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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매직 렌탈 제휴 카드 중 최대 할인구간을 제공하는 LOCA 롯데카드가 출시되었네요
기존 스페셜 롯데카드, 삼성카드, 광주은행 KJ카드 등 120만원 카드사용 실적 구간의 렌탈료 할인금액이 최대 23,000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000원이 늘어난 25,000원까지 할인 혜택이 주어지는데요,
이는 렌탈 브랜드 중 LOCA 롯데카드 제휴할인 중 현재까지는 가장 큰 금액으로 확인되고 있답니다.
그런데 말이죠...

11월 12월 두 달간 SK매직 LOCA 프로모션으로 2,000원 할인이 추가로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
단, 추가 할인 실적 구간은 30만원~69만원 카드 사용 실적 구간만 해당되고 기본 할인 13,000원 + 추가 할인 2,000원
이렇게 하면 매월 30만원 이상만 카드를 사용해도 매월 60개월간 총 15,000원의 렌탈료 청구 할인 혜택을 받아볼 수 있어요!
60개월로 계산하면 무려 900,000원이라는 큰 금액을 할인받는 셈이 된답니다.

※추가 할인 프로모션은 보통 2개월 단위로 새롭게 적용되거나 없어질 수도 있으니 꼭 유의하세요.

만약 월 렌탈료가 29,900원인 정수기를 렌탈한다고 가정할 때 30만원~69만원의 카드 사용실적이 있다면 월 14,900원으로 사용하게 되는 셈이므로 혹시라도 카드 사용실적이 이 구간에 많은 분들이라면 적극 활용하시면 좋을 듯해요~!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이어지니 확인하세요~!
 

SK매직 X LOCA 롯데카드

SK매직 X LOCA 롯데카드/SK매직샵

 
SK매직 X LOCA  기본 할인
전월실적 30만원 이상 : 13,000원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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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매직 X LOCA 롯데카드 프로모션
 
전월실적 30~69만원 이용구간 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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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탈료 자동이체 결제가 된 월부터 카드 유효기간까지 제공

 
기본 할인 및 추가할인 금액을 보다 알기 쉽게 표로도 확인해 보세요~!
또 참고로 제휴카드 기본 할인 및 추가할인 금액과 조건은 카드 발급 시 보다 정확하게 확인하시고 사용하시는 것이 좋아요. 간혹 생각과 다른 부분들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인데요, 그리고 꼭 유의해야 하는 부분은 제휴카드는 발급 후에 반드시 해당 카드로 결제 방법을 변경해야만 정상적으로 할인을 받아볼 수 있으니 꼭 유의하시길 바랄게요!
 

기본 할인 한도추가 할인 한도최대 할인 한도
지난달(1일~말일)
카드 이용 실적
6이번달(1일~말일)
렌탈료 할인 한도
지난달(1일~말일)
장/단기카드 대출 이용 잔액
이번달(1일~말일)
렌탈료 할인 추가 한도
이번달(1일~말일)
렌탈료 할인 최대 할인 한도
30만원 이상13,000원300만원 이상2,000원15,000원
70만원 이상16,000원-16,000원
150만원 이상25,000원-25,000원

 
 
보다 자세한 SK매직 제휴카드 할인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s://www.skmagicshop.com/bbs/board.php?bo_table=notice&wr_i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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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매직 제휴카드 할인SK매직 제휴카드로 렌탈료를 결제하면매월 최대 2만5천원까지 렌탈료 추가 할인 혜택!※제휴카드 프로모션은 카드사 사정 및 발급 시점에 따라 일부 변동이 있을 수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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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전통적인 가훈(家訓)은 집안어른이 자녀 또는 후손들에게 주는 가르침, 교훈을 일컫는 것으로써, 대체로 수신제가(修身 齊家), 즉 처세와 때로는 평천하(平天下)에 이르는 치인(治人)의 도리를 중심으로 생활문화 전반에 걸친 규범과 지침들을 간단명료하게 조목으로 나열,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이 남성 중심적인 내용들이었다.
그러다 17세기 이후에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가훈서들도 나타나게 되는데, 바로 여훈(女訓)과 계녀서(戒女書)이다. 이는 보다 구체적인 여성 교육서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나타난 것으로, 당시는 부덕이 높은 여성이 가문 영달의 밑거름이자 가문을 빛낼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여성의 부덕은 그 가문의 명성과 가풍을 전하는 것으로도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우암선생계녀서/ⓒ우리역사넷

 
따라서 가훈서와 여훈서의 목차를 비교해 보면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부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훈서에는 일반가훈과 마찬가지로 가족관계, 교육, 조상 섬기기, 아랫사람 대하기 등 유교가 추구하는 실천윤리가 모두 포함된다. 여기에 더하여 여훈서는 여성의 역할과 관련된 시부모 섬기기와 남편 섬기기가 추가되고, 남성의 사회적 관계를 뒷받침하는 역할이 부여되며, 남녀가 각각 힘써야 할 본업에 대해서도 다르게 규정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여훈, 계녀서로는 이황(李滉, 1501~1570)의 <규중요람(閨中要覽)>,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昭惠王后, 1437~1504)가 왕실의 비빈(妃嬪)을 훈육하기 위해 엮은 <어제내훈(御製內訓>,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계녀서(戒女書)> 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저자가 알려진 사대부의 여훈서로 한원진의 <한씨부훈(韓氏婦訓)>, 권구의 <내정편(內政篇)>, 조관빈의 <계자부문(戒子婦文)>, 조준의 <계녀약언(戒女略言)> 등이 있고, 작가 미상의 <규중요람> <규범> <여자계행편> 등이 있다.
 
이러한 사대부가의 여훈서는 대개 '사부모(事父母 부모를 섬기는 도리), 사구고(事舅姑 시부모님을 섬기는 도리), 화형제(和兄弟 형제 사이의 우애를 밝히는 도리), 목친척(睦親戚 친척과 화목하게 지는 도리), 교자녀(敎子女 자녀를 교육하는 도리), 봉제사(奉祭祀 제사를 받드는 도리), 접빈객(接賓客 손님을 접대하는 도리), 어노비(御奴婢 종을 다스리는 도리), 음식의복(飮食衣服 음식과 의복 만드는 도리), 절검(節儉 절약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는 도리), 근면(勤勉 부지런하게 힘쓰는 도리), 불투기(不妬忌 투기하지 않는 도리), 수신(修身 마음과 몸을 닦아 수양하는 도리), 신언어(愼言語 말을 조심하는 도리)' 등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목차와 내용은 매우 상세한 것으로, 여성의 삶을 시집살이 중심으로 구조화하고 제가(齊家 집안을 바르게 다스리는 일) 중심의 기능적 여성상을 강조하는 한편 불투기와 정절을 강조하고 있다.
 

국보 송시열 초상/ⓒ국립중앙박물관

 
대표적으로 송시열의 <계녀서>는 출가하는 딸에게 교훈으로 삼게 하기 위해 지어준 글로 한글로 되어 있는데, '부모 지아비 시부모 섬기는 도리, 형제간, 친척 간에 화목하는 도리, 자식 가르치는 도리, 제사 받들고 손님 대접하는 도리, 투기하지 않는 도리, 말을 조심하는 도리, 재물을 절제 있게 쓰는 도리, 일을 부지런히 하는 도리, 병환을 돌보는 도리, 의복과 음식을 만드는 도리, 노비 부리는 도리, 재물을 빌려 주고 되돌려 받는 도리, 팔고 사는 도리' 등  선인들의 선행 등 20여 조목으로 되어 있다. 이들 내용은 조선시대의 사대부가 부녀자들의 행동에 관한 사회적 규범을 보여 주는 것으로 여성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다음으로 우암의 제자이면서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으로 저명한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 1682~1751)의 <한씨부훈( 韓氏婦訓)-남당선생문집 권26, 잡저>은 1712년(숙종 38)에 부녀자에게 교훈이 될 만한 것을 내용으로 하여 지은 10장 34쪽의 책이다. 이 자료는 한원진이 시집간 누이의 요청에 따라 성현의 말씀 가운데 부인의 행실과 일상적인 가정생활에 절실한 내용을 '부모, 남편 섬기기와 형제자매, 며느리, 첩, 비복 등을 대하는 법도를 비롯하여 집안일 다루기, 접빈과 봉제사 등'의 총 11장으로 구성한 것으로, 주로 <소학(小學)-1187년 완성된 송나라 유징이 지은 수양서>과 <격몽요결(擊蒙要訣)-학자 이이가 1577년 간행한 아동 유학입문서> 에서 발췌하였으며 여훈서에서 다루는 정형화된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씨부훈>의 특징은 집안의 성쇠가 부인의 행실에 달려 있고 그것은 교육에 달려 있다고 전제하여 며느리 교육을 항목에 포함시킨 점, 아동 교육의 중요성과 아동 교육의 담당자로서 어머니의 역할을 강조한 점이라 할 수 있다.
 
이밖에 박윤원(朴胤源, 1734~1799)의 <가훈(家訓)-근재집(近齋集), 권23~24 잡저>은 부인에게 내린 경계와 질부 박종경(朴宗慶) 처에게 준 8가지 경계로 딸, 측실, 노비 등을 경계한 글이다. 신기선(申箕善, 1851~1909)의 < 가훈(家訓)-양유원집(陽園遺集) 권14>도 '내칙(內則)'이라 하여 부모 섬기기, 봉제사, 부부 형제 관계, 아들 가르치기, 종족과 노비 관련 조목, 그리고 복식까지를 다루고 있다. 박필주(朴弼周)의 <계유가중(戒諭家衆)-여호집(黎湖集 1744>은 특별하게 노비들을 대상으로 한 경계로서 상전을 모시는 법, 속이거나 탐하는 마음 없애기, 언행과 음주에 대한 조심 등의 8조목을 수록한 흥미로운 자료이다. 노비 관련 모목이 강조된 가훈으로 권호문(權好文, 1532~1587)의 <가잠(家箴> '사노비(使奴婢), 강덕준(姜德俊, 1607~1668)의 <우곡선생훈자격언(愚谷先生訓子格言)> '어비복(馭婢僕)' 박윤원(朴胤源, 1734~1799)의 <가훈> '계노비문( 戒奴婢文)', 이경근(李擎根, 1824~1889)의 <고암가훈(顧菴家訓)> '사비복(事婢僕)' 등이 있다.
 

[내용 출처 : 전통사화와 생활문화(이해준 정승모 전경목 송찬섭 공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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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귀형문전(鬼形文塼)/ⓒ국립중앙박물관
보물 귀형문전(鬼形文塼)/ⓒ국립중앙박물관
보물 귀형문전(鬼形文塼)/ⓒ국립중앙박물관
보물 귀형문전(鬼形文塼)/ⓒ국립중앙박물관
보물 귀형문전(鬼形文塼)/ⓒ국립중앙박물관
보물 귀형문전(鬼形文塼)/ⓒ국립중앙박물관

보물 귀형문전(鬼形文塼, 도깨비 문양 벽돌)은 충청남도 부여군 외리의 옛 절터에서 발견된 8종의 백제시대 무늬 벽돌 중 하나로써, 연화대(蓮花臺, 연꽃 모양으로 만든 불상의 자리) 위에 정면으로 서 있는 도깨비 형상이 새겨져 있으며, 약간 연질로 구워진 것이 특징이다. 대각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는 것 처럼 몸의 크기에 비해 머리 부분이 크게 묘사되어 있으며, 벌거벗은 상태에서 허리에는 과대(銙帶)가 둘러져 있는데 대금구(帶金句, 띠꾸미개, 금속제 허리띠)와 대선금구(帶先金具, 띠고리의 반대쪽 끝에 달린 장식)가 잘 표현 되어 있다.

크게 부릅뜬 눈과 정면을 향해 포효하듯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면서 양팔을 벌리고 서 있는데, 덥수룩한 수염과 양어깨에 휘날리는 갈퀴, 그리고 양손과 발도 날카롭게 표현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이런 문양전의 성격이나 제작기법은 대체로 중국 남조(南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 남조시대의 유물 중 동진(東晉) 영화4년(永和四年, 348)의 명문(銘文)이 있는 중국 난징(南京) 출토 전과 신녕전와창제1호묘(新寧塼瓦廠第一號墓)의 와전(瓦塼)과 매우 깊은 관련을 보여 준다.

 

반대로 일본의 나라(奈良) 난호케사(南法華寺)에 소장되어 있는 벽전(壁塼)과 오카사(岡寺) 출토 봉황문전(白鳳時代, 1변 39㎝, 두께 8.8㎝) 등은 백제 문화와 관련되어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을 보여 준다.

 

[함께 보기 : 산수귀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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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혼천의(渾天儀)/ⓒ국립중앙박물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혼천의(渾天儀)/ⓒ국립중앙박물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혼천의(渾天儀)/ⓒ국립중앙박물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혼천의(渾天儀)는 전통적으로 가장 중시되어 온 천문의기(天文儀器)의 하나로 일명 혼의(渾儀), 혼의기(渾儀器), 선기옥형(璇璣玉衡)이라고도 한다. 고대 중국의 우주론인 혼천설(渾天說, 하늘이 땅을 둘러싸고 있어 마치 새알의 껍질이 노른자위를 싸고 있는 것과 같다고 믿는 우주관)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천체 관측 기구이며 서기전 2세기경 처음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후기에서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만들어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나 기록에 의하면 1432년(세종 14)에 예문관제학 정인지, 대제학 정초 등이 왕명을 받아 고전을 조사하여, 중추원사 이천, 호군 장영실 등이 1433년 6월에 최초로 제작한 것으로 나온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나무 혼천의가 원형 고리를 대나무로 제작한 것에 비해 본 혼천의는 원형의 고리를 포함 모두 목제로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십자형 받친대 밑면에 "制氶 辛未 十二月 十一 日" 이라는 묵서(墨書)가 있어 이 묵서를 근거로 본 혼천의가 1871(고종 8)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교육적 효과를 얻기 위해 28수 별자리 배열을 강조하는 등 실제 천체관측을 위해 사용한 혼천의와는 구성이 다르며, 별자리와 방위까지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실제 관측보다는 교육을 위한 기자재로 제작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혼천의는 구조는 세겹의 동심구면으로 되어 있는데, 제일 바깥층에서 중심으로 지평환(地平環), 자오환(子午環), 적도환(赤道環) 등 세 개의 환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평환은 지평에 평행하며 천구를 상하로 나누고, 자오환은 천구자오선과 일치하는 대원(大圓)을 이루고, 천구북극, 천정, 천구남극 등이 이 대원상에 있어 지평환과는 지평에서 직각으로 만난다. 적도환은 천구적도와 일치하는 환으로서 자오선과는 직교하나 지평환과는 엇비슷하게 만난다.

 

이들 세 개의 환이 교착되어 그곳에서의 천구를 알 수 있고, 천구의 상하와 사방을 추측할 수 있다고 하여 이 환들을 육합의(六合儀)라고 한다. 가운데 층은 황도환(黃道環)과 백도환(白道環)으로 구성되어, 해와 달 그리고 별을 관측할 수 있다. 따라서, 가운데 층을 삼진의(三辰儀)라 하는데 여기서 황도는 태양의 길, 백도는 달의 길을 의미한다.

 

안쪽 층은 적경쌍환(赤經雙環), 극축(極軸), 규관(窺管)으로 구성되며, 망원경과 같이 천체를 관측하는 규관을 통하여서는 동서남북 사방을 볼 수 있으므로 사유의(四遊儀)라 한다. 이들 각 층의 각 환에는 필요한 수의 눈금을 표시하여 정확하게 관측하였다.혼천의는 아침, 저녁 및 밤중의 남중성(南中星), 천체의 적도좌표 · 황도경도 및 지평좌표를 관측하고 일월성신의 운행을 추적하는 데 쓰였다.

 

전체너비 36.5cm X 전체높이 4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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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618-6호 국새 제고지보(制誥之寶)/ⓒ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1618-6호 국새 제고지보(制誥之寶)/ⓒ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1618-6호 국새 제고지보(制誥之寶)/ⓒ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1618-6호 국새 제고지보(金製制誥之寶, 금제 제고지보)는 1897년 고종에 의해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만든 국새(國璽) 10과 중 하나로 황제의 명령을 백성에게 알리는 문서나 고급 관원을 임명할 때 사용한 것으로 대한제국기 황실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물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조선왕실의 어보가 거북이 모양의 귀뉴를 사용했던 것과 달리 중국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용모양을 한 손잡이인 용뉴와 얕은 받침인 유대, 글자가 쓰인 보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신에 쓰인 글자인 '제고(制誥)'라는 말이 '황제의 명령'을 뜻하는 것으로, 곧 이 국새는 조선왕실이 아닌 황제로 칭한 대한제국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던 국새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제고지보는 한일강제병합이 이뤄지고 6개월 후인 1911년 일제에 의해 약탈되어 일본 궁내청으로 들어갔다가 광복 후인 1946년 8월 15일 미군정이 궁내청으로 들어간 국새를 환수해 중앙행정기관이었던 총무처로 인계하였는데, 안타깝게도 6.25전쟁을 거치며 행방이 모연하게 된다. 그러다 다행히도 1954년 경남도청 금고에서 제고지보가 발견되어 현재에 이르게 된다.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칙명지보', '대원수보'와 함께 보물로 지정되었다.
 
크기
가로 11.1cm X 세로 11.1cm
 
[함께 보기 : 국새 칙명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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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가장 시원하게 마시는 방법은?
얼음물?
근데 왜 지금까지 따로 받았지?
같이 나와야 제일 시원한 거 아니야?
세상 처음, 하나의 코크로 얼음과 물을 한 번에
터치 한 번으로 얼음과 물을 동시에
SK매직 원코크 얼음물정수기
이렇게 당연한 걸, 그동안 얼음 정수기는 왜 못했을까?
-CF 中 송혜교 대사-

 

SK매직 원코크 얼음물정수기

 
SK매직은 직수정수기를 최초로 개발한 후 직수정수기가 그랬듯이 무언가 기존의 틀을 깨기 위한 시도들을 많이 하는 듯하다. 알고 보면 단순하지만, 사람들이 불편했던 것, 한번쯤 생각해 보았을 그런 것들..
직수정수기도 알고 보면 개념은 단순하다. 물론, 순간 온수와 순간 냉수를 만드는 기술이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구조적으로는 그렇다. 예전의 정수기는 모두 정수한 물을 저장하였다가 필요할 때 내보내는 저수탱크가 있는 탱크형 정수기였다. 그런데, 저수탱크 자체가 내부에 숨겨져 있다 보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위생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요즘처럼 스테인리스 재질의 저수탱크가 아닌 물때가 끼기 쉬운 플라스틱 재질인 경우는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점을 거의 완벽하게 해결해주는 방식으로 저수탱크를 없애고, 필터를 통해 바로 물을 내보내 주는 직수정수기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SK매직 원코크 얼음물정수기 설치 모습

위 CF에서 송혜교의 대사처럼 물을 가장 시원하게 마시는 방법은 바로 '얼음물'일 것이다. 그런데 일반 얼음정수기와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코크 하나로 물과 얼음을 동시에 받을 수 있는 것, 그러니까 말 그대로 일반적인 얼음정수기는 아니고, 진짜 얼음물이 나오는 얼음물정수기다. "이렇게 당연한 걸, 그동안 얼음 정수기는 왜 못했을까?"라는 대사처럼 아주 단순한 차이지만 무언가 많이 달라 보인다. 기존에는 얼음물을 마시기 위해 량을 조절해 얼음을 받고, 물을 받는 일을 따로 해야 했지만, 얼음물 정수기는 '얼음물' 버튼이 따로 있어 한 번 터치로 얼음물을 만들어 준다.
또, 코크가 하나인 만큼 기존의 얼음정수기보다 가로 사이즈는 10mm 가량 줄었는데, 얼음 보관량과 제빙량은 더 늘었다.

원코크 얼음물정수기 사이즈 : 가로 245mm X 높이 482mm X 앞뒤 길이(깊이) 515mm

최대 940g의 얼음을 보관할 수 있는 대용량 아이스룸이 들었갔고, 얼음 제빙량은 하루 최대 5,700~6,300g(얼음 약 600알)으로 SK매직의 기존 얼음정수기인 올인원 플러스 얼음정수기(WPU-IAC302) 보다 얼음 보관량은 약 4%, 하루 최대 제빙량은 약 8% 정도 늘어났다. 이 수치는 SK매직에 따르면 1일 약 60잔 이상의 얼음을 받을 수 있는 량이라고 한다.(15˚C 실험환경 조건 당사 TEST 기준/ 얼음 용량 표시 사항은 얼음 탱크 내 만빙센서까지 얼음을 균일하게 채운 당사 테스트 기준으로 실제 얼음 용량은 사용 환경과 탱크 내 얼음이 적재되는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음) 이 정도의 양이면 일반 가정에서는 물론 소규모 사무실에서도 얼음을 부족함 없이 충분히 사용 가능할 듯하다.

SK매직 원코크 얼음물 정수기 1일 얼음 약 60잔 이상

그 밖에도 원코크 얼음물 정수기는 최초 설계에서부터 방문 관리 없이도 사용자 스스로 정수기를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위생과 관련된 기능들이 들어가 있는데, 바로 '스테인리스 직수관'과 '4중 안심케어 기능'이다. 물이 정수기로 유입되어 흘러가 출수되는 곳까지 모든 부분이 일반적인 플라스틱관이 아닌 스테인리스관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별도의 교체를 받지 않아도 물때가 끼일 염려가 적어 보다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으며, 특히 끓인 물에 가까운 약 100도씨의 고온수 기능이 있는 만큼 스테인리스관은 꼭 필요한 장치가 아닌가 싶다. 다음으로 4중 안심케어 기능을 보면 기존의 방문관리를 통해서 케어받을 수 있었던 내부 살균케어를 별도의 방문 관리 없이도 정수기가 스스로 케어할 수 있게 만든 기능들로 아이스룸 케어를 제외하면 기존 '스스로 직수 정수기'와 유사하다.

원코크 얼음물 정수기 스테인리스 직수관

첫 째, 아이스룸을 하루 2번 4시간씩 UV램프로 살균하는 기능이다. 이 기능은 SK매직 얼음정수기에서 많이 사용되었던 부분으로 별도의 화학적인 약품을 사용하지 않고도 UV 램프를 통해 99% 이상 안전하게 살균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이스룸 UV 살균케어

둘 째, 외부에 노출되어 있어 음료 등이 튀어 가장 오염에 취약한 코크 살균 기능이다. 이 기능도 마찬가지로 SK매직 직수정수기를 비롯해 많은 정수기에 도입된 기능으로 2시간마다 UV 램프를 통해 살균이 이루어 진다.

코크 UV 살균케어

셋 째, 직수관 전해수 살균 기능으로 물이 흐르는 직수관을 전해수(전기 분해 살균 수)를 이용해 5일마다 자동으로 살균 및 클리닝 한다.

직수관 전해수 살균케어

넷 째, 직수정수기도 직수관에는 물이 항상 일부 남아있게 되는데, 당연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선함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2시간마다 직수관에 남아 있는 물을 순환시켜 빼준다.

직수관 자동배수 유로 순환케어

이상으로 원코크 얼음물 정수기에 적용된 주요 특징에 대해 알아봤는데, 마지막으로 꼭 언급해야 하는 부분이 빠져 추가하면 바로 1년에 한 번, 얼음과 관련된 부품들을 무상으로 교체(렌탈 시만 적용)해 준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기존 얼음정수기들도 마찬가지인데, 상품 소개에서는 그다지 부각되지 않은 부분이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교체가 이루어지는 부품 종류는 아래 내용과 같다.

1년 1회 얼음 관련 부품 7종 무상 교체

 

아이스룸 4종 부품 무상 교체

토출구 3종 부품 무상 교체

 
 
[내용 및 이미지 출처 : SK매직샵]

SK매직샵™ SK매직공식렌탈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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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상감 모란무늬 매병(靑磁 象嵌牡丹文 梅甁)/ⓒ국립중앙박물관
청자 상감 모란무늬 매병(靑磁 象嵌牡丹文 梅甁)/ⓒ국립중앙박물관
청자 상감 모란무늬 매병(靑磁 象嵌牡丹文 梅甁)/ⓒ국립중앙박물관
청자 상감 모란무늬 매병(靑磁 象嵌牡丹文 梅甁)/ⓒ국립중앙박물관
청자 상감 모란무늬 매병(靑磁 象嵌牡丹文 梅甁)/ⓒ국립중앙박물관
청자 상감 모란무늬 매병(靑磁 象嵌牡丹文 梅甁)/ⓒ국립중앙박물관

 

높이 34.5cm, 입지름 5.8cm, 몸통지름 21.2cm 크기의 보물 제346호 청자 상감 모란무늬 매병(靑磁 象嵌牡丹文 梅甁, 청자 상감 동채 모란문 매병 靑磁 象嵌銅彩牡丹文 梅甁 또는 청자 상감 동채 모란문 매병 靑磁象嵌銅畫牡丹文梅甁 이라고도 한다)은 고려청자에 동화(銅畫, 주성분이 구리인 안료를 사용하여 무늬를 그린 후 구워내면 무늬가 선홍색으로 표현되는 기법) 기법을 이용하여 무늬를 표현하였는데, 몸통에는 모란가지 세 개를 흑백상감으로 묘사한 후 꽃잎에 동화(銅畫) 기법을 이용하여 붉은색을 입혀 화려한 무늬를 나타냈다. 이러한 기법을 사용한 경우는 매우 드물고, 특히 매병을 장식하는데 사용한 경우는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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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대용량 얼음정수기 설치 후기

 

사무실 대용량 얼음정수기 설치 후기

★★★★★ 후기 작성자 : 허니/SK매직샵

직원 10명정도인 사무실이고, 여름이라 얼음정수기가 필요하여 선택했어요.

렌탈료도 만족스럽고, 일주일 정도 사용해보니 얼음 용량도 많고, 냉온수 용량도 충분하여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이나 색상도 고급스럽구요.
싱크대와 약간 떨어져 있지만 설치 기사님이 호스 연결하여 깔끔하게 설치해주셨어요.
사무실에서 사용할 정수기 고민하시는 분들께 추천해요~^^


SK매직 스탠드형 직수 얼음정수기 특장점

 

SK매직 스탠드형 직수 얼음정수기 특장점
SK매직 스탠드형 직수 얼음정수기 특장점

 

특장점 1. 넉넉한 냉수 및 얼음 용량

얼음을 저장하는 아이스룸 용량 3,500g

대용량 설계로 냉수 6.5리터, 온수 3.5리터 출수 가능.
국내 최대 용량 3.5kg 아이스룸 및 직수를 사용한 일일 최대 얼음 제빙량 720개.
(※일반 가정용 및 하프형 얼음정수기는 아이스룸 용량은 보통 750g 안팎)
직수 정수(미온수)는 끊김 없이 지속 출수 가능.


특장점 2. 사용 편리성

높은 출수구 높이, 넓은 물받이 폭, 넓고 다양한 각도에서 출수 가능한 출수 버튼

물병을 올려놓을 수 있는 높은 출수구 높이(26cm), 넓은 물받이 폭(10cm) 및 깊은 물받이, 전 방향 출수 버튼으로 편리하게 이용 가능.
온수 온도 강/약 선택 가능.
냉수 온수 연속취수 가능.

 

특장점 3. 직수와 저수탱크를 동시에 활용한 하이브리드 방식

스테인리스 저수탱크와 직수를 동시에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방식

냉수, 온수 : 저수탱크 방식으로 빠른 취수 가능.
정수(미온수), 얼음 : 직수 방식으로 더 위생적으로 제공.
※ 직수와 저수탱크를 동시에 활용한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직수의 단점인 취수 속도를 높이고, 신선함이 중요한 얼음은 직수를 활용하여 위생성과 장점을 높임.


특장점 4. 사업장 및 다중이용시설에 특화된 위생 기능

UV 안심케어 및 부품 분리형 세척 구조

아이스룸 및 코크 UV 살균 케어.
1년마다 아이스룸 부품 무상교체.
커피나 음료가 튀어 오염되기 쉬운 추출구, 출빙구, 출수 버튼, 물받이를
간편하게 분리해서 세척 가능한 구조.
사용환경에 따라 2개월 또는 4개월 주기로 안심OK 서비스(방문관리) 선택 가능.
 

스탠드형 대용량 얼음정수기 사이즈

스탠드형 대용량 얼음정수기 사이즈

대용량 얼음정수기 사이즈 : 가로 400mm X 높이 1,400mm X 깊이 590mm
 
 
[내용 이미지 출처 : SK매직샵]

[렌탈] 핵심모델 10% 할인 SK매직 스탠드형 직수 얼음정수기 냉온정 WPU-IC110F/국내 최대 얼음 냉수

사무실, 카페, 식당 등에 최적화 설계부터 다른 대용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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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은 출처(出處), 즉 관직에 나아가고 물러감에 민감하였는데, 대부분의 유학자들은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어렵게 여기고 관직에서 물러나는 것을 쉽게 여겼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이념일 뿐, 현실적으로는 여러 여건 때문에 실제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았다. 물러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아무리 물러가려 해도 국왕이 놓아주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았는데, 조선 숙종 시기 소론의 영수였던 최석정(崔錫鼎, 1646~1715)은 1706년 10월에 영의정에서 물러나려고 여러 차례 상소하였지만 국왕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최석정이 뜻을 굽히지 않고 무려 16번이나 상소를 올리자 국왕은 할 수 없이 이를 허락해 주었다. 바로 그 다음 날 그는 종친부전부, 삭녕군수, 장령 들을 역임한 나양좌(羅良佐, 1638~1710)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최석정(崔錫鼎, 1646~1715) 초상/ⓒ국립청주박물관

방문을 닫고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하고 있으니 세속에 대한 모든 생각이 재같이 식었습니다. 하지만 동인(同人)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마음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중략- 저는 열여섯 번이나 사직서를 올렸는데, 어제 비로소 허락을 받았습니다. 사직을 허락받았으니 개인적으로는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최석정은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영의정으로 부름을 받아 조정에 나왔으며, 무려 40여 차례나 사직서를 올려 겨우 면직된 경우도 있었다. 1710년에는 약방도제조로서 임금의 병환을 살피는 데 소흘했다며 삭탈관직(削奪官職, 벼슬과 품계를 빼앗고 사판에서 이름을 깎아 버리는 일)과 문외출송(門外黜送, 조선시대 죄인의 관작을 빼앗고 한양 밖으로 추방하던 형벌)까지 당하였다.

 

관직에 나아가고 물러서는 것도 이와 같이 어려웠지만, 수십 년 동안 서울에서 살다가 온 가족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더욱이 그 때쯤이면 노령으로 신체가 허약해진데다가 걸핏하면 발병하므로 장기간 여행하는 것이 무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1625년 10월에 이전(李㙉, 1558~1648, 조선시대 '월간문집'을 저술한 학자)이 아우 이준(李埈, 1560~1635, 첨지중추부사, 승지, 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에게 보낸 간찰을 통해 알 수 있다.

듣자니 아우가 낙향할 뜻을 이미 굳혀서 호군(護軍) 봉록(俸祿)도 받지 않을 것이라 하는데, 많은 식구에 어떻게 지내려는가? 무척 걱정이 되네. 학질을 앓고 난 후 원기 회복이 쉽지 않았을 터인데, 추운 날씨에 뱃길 여행은 몸을 더욱 상하게 할 것 같아 우려되니, 부디 이 계획을 그만두길 바라네. 육로를 거쳐 오되, 혼자 오는 것이 간편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꺼번에 가족을 거느리고 귀향하기가 불편하다면, 작은제수씨는 박첨지 집에 의탁한 뒤 나중에 내려오게 해도 무방할 것 같네.

당시 이준의 나이가 66세였으므로 사직하고 낙향하기에 적당한 나이였다. 그러나 그가 관직에서 완전히 물러나 것은 그보다도 훨씬 후였다. 1627년에 정묘호란이 얼아나자 고령임에도 손수 의병을 모집하고, 조도사(調度使, 중앙에서 전국 각지에 파견되어 국가 재정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특별 어사)로 임명되자 군현을 돌아다니며 의곡(義穀, 의병이 납부한 곡식)을 모았다. 70세가 다 되어서도 국왕의 부름을 받고 중앙으로 나아가 승지, 대사간, 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다 보니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겨우 벼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그도 남들처럼 퇴직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 후학을 양성하고 어린 손자들이 장성하는 것을 바라보려는 꿈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것이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내용 출처 : 전통사화와 생활문화(이해준 정승모 전경목 송찬섭 공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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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관원들은 반역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사형을 당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관원으로서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에는 대부분 유배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사화와 당쟁이 빈번히 일어나면서 이 유배살이가 관리들에게 하나의 필수과정처럼 여겨지게 되었기 때문에 관직생활을 하는 동안 유배를 한두 차례 당하지 않은 관원은 이름이 없거나 고위직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한 정파가 집권하게 되면 반대편의 실각한 정파의 주요 관리들을 제일 먼저 유배형에 처했는데, 실각한 정파가 훗날 다시 집권하면 유배되었던 관리들은 대부분 중앙의 정계로 복귀하였으므로 유배의 성격도 약간 변화하여 조선 후기에는 그것이 일종의 '정치금고'와 동일한 처벌로 간주되곤 하였다. 즉 유배기간에는 중앙의 정계에 일절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강화도 연산군 유배지/ⓒ한국관광공사

일단 유배형이 내려지면 유배지까지 가는 비용과 그곳에서 생활하는 데 드는 일체의 비용을 피유배자가 지불해야 했는데, 심지어는 호송관리의 수고비까지도 부담해야 했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모함 등으로 억울하게 유배를 당한 경우라면 그 손해가 엄청났지만 법이 그러므로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유배당한 관리의 신분이나 지위, 인적 관계와 복관 가능성 등에 따라서 떠나는 유배길이나 유배지에서의 생활이 크게 달랐는데, 고관이나 권신들은 유배길에 거처가는 군현마다 들러 그 지역 수령으로부터 향응을 받거나 유배지의 수령이나 아전들로부터 깍듯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유배간 사람이 본가에 쓴 편지/ⓒ국립전주박물관

유배생활의 실제 모습을 조선 영조 대에 충청남도 직산군수(稷山郡守)를 역임한 전근사(全近思, 1675~1732)의 편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전근사는 1728년 4월에 전라도 운봉현(雲峰縣,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동면·산내면·아영면 일대에 1914년까지 있던 행정구역.)으로 유배되었는데, 그 이유는 반란을 일으킨 이인좌의 무리를 보고도 진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알아낸 대관(臺官, 조선 시대 사헌부의 대사헌 이하 지평까지의 벼슬)들은 그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국왕은 그를 의금부에 가두고 조사하게 했는데, 직무를 유기환 죄가 드러나자 운봉현에 유배하도록 지시하였다. 유배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그는 같은 도(道)의 수령으로 재임하고 있는 친지에게 다음과 같은 간찰(簡札, 옛 편지들을 이르는 말. 서간(書簡), 서찰(書札)이라고도 부른다.)을 보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체직(관직을 교체하는 것, 보통 면직을 뜻하나 경우에 따라 파직을 뜻하기도 함) 후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에 겪었던 어려운 사정은 잠시 말하지 않더라도, 체직된 후에 양식을 지니고 올 방법이 없어서 맨손으로 내려왔는데, 지금 식량을 주가(主家)에 부탁하기가 구차하고 어려운 상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이 근심스러움을 어찌합니까? 형에게 사람을 보내어 어려움을 알리고자 하였으나 문지기가 막을까 염려될 뿐만 아니라, 관직에 있으면서 응대하는 어려움을 제가 평소에 잘 알고 있어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 지역 안에 영남 출신 친구로서 수령이 된 사람이 6, 7명에 이르니, 만약 유배지에서의 어려움을 알게 되면 반드시 무심하게 대하지는 않을 것이나, 관문(官門)은 사실(私室)과 다르고 어리석은 저의 종놈이 동서도 분간 못하기에 실로 서로 통할 길이 없으니 어찌하겠습니까? 관중(管仲, 관포지교의 관중을 빗댓 말)인 저를 알아주는 이는 오직 포숙(관포지교의 포숙을 빗댄 말)인 형뿐이니, 부디 같은 도 출신이 부임한 고을에 편지를 띄워서 특별히 구제해 달라는 뜻으로 간절히 부탁하여 제가 객중에서 지탱할 수 있도록 해 주시면 어떠하겠습니가? -중략- 근래에 갖가지 신병이 떠나지를 않아 날마다 신음하는 것이 일인지라, 형편상 혼자 머무르기가 어려워서 아들놈과 비복을 모두 데리고 왔습니다. 이 때문에 식구가 적지 않으니 더욱 근심스럽습니다.

이 편지의 내용을 통해 조선시대 관리들은 유배생활 중에도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었으며 비복(계집종과 사내종)까지 거느리고 살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전근사는 자신의 신병 때문에 이들을 데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변명하지만, 어찌되었든 유배된 관리들 중에는 가족과 함께 살고 또 비복도 거느리고 산 사람이 있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유배기간에 드는 생활비를 당사자가 마련해야 했지만, 전근사는 경상도 출신의 호남지역 수령들로부터 도움을 받고자 노력했던 사실도 파악할 수 있다.

정약전의 유배기간을 그린 영화 '자산어보' 스틸 컷/출처 : 네이버영화

한편 같은 유배자라 하더라도 유배기간의 생활과 해배 이후의 행보에는 상당한 개인차가 있었는데, 물론 정치적인 유배의 경우는 유배기간 내내 울분 속에서 보내는 유배자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약용이나 정약전처럼 이 기간에 독서와 저술을 하고 또 유배지역의 자제들을 교육시키는 등 유교의 진작에 커다란 노력을 기울인 사람도 많았다. 이들은 복관 후에도 그 지역의 자제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제들이 과거에 합격하거나 관리로서 중앙에 진출할 수 있도록 후원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인물들은 사후에 그 지역 자제들의 추대로 서원에 배향되기도 하였다.

 
[내용 출처 : 전통사화와 생활문화(이해준 정승모 전경목 송찬섭 공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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