설치비용도 많이 달라지게 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대부분의 경우는 쉽게 설치가 되기도 하지만, 간혹 간단하게만 생각했다가 공사가 커지는 경우도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전기레인지 설치 전에 상황별 비용 정보를 미리 참고하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단, 시중에 전기레인지 제조사가 많지만 설치비에 대한 정보가 잘 없는 관계로 SK매직 전기레인지 설치비 기준으로 

보다 더 쉬운 이해를 위해 표로 정리해봤습니다.^^

 

SK매직 전기레인지 설치 시 설치비 무료 및 추가 비용

구분 고객 부담 비용 설명 전기레인지 설치 전 전문 업체 시공 필수 여부
3구 이상
싱크대 타공 인조대리석 상판 전체 타공 무료 전기레인지 설치 공간에 타공이 되어있지 않을 경우 -
부분 타공 무료 전기레인지 설치 공간에 타공 치수가 작은 경우 -
천연대리석 상판(엔지니어스톤 포함) 전체 타공 30만원 전기레인지 설치 공간에 타공이 되어 있지 않은 경우 업체 시공 필수
부분 타공 10만원 전기레인지 설치 공간에 타공 치수가 작은 경우 업체 시공 필수
전용 케이스 구입 프리스탠딩 케이스 8cm 10만원 빌트인이 아닌 싱크대 상판 위에 설치할 경우 -
15cm 10만원 빌트인이 아닌 싱크대 상판 위에 설치할 경우(기존 프리스탠딩 가스레인지와 비슷하 높이) -
구입방법 구입 또는 렌탈 시에 추가옵션으로 구입 -
빌트인 케이스 3cm 띄움 자재 무료 빌트인 설치 시 매립 높이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전기레인지 하부 오븐/식기세척기 등의 제품과 안전거리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 -
6cm 띄움 자재 무료 -
매움 자재 무료 기존 타공 사이즈가 설치할 제품의 타공 사이즈보다 큰 경우 -
요청방법 구입 또는 렌탈 시에 추가로 요청 및 설치 기사님 방문 전 요청 -
기존 도시가스 막음 1만원 기존 가스레인지와 연결된 도시가스 사전 막음 필요 업체 시공 필수
가구장 수정/제작/설치 별도 견적가 전기레인지 빌트인 설치를 위해 가구장 높이 등의 수정 작업이 필요한 경우
빌트인 전기레인지 하부에 있는 오븐 등의 기본 빌트인 제품 철거 후 가구장 제작이 필요한 경우
업체 시공 필수
빌트인 가스오븐레인지 철거 6만원 기존 빌트인 가스오븐 폐가전 회수가 필요한 경우 -
3만5천원 빌트인 가스오븐의 상부 가스레인지만 제거(하부 가스오븐 사용 불가) -
요청방법 빌트인 가스오븐레인지 제조사 서비스센터로 요청 -
프리스탠딩&빌트인 가스/전기레인지 철거 무료 기존 제품의 철거, 회수가 필요한 경우
(SK매직 제품 구입 후 설치 시점에는 무료)
구입 또는 렌탈 시에 추가로 요청 및 설치 기사님 방문 전 요청
가스 막음시 업체 시공 필수
전원 연결용 콘센트 거리 10M 이하 무료 전용 콘센트 연장 작업이 필요한 경우(벽 콘센트에서 전기레인지까지 연결) -
거리 10M 초과 무료 -
분전함 차단기 메인 교체 30A 2만원 인덕션 전체 출력 사용을 위해 전기 증설 작업 또는 메인 차단기 교체가 필요한 경우 업체 시공 필수
40A 4만원
분전함 차단기 개별 교체 20A, 30A 2만원 분전함 내 개별 차단기 노후 교체 또는 신규 설치가 필요한 경우
전용 배선 설치 노출기준 거리 10M 이하 10만원 인덕션 전체 출력 사용을 위해 전기 증설 배선 설치 작업
거리 10M 초과 기본요금 +5천원(m당)
매립기준 거리 10M 이하 35만원
거리 10M 초과 40만원

전기레인지 선택 요령과 제품별 타공 치수, 설치를 위한 따내기에 대한 정보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빌트인(매립형) 전기레인지&가스레인지 쿡탑 교체 설치 시 선택요령 TIP

 

빌트인(매립형) 전기레인지&가스레인지 쿡탑 교체 설치 시 선택요령 TIP

빌트인(매립형) 전기레인지&가스레인지 쿡탑 교체 설치 시 선택요령 TIP 빌트인(매립형) 전기레인지/ⓒSK매직샵 전기레인지 또는 가스레인지와 같은 쿡탑 제품을 매립형 빌트인으로 설치하고자

kisslog.tistory.com

 

출처: SK매직샵

 

SK매직샵™ SK매직공식렌탈샵

직수형 냉온 얼음 올인원 정수기렌탈 비데 청정기 제빙기 의류건조기 가격비교 제휴카드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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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국산 품종으로 만든 말린팽이비섯 그리고, 말린팽이버섯차/이엘푸드(이엘농업법인)

[맘스카페 / 공동구매할인] 국내산 말린 팽이버섯 100g / 50g 

원조 국산 품종으로 만든 말린팽이비섯 그리고, 말린팽이버섯차

이엘푸드(이엘농업법인) 국산 <백승> 말린팽이버섯.

원조 국산 품종으로 만든 말린팽이비섯 그리고, 말린팽이버섯차/이엘푸드(이엘농업법인)


참고로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팽이버섯은 일본산 치쿠마쉬 품종이 대부분이라 매년 일본에 80~90억 가량의 로열티를 지불해 왔다고 한다.
국내에서 재배되는 팽이버섯이 많이 팔리면 팔릴 수록 일본에 더 많은 돈을 갖다 바치는 형국..ㅠ
그래도 국내서 개발된 새로운 품종 백승이 점차 많이 보급되고 있다니 늦게나마 다행이다.
이제라도 알고 먹어야겠다.

차나 요리로 먹을 수 있고, 다이어트는 물론 혈압, 당뇨, 면역력 향상으로 대장암, 유방암, 전립선암 30~50% 예방해준다는 말린팽이버섯

 

원조 국산 품종으로 만든 말린팽이비섯 그리고, 말린팽이버섯차/이엘푸드(이엘농업법인)

 

[이엘푸드 국산 말린팽이버섯 버섯차 자세히 보기]

 

자연의 맛 그대로 이엘푸드™ 이엘농업법인(주)

건강에 좋은 국산 말린팽이버섯차, 경산대추, 고려홍삼, 벌꿀, 대추 양파 양배추 사과 복승아즙, 도라지, 약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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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페르시아에 이어 인도, 파키스탄까지 비슷한 문화권으로 엮을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지역적으로 근접한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이슬람의 영향을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같은 '동양'이면서도 아랍과 페르시아는 중동, 인도와 파키스탄은 (서)남아시아로 구분된다. 게다가 파키스탄은 이슬람 국가지만 인도는 힌두교 국가이다. 인도인구의 80% 이상이 힌두교도이고, 인도를 찾는 수많은 여행객도 어렴풋하게나마 힌두교의 정신세계에 호기심 어린 관심을 가지고 힌두교의 대표적인 성지인 바라나시에 몰려들어 인도사람들과 함께 갠지스강에 몸을 담그곤 한다. 그러나 이슬람을 이야기할 때 인도를 빼놓고 얘기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인도 인구의 10% 이상이 이슬람이기 때문이다. 10%면 얼마 안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인도 인구가 11억이 넘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이슬람교도가 인도에 살고 있는지 금방 계산이 나온다. 실제로 인도는 인도네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이슬람교도가 많은 나라이다. 게다가 건축, 미술, 문학, 음악 등 다양한 문화, 예술분야에서 이슬람의 영향, 즉 아랍과 페르시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7세기부터 세력을 확장하여 아랍, 페르시아, 터키에 비슷한 문화를 심은 이슬람이 인도에까지 이슬람 왕조를 세우게 된 것은 12세기부터였다. 이때부터 아랍과 페르시아문화가 서서히 인도로 들어오게 되는데, 특히 인도 최대의 이슬람 왕국인 무굴제국(Mughul, 1526~1857)이 힌두교 관용 정책을 펼치면서, 힌두문화와 이슬람문화가 자연스레 섞이기도 하고 인도의 이슬람문화가 한껏 꽃피울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었다. 유명한 타지마할 역시 무굴제국이 낳은 이술람건축의 걸작으로 황제 샤 자한(Shah Jahan, 1592~1666)이 사랑했던 왕비를 추모하며 지은 궁전형식의 아름다운 무덤이다. 1700년경 무굴제국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현재 인도 영토의 대부분을 손에 넣게 되지만 남부까지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하였다. 그 결과 이슬람은 무굴제국의 수도였던 아그라를 중심으로 북인도와 지금의 파키스탄에서 뿌리를 내린 반면, 인도 남부는 여전히 힌두세력이 강하게 유지되었다.

무굴제국 지도/ⓒ네이버지식백과

무굴제국이 무너지고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화한 후에도 인도의 이슬람세력은 인도 북부에 그대로 남아 인도 북부와 남부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지속시켰으며, 정치적으로는 인도이슬람연맹을 조직하여 이슬람 국가 독립을 도모하게 된다. 결국 1947년 인도가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날 때 파키스탄은 이슬람 국가로서 인도에서 분리, 독립하게 된다. 그러나 이슬람의 영향은 인도에 그대로 남아 지금까지도 인도 북부와 남부는 문화적으로 구별되는 요소가 상당히 많다. 예컨대, 인도 내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힌두어와 영어 외에도 10여 가지의 공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북부는 힌두어와 그와 가까운 언어가 주로 사용되며 남부는 드라비다어족의 언어가 주로 사용된다. 음악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도의 고전음악양식이 남부와 북부가 서로 달라, 남부의 고전음악인 카르나틱(Carnatik)음악은 힌두전통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반면, 북부의 고전음악인 힌두스타니(Hindustani)음악은 힌두와 이슬람, 인도와 페르시아문화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다문화융합의 정수이다. 따라서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인도문화의 특성과 그를 대표하는 음악 역시 카르나틱음악 보다는 다문화융합적인 힌두스타니음악이 보다 인도음악의 특성을 잘 나타내주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타르와 타블라, 라가와 탈라

 

동양권 음악 중에 서양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가장 인기 있는 음악은 어느 나라 음악일까? 다소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인도음악을 꼽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리고 인도음악을 꼽는 사람들이 곧바로 떠올리는 인도음악의 이미지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이국적이면서도 오랜 전통이 그대로 살아 있는 음악, 명상의 세계로 초대하듯 편안하고도 아름다운 음악, 그래서 그 유명한 비틀스의 멤버 조지 해리슨을 한없이 인도로 이끌어간 음악, 그런데 바로 이 유명한 인도음악은 사실상 힌두스타니음악, 즉 북인도의 고전음악이다. 힌두스타니음악만큼이나 유명해져 인도음악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힌두스타니음악에 쓰이는 두 개의 악기, 즉 선율악기인 시타르와 타악기인 타블라가 바로 그것이다.

시타르/ⓒ전북일보
타블라/ⓒ위키백과

시타르(sitar)는 페르시아 고전음악에 사용되는 선율악기, 세타르(setar)에서 파생된 악이이다. 이름도 비슷하고 목이 긴 류트(lute) 계열이 라는 점도 비슷하지만, 인도의 시타르는 페르시아의 세타르보다 목의 폭도 훨씬 넓고 울림통도 훨씬 크며 소리 역시 많이 다르다. 인도음악 하면 떠오르는 신비스러운 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이 시타르인데, 커다란 울림통 덕분에 소리가 멀리 퍼져나가며 선율을 만들어내는 6~7개의 현 외에 9~13개의 울림현(혹은 공명현)이 있어서 신비로운 느낌이 배가된다. 또한 시타르연주를 들어보면 주선율 외에 저음으로 계속 이어지는 지속음을 들을 수 있는데, 지속음 위에서 연주되는 선율, 그리고 그 선율을 "웅웅"거리면서 받쳐주는 울림현의 소리가 힌두스타니음악의 독특한 맛을 자아낸다.

시타르에 더해지는 타블르(tabla) 소리 또한 힌두스타니음악의 매력을 한층 더 살려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드럼을 뜻하는 아랍어, 타블(tabl)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타블라는 크기가 다른 두 개의 작은 드럼세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연주한다. 단 두 개의 작은 드럼에서 나온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소리를 뽑아내며 현란한 리듬 세계를 펼쳐 보이는데, 그 안에서 선율감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타블라음악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타블라음악은 대부분 악보 없이 구전으로 전승된다. 한국의 장구를 연주할 때 "덩덩덕쿵덕"과 같은 구음을 붙이며 연주하듯, 타블라도 "다다떼떼 다다뚠나"와 같은 구음을 붙여 연주하는데, 타블라의 구음은 타블라를 두드리며 내는 소리만큼이나 흥미롭기 그지없다. 타블라는 북인도 고전음악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인도음악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인도 최고의 타악기로 인도와 파키스탄음악 그리고 서구음악과의 다양한 퓨전음악에까지 두루 활용되고 있다.

 

아랍·페르시아 연장선상에서 인도음악을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아랍·페르시아음악의 특징이 인도음악에서도 보이기 때문이다. 즉 미분음과 풍부한 장식음이 쓰이며, 아랍의 마캄, 페르시아의 다스트가에 해당하는 선법체계인 라가(raga)를 바탕으로 음악이 만들어진다. 산스크리트어로 색채라는 뜻의 라가는 북인도 고전음악은 물론, 남인도 고전음아그이 핵심요소로서 마캄이나 다스트가와 같이 다양한 라가에 따라 기본적으로 쓰이는 음계나 중요한 선율의 윤곽이 정해지지만 연주자의 솜씨에 따라 같은 라가도 다르게 연주된다. 따라서 인도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라가가 연주자에 따라 어떻게 연주되는지를 즐기기 위해 공연장을 찾곤 한다. 보통 라가연주는 앞서 살펴본 수피댄스의 반주음악과 비슷한 음악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먼저 시타르 혼자 리듬감 없는 즉흥연주로 라가에 사용될 음들을 저음부터 고음까지 천천히 훑으며 연주하다가, 리듬감을 가미하여 연주하기 시작하면 타블라가 가세하고 점점 속도가 빨라지면서 절정에 이르게 된다. 이때 타블라연주는 선율체계가 아닌 리듬체계에 근거해 연주하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인도의 리듬체계를 탈라(tala)라고 부른다. 산스크리트어로 손뼉을 친다는 뜻의 탈라는 아랍·페르시아음악에 없는 요소이다. 선율체계인 라가와 리듬체계인 탈라를 바탕으로 시타르와 타블라가 즉흥성을 더하면서 서로 풀어나가는 음악적 묘미가 인도음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라비 샹카와 조지 해리슨

 

인도음악이 전 세계에 퍼지게 된 것은 1950년대 중반, 인도 정부가 인도음악가들을 해외로 파견하여 공연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물론, 무굴제국 시기인 18~19세개, 인도를 두고 영국과 프라스의 패권다툼이 벌어지면서 인도문화와 유럽문화 간의 통로가 일찌감치 생겨났었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한 인도음악은 빠른 속도로 서구인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특히 클래식, 팝을 망라한 전문음악인들은 인도음악에 즉시 매료되어 직접 인도를 방문하기까지 하는데, 그 첫 번째 주인공이 바로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Yehudi Menuhin, 1916~1999)이었다. 인도음악에 감명을 받은 메뉴인은 직접 인도를 방문하는가 하면, 인도음악가를 미국으로 초청하여 음악회를 열었고, 이를 계기로 인도음악가들의 미국 진출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힌두스타니음악을 연주하는 시타르 연주자로서 인도음악을 서방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라비 샹카(Ravi Shankar, 1920~)이다.

라비 샹카는 비틀스의 멤버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1943~2001)과의 만남으로도 유명한데, 사실상 서구세계에서 시타르가 유명해진 것은 조지 해리슨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조지 해리슨은 우연한 기회에 시타르연주를 듣고는 곧 시타르에 반하게 된다. 그는 즉시 시타르를 사서 혼자 연습하여 비틀스의 새 노래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 1966)>에서 시타르를 연주해 넣었고, 그리고는 얼마 후 영국에 온 라비 샹카를 만나게 된다. 이 만남을 계기로 인도로 가는 해리슨의 끝없는 여정이 시작된다. 해리슨은 장기간 인도에 무물면서 샹카에게서 시타르를 배웠고, 인도철학과 종교에 깊이 심취하였다. 힌두교로 귀의한 후에는 자신의 신앙을 음악 속에 담아내며 죽을 때까지 인도를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하며 살았고, 해리슨의 유해는 그의 유언대로 갠지스강에 뿌려졌다.

 

샹카와 해리슨, 두 거장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반드시 언급하게 되는 공연이 하나 있는데, 1971년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방글라데시를 위한 콘서트>가 그것이다. 당시 방글라데시는 파키스탄으로부터의 독립전쟁을 치르고 있던 중이었고, 전쟁으로 인한 난민들이 인도로 대거 몰려들었다. 샹카는 해리슨에게 방글라데시 난민들을 돕는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자선콘서트를 열자고 제안했고,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인 해리슨은 최고의 대중음악 스타들을 모아 성공적으로 콘서트를 치러냈다. 사실상 이 공연을 계기로 라비 샹카는 서방세계에, 그것도 록음악 팬들을 비롯한 대중음악 청중에게까지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서구음악가들과의 공동작업을 활발하게 펼쳐나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때의 공연은 라이브로 녹음되어 지금까지도 판매되고 있는 명반이 되었으며, 라비 샹카와 조지 해리슨 외에도 에릭 클랩튼, 밥 디런, 빌리 프레스턴 등의 음악을 모두 들을 수 있다.

 

인도영화와 인도대중음악

 

인도음악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으기 시작하면서 인도음악과 서양음악의 만남이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사실상 인도에 가면 TV나 라디오, 길거리에서 힌히 들을 수 있는 음악은 전통적인 힌두스타이음악이 아닌 인도음악과 서양대중음악이 결합된 일종의 동서양 퓨전음악인데, 이 퓨전음악의 거의 대부분은 인도영화에 나오는 영화음악이다.

 

인도영화를 흔히 볼리우드(Bollywood)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인도의 초기 영화산업이 봄베이(뭄바이)에서 성행했었기 때문에 봄베이와 할리우드를 합쳐서 탄생된 말이다. 원래 볼리우드는 봄베이에서 제작된 힌디어 영화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인도영화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지금은 영화 중심지가 마드라스(첸나이)로 옮겨졌고 사실상 볼리우드는 인도영황의 한 부분만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에 볼리우드라는 말이 적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볼리우드라는 말 자체가 인도영화를 할리우드의 짝퉁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인도문화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ㅂ잗고 있기 때문에 볼리우드라는 말이 예전처럼 자주 사용되지는 않는다.

 

현재 인도영화산업은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매년 1천 편이 넘는 영화가 제작되어 인도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스크린에서 상영된다. 영화감상은 인도사람들이 가장 즐겨하는 문화생활이며, 특히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인도사람들에게 인도형화는 최고의 인기품목이다. 외국에 나가 있는 한국사람들에게 한국드라마가 최고의 인기품목인 것과 마찬가지라고나 할까. 인도영화를 보면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주기적으로 노래가 삽입된다.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세팅이 된 상테에서 배우들이 춤추며 노래한다. 마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하다. 물론 노래는 립싱크이다. 실제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은 플레이백 싱어(playback singer)라고 부르는데, 음악을 작곡하고 편곡하는 음악감독과 함께 인도대중음악을 이끌어가는 대중스타들이다. 인도영화에서 쓰이는 음악은 보통 동서양음악의 독특한 퓨전인데, 서양의 현악기, 관악기, 기타나 키보드는 물론, 시타르와 타블라도 사용된다. 서양음악의 화성도 사용되고 록, 재즈, 서양클래식음악 등 장르를 막론하고 다양한 음악적 재료를 사용한다. 말하자면 좋은 소리는 다 활용한다. 그러나 서양음아그이 색채를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인도식으로 사용하여 인도만의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낸다. 노래가사는 한국가요나 별반 다를 바 없이 낭만적인 사랑을 가장 많이 담아내며, 영화 줄거리도 남녀간의 사랑을 중심으로경쾌하게 진행된다. 그리고 대부분 해피엔딩이다.

 

인도의 대중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인도영화 한 편을 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쉽게 찾을 수 있는 영화 한 편을 소개하자면 영어로 제작된 <신부와 편견(Bride & Prejudice, 2003)이 좋을 것 같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을 각색한 영화이다. 여자 주인공으로 나오는 아이쉬와리아 라이(Aishwarya rai, 1973~)를 볼 수 있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다. 미스월드 출신으로, 줄리아 로버츠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극찬한 바로 그 배우이다.

 

카왈리 황제, 누스랏 파테 알리 칸

 

인도에서 이슬람의 종교의식과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음악양식이 있을까? 주저할 것 없이 있다고 답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유명한 카왈리(qawwali)가 있다. 메시지를 뜻하는 아랍어, 콸(qual)에서 유래한 카왈리는 북인도와 파키스탄 이슬람교도들이 바치는 일종의 찬송가 같은 음악으로 음악과 춤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슬람의 수피(sufi)의 음악이 인도로 건너와 인도음악과 결합하여 만들어진 종교음악이다.

 

아랍권의 수피들이 빙글빙글 도는 춤을 추면서 신과의 교감을 이루어내듯, 북인도와 파키스탄의 이슬람교도들은 카왈리를 연주하면서 신과의 교감을 이루어낸다. 카왈리는 주로 수피 성인의 성지에서 연주되지만 결혼식과 같은 의례에서도 사용되며, 라디오나 TV 그리고 음반을 통해서도 들을 수 있다.

 

카왈리음악은 노래와 기악반주로 구성된다. 한 명의 리드싱어가 전체 카왈리를 이끌어가고, 두명 혹은 그 이상의 보조싱어가 박수를 치면서 노래를 부른다. 이들의 박수소리는 박자를 맞추는 기능 이상의 역할을 한다. 박수소리 자체가 하나의 기악반주로 들릴 만큼 카왈리음악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기악반주에는 하모니움(harmonium)과 타블라가 쓰인다. 하모니움은 아코디언을 바닥에 눕혀놓고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오른손으로 건반을 여누하고 왼손은 앞으로 죽 뻗어 주름박스를 접었다 폈다 하면서 소리를 만들어낸다. 타블라는 역시 인도 타악기의 챔피언으로 카왈리연주에서도 그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카왈리는 규칙적인 박자가 가장 큰 특징인데, 싱어들의 박수소리와 타블라에 맞추어 규칙적인 박자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속도가 붙으면서 리드싱어와 함께 보조싱어들도 노래에 참여하여 합창을 이루어내는데, 반복되는 리듬과 현란한 타블라연주, 박수소리와 함께 점점 속도를 더해가며 강렬하게 내뱉는 노래소리는 신과의 일치를 갈망하는 이들의 염원을 그대로 전해준다. 바로 이러한 카왈리의 매력 때문에 카왈리는 북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이슬람이라는 범주를 넘어 전 세계의 공연장에서 들을 수 있게 되었는데, 바로 그 인기몰이를 주도한 사람이 파키스탄의 카왈리 스타, 누스랏 파테 알리 칸(Nusart Fateh Ali Khan, 1948~1997)이다.

카왈리가 북인도와 파키스탄의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카왈리를 오로지 파키스탄음악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바로 누스랏 파테 알리 칸 때문일 것이다. 카왈리의 황제라고도 불리는 누스랏은 대대로 카왈리를 연주하던 집안에서 태어난 덕분에 어려수부터 카왈리 음악전통을 습득하였고, 가족과 함께 카왈리를 공연하면서 자라났다. 이미 파키스탄과 인도에서 카왈리의 리드싱어로서 이름을 알리고 있었지만, 서방세계에 그의 이름이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역시 서구음악가들과의 공동작업이 성공을 거두면서부터였다. 이는 인도의 라비 샹카가 거쳐간 행로와도 많이 비슷한데, 사실상 누스랏 파테 알리 칸과 라비 샹카는 '동양'의 음악을 널리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다. 누스랏이 함께 작업한 대표적인 서양음악가로는 캐나다의 마이클 부룩(Michael Brook), 영구의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 미국의 에디 베더(Edie Vedder)를 들 수 있다. 그중에서도 록 밴드 펄 잼(Pearl jam)의 리드싱어인 에디 베더와 함께 작업한 음악이 영화 <데드맨 워킹(Dead Man Walking, 1995)>의 OST로 사용되어 유명해졌다. 이 영화에서 누스랏 파테 알리 칸과 에디 베더는 타블라와 기타연주에 맞추어 <사랑의 얼굴(The Face of Love)>과 <머나먼 길(The Long Road)>을 노래한다. 누스랏의 음악세계를 엿볼 수 있는 성공적인 동서양 퓨전이긴 하지만, 누스랏의 음악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것은 역시 카왈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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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웨토 가스펠 콰이어/ⓒ한겨레신문

소웨토 가스펠 합창단(Soweto Gospel Choir)이 한국에서 공연한 적이 있었다. 보통 가스페이라고 하면 미국의 흑인(African American)음악이라고 한정지어 생각하기 쉬운데, 가스펠음악이 미국 못지않게 사랑받는 곳이 바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소웨토 가스펠 합창단 역시 남아프리카공화국 안의 흑인 집단거주지로 유명한 도시인 소웨토에서 시작된 가스펠 합창단이다. 가스펠이라는 장르가 아무래도 서양사람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친숙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다른 아프리카음악보다 쉽게 알려질 수 있는 음악이기는 하지만, 서구식 음악양식에 가깝기 때문에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음악으로는 어뜻 떠오르지 않는 음악장르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스펠과 같이 서구식 다성부 함창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대표하는 독특한 음악장르가 있는데, 음부베(mbube) 혹은 이스카타미야(iscathamiya)라고 부르는 아카펠라음악이 바로 그것이다.

음부베의 역사는 192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민족구성은 다양한데, 그중에서 줄루(Zulu)사람들은 한창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 광산이나 공장에서 새로운 노동자계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가족을 고향에 두고 홀로 도시에 상경해 있던 남자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주말이면 남자들끼리 모여 춤과 노래로 소일거리를 삼았다. 바로 이러한 분위기에서 탄생한 것이 반주 없이 남자들끼리 다성부로 노래하는 아카펠라음악이었다. 이들은 아예 몇몇 사람들끼리 아카펠라 그룹을 만들어 서로 대회를 벌이기도 했는데, 1930년대에는 아카펠라 대회가 줄루 노동자들의 합숙소에서 펼쳐진 진귀한 풍경이 되었다. 처음에는 나탈(Natal)이라는 도시에서 시작되었는데, 곧 요하네스버그의 줄루 노동자들에게까지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1930년대 말 어느 아카펠라 그룹의 레코딩이 전국을 휩쓸면서 줄루 아카펠라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대표하는 음악장르가 되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솔로몬 린다(Solomon Linda, 1909~1962)와 오리지널 이브닝 버즈(Original Evening Birds)이다.

솔로몬 린다와 오리지널 이브닝 버즈의 1939년 레코딩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전역을 휩쓸면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는데, 그중 솔로몬 린다가 작곡한 <음부베(Mbube, 사자)>라는 노래는 누구나 들어도 알고 있을 법한 노래로서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곡이다. 솔로몬 린다와 오리지널 이브닝 버지는 새로운 양식의 아카펠라를 선보였는데, 리드싱어가 높은 음역에서 찌르는 듯한 목소리로 솔로 선율을 뽑아내고 4성부 합창이 솔로를 받쳐주는 형식이었다. 4성부 합창에서는 베이스 성부가 강화되었고, 더불어 부드러우면서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춤도 곁들여졌다. 바로 이러한 새로운 아카펠라형식이 줄루 아카펠라의 전형이 되면서 아예 <음부베>라는 노래가 음악장르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음부베>라는 노래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민요수집을 하던 미국의 학자가 <음부베> 노래를 미국으로 가져간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미국의 포크뮤직 그룹이었던 위버스(The Weavers)는 이 곡을 단순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민요라고 생각하고는 1951년 <윔모웨(Wimoweh)>라는 이름으로 이 노래로 발표하였고, 이어 토큰스(The Tokens)라는 미국의 팝 보컬 그룹이 1961년 같은 노래를 리메이크한 <오늘밤 사자는 잠들고(The Lion Sleeps Tonight)>를 발표하여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여러 팝 그룹들이 이 노래를 불렀고, 디즈니 영화 <라이언 킹(The Lion King, 1994)에서 이 노래를 영화 OST로 사용하면서 이 곡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으나 동시에 저작권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음부베>라는 노래는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표된 지 60년이 지나서야 저작권 문제가 일어날 정도로 노래의 진원지는 모른 채 그저 미국의 팝송으로만 인기를 누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와 다르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줄루 아카펠라로서 음부베라는 음악 장르가 전 세계의 이목을 끌게 된 것은 레이디스미스 블랙 맘바조(Ladys-mith Black Mambazo)가 서구에서 인기를 모으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1960년대경에는 음부베 대신 이스카타미야(iscathamiya:부드럽게 걷는다는 뜻의 줄루어)라는 말로 줄루 아카펠라를 일컫고 있었는데, 레이디스미스 블랙 맘바조가 1970년대를 풍미한 최고의 이스카타미야 그룹이었다. 남아프라카공화국을 넘어 전 세계에 이스카타미야와 레이디스미스 블랙 맘바조의 이름을 각인시킨 것은 사이먼 앤 가펑클(Simon&Gafunkel)로 이름을 알렸던 미국의 팝 뮤지션 폴 사이먼과의 인연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폴 사이먼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여행하다가 이 그룹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레이디스미스 블랙 맘바조와의 공동작업으로 <그레이스랜드(Graceland, 1986)> 음반을 발매하여 그래미상까지 받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특히 레이디스미스 블랙 맘바조의 리더인 조세프 샤발랄라(Joseph Shabalala)와 폴 사이먼이 공동으로 작곡한 노래, <홈리스(Homeless)>와 <그녀 신발 밑창엔 다이아몬드(Diamonds on the Soles of her Shoes)>는 줄루 아카펠라의 매력을 한껏 발휘하며 전 세계의 사랑을 듬뿍 받은 노래들이다. 폴 사이먼과의 공동작업 이후 레이디스미스 블랙 맘바조는 꾸준한 활동을 통해 두 차례 그래미상을 거머쥐는 등 세계적인 그룹의 면모를 과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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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사막과 열대우림 사이에 형성된 사바나 지역, 그중에서도 대서양 연안의 서아프리카지역은 유럽, 아랍, 아프리카 등지의 문명이 교차하며 학술과 문화가 꽃피웠던 곳으로, 아프리카의 여러 왕국들이 이 지역에 세워졌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13~16세기에 번성했던 말리왕국이었다. 말리왕국에는 위계적인 사회계층이 확립되어 있었는데, 사회지도층인 왕족과 귀족, 그리고 이들을 섬기는 노예가 있었고, 그 두 계층 사이에 기능직에 종사하는 사람들, 즉 조선시대의 중인과 같은 중간계층이 있었다.

 

서아프리카 지역 말리왕국 전성기 영역/ⓒwikipedia

바로 이 중간계층 중에 잘리(jali) 혹은 그리오(griot)라고 부르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구전역사가이자 시인이자 음악가였다. 왕족이나 귀족의 후원하에 활동하던 잘리는 역사를 말로 전해주기도 하고 후원자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동시에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주는 음유시인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었다. 모든 왕에게는 개인 잘리들이 있었고, 부유한 귀족도 잘리들을 거느렸고, 또한 마을마다 잘리들이 있었다. 이들이 주로 연주하던 악기는 코라(kora)라는 현악기이다. 코라는 커다란 박을 반으로 자른 것을 공명통으로 하여 그 위로 붙여놓은 긴 목에 21개의 줄을 매달아 양손의 엄지와 검지로 줄을 뜯어 소리를 낸다. 양쪽 엄지손가락으로 베이스와 멜로디를 연주하고 양쪽 검지로 잔가락을 붙여 연주하기 때문에 한 사람의 연주만으로도 다양하고 풍부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지금도 코라는 말리, 세네갈, 기니아, 감비아에서 연주되는 대표적인 전통악기이며, 잘리전통 또한 변화를 겪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코라(kora)/ⓒwikipedia

 

현재 잘리는 마치 프리랜서같이 결혼식 등 여러 가지 초청에 응하면서 공연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잘리는 여전히 지나간 역사 속의 사건과 인물을 생생하게 살려내는 구전역사가로서, 그리고 사회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서슴지 않는 사회비평가로서, 또한 음악가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말리의 유명한 여성 잘리 칸디아 쿠야테(Kandia Kouyate, 1958~2004)는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사회비판을 하기로 유명한데, 이 때문에 위험한 여성이라는 예명이 붙어다닌다. 쿠야테는 말리왕국시대부터 내려오는 잘리 집안의 이름으로 쿠야테라는 성을 가진 사람은 예외 없이 잘리 출신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잘리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 잘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꾸로, 흔치는 않지만 잘리 출신이 아니더라도 잘리가 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말리 출신의 유명한 싱어송 라이터인 살리프 케이타(Salif Keita, 1949~)이다. 그는 말리왕국을 세운 순자타 케이타(Sunjata Keita)의 후손으로 말리왕국시대였다면 음악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서아프리카음악과 서구 팝음악을 결합시킨 음악으로 아프리카 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은 세계적인 음악가가 되었다.

 

코라와 함께 기억해둘 만한 아프리카의 전통악기는 음비라(mbira)이다. 양손의 엄지손가락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일명 엄지피아노라고도 불리는데, 피아노와는 완전히 다른 악기이므로 별로 적합한 예명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쿠바의 전통음악인 손(son)에 쓰이는 악기 중 하나인 마림불라가 바로 음비라에서 유래한 것이다. 음비라도 코라와 같이 박을 공명통으로 사용하는데, 공연에서는 공명통을 사용하지만 큰 소리를 낼 필요가 없을 때에는 공명통 없이 연주하기도 한다. 공명통 안에는 금속으로 만든 얇은 건반이 네모난 판 위에 붙어 있어 이것을 엄지손가락으로 튕기면서 연주를 하는데, 건반 아래에 병뚜껑 같은 것이 부착되어 있어 간반을 튕길 때마다 "츠~츠~" 하는 울림을 만들어 낸다. 음비라는 짐바브웨를 대표하는 전통악기로서 조상들의 영혼을 불러오는 제의에서 주로 연주된다. 짐바브웨에서는 조상신들이 보이지는 않지만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후손들을 돕기도 한다고 믿기 때문에 지상에 있는 사람들과 조상신을 연결시키는 의식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마비라(mabira)라고 불리는 이 의식은 보통 밤새도록 이어지는 마을행사이며 여기에서 행하는 음비라연주와 춤은 조상신이 내려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음비라(mbira)/ⓒwikipedia

 현재 음비라는 마비라에서도 연주되지만, 마비라와 상관없이 무대 위에서도 자주 연주된다. 1980년 짐바브웨의 정식 독립 이후 음비라가 짐바브웨의 문화적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 이전, 백인정권하에서는 음비라음악이 흑인음악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때문에 음비라연주 자체가 정부에 대한 저항으로 비추어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비라를 연주하며 영어가 아닌 짐바브웨 조상들, 즉 쇼나(Shona)족의 언어인 쇼나어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음악가가 있었다. 현재 세계적인 음악가로 이름이 알려져 있는 토마스 마푸모(Thomas Mapfumo, 1945~)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음비라와 쇼나어를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가사 자체를 반정부적인 내용으로 만들어 부르면서 아예 자신의 음악양식을 치무렝가(chimurenga)라고 이름 붙였다. 쇼나어로 저항이라는 뜻이다. 1980년 총선과 함께 영국으로부터 정식 독립하였으나 이후 마푸모는 여전히 불안정한 짐바브웨의 정치, 사회문제를 치무렝가음악으로 풀어내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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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도서 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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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관리

비만은 체지방이 과다하게 축적된 상태를 뜻하며, 경제성장과 식생활의 서구화로 국내에서도 비만의 유병률이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비만 자체가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중증 비만도 있지만, 비만의 최대 문제는 비만에 의해 초래되는 합병증이다. 합병증으로는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동맥경화증, 심비대, 지방간, 담석증, 퇴행성 관절염, 통풍, 월경불순이나 무배란 월경 등의 내분비장애가 있다.

 

1. 비만의 원인

비만은 특별한 원인이 있어서 2차적으로 비만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비만의 90%는 뚜렷한 원인이 없이 유발된 단순비만이다. 단순비만의 원인으로는 행동적 요인을 들 수 있는데, 여기에는 과식, 폭식, 식사속도가 빠른 것 등의 잘못된 식습관과 운동 및 활동량 부족, 스트레스, 불안, 욕구불만, 고독을 먹는 것으로 푸는 생활습관, 외식의 증가, 금연 등이 포함된다. 이 밖에 유전과, 가족의 공통된 식생활 유형과 같은 환경적 요인이 관여한다.

 

2. 비만의 유형

비만의 유형에는 지방세포 증식형비만과 지방세포 비대형비만이 있다. 증식형 비만은 지방세포의 수가 많아지는 형태로 지방세포의 증식기인 4~11세 사이에 과량의 에너지가 공급되어 나타나는 소아비만으로, 이는 성인비만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치료가 어려운 중증 비만이 된다. 비대형비만은 성인이 된 후에 비만하게 된 것으로 대부분 지방세포가 커지고 그 안에 과량의 중성지방을 함유하는 형태이다. 치료 시 증식형비만보다 반응이 좋고 재발위험이 적다.

 

3. 비만도 판정

비만도 판정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체지방량으로 판단하는 방법과 체중-신장지수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비만은 엄밀한 의미로는 체지방량을 산출해서 판정해야 하는데, 이 방법 중 하나가 삼두근·이두근·견갑골 하부 등에서 피부주름 두께를 측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체중-신장지수를 이용하여 비만도를 판정하는 방법이 사용되며,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체질량 지수 이용법이 비만도를 판정하는 정확한 방법으로 최근 많이 사용되고 있다. 체질량 지수(body mass index : BMI)를 계산하는 공식은 다음과 같다.

 

체질량 지수(kg/㎡)=체중(kg)/신장(m)x신장(m)

판정기준은 체질량 지수가 18.5 미만은 저체중, 18.5~22.9는 정상, 23~24.9는 과체중, 25~29.9는 1단계 비만, 30 이상이면 2단계 비만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키 170cm, 체중 80kg인 사람의 경우 체질량 지수를 계산해 보면 80/1.7 X 1.7 =27.68이므로 이 사람의 체질량 지수는 27.68이고, 1단계 비만 상태를 의미한다.

전체적인 비만 정도도 중요하지만 지방 분포상 복부비만이 심혈관 질환, 제2형 당뇨병, 고지혈증, 인슐린 저항성 등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복부비만을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허리둘레는 신장에 관계없이 복부비만을 잘 반영하고, 내장 지방량과도 상관이 높아 복부비만의 진단에 널리 쓰이고 있다. 허리둘레 측정 시 표준화된 해부학적 위치의 선정이 매우 중요하다. 세계보건기구의 방법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데 이 방법에서는 최하위 늑골 하부와 골반 장골능 상부의 중간부위에서 허리둘레를 측정한다. 한국인에게서 복부비만의 기준은 허리둘레가 남자 90cm, 여자 85cm 이상이다.

 

4. 비만의 관리

비만은 체지방을 줄여서 체중을 감소시키는 것이 건강유지에 바람직하며, 체중감소는 식사요법과 운동요법을 함께 병행해 이루어지는데, 꾸준한 의지와 행동양식의 변화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더불어 비만이 너무 심하면 약물이나 수술치료를 병행하여야 한다.

 

비만의 관리

 

①식사요법

열량요구량보다 섭취열량을 줄임으로써 체중을 감소시킨다. 이상적인 체중감소는 1주일에 0.5~1kg 정도이며, 감량식이는 순응도를 고려하여 평소 섭취량의 70~80% 수준으로 섭취할 것을 권유한다. 평소 섭취량보다 일일 50kcal를 적게 먹으면 1주일에 3,500kcal를 덜 섭취하게 되는 것이며, 이는 0.5kg에 해당되는 체지방의 감소를 기대할 수 있다.

이때, 열량을 감소시키는 대신 식사의 종류를 변화시켜서 만복감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보통 채소나 해조류, 과일류는 열량이 적고 섬유소와 수분 함량이 많아 체중감소식이로 적합하다.

또, 식습관의 변화가 도움이 되는데, 음식을 천천히 먹고, 더 먹고 싶다고 생각될 때 식사를 끝낸다. 음식이 남는 것을 모두 먹는 습관을 바꾸고, 식사를 거르지 말고, 가능한 한 간식을 먹지 않고, 스트레스나 우을 등의 감정을 음식 섭취로 푸는 것을 자제하고, 다른 방법으로 풀도록 해야한다.

 

②운동요법

식사요법만 시행하는 것보다 운동을 병행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체중을 감소시킬 수 있으며, 열량감량의 식사요법만을 시행할 때에는 안정 시 대사율 저하와 체지방 체중의 감소가 일어나는데 운동은 이를 줄일 수 있다. 운동은 건강하게 체지방을 감소시키면서 근육을 유지함으로써 탄력과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

열량소비량을 증진시키기 위해 활동 및 운동량을 늘린다. 일반적으로 1주일에 3~5회, 주당 최소한 900kcal 이상의 에너지를 소비할 수 있는 운동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산보를 1분에 110보의 속도로 45분간 시행하면 성인에게서 약 200kcal가 소비된다. 운동량에 따른 에너지 소모는 그렇게 많지 않으므로, 규칙적이고 지속적인 운동만이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비만을 건강하고 요요현상 없이 꾸준히 관리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식사, 운동요법 보다는 지속가능한 적절한 식사요법(갑자기 특정 식단으로 바꾸거나 특정 음식만을 오래 섭취하는 것은 지속가능 하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몸에 무리가 갈 수 있으니 금물! 일반적인 가정 식단에서 칼로리와 양을 줄여 여러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무리가 없다.)은 물론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적절한 운동(지치지 않고 스스로 자주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을 한 가지 선택-걷기 등)을 통해 균형잡힌 영양을 섭취하면서 꾸준히 칼로리를 소모하고, 서서히 근육량을 늘려 몸 전체의 균형과 기초대사량을 높여 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평소 음식을 먹을 때는 인스턴트 고칼로리 음식은 가능한 한 자제하면서, 천천히 골고루 섭취하며, 자신에게 맞는 운동 종류를 찾아내어 낮은 강도라도 꾸준하게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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