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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스테이션 일체형 삼성 비스포크 제트 무선 청소기 모델명 구분하는 방법

최근 청소기를 새로 구매해야할 일이 생겨 삼성 비스포크 제트 무선 청소기를 구매하려고 알아보던 중 모델명이 워낙 다양하게 나와 있어서 한참 고민했던 경험이 있는데요, 청소기 하나 새로 장만 하면서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했기에 저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모델명에 따른 차이점에 대해 내용을 공유해볼까합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삼성 비스포크 제트 무선 청소기를 선택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은 청소기 본체는 색상 이외에는 모두 동일한 성능의 제품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수만(?)가지 모델명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옵션의 차이였습니다. 자동차로 치면 기본 엔진이나 주행성능은 동일하면서도 옵션의 많고 적음에 따라 또는 옵션의 묶음 구성에 따라 모델명의 차이를 만들어 놓은 것인데요, 이런 차이를 한 눈에 구분해서 알아보기 위해서는 모델명에 숨어 있는 의미만 파악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삼성 비스포크 제트 무선 청소기 모델명 한 눈에 구분하는 방법

모델명 예제) 아래와 같은 모델명이 있다고 할 때(편의상 모델명에 임의로 색상을 넣었습니다) 아래 모델명의 전체 구성품은
비스포크 제트 청소기 본체+기본 배터리 1개+슬림소프트 마루 브러시+화이트 색상
(청정 스테이션 먼지통/틈새 브러시/솔브러시/액세서리 크래들은 기본 포함)

VS20A956A2W


모델명 설명) 모델명 중 검은색 알파벳+숫자 조합인 VS20A 여기 까지는 청소기 본체에 대한 모델명입니다.
그 뒤로 붙는 숫자와 앞파벳은 위치에 따라 모두 옵션(구성품 및 색상)을 의미합니다.
다음 빨간색 숫자 956 이 부분은 배터리 구성입니다. 배터리가 1개면 956 / 2개면 956이 아닌 957이 붙습니다.
그리고, 파란색 알파벳 A 부분은 바로 브러시 구성품 종류이며, A, D, E, F, G의 5종으로 나뉘며 G가 full 구성입니다.

A 슬림소프트 마루 브러시
D 슬림소프트 마루 브러시+물분사물걸레
E 슬림소프트 마루 브러시+물분사물걸레+침구 브러시
F 슬림소프트 마루 브러시+물분사물걸레+펫 브러시
G 슬림소프트 마루 브러시+물분사물걸레+침구 브러시+펫

※틈새 브러쉬 및 솔브러시는 모두 기본 포함

그다음 주황색 숫자 2 부분은 연장관이 포함되었느냐 아니냐를 구분합니다.

2 연장관 미포함
3 연장관 포함

마지막 초록색 W 부분은 청소기와 청정스테이션의 색상을 의미합니다.
색상은 모두 4종으로 구성되며, 알파벳에 따라 구분합니다.

B 미드나잇블루
W 미스티화이트
N 우디그린
Y 썬옐로우


자, 어떠신가요? 모델명이 정해지는 의미를 알고 보니 이제 구분이 좀 되지 않나요?^^ㅎ
그럼, 조금 더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 각 구성품을 사진과 함께 설명해 볼게요.


여기서 잠깐!

VS20A956A2W

VS20A956A32P


위의 두 모델명 중에 위쪽은 앞서 언급한 기본적인 모델명 표기지만 바로 아래 모델명처럼 표기가 다른 경우는 어떻게 될까요?

만약 모델명 표기가 VS20A956A32P와 같이 조금 다르게 표시된 경우에는 아래의 내용을 참고하세요.

위에 예제로 표기한 모델명 VS20A956A32P에서 보라색 앞자리까지는 앞서 설명한 기본적인 모델 표기 원칙과 같습니다. 다만 차이점은 보라색 부분인데요, 보라색 2P 부분 중 숫자 2는 색상을, 알파벳 P는 포장과 관련된 것으로, 청소기 본체와 청정스테이션 먼지통을 각각의 박스(2Box)로 분리 포장한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즉, 포장 상태만 다르고, 제품 및 구성품은 기본 모델명의 제품과 성능 등 모두 동일합니다.

만약, P 바로 앞쪽에 붙은 숫자 중
숫자 1이 있으면 미드나잇 블루 색상
숫자 2가 있으면 미스트 화이트 색상
숫자 3이 있으면 우디 그린 색상
이라고 합니다.


삼성 비스포크 제트 무선 청소기 기본 구성품들

최소 옵션 사항으로 가장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기본 구성 및 구성품입니다.

기본 구성 1. 청소기 본체(배터리 1개 기본)

비스포크 제트 무선 청소기 본체


기본 구성 2. 청정스테이션 먼지통 거치대

청정스테이션 먼지통에 본체를 거치한 모습/충전과 동시에 먼지통에 먼지를 버릴 수 있습니다.


기본 구성 3. 슬림 소프트 마루 브러시

180도 회전 가능한 메인 흡입구


기본 구성 4. 틈새/솔 브러시

틉새 청소용 브러시


기본 구성 5. 액세서리 크래들(거치대)

각 브러시와 추가 배터리 거치 및 충전이 가능한 액세서리 크래들(거치대)

 

삼성 비스포크 제트 무선 청소기 옵션(선택) 구성품들


옵션 구성. 물분사물걸레 브러시

150ml 물탱크가 내장되어 물분사가 가능한 물걸레


옵션 구성. 침구 브러시

청소하기 까다로운 침구 전용 브러시


옵션 구성. 펫 브러시

털이 걸리지 않는 솔과 고무 재질로 최적화 된 브러시


옵션 구성. 플렉스 연장관

가구 위, 천장 등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사용하는 연장관


옵션 구성. 추가 배터리 1개

비스포크 제트 전용 배터리, 최대 1시간 사용/2년 무상보증



삼성 비스포크 제트 무선 청소기의 기본 구성품(기본)과 추가 구성품(옵션)은 위와 같이 구성이 됩니다.
알아본 바로는 만약 기본 구성 이외에 옵션 구성품 중 필요한 것이 있다면 해당 모델명을 찾아 구입하는 것이 추후 하나씩 별도로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하지만 각 개인의 취향이나 상황에 맞게 선택할 수 없고, 모델명(옵션)에 따라 구성품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임의로 빼거나 넣을 수는 없는 구조라는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입니다.
가격이 모델명(옵션)에 따라 가격 폭이(기본 50만원 중후반에서 풀옵션은 120만원 가량) 크게 차이나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위 모델명 규칙을 활용해 모델명을 스스로 조합해서 검색해 보고 구입을 결정하거나, 처음부터 기본 구성만으로 구입 후 액세서리들은 추후 필요 할 때를 맞춰 별도 구입하는 것도 합리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이번에 구입한 제트 청소기인데요,

삼성 설치기사님이 직접 방문하셔서 조립과 설치를 해주시고 설명까지 친절하게 해주셨어요.

기존에 쓰던 청소기도 수거를 해가시는 바람에 편하게 처리가 되었고,

조립을 다하고 청정스테이션에 거치를 했을 때는 생각보다 길이가 길어서 조금 놀랐답니다.

비스포크답게 거실 인테리어효과가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참고로 모델명은 VS20A957D3W 미스트 화이트이고,

기본구성(청소기 본체+청정스테이션+액세서리 크래들+소프트 마루 브러시+틈새 브러시)+추가 배터리 1개+물분사물걸레가 추가된 구성입니다.

그 외에 물걸레, 일회용 물걸레, 먼지봉투 3개가 함께 들어있으니 참고하세요~!

 

삼성 비스포크 제트 무선청소기 VS20A957D3W
삼성 비스포크 제트 무선청소기 VS20A957D3W

 

삼성 비스포크 제트 무선 청소기 모델별 구성품 확인

모델명 색상 배터리 메인 흡입구 및 브러시 플렉스 연장관
슬림 소프트 마루 물걸레 침구
VS20A956A3B ●미드나잇 블루 1개 X X X
VS20A956A3N 우디 그린 1개 X X X
VS20A956A3W ○미스티 화이트 1개 X X X
VS20A956E3B 미드나잇 블루 1개 X
VS20A956E3N 우디 그린 1개 X
VS20A957D3B 미드나잇 블루 2개 X X
VS20A957D3N 우디 그린 2개 X X
VS20A957D3W 미스티 화이트 2개 X X
VS20A957E3B 미드나잇 블루 2개 X
VS20A957E3N 우디 그린 2개 X
VS20A957E3W 미스티 화이트 2개 X
VS20A957F3B 미드나잇 블루 2개 X
VS20A957F3N 우디 그린 2개 X
VS20A957F3W 미스티 화이트 2개 X
VS20A957G3B 미드나잇 블루 2개
VS20A957G3N 우디 그린 2개
VS20A957G3W 미스티 화이트 2개
VS20A957D2B 미드나잇 블루 2개 X X X
VS20A957D2N 우디 그린 2개 X X X
VS20A957D2W 미스티 화이트 2개 X X X
VS20A957E2B 미드나잇 블루 2개 X X
VS20A957E2W 미스티 화이트 2개 X X
VS20A957G2B 미드나잇 블루 2개 X
VS20A957G2W 미스티 화이트 2개 X
VS20A957G2Y 썬 옐로우 2개 X


추가로 비교적 고가인 무선 청소기인 관계로 시중에는 구입해서 쓰는 제품 외에도 일정기간 사용료를 내고 쓰면서 계약이 만료되면 본인 소유가 되는 방식의 렌탈 제품도 있으므로, AS 문제와 같은 부분 그리고, 가성비를 따져보고 선택한다면 그 부분도 나름의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삼성 비스포크 제트 무선 청소기 렌탈 제품


https://www.skmagicshop.com/shop/item.php?it_id=1639723855&ca_id=6070&page=1

 

[렌탈] 런칭기념 5천원 할인+3천원 추가 할인! SK매직 삼성 비스포크 제트 SECVS20A9Z6E/무선 진공청소

깔끔하게 비우며 동시에 충전하는 일체형 청정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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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648호, 만력기묘명 승자총통(萬歷己卯銘 勝字銃筒)/ⓒ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648호, 만력기묘명 승자총통(萬歷己卯銘 勝字銃筒)/ⓒ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648호, 만력기묘명 승자총통(萬歷己卯銘 勝字銃筒)/ⓒ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648호, 만력기묘명 승자총통(萬歷己卯銘 勝字銃筒)/ⓒ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648호, 만력기묘명 승자총통(萬歷己卯銘 勝字銃筒)/ⓒ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648호 만력기묘명 승자총통(萬歷己卯銘 勝字銃筒)은 총통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제작 시기와 제작자를 알 수 있는데, '만력기묘'라는 뜻 그대로 명나라 만력 기묘년 즉, 만력 7년인 1579년(선조 12)에 제작된 것으로 규가(揆加)라고 하는 장인(匠人)이 만든 것을 알 수 있다.

승자총통(勝字銃筒)은 불씨를 손으로 점화 및 발사하는 총통 중 휴대용으로 사용하도록 만든 개인화기이며, 1635년에 발행한 '화포식언해(火砲式諺解, 무신 이서(李曙, 1580 선조 13∼1637 인조 15)가 총 쏘는 법과 화약 굽는 법을 기술한 '화포식'을 한글로 풀어 발행한 군서)'를 통해 탄환과 화실이 모두 사용 가능한 총통인 것을 알 수 있다.

 

전체길이 56.8cm, 통길이 34.8cm, 입지름 4cm, 무게 4.5kg으로 6마디의 대나무 모양을 띄고 있다. 약실쪽의 3마디의 간격을 총구 쪽 보다 좁게 만든 것은 화약의 폭발 위력을 감안해 터지지 않도록 만든 것며, 적과 가까이 붙었을 때를 대비해 곤봉처럼 근접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양각하였고, 손잡이는 음각으로 총통의 제작시기와 무게를 비롯해 제작한 장인(匠人)의 이름까지 새겨져 있다. 원래 나무 손잡이가 붙어 있었나 오래되어 소실되었다.

 

1578년(선조 8)에 전라좌수사와 경상병사를 지낸 김지(金墀)가 발명해 만들었으며, 1583년 이탕개의 난에서 효력을 발휘하였다고 전해진다. 크기와 화력에 따라 대승자총통, 차승자총통, 소승자총통의 세 종류로 나뉘며, 정철(正鐵, 참쇠라고도 하며 탄소 함유량이 낮아 단조 가공이 가능한 숙철熟鐵을 재정련하여 얻는 쇠로 수차례 담금질과 단조를 통해 쇠의 강도와 점성을 증대 시켜 도검이나 화약을 사용하는 화기에 주로 사용된 철)로 만들어졌다. 찬혈(鑽穴, 단조로 만든 총열에 구멍을 뚫는 방식으로 총열을 만드는 전통 기법)과 조성(照星, 총을 목표물에 조준할 때 이용하는 장치, 가늠쇠) 등은 조총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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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538호 동국대지도(東國大地圖, 朝鮮古地圖)/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1538호 동국대지도(東國大地圖, 朝鮮古地圖)/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1538호 동국대지도(東國大地圖, 朝鮮古地圖)/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1538호 동국대지도(東國大地圖, 朝鮮古地圖)/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1538호 동국대지도(東國大地圖, 朝鮮古地圖)/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1538호 동국대지도(東國大地圖, 朝鮮古地圖)/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1538호 '동국대지도(東國大地圖, 朝鮮古地圖)'는 한 축의 조선전도를 표시한 지도로 조선 전체는 물론 독도와 만주의 일부까지도 자세히 표현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세로 272.7cm에 가로 137.9cm의 크기를 자랑하는 대형 축적의 지도이며, 세견(細絹, 비단의 일종)을 재료로 세 폭을 이어 만든 바탕에 백두산으로부터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이어지는 산맥과 물줄기가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고, 330여 개의 고을과 병영(兵營), 수영(水營), 산성(山城), 역원(驛院)을 비롯해 도로와 교통정보, 행정, 군사 등의 정보가 상세하게 표시 되어 있다. 특히 돋보이는 부분 중에 하나는 바로 현대의 지도처럼 역권, 진보(鎭堡, 조선 전기 지방의 군대 소집 체계인 진관鎭管의 최하단위), 봉수, 고개 등을 기호화 하여 지도의 가독성을 높인 점이라 할 수 있다.
전체적인 특징과 표시된 내용 등을 종합해 보았을 때 정상기(鄭尙驥 1678~1752)가 제작한 '동국지도(東國地圖)'의 원본을 기초로 도화서의 화원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또, 지도의 제작 시기는 18세기 중반인 1755년에서 1757년 사이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는 1767년에 산청(山淸)과 안의(安義)로 바뀌는 산음(山陰)과 안음(安陰)의 지명이 변경 이전의 지명으로 표시되어 있는 점 등이 그 근거이다.
'동국대지도'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정상기의 '동국지도'는 당시 과학적인 축적법인 '백리척(百里尺, 1척을 100리로, 1촌을 10리로 기준하여 계산한 축적법)을 적용하여 제작되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최초로 축적법이 밝혀진 지도일 뿐만 아니라 축적법을 통해 도별도를 이으면 전국도가 되도록 고안되었으며, 산맥의 명확한 표현, 도별 채색 등을 통해 지도의 가독성을 높이는 등 당시 지도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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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455호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금제 태환 이식)/ⓒ국립중앙박물관
보물 455호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금제 태환 이식)/ⓒ국립중앙박물관
보물 455호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금제 태환 이식)/ⓒ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455호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慶州 路西洞 金製耳飾, 金製太環耳飾)'는 신라 5~6세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유물로 귀에 거는 중심고리(主環)인 태환(太環)에 크고 작은 2개의 노는 고리(遊還)로 연결하고, 아래에 긴 이파리 모양을 한 여러개의 달개가 달린 샛장식(中間飾, 귀걸이의 중심고리 아래 달리는 꾸미개장식)을 달았는데, 샛장식은 작은 고리를 연접시켜 만든 구체에 새김눈(‘目’자처럼 가로 또는 세로로 조각한 눈금선문양)이 장식된 달개로 이를 여러개 붙여 방사형으로 펼쳐져 있어 매우 화려해 보이며, 그 아래 테두리와 중심선에 모두 새김눈을 2줄로 겹쳐 붙여 입체감과 화려함이 돋보이는 심엽형(하트 모양 또는 그와 비슷한 나뭇잎 모양)의 드림(垂下飾, 귀걸이의 가장 아래 매달리는 드리개 장식)을 달아 장식하였다.

 

전형적인 경주식 태환이식(太環耳飾, 금으로 만든 굵은 고리의 귀걸이)이라는 점과 제작기법과 조형성이 우수하고 보존상태도 양호하다는 점, 이후 금조총 및 보문동 부부총 금귀걸이로의 양식사적 발전과정을 보여준다는 점 등에서 가치가 높은 유물이다.

최초 발견 당시 경주 노서동 215호 고분에서 출토되었으나 귀걸이 1쌍 중 하나가 일본에 반출되었다가 1965년 체결한 한일협정으로 1966년 국내로 반환되어 국립중앙박물에 소장되었으며, 유사한 유물로 창녕 계성고분군 등지에서 출토된 예가 있다.

 

※한편, 보물 제455호는 그동안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었으나, 2018년10월30일 문화재청에서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는 보물 제2001호로 재지정하고, 기존 보물 제455호의 이름을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로 바꾸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1967년 보물 455호로 지정 당시 펴낸 각종 자료에 경주 노서동에서 발굴한 금귀걸이가 아닌 황오동 52호분에서 출토된 금귀걸이를 실수로 올려 바뀌면서 시작되었는데, 다행히 2000년 어느 날 일본학자인 '가즈오(藤井和夫)'가 신라 황금전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었던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에게 유물이 잘못되었음을 알려준 덕이라고 하며, 그동안 실수로 인해 잘못 알려졌던 것을 보물 지정 당시로부터 51년만에 각자 제이름을 찾은 것입니다. 

 

[보물 제2001호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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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덕션 사용 시 뜻밖의 에러가 발생했을 때 전기 제품이라 겁도 나면서 당황했던 경험~ㅠㅠ

한번씩 있을 텐데요..

이제 당황하지 마시고, 아래 에러 표시의 의미와 대처 방법을 참고해보세요^^

 

 

인덕션 에러 표시 : E1/ER1/ERR1

※인덕션 모델에 따라 에러 코드 및 내용이 상이할 수 있으니 유의하세요.

SK매직 인덕션 에러코드 발생 시 조치 방법/SK매직샵

①인덕션 내부 또는 용기 온도의 과열로 발생하는 표시입니다.​

>용기에 남아있는 내용물이 소량일 때 또는 내용물이 없는 경우 급속도로 온도가 상승할 수 있으므로 내용물을 확인해주세요.

>용기 및 인덕션 화구를 충분히 식힌 후 재작동 해주세요.

 

②인덕션 화구에 용기를 올려놓지 않고 작동하거나 적합하지 않은 전용 용기를 사용한 경우 발생하는 표시입니다.

>인덕션 전용 용기 마크가 있는지 또는 인덕션 사용 가능한 용기인지 확인해주세요.

 

③인덕션 화구의 전압 이상으로 발생하는 표시입니다.

>다른 가전제품과 콘센트를 함께 연결하여 사용하는 경우는 전기레인지 화력단수를 7~8단 이하로 낮추어 사용 또는 한 개의 화구만 사용해주세요.

>소비전력이 높은 가전제품과의 동시 사용을 자제해 주세요.

>콘센트 전압 확인 및 제품의 전원코드를 분리 후 10초 이후 재연결하여 작동 여부를 확인해 주세요.

 

 

인덕션 에러 표시 : E2/ER2/ERR2

※인덕션 모델에 따라 에러 코드 및 내용이 상이할 수 있으니 유의하세요.

SK매직 인덕션 에러코드 발생 시 조치 방법/SK매직샵

①제품이 설치된 콘센트의 전압이 AC186V 이하로 낮은 경우 발생하는 표시입니다.

>콘센트 전압 확인 및 전원코드를 분리한 뒤 30초 후 벽면 콘센트에 단독으로 연결하여 작동 여부를 확인해 주세요.

>다른 가전과 함께 콘센트에 연결하여 사용하는 경우 제품의 화력은 7~8단 이하로 낮춰 사용하거나 한 개의 화구만 사용해야 합니다.

>전기밥솥, 전기오븐 등 소비전력이 좊은 가전과 동시에 사용할 경우에는 제품 작동에 영향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인덕션 에러 표시 : E3/ER3/ERR3

※인덕션 모델에 따라 에러 코드 및 내용이 상이할 수 있으니 유의하세요.

SK매직 인덕션 에러코드 발생 시 조치 방법/SK매직샵

①인덕션 상판 온도의 과열로 발생하는 표시입니다.

>전원을 끄고 제품을 충분히 식힌 후 재작동 여부를 확인해 주세요.

 

②인덕션 화구의 온도센서 이상으로 발생하는 에러 표시입니다.

>온도센서의 단선 또는 단락 증상일 수 있으므로 전원 코드를 분리 후 10초 뒤 재연결하여 작동 여부를 확인해 주세요.

>동일 증상이 계속 발생할 경우 서비스 점검이 필요합니다.

 

 

인덕션 에러 표시 : E4/ER4/ERR4

※인덕션 모델에 따라 에러 코드 및 내용이 상이할 수 있으니 유의하세요.

SK매직 인덕션 에러코드 발생 시 조치 방법/SK매직샵

①인덕션 상판, 방열판 온도의 과열로 발생하는 표시입니다.

>전원을 끄고 용기 및 제품을 충분히 식힌 후 재작동하여 사용해 주세요.
>용기에 남아있는 내용물이 소량일 때 또는 내용물이 없는 경우 급속도로 온도가 상승할 수 있으므로 내용물을 확인해주세요.

 

②인덕션 내부 부품 과열 및 온도센서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에러 표시입니다.

>전원을 끄고 용기 및 제품을 충분히 식힌 후 재작동 여부를 확인해 주세요.

 

③인덕션 공급 전압이 저전압인 경우 발생하는 에러 표시입니다.

>250V 콘센트에 연갈하여 사용해 주세요.

 

④인덕션 내부 부품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에러 표시입니다.

>전원 코드를 분리한 뒤 30초 후 재연결하여 작동 여부를 확인해 주세요.

 

 

인덕션 에러 표시 : E5/ER5/ERR5 

※인덕션 모델에 따라 에러 코드 및 내용이 상이할 수 있으니 유의하세요.

SK매직 인덕션 에러코드 발생 시 조치 방법/SK매직샵

①인덕션 용기 온도의 과열로 발생하는 표시입니다.

>용기에 남아있는 내용물이 소량일 때 또는 내용물이 없는 경우 급속도로 온도가 상승할 수 있으므로 내용물을 확인해주세요.​

>용기 및 인덕션 화구를 충분히 식힌 후 재작동하여 사용해 주세요.

 

②인덕션 코일 과열로 발생하는 에러 표시입니다.

>전원을 끄고 제품을 충분히 식힌 후 재작동하여 사용해 주세요.

 

③조작부 버튼 눌림 상태가 20초 이상 지속되었을 경우 발생하는 표시입니다.

>버튼 조작부에 올려져 있는 냄비가 없는지 확인해 주세요.

>버튼 조작부에 묻은 물기나 이물질을 청소한 후 작동해 주세요.

 

④자동화구 선택 센서의 불량으로 발생하는 표시입니다.

>전원코드를 분리한 후 30초 뒤 재연결하여 사용해 주세요.

 

⑤자동화구 선택 센서의 불량으로 발생하는 표시입니다.

>전원을 끄고 30초 뒤 전원을 켜고 사용해 주세요.

 

 

인덕션 에러 표시 : E6/ER6/ERR6 

※인덕션 모델에 따라 에러 코드 및 내용이 상이할 수 있으니 유의하세요.

SK매직 인덕션 에러코드 발생 시 조치 방법/SK매직샵

①인덕션 회로부품 온도센서 이상으로 발생하는 에러 표시입니다.

>전원을 끄고 제품을 충분히 식힌 후 재작동하여 사용해 주세요.

>동일 증상이 계속 발생하는 경우 온도센서의 단선 및 단락으로 서비스 점검이 필요합니다.

 

②인덕션 코일 과열로 발생하는 에러 표시입니다.

>전원을 끄고 제품을 충분히 식힌 후 재작동하여 사용해 주세요.​

 

③온도 휴즈 이상으로 발생하는 에러 표시입니다.

>전원 코드를 분리 후 10초 뒤 재연결하여 확인해 주세요.

>동일 증상이 계속 발생하는 경우 온도휴즈 단선 증상으로 서비스 점검이 필요합니다.​

 

 

인덕션 에러 표시 : E7/ER7/ERR7 

※인덕션 모델에 따라 에러 코드 및 내용이 상이할 수 있으니 유의하세요.

SK매직 인덕션 에러코드 발생 시 조치 방법/SK매직샵

①팬모터 이상으로 발생하는 에러 표시입니다.

>전원 코드를 분리 후 10초 뒤 재연결하여 확인해 주세요.

>전원코드 분리가 불가한 모델인 경우 전원을 껐다 켠 뒤 확인해주세요.

>동일 증상이 계속 발생하는 경우 팬모터 회전 불량 증상으로 서비스 점검이 필요합니다.

 

②인덕션 화구의 온도센터 감지 이상으로 발생하는 에러 표시입니다.

>전원 코드를 분리 후 10초 뒤 재연결하여 확인해 주세요.

>동일증상 발생 시 팬모터 회전 불량 증상으로 서비스 점검이 필요합니다.

 

 

인덕션 에러 표시 : E8/ER8/ERR8

※인덕션 모델에 따라 에러 코드 및 내용이 상이할 수 있으니 유의하세요.

SK매직 인덕션 에러코드 발생 시 조치 방법/SK매직샵

①전원 전압이 253V 이상으로 고전압으로 높아진 경우 발생하는 에러 표시입니다.

>콘센트 전압 확인 및 제품의 전원코드를 분리 후 10초 이후 재연결하여 작동 여부를 확인해주세요.

>동일 증상이 계속 발생하는 경우 서비스 점검이 필요합니다.

 

 

인덕션 에러 표시 : E9/ER9/ERR9

※인덕션 모델에 따라 에러 코드 및 내용이 상이할 수 있으니 유의하세요.

SK매직 인덕션 에러코드 발생 시 조치 방법/SK매직샵

①​인덕션 화구 통신 이상으로 발생하는 에러 표시입니다.

>전원코드를 분리 후 10초 이후 재연결하여 작동 여부를 확인해 주세요.

>동일 증상이 계속 발생하는 경우 내부 부품 문제로 서비스 점검이 필요합니다.

 

 

인덕션 에러 표시 : EC/EF/EP/E 및 기타 에러

※인덕션 모델에 따라 에러 코드 및 내용이 상이할 수 있으니 유의하세요.

SK매직 인덕션 에러코드 발생 시 조치 방법/SK매직샵

EP 표시 : 자동 화구 선택 기능 이상으로 발생하는 표시입니다.

>전원 코드 분리 후 10초 뒤 재연결하여 확인해주세요.

>전원코드 분리가 불가한 모델인 경우 전원을 껐다 켠 뒤 확인해주세요.​

>동일 증상이 계속 발생하는 경우 서비스 점검이 필요합니다.​

 

​EN 표시 : 인덕션 손잡이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표시입니다.

>전원 코드 분리 후 10초 뒤 재연결하여 확인해주세요.

>전원코드 분리가 불가한 모델인 경우 전원을 껐다 켠 뒤 확인해주세요.​

>동일 증상이 계속 발생하는 경우 서비스 점검이 필요합니다.​​

 

​EI 표시 : 인덕션 회로 통신 이상으로 발생하는 표시입니다.

>전원 코드 분리 후 10초 뒤 재연결하여 확인해주세요.

>전원코드 분리가 불가한 모델인 경우 전원을 껐다 켠 뒤 확인해주세요.​

>동일 증상이 계속 발생하는 경우 서비스 점검이 필요합니다.​​​

 

​E0 표시 : 인덕션 IoT 모듈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표시입니다.

>전원 코드 분리 후 10초 뒤 재연결하여 확인해주세요.

>전원코드 분리가 불가한 모델인 경우 전원을 껐다 켠 뒤 확인해주세요.​

>동일 증상이 계속 발생하는 경우 서비스 점검이 필요합니다.​​​​

 

​EC 표시 : 인덕션 LED 작동 이상으로 발생하는 표시입니다.

>전원 코드 분리 후 10초 뒤 재연결하여 확인해주세요.

>전원코드 분리가 불가한 모델인 경우 전원을 껐다 켠 뒤 확인해주세요.​

>동일 증상이 계속 발생하는 경우 서비스 점검이 필요합니다.​​​​​

 

​ET 표시 : 인덕션 터치 조작부 이상으로 발생하는 표시입니다.

>전원 코드 분리 후 10초 뒤 재연결하여 확인해주세요.

>전원코드 분리가 불가한 모델인 경우 전원을 껐다 켠 뒤 확인해주세요.​

>동일 증상이 계속 발생하는 경우 서비스 점검이 필요합니다.​​​​​​

 

EB 표시 : 화구에 올려놓은 용기가 인덕션 전용 용기가 아니거나 과열되면 발생하는 표시입니다.

 

 ①인덕션 전용 용기인지 확인해 주세요.

>전용 용기 마크가 없는 경우라도 용기 바닥에 철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면 일시적으로 사용은 가능할 수 있지만

철 성분 함유량이나 분포된 모양에 딸 용기 감지 여부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인덕션 전용 용기로 교체하여 작동 여부를 확인해 주세요.

 

②다른 종류의 인덕션 전용 용기로 교체하여 확인해 주세요.

>특정한 용기 사용 시에만 감지가 안된다면 용기의 불량일 수 있습니다.

>다른 전용 용기로 교체하여 작동 여부를 확인해 주세요.

 

③인덕션 내부 또는 용기 온도의 과열로 발생하는 표시입니다.

​>용기에 남아있는 내용물이 소량일 때 또는 내용물이 없는 경우 급속도로 온도가 상승할 수 있으므로 내용물을 확인해주세요.​​ 

>용기 및 인덕션 화구를 충분히 식힌 후 재작동 해주세요.

 

​EF 표시 : 디스플레이창에 이상이 감지되어 발생하는 표시입니다.

>전원 코드 분리 후 10초 뒤 재연결하여 확인해주세요.

>전원코드 분리가 불가한 모델인 경우 전원을 껐다 켠 뒤 확인해주세요.​

>동일 증상이 계속 발생하는 경우 서비스 점검이 필요합니다.​​​​​​​

 

 

인덕션 에러 표시 : F3~F8

※인덕션 모델에 따라 에러 코드 및 내용이 상이할 수 있으니 유의하세요.

SK매직 인덕션 에러코드 발생 시 조치 방법/SK매직샵

①코일 온도센서 이상으로 발생하는 에러 표시입니다.

>전원코드를 분리 후 10초 이후 재연결하여 작동 여부를 확인해 주세요.

>동일 증상이 계속 발생하는 경우 서비스 점검이 필요합니다.​​

>에러 문구는 F3, F4, F5, F6, F7, F8로 표시될 수 있습니다.

 

 

인덕션 에러 표시 : F9, FA, FB, FC, FD, FE​

※인덕션 모델에 따라 에러 코드 및 내용이 상이할 수 있으니 유의하세요.

SK매직 인덕션 에러코드 발생 시 조치 방법/SK매직샵

①인덕션 회로부품 온도센서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에러 표시입니다.

>전원코드를 분리 후 10초 이후 재연결하여 작동 여부를 확인해 주세요.

>동일 증상이 계속 발생하는 경우 서비스 점검이 필요합니다.​​

>에러 문구는 F9 외에 FA, FB, FC, FD, FE로 표시될 수 있습니다.​

 

그밖에,
인덕션 사용 중 [U] 표시가 뜨는 이유는 인덕션 화구에 용기를 올려놓지 않고 작동하거나,
인덕션에 적합하지 않은 용기를 사용하는 경우 발생하는 용기 인식 에러 표시입니다.

SK매직 인덕션 에러코드 발생 시 조치 방법/SK매직샵

따라서, 인덕션 화구에 용기를 올리지 않은 경우라면 용기를 올려 다시 작동을 하시면
해당 에러 표시는 사라지고, 인덕션은 이상 없이 정상 작동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용기를 올려 놓은 상태에서도 [U] 에러 표시가 사라지지 않거나 정상 작동이 안 된다면
반드시 아래 내용을 확인해 주세요


1. 인덕션에 사용 가능한 용기인지 먼저 확인해보세요.

※인덕션에는 보통 금속 재질의 법랑, 스테인리스와 같은 자석이 붙는 금속 재질의 용기가 사용되며
자석이 붙지 않는 스테인리스, 도자기와 유리 같은 비금속 재질 및 알루미늄 용기는 사용이 불가합니다.

✔인덕션 화구에 용기 인식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 U 표시가 나타납니다.
✔현재 올려진 용기가 인덕션에 사용 가능한 용기인지 먼저 확인해주세요.
(※용기의 바닥면 또는 구입 박스에 인덕션 사용 가능 용기 마크 확인)

SK매직 인덕션 에러코드 발생 시 조치 방법/SK매직샵

✔인덕션 사용 가능 마크 확인이 어려울 경우 용기에 자석이 붙는 재질인지 확해주세요.
✔바닥면의 지름이 14cm 이상 26cm 이하의 용기를 사용해 주세요.
✔용기의 바닥면이 평평하고 인덕션 상판에 밀착이 가능한 용기를 사용해주세요.

 


2.  인덕션에 부적합한 용기를 사용중인지 확인해 주세요.

✔도자기, 내열유리, 알루미늄 소재의 용기는 인덕션 사용이 불가합니다.
✔​바닥에 무늬가 새겨져 있는 용기는 인식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열효율이 떨어​지거나 가열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화구 사이즈보다 크거나 너무 작은 용기는 인식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열효율이 떨어지거나 가열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닥면이 오목하거나 둥근 용기, 휘어진 용기, 다리가 있는 용기, 굴곡이 있는 용기는
인식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열효율이 떨어지거나 가열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용기의 바닥부분에만 인식 가능한 소재가 붙어 있는 경우는 인식률이 가장 약하고
인덕션 고장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인덕션에 사용하기에 적합 및 가능한 용기 바닥 형태/SK매직샵
인덕션에 사용하기에 부적합 및 불가능한 용기 바닥 형태/SK매직샵


3. 인덕션 용기 사용 시 주의 사항을 확인해주세요.

✔​부적합한 용기를 사용하는 경우 용기 인식이 제대로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덕션 고장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인덕션 전용 용기라고 하더라도 오랜 기간 사용하는 경우 고열에 노출된 바닥의
철성분이 변성 되어 일부 부위만 가열되거나 용기 인식률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용기의 모양이나 재질에 따라 작동 소음에도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SK미직 인덕션 에러코드와 거기에 맞는 조치 방법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인덕션 에러코드에 맞게 조치를 한 다음에도 계속해서 같은 증상이 생긴다면

보다 안전한 사용을 위해 A/S 점검을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출처: SK매직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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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오복은 수(壽), 부(富), 강녕(康),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라고 한다. 수는 장수(長壽), 즉 오래 사는 것을 말하며, 부는 부유, 곧 남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신이 뜻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재력을 의미한다. 강녕은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것을 말하며, 유호덕은 덕을 좋아하여 남에게 베풀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고종명은 일생을 깨끗하고 건강하게, 그리고 덕을 좋아하며 살다가 제명대로 생을 마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고종명에는 앞에서 말한 네 가지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 조선시대 사람들은 누구나 고종명하기를 희망했다.

 

고종명을 말할 때 으레 거론되는 것이 회갑(回甲)과 회훤(回婚) 및 회방(回榜)이다. 회갑은 태어난 지 60년이 된 것을 말하고, 회혼은 결혼한 지 60년이 된 것을 지칭하며, 회방은 과거에 합격한 지 60년이 된 것을 뜻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먹는 것이 부족하고 질병도 자주 나돌았으며 의료수준 또한 높지 않아서 60세가 될 때까지 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60세가 되면 회갑연을 성대하게 베풀고 더욱 장수하기를 축원하였다.

 

회혼은 회근(回卺)이라고도 하였는데, 혼인한 지 60년이 되는 해애ㅔ 행했기 때문에 이를 맞이하는 사람이 더욱 드물었다. 15세에서 20세 사이에 혼인한다고 가정하면 75세에서 80세가 되어야 회혼이 가능했는데, 부부가 모두 살아 있어야 예식을 치를 수 있었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회혼례(回婚禮)를 볼 수 없었다. 회혼례는 노부부가 다시 신랑신부가 되어 혼인식을 치르는 것인데, 아들과 사위가 혼인식을 거행하는 집사(執事)와 신랑을 인도하는 기러기아범이 되고, 딸과 며느리가 신부의 수발을 드는 수모(手母)가 되었으며, 손자와 손녀가 구경꾼이 되어 한바탕 잔치를 벌였다.

전 김홍도필 담와 홍계희 평생도 중 '회혼례' 일부/ⓒ국립중앙박물관 

회방은 과거에 합격한 지 60년이 지나야 가능했기 때문에 회방연(回榜宴)을 구경하기가 회혼례보다 더욱 어려웠다. 문과 급제 평균 나이가 30세를 훌쩍 상회했으니, 90세가 넘어야 회방연을 실시할 수 있었다. 생원진사시 합격 평균연령은 이보다 어렸기 때문에 이는 종종 볼 수 있었다. '만력기유사마방회도첩(萬曆己酉司馬榜會圖帖)'이라는 회방연 관련 그림이 현존하는데, 제목을 통하여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문과 회방연이 아니라 생원진사시 회방연이다. 이 도첩은 만력 기유년, 즉 1609년의 생원진사시 합격자들이 60년이 지난 1669년에 장원으로 합격했던 이민구(李敏求)의 집에 모여 잔치를 벌이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린 것이다.

 

장혼(張混, 1759~1828)의 문집인 <이이엄집(而已广集)>에는 회갑과 회후너 및 회방을 맞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음과 같이 잘 표현하고 있다. 다만 장혼은 회갑보다는 회방이 드물고, 회방보다는 회혼이 드물었다고 말하고 있다. 순서는 다르지만 회갑과 회방 및 회혼을 맞이하기가 매우 어려웠음을 알 수 있다.

세상에서 희귀한 일이라고 칭하며 사람들이 경하(慶賀)하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생년(生年)의 회갑, 등과(登科)의 회방, 초례(醮禮)의 회근이 그것이다. 이것은 황왕(皇王)과 제백(帝伯)의 권세로도 취할 수 없고, 진나라나 초나라 도주공(陶朱公)이나 의돈(猗頓)의 부(富)로도 구할 수 없으며, 현인군자의 덕이라도 반드시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오직 장수(長壽)한 후에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회갑을 맞이하는 것은 열에 대여섯이고, 회방을 맞이하는 것은 백에 서넛이며, 회혼은 천에 한둘이다.

<계서야담(溪西野談)>을 살펴보면, 회갑과 회혼 및 회방을 모두 치른 인물로 심액(沈詻, 1571~1654)이 거론된다. 그는 1571년에 태어나 20세인 1589년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26세인 1596년에 문과에 급제했다. 혼인을 언제 했는지는 알 수 없느나 그가 회갑을 맞이한 해는 1631년이며, 생원시의 회방이 된 해는 1649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문과 회방연도가 되는 1656년보다 2년 전에 사망하고 말았다. 따라서 <계서야담>에서 말하는 회방은 생원진사시 회방임을 알 수 있는데, 그와 같이 회갑과 회혼 및 회방을 모두 치른 인물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몇명 되지 않았다.

 

회갑, 회혼, 회방을 다 맞이하고, 여기에 더하여 기로연(耆老宴)과 구순연(九旬宴)까지 치른 인물로는 정원용(鄭元容, 1783~1873)이 있다. 그는 1783년에 태어나 15세인 1797년에 강릉김씨(江陵金氏) 김계락(金啓洛)의 딸과 혼인하고 20세인 1802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회갑을 맞이하던 1843년 그는 좌의정을 거쳐 판중추부사로 재임하였다. 김씨와 혼인한 지 60년이 되던 1857년에 국왕은 장악원(掌樂院)에 명하여 그의 회혼연(回婚宴)에서 음악을 연주하도록 하고, 탁지부(度支部)에 지시하여 잔치비용을 지급하도록 했으며, 관원을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문과에 급제한 지 60년이 지난 1862년에 국왕은 그에게 궤장(几杖, 의자와 지팡이)을 하사하고 회방홍패(回榜紅牌, 홍패는 붉은 종이에 쓴 증서라는 뜻으로 문무과거 합격자에게 발급하던 일종의 합격증이다.)를 발급하였는데, 이 홍패가 현재 그의 후손가에 소장되어 있다. 홍패를 발급한 것은 이원익(李元翼) 이후 처름 있었던 일로 알려져 있다.

현종이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경석(李景奭 1595~1671)에게 내린 하사품 궤장/ⓒ경기도박물관

그런데 이보다 10년 전인 1852년에 정원용은 나이가 70세가 되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 기로연을 베풀었다. 그는 관례에 다라 사직상소를 올렸으나 허락을 받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로부터 다시 20년 후인 1872년에 90세가 되자 그는 구순연을 크게 열었다. 고종은 "영부사가 올해 90세가 되었다. 대관(大官)으로 이 나이에 이른 인물은 국조 이래 불과 서너 명밖에 되지 않으니, 이것이 어찌 한 집안만의 경사이겠는가? 또한 태평한 시절의 상서로운 징조이다"라고 말했다.

 

비록 지금에 와서는 회갑을 맞이하는 일은 어찌보면 거의 당연시 되는 시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일생에서 고종명을 누린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회갑을 맞이하기도 어렵던 시절에 심액과 정원용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복록을 모두 누린 행운의 인물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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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양반들은 집안 관리에 매우 엄격하였다. 자칫 잘못하면 그동안 조상들이 힘서 쌓아 놓은 명성이나 재산을 하루아침에 잃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집안 관리는 언제나 자신에 대한 가혹한 수신(修身)에서 출발하였으며, 사치를 금하고 모든 것을 절약하도록 하였는데, 조선시대 사람들이 남긴 가훈이나 유서 등을 통해 그들의 생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다음은 윤선도(尹善道, 1587~1671)가 그의 아들 윤인미(尹仁美, 1607~1674)에게 준 가훈의 내용이다.

의복과 안장(鞍裝) 및 말(馬) 등 무릇 자신을 사치스럽게 치장하는 모든 낡은 습관을 바꾸고 폐단이 없도록 하라! 식사는 배고픔을 면하면 족하고, 옷은 몸을 가리면 충분하며, 말은 내가 직접 걷지 않을 정도로 허약하지 않으면 되고, 안장은 튼튼하면 그만이며, 그릇은 적절히 쓸 수 만 있으면 좋다.

부유하게 살던 조선시대 양반들 사이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안장에 잘 달리는 말을 타려 하며 울긋불긋 사치스러운 옷을 입으려는 충조가 크게 성행하였다. 그래서 윤선도는 가훈의 첫머리에서 자신의 후손들에게 절대로 이러한 행위를 하지 않도록 지시했다.

 

풍류와 사치를 즐기다 보면 조상들이 힘써 모은 재산이 흩어지기 마련이었으며, 결국 전답과 가옥을 모두 팔고 다른 고장으로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고장으로 이사하게 되면 자연 피붙이들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고,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다 보면 남남이 되기 마련이었다. 이러한 일은 종통(宗統)을 부정하고 제사를 끊어 버리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에 조상이 물려준 토지와 노비 및 가산(家産)을 어떻게 해서든 지키려고 노력했다. 가난해져서 부득이하게 토지와 노비 등을 방매할 경우가 되더라도 피붙이에게 팔아서 다른 사람이 조상의 집에 살거나 조상의 땅을 갈아먹지 못하게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경상도 안동에 살았던 이우양(李遇陽)이 1452년에 그의 자녀에게 재산을 분배하면서 당부한 말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자자손손에게 유서를 남기는 뜻은 다음과 같다. 내가 이웃집 자손을 보니 자기 조상이 고생하며 경영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전택(田宅)을 모두 팔아 치우고 다른 지방으로 이사하여 남이 그 집에 들어와 살고 그 토지를 경작하니, 이는 종통 (宗統)을 뒤엎고 제사를 끊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 상서롭지 못함이 이보다 큰 것이 있겠는가? -중략- 바라건대 너희들은 무릇 내가 전하는 적지 않은 조사으이 토지와 노비 및 가재(家財) 등을 자자손손에게 영원히 전달하여 잃지 않도록 하여라. 만일 가난해져서 이를 팔아먹게 되더라도 너희들의 동종족류(同宗族類)에게 팔고, 남이 내 집에 들어오고 내 토지를 갈며 내 재물을 사용하지 않게 한다면 이보다 더 다행스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

이우양이 후손에게 당부한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사람들은 조상의 제사가 끊어지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였다. 불효 중에서도 이것이 가장 큰 죄목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사실 재산 관리에 대해 관심을 쏟았던 중요한 이유도 바로 이 제사를 제대로 이어 가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사실은 전라도 부안현에 세거하던 부안김씨 김명열(金命說, 1613~?)이 자신의 후손에게 남긴 글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내가 일찍이 살펴보니, 다른 집안의 사위와 외손들이 제사를 서로 미루다가 빼먹는 경우가 많았다. 또 비록 제사를 지낸다고 해도 제물을 정결하게 마련하지 못하고 예(禮)를 정성과 경외(敬畏)의 마음 없이 행하니 글허게 제사를 받들 바에야 차라리 지내지 않는 것이 나을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일찍이 이 일을 아버지께 아뢰어 정하고 또 우리 형제들이 충분히 논의하여 결정하였으니, 이제부터는 제사를 결단코 사위나 외손의 집에 윤행시키지 말라. 그리고 이를 정식으로 삼아 대대로 준행(遵行)하도록 하라.

김명열의 당부에 의하면, 제사를 이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제물을 장만하는 정성과 제사를 받드는 경외심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성이 다른 외손이나 사위가 제사를 제대로 받들 리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김명열은 만일 친손(親孫)이 가난해서 제사를 받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절대로 이를 사위나 외손에게 돌리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김명열이 생존했던 당시까지만 해도 종법(宗法)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여 친손과 외손들이 제사를 돌려 가며 지냈다.

김명열의 '전후문기(傳後文記)' 김명열이 1669년에 작성하여 그의 후손들에게 준 문서로, 그는 이 문서에서 자신의 후손들이 지켜야 할 재산 분배와 제사 봉행에 대한 일종의 지침을 내리고 있다. 조선 중기에 변화해 가는 재산 분배와 제사 봉행의 관행을 엿볼 수 있다./ⓒ한국학자료센터

가장(家長)이 가정의 모든 일을 주관하였지만, 실제로 집안일을 처리하는 사람은 사내종과 계집종이었다. 사내종은 농사를 짓고 땔감을 마련하는 등 노동력이 필요한 집안의 대소사를 도맡아서 처리하였다. 이에 비해 계집종은 물 긷고 빨래하는 일을 비롯하여 길쌈 등 가정의 소소한 일 등을 책임져야 했다. 이와 같이 사내종과 계집종이 집안의 모든 일을 처리했기 때문에 그들은 불만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가장이 이들의 불만을 어떻게 해소시켜 주느냐에 따라서 집안의 성쇠(盛衰)가 달려 있었다. 충청도에 거주하던 이유태(李惟泰, 1607~1684)는 자신의 후손들에게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당부하였다.

옷과 음식을 춥고 배고프지 않게 한 다음에 농사일이나 길쌈하는 일을 하도록 하며, 태만하고 게으름을 피우면 스스로 부지런히 일하도록 유도한다. 비록 잘못이 있더라도 덜컥 매질부터 해서는 안 되고 먼저 잘 타일러 가르칠 것이며, 그래도 듣지 않으면 두세 가지 죄를 합하여 다스리는 것이 좋다. 만약 거칠게 성내고 형벌을 지나치게 하여 도리어 원망하고 배반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거나, 혹은 다치거나 죽게라도 한다면 그 후회가 미칠 바가 없을 것이다.

이유태는 노비들을 부릴 때 먼저 옷과 음식을 춥고 배고피지 않게 줄 것을 강조하고 있다. 노비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이 춥고 배고프면 자연히 일을 하지 못하기 대문에 옷을 따뜻하게 입혀 주고 배부르게 먹일 것을 당부했다. 잘못이 있더라도 곧바로 처벌하지 말고 타일러서 가르치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을 경우 두세 가지 죄를 아울러서 처벌하되 가혹하게 처벌하지 않도록 권유하고 있다. 그는 모든 하인에게 한 달에 3일의 휴가를 주도록 당부하기도 하였다.

 

노비 중에서도 호노(戶奴) 혹은 수노(首奴)는 특별히 대우를 할 것을 당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호노는 집안에서 거느리는 모든 노비의 우두머리로, 상전을 대신해서 관아에 나아가 소송을 제기하고 토지와 노비를 매매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체면상 관아에 출입하거나 직접 나서서 상거래를 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호노가 이를 대신하였다. 또 관에 세금을 납부하고 환곡을 타거나 갚을 때에도 호노가 이를 도맡아서 처리하였다. 따라서 호노는 가노(家奴) 중에서 글자를 알고 사리 판단이 정확한 사내종으로 선정하였다. 위에서 소개한 윤선도는 볼길도와 해남 일대를 개간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에서 호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체엄했다. 그래서 그는 후손들에게 가훈을 내리면서 호노에 대해서도 특별히 언급하였던 것이다.

큰 힘을 들이는 일이 아닌, 기타 사소한 잡일과 통상적인 심부름은 오로지 집안의 다른 노비들에게 맡기고 호노를 부리지 말아서 그가 넉넉하고 여유 있는 생활을 하도록 해 주어라. 스스로 힘써 사는 즐거움을 누리게 하고, 동네 사람들이 종종 부려먹는 일은 더욱 못하게 하라.

조선시대 양반들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집안 관리에 철저하였다. 재산과 제사를 관리할 때에는 언제나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살피고 배려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배부름을 구하지 않고 사치를 멀리했으며, 편한 것을 추구하려 하지 않는 등 집안 관리는 '자기 관리(修身))'로부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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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2140호 데니 태극기 정면/ⓒ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2140호 데니 태극기 반대면/ⓒ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2140호 '데니 태극기'는 1886년부터 1890년까지 고종의 외교 고문을 지낸 미국인 데니(Owen N. Denny, 1838~1900)가 1890년 5월 청의 미움을 받아 파면되어 미국으로 돌아갈 때 고종으로부터 선물로 하사 받아 가져간 것으로, 데니가 1900년 자식이 없이 죽은 후 다른 가족에 의해 보관되어 오다가 1981년 데니의 후손인 윌리엄 랠스턴(William Ralston)이 우리나라에 기증하면서 국내로 돌아왔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태극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추정되는 유물이다. 이 태극기에서 특이한 것은 태극기의 태극 문양과 태극기를 게양할 때 매달기 위한 끈의 위치인데, 태극 문양은 비슷한 시기 만들어진 다른 태극기와 비교했을 때 4괘의 위치와 태극문양이 차이가 있는데, 이는 태극 문양 박음질을 하면서 실수로 좌우를 바꿔 뒤집은 모양으로 박음질 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또, 태극기를 매다는 끈의 위치가 우측에 있는 것은 당시 글을 쓰는 방향이 우측에서 좌측으로 쓰던 관습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당시에는 태극기를 국기봉에 매달 때 우측 부분을 매달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86년부터 1890년까지 고종의 외교 고문을 지낸 데니(Owen N. Denny, 1838~1900)는 한자식 이름으로 덕니(德尼)라고 불렀다. 미국 오하이오주의 모르간 카운테에서 출생하였으며, 오리건주에서 성장하였다. 레바논 아카데미를 거쳐 윌리엄에테 대학에서 법학 공부 후 1862년 변호사가 되어, 1868년까지 와스코 카운티의 판사를 역임, 1870년에서 1874년까지 오리건주의 포틀랜드에서 즉결 심판소 판사를 지냈다. 1876년부터 1877년까지 오리건과 알레스카에서 정부의 세금 징수관을 역임하다 같은 해 청나라 천진(天津) 주재 미국영사 1880년 상해(上海) 주재 미국영사로 재직하였으며, 1886년 청나라 정치인 이홍장(李鴻章·1823~1901)의 추천으로 조선 정부의 외교 및 내무 담당 고문으로 부임하였다. 그는 외교고문을 지내는 동안 '청한론(淸韓論, China and Corea)' 저술을 통해 근대 국제법 이론에 근거하여 조선이 청에 속한다는 속방론을 부정하고 조선에 대한 청의 간섭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조선은 엄연한 독립국이라고 주장한 인물이다. 데니가 쓴 '청한론'은 총 47쪽으로 구성되었으며, 크게 3가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첫째, 서구의 국제법적 이론을 토대로 조선이 독립국임을 밝혔으며, 청의 조선 속방론과 내정간섭을 부정. 둘째, 원세개(袁世凱, 위안스카이 1859~1916, 청나라의 북양군(北洋軍)에 기반을 둔 중국의 군벌 세력 수장이며, 중국 역사상 최악의 배신자로 알려진 인물)의 비리를 폭로. 셋째, 통치권자로서 고종의 능력을 높게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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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86호 '개성 경천사 터 십층석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6호 '개성 경천사 터 십층석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6호 '개성 경천사 터 십층석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6호 '개성 경천사 터 십층석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6호 '개성 경천사 터 십층석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6호 '개성 경천사 터 십층석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6호 '개성 경천사 터 십층석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6호 '개성 경천사 터 십층석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6호 '개성 경천사 터 십층석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6호 '개성 경천사 터 십층석탑(1962 지정, 開城 敬天寺址 十層石塔)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 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국문화재 수난사를 대표 한다고 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재로 1907년 순종의 가례에 일본 특사로 온 궁내대신 다나카 미스야키(田中光顯)가 주민들과 당시 군수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한밤중 밀반출이라는 불법 약탈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에 '대한매일신보'는 10여차례 이상의 기사와 논설로 석탑 약탈에 대한 불법성을 알리게 되고, 다행히도 '코리아 리뷰(Korea Review)'의 발행인인 미국인 헐버트(Homer B. Hulbert)와 '코리아 데일리 뉴스(Korea Daily News)'의 발행인인 영국인 베델(Ernest T. Bethell)의 지속적인 기고를 통해 결국 계속되는 반환 여론을 조성하게 되었고, 1915년 11월 15일 국내로 반환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적인 문제로 재건은 보류되었고, 40여년 간 경복궁 회랑에 보관되어 오다 1962년 비로소 국보 86호로 지정되고,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 용산 재개관에 맞추어 현재의 전시실에 석탑의 불법 반출 이후 100여년 만에야 비로소 재조립 되어 웅장한 위용을 다시 드러내게 됩니다.

경천사 10층석탑 구조 설명/ⓒ기호일보

석탑의 제1층 옥신 이맛돌에 조탑명(造塔銘)이 새겨져 있으며 '지정 8년(至正八年)'이라는 기록을 통해 고려 충목왕 4년(1348년)에 석탑이 건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당시의 정치적 환경으로 말미암아 중국탑의 영향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신라시대의 석탑 양식을 이어 평면 사각형의 석탑 또는 새로운 양식으로 다각(多角) 석탑이 나타나는데, 이런 것과 달리 특수한 형태를 보이는 것이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입니다. 평면과 부재의 구조 등에서 각기 특수한 양식을 보여주고 전체의 균형이 아름다워 주목되는 탑이며, 기단 평면은 아자형(亞字形)으로 3단을 이루고 있으며, 탑신부는 1, 2, 3층이 기단과 같은 평면이지만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좁아지고, 4층부터는 탑신이 사각형을 이루었는데 층마다 옥신(屋身, 층과 층 사이를 이루는 몸돌) 밑에는 난간을 돌리고 옥개(屋蓋) 밑에는 다포집 양식의 두공(枓栱, 전통적인 목조건축에서 처마를 받들기 위해 기둥 위에 복잡하게 엮은 일종의 결구물) 형태를 조각하였습니다. 윗면에는 팔작지붕 형태의 모양과 기왓골이 표현되어 있으며, 기단과 탑신에는 불, 보살, 인물, 용, 천부(天部, 불상의 분류에서 여래, 보살, 명왕에 이어서 최하위에 놓여진 존상의 총칭으로, 제천부, 천이라고도 한다.) 등이 빈틈없이 조각되어 장식이 풍부하고 조각수법이 상당히 정교한데, 이런 형태의 석탑이 조선시대 초기에 다시 나타나기는 하였지만 유례가 없는 희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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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1677호 원교 이광사 서첩 '원교법첩'/ⓒ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77호 원교 이광사 서첩 '원교법첩'/ⓒ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77호 원교 이광사 서첩 '원교법첩'/ⓒ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77호 원교 이광사 서첩 '원교법첩'/ⓒ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77호 원교 이광사 서첩 '원교법첩'/ⓒ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77호 원교 이광사 서첩 '원교법첩'/ⓒ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77호 원교 이광사 서첩 '원교법첩'/ⓒ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77호 원교 이광사 서첩 '원교법첩'/ⓒ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77호 '원교 이광사 서첩 원교법첩'은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 712~770)의 시를 쓴 것으로 모두 20장 40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쪽의 25면은 밝은 옥색 비단, 중간의 9면은 옅은 옥색 비단에 먹으로 씌어 졌다. 뒤쪽의 6면은 검은 비단에 금니(金泥, 금박이나 금가루를 아교에 풀어 만든 안료)로 씌어 졌다. 가장 위의 것은 두보의 시 '동정호를 지나며(過洞庭湖)'를 전서(篆書, 한자의 고대 서체 중 하나로 갑골문에서 변형 발전 된 초기 형태의 서체)로 쓴 것이다. 이 외에도 모두 18수의 오언시(五言詩)를 담고 있으며, 전서를 비롯해 해서, 행서, 초서, 예서 등의 다양한 서체로 씌어 있다. 이 서첩을 통해 조선 후기 서예가인 이광사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는데, 특히 서첩의 글씨 중에 중국 전서 비석 '형산비(衡山碑, 우비禹碑, 우왕비禹王碑 등으로 불린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떨리는 듯한 필획의 감각적 표현은 두보의 시와 어우러져 보다 운치 있고, 마치 서체가 아닌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크기

가로 23.3cm X 세로 35.2cm

이광사(李匡師, 1705~1777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원교圓嶠 또는 수북壽北, 예조판서를 지난 진검眞儉의 아들이다.)는 조선후기 서화가로, 한석봉(韓石峯)으로 잘 알려진 한호(韓濩, 1543~1605) 이후 조선적인 글씨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 서예가이자 화가였다. 대표작으로 행서4언시(行書四言詩, 서울대학교 박물관), 1746년(영조 22) 오대(五代, 중국 당나라 말기에서 송나라 초기의 기간에 흥망한 나라들로 후량, 후당, 후진, 후한, 후주를 가리킨다.)의 인물화가 왕제한(王齊翰)을 임모하여 그렸다고 하는 '고승간화도(高僧看畫圖, 간송미술관), '산수도(山水圖, 국립중앙박물관) 등이 있으며, 서예의 이론을 체계화시킨 '원교서결(圓嶠書訣)'과 '원교집선(圓嶠集選)' 등의 저서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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