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인디오 음악의 뿌리를 찾고자 페루 사람들이 시쿠와 케나를 들고 나온 것처럼 같은 시기 인디오 음악에 대한 뿌리를 차고자한 일련의 운동이 일어났는데, 바로 누에바 칸시온(Nueva Cancion), 새로운 노래라는 뜻을 가진 남미의 노래운동이었다. 1970~1980년대를 풍미했던 한국의 노래운동과 같이 새로운 노래, 민중의 노래를 찾아나선다는 의미 외에도 정처적 성향이 강했던 누에바 칸시온은 1960년대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두 선구자로부터 비롯되었다. 아르헨티나의 아타후알파 유판키(Atahualpa Yupanqui, 1908~1992)와 칠레의 비올레타 파라(Vioneta Parrs, 1917~1977)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아타후알파 유판키는 곳곳에서 민요를 수집하면서 <인디오의 길(Caminito del Idio, 1926) 등 인디오를 대벼하는 노래를 부르다가 강제로 망명길에 올랐고, 비올레타 파라는 케나, 차랑고 등을 반주로 하여 노래를 부르곤 했다. 비올레타 파라의 노래 <삶에 감사(Gracias a la Vida, 1966)>는 미국의 조안 바에즈와,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누에바 칸치온의 기수,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 1935~)가 부르기도 했다. 누에바 칸치온은 인디오의 노래를 재평가하고 가난한 이와 소외된 사람들을 대변한다는 성명을 내고 아르헨티나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는 점점 라틴 아네라카의 깨어 있는 양심을 대변해가기 시작했다.


페루 지도/ⓒ구글맵



1960~1970년대는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적 격변기였다. 사회적 불평등과 정치적 혼란, 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 등이 라틴 아메라카를 거센 혁명의 소용돌이로 몰고 갔다. 1959년 쿠바혁명 이후 페루, 볼리비아, 콜럼비아 등지에서도 게릴라 활동과 함께 불안정한 정치상황이 계속되었다. 특히 칠레는 1970년 사회당의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선거에 의해 세워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는데, 아옌데 지지자 중에는 누에바 칸치온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빅토르 하라(Victor Jara, 1932~1973)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미 1960년대부터 사회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노래를 만들어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던 빅터 하라는 기타를 도구삼아 사회운동을 벌였던 싱어송라이터였다. 그러나 가사를 모르고 듣는다면 그의 노래가 사회운동의 일환이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단순하면서도 아름답고 소박하면서도 빛이 나는 노래들로 가득하다. 라틴 아메리카를 넘어 전 세계의 음악인들이 그의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은 그런 노래의 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41세의 젊은 나이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빅토르 하라의 생애가 깊은 여운을 남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옌데 정부가 들어선 지 불과 3년 만에 칠레에서는 미국의 지지하에 군사쿠데타가 일어났고, 빅토르 하라는 아옌데정부를 지지하던 다른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어 심한 고문 끝에 죽음을 당했다. 그는 자신이 노래로 표현한 그대로 생을 살았던 진정한 음유시인이자 혁명가였다.




내가 노래를 하는 것은 단순히 노래하는 것이 좋아서도,

내 목소리를 뽐내기 위해서도 아니오,

내 정직한 기타가 하는 말을 대신 하기 위함이라네.

내 기타의 마음은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기 때문이오. 

 내 기타는 비둘기와 같이 날아간다네, 

 끝없이, 마치 성수(聖水)가 뿌려지는 것처럼 

 용감한 이들과 죽어가는 이들을 축복하면서, 

 그렇게 내 노래는 할 일을 찾았다네. 

 비올레타 파라도 그렇게 말하곤 했다네. 

 -빅토르 하라<마니페스토(manifesto, 1973)>



[함께보기: 칠레 음유시인 빅토르 하라(Victor jara), 마니페스토]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페루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보고 싶어하는 곳은 어디일까? 아마 잉카제국 최고의 유적지 마추픽추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페루는 잉카제국의 흔적 때문에 많은 여행자를 매료시킨다. 마추픽추만큼 관광객의 관심을 끄는 곳은 마추픽추에 가기 위해 지나가야 하는, 그러나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Cusco/Cuzco)이다. 잉카 제국의 건축물만 보겠다면 별로 아깝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과거의 잉카문명과 현재의 아데스문화를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쿠스코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은 바로 쿠스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페스티벌 덕분이다. 특히 매년 6월24일 전후를 겨냥해서 쿠스코를 찾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데, 이는 잉카제국시대의 태양제인 인티 라이미(Inti Raymi)를 보기 위해서이다. 태양신(Inti)을 숭배하던 잉카시대의 사람들은 태양이 가장 멀리 있는 동지가 돌아올 때마다 태양이 완전히 멀어져 없어지지 않길 기원하면서 태양제를 성대하게 치렀다. 잉카제국을 무너뜨린 스페인은 태양신 숭배를 금지했고 태양제도 자취를 감췄었다. 그러다가 1944년, 페루는 역사적 사료에 근거하여 인티 라이미를 다시 복원하였고, 이때부터 시작된 인티 라이미는 남미 최대의 축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페루 지도/ⓒ구글맵


페루 잉카제국 최대의 유적지 마추픽추/ⓒ위키백과





페루의 축제를 보면 화려한 색상의 판초를 입고 자그마한 팬파이프를 연주하면서 퍼레이드를 벌이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아니, 페루까지 가지 않더라도 현재 한국사회에서도 이런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퍼레이드까지는 아니지만 지하철 예술무대라는 이름으로 지하철 곳곳에서 공연을 펼치는 남미연주자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곡조를 주로 연주하면서 행인들의 눈길을 끄는데, 그중에서도 <엘 콘도 파사(El Condor Pas)는 레퍼토리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다.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노래로 잘 알려져 있는 이 노래는 사실상 페루의 작곡가 알로미아 로블레스(Alomia Robles, 1871~1942)가 안데스 민요선율을 사용하여 만든 곡이다. 원곡은 1913년에 만들어졌지만, 사이먼 앤 가펑클이 이 곡을 유행시킨 것은 60년이 지난 1970년대였다. 그리고 사실상 안데스사람들이 당당하게 판초를 입고 안데스를 상징하는 팬파이프를 거리에서 연주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페루가 스페인에서 독립한 것은 1821년이었지만, 안데스지역의 인디오들은 독립과 상관없이 여전히 페루사회의 소외계층으로 남았다. 유럽의 문화는 어느새 본받아야 할 선진문화가 되어 있었고, 인디오문화는 내놓고 보일 수조차 없었다. 서구화와 근대화가 동일시되는 사회적 상황을 겪어본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극적으로 바뀌게 된 것은 1960년대이다. 이때부터 도시로 이주한 인디오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하기 시작했고, 새로이 들어선 벨라스코 알바라도(Velasco Alvarado) 대통령의 문화정책도 한몫 했다. 이미 1920~1930년대에도 인디오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벨라스코시대(1968~1975)에는 이러한 움직임이 좀 더 가시화되어 나타났다. 반제국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사회개혁을 추진했던 벨라스코는 인디오의 언어이자 잉카제국의 언어였던 케추아(Quechua)어를 공식언어로 만들고, 전국 규모로 안데스음악과 춤 경연대회를 열었으며, 미디어 매체에서도 민속음악을 최소한 어느 정도 방송하도록 하는 규정도 만들었다. 이와 같은 분위기의 변화와 함께 안데스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서서히 지비에 있던 작은 팬파이프를 들고 나오기 시작했고, 1980년경부터는 리마(Lima)와 같은 대도시에서도 안데스음악을 쉽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페루 안데스 전통악기 시쿠(siku)/삼포냐(zmpona)/ⓒ위키백과



페루 안데스 전통악기 케나(quena)/ⓒ위키백과


페루 안데스 전통악기 차랑고(charango)/ⓒ위키백과




인디오들이 들고 나온 자그마한 팬파이프는 시쿠(siku) 혹은 삼포냐(zampona)라고 부른다. 사실 많이 보이는 시쿠, 특히 앙상블을 이루어 행진할 때 보이는 시쿠가 작을 뿐이지, 작은 시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양하다. 한국에서도 시쿠연주를 종종 볼 수 있을 정도로 시쿠는 안데스음악을 상징하는 악기라고 할 수 있다. 시쿠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악기는 케나(quena)이다. 케나는 리코더처럼 생긴 목관악기인데 입으로 부는 쪽에는 리코더와 달리 작은 홈이 파여 있다. 시쿠와 케나는 안데스음악의 특징적인 소리를 만들어내는 주역으로, 안데스의 바람소리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경쾌하면서도 애조 띤 안데스음악의 분위기를 한층 더 살려주는 독특한 음색을 가지고 있다. 서양의 류트를 인디오 악기로 변형시킨 차랑고(charango)도 안데스를 대표하는 악기 중 하나이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베트남은 반도의 동부에 위치하여 북으로는 중국, 서로는 라오스와 캄보디아에 접한 남북으로 가늘고 긴 나라이다. 국토의 3분의 1이 산악지대이고 그곳에는 약 60개의 소수민족이 분산되어 있는데, 이러한 소수민족과 평야부에 살고 있는 베트남인의 음악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왔다.


베트남 지도/ⓒ구글맵



베트남은 966년에 딘보린(丁部領)에 의해서 최초의 통일국가가 건설되기까지 약 1000년 동안 중국의 통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여러 방면에서 중국으로부터의 영향을 받았다. 이후 11세기에 들어와서 국력을 키운 베트남은 태국, 캄보디아, 점성국(임읍, 참파) 등 이웃나라와 접촉하게 되었는데, 특히 고도의 음악문화를 가진 참족의 왕국 참파(Champa)로부터는 불교문화를 시가으로 많은 인도문화가 유입되었다.


이 시기의 베트남음악은 중국의 요소에 인도의 요소를 가미한 것으로, 그 중심이 된 것은 궁중의 의식음악이었다. 이것은 반도의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중국색이 강한 것으로, 관현악으로서는 피리(觱篥), 소관(小管), 소발(小鈸), 반고(飯鼓)를 사용하는 다이냑(大樂)과 17현의 금(琴), 16현의 쟁(箏), 비파(琵琶) 등의 현악기를 사용하는 테에냑(小樂)이 있었는데, 이 음악들은 왕족에게 애호되어 성행하였다. 15세기 중반에는 황제의 명에 의해서 궁중음악을 중국 명조의 궁중연향악과 제례악 등을 모방하여 새롭게 제정하였고, 15세기 후반에는 중국이론을 도입하여 궁중음악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16세기 후반에는 정치세력의 대립에 의해서 후에(Hue)와 하노이(Hanoi)의 남북으로 분열되었는데, 그 영향은 음악문화에도 미쳐 북부와 남부의 음악은 서로 다른 양상으로 발전해갔다. 남부에서는 궁중의 연향악과 실내악, 공자묘와 관련된 의식음악, 제례악 등 이른바 예술음악의 장르가 발전한 데에 비해서 북부에서는 민속음악이 다양하게 연주되었다. 또한 연극은 예술음악과 민속음악 모두와 관련을 가지며 연행되었다.


한편 연이은 전란 후에 1802년 베트남은 응우옌푹아인(阮福映)에 의해서 월남국으로서 통합되었고, 후반은 프랑스의 식민지로 프랑스화, 유럽화의 길을 걸었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베트남 고유의 음악문화는 다양하게 발전해갔다.


베트남은 1945년에 독립을 선언했지만 1976년 남북 재통일까지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음악면에서도 국가적인 위기 속에서 전통음악이 쇠퇴해가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나라의 부흥과 함께 귀중한 민족유산으로서의 ㅇ전통음악의 존재를 인식하고, 보존, 부활시키려는 노력에 힘입어, 오늘날은 궁중음악인 다이냑과 테에냑, 이에 사용되는 여러 악기, 수중인형극, 민속음악 등을 공연장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베트남의 악기는 매우 다양한데, 중국아기에서 유래한 것이 많고, 한편으로는 인도에서 영향을 받은 것도 있으며, 독자적으로 발생한 것도 있다.


현악기로는 단트란(dan tranh), 단바우(dan hau), 단니(dan nhi), 단구엣(dan nguyet), 단티바(dan ty ba) 등이 있고, 관악기로는 사오(sao), 타악기로는 트룽(trung)이 대표적이다.


팜튀환(Phạm Thúy Hoan)우수 예술인의 단트란을 향한 60년동안의 애착.

사진:썬 응이아(Sơn Nghĩa)/ⓒ베트남통신사



단트란은 가야금과 비슷하게 생긴 16현악기이다. 원래 궁중음악에서 사용되었던 베트남 고유의 악기로, 음색이 사랑스러워 독주와 합주, 노래의 반주 등에 널리 애용되고 있다. 줄은 철사로 되었고, 오른손의 엄지, 검지, 장지에 골무를 끼고 연주한다. 오늘날에는 개량된 22현의 단트란도 많이 연주된다.


딘보우(베트남)-레화이프엉/ⓒ컬처앤뉴스



단바우는 베트남의 여러 악기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악기로 알려진 1현금이다. 몸통은 약 1m이고 넓이는 10cm 정도로, 오른쪽에 줄을 고정시키고 왼쪽에는 대나무나 나무 봉을 세워 줄을 묶는다. 연주 때에는 봉을 왼손으로 쥐고 좌우로 움직임으로써 줄의 장력을 달리해 다양하고 미묘한 음정과 선율을 만들어낸다. 원래는 합주용 악기였으나 현재에는 독주악기로서 사용되고 있다.


단니는 한국의 해금이나 중국의 이호(二胡)와 같이 활로 줄을 문질러서 내는 2현의 현악기이다. 현재 베트남 남부의 모든 전통음악공연에서 이 악기를 볼 수 있다.


단구엣은 몸통이 보름달과 같이 둥글고 목이 있는 현악기로 중국의 월금(月琴)에 해당한다. 명칭은 달릐 동그랗게 생긴 모양에서 유래했다.


단티바는 중국의 비파(琵琶)나 우리나라의 당비파와 같은 종류로, 목이 꺾인 4현의 현악기이다. 이 악기는 베트남 고유의 악기는 아니지만 베트남민족의 정서를 독특하게 표현한다.


사오는 대나무로 만든 피리로, 긴 취구를 가지고 있다. 관악기이지만 현악기와 비슷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트룽(베트남)/ⓒPolePole



트룽은 여러 개의 대나무관을 연결하여 요트의 돛과 같이 늘어뜨린 죽금(竹琴)이다. 대나무관의 길이에 다라서 음의 높이가 달라지는데, 짧으면 높은 음이 나고 길수록 낮은 음이 난다. 악기의 소리는 크지 않지만 매우 맑고 아름다운 음색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악기를 사용하는 합주나 독주 외에 베트남의 예능으로 잘 알려진 것은 수중인형극이다. 로이느윽(Roi Nuoc)이라고 하는 베트남의 전통수중인형극은 인형조정자들이 무대 뒤 물속에서 기다란 막대를 이용해서 나무로 만든 인형들을 조정하여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베트남 수중인형극/ⓒYoutube, EBS컬렉션



수중인형극은 주로 야외에서 행해졌지만 현재에는 전통연희로서 실내에서도 연행되고 있다. 물속에 세워진 무대는 베트남 전통기와집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앞에 막을 치고 그 뒤에서 인형조정자들이 인형을 조정한다.


일반적인 상연형식은 시작할 때 우선 징소리와 함께 폭죽이 터지고 깃대가 올라오면서 개막을 알린다. 이어서 신화의 성수(聖獸)로 알려지는 용, 봉황, 일각수(一角獸, 유니콘), 거북이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베트남사람들의 수호신으로 안녕과 행복을 내려준다고 여겨지고 있다. 이어 재담꾼인 주인공 인형이 등장하여 관객과의 첫인사 및 해설을 하고 마지막에도 등장하여 해설자의 역할과 더불어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



수중인형극의 음악에는 가수의 노래가 있고 단트란, 단바우, 단니와 사오, 다양한 북이 반주악기로 사용된다. 극의 주도니 내용은 베트남의 역사 이야기나 베트남 농부들의 삶을 중심으로 한 생활모습이 많이 등장하는데, 내용의 이해보다는 볼거리에 중심을 둔 극이다. 낚시하는 농부, 물소를 타고다니는 어린이, 물속에서 수영하는 어린이, 물고기 등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묘사한 것이 ㅁ낳고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많이 등장한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미얀마는 대단히 풍부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동남아시아에 비해 외국에서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나라이다. 지리적으로 서쪽에는 인도와 방글라데시, 동쪽에는 중국, 라오스, 태국과 접하고 있다.


미얀마(버마) 지도/ⓒ구글맵


미얀마문화의 기초를 구축했다고 알려지는 1세기 때의 프롬(prome)국은 중국과 인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특히 음악은 인도의 불교음악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인도문화의 측면에서는 오늘날까지 사웅(saun)과 같은 고대 인도의 하프가 남아 있는 점, 향신료의 선택이나 중국문화권과는 달리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는 전통적인 식사법이 특히 눈에 띈다. 이후 중국과의 접촉에 의해서 중국색이 짙은 문화가 번성했는데, 예를 들어 9세기 초에 기록에 의하면 령(鈴), 발(鈸), 비파(琵琶) 등 여러 종류의 악기로 연주와 춤반주를 했다고 한다.


이에 반하여 미얀마의 민족색을 농후하게 반영시킨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비르마족에 의해 일어났던 파간조(pagan朝, 1044~1187)로, 당시의 반도 여러 나라 가운데 가장 번영한 국가로 알려지고 있다. 불교가 성행하였고 문자도 만들어지는 등, 국력뿐 아니라 문화면에서도 황금시대였다. 이후 분열을 거듭하여 알라웅파야조(Alaungpaya朝, 1752~1885)에 재통일되었고, 만달레이(Mandalay)를 수도로 정하고 나라가 안정되자, 태국과 캄보디아를 침공, 제압하여 많은 음악가와 무용가, 장인들을 데리고 왔다. 태국 아유타야 전성기의 음악문화는 한때 그대로 미얀마에 옮겨져 종래의 미얀마족의 음악을 압도할 정도였다.


그 후 이러한 음악문화는 점차 미얀마풍으로 변화하여 오늘날의 양식이 만들어졌다. 다른 동남아시아 각국의 예와 같이 제1차 비르마 전쟁(1824~1826)을 거쳐 1948년에 독립할 때까지의 100여 년을 영국의 속국으로서 유럽의 세력 아래에 있었지만 그 영향은 전통음악에까지 미치지는 않았다.


미얀마의 사잉와잉합주에 사용되는 악기들/ⓒ두산백과


많은 악기는 태국에서 들여온 것이지만 연주스타일이나 선율은 미얀마화하여, 강약의 폭이 넓고 다이내믹한 리듬 속에서도 애수가 들어 있는 선율의 특징이다. 미얀마의 전통음악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사잉와잉(hsaing-waing)합주이다. 이것은 궁중의례, 종교의식, 민속축제 등 폭넓게 사용된다. 사잉와잉합주는 기악만을 연주할 때도 있지만 노래와 무용을 수반하는 경우도 있다. 이 합주에서 연주되는 중요한 악기로는 팟와잉(pat-waing), 키와잉(kyi-waing), 네(hne), 마웅(maung) 등이 있다.


팟와잉은 직경 1.5m 정도의 원형의 나무틀 속에 조율된 20여 개의 길고 작은 북을 음고 순으로 배열하여 만든 선율타악기이다. 원의 중심에 앉은 연주자는 손가락으로 북을 치는데,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아 연주자의 기교가 매우 필요한 악기이다. 나무틀의 높이는 1m 정도이고, 외관은 화려한 무늬에 금색 칠을 하여 휘황찬란하다. 팟와잉은 사잉와잉합주에서 리더의 역할을 한다.


키와잉은 원형의 나무틀 속에 조율된 20여 개의 작은 놋쇠 공을 음고순으로 배열한 선율타악기이다. 원의 중심에 앉은 연주자는 양손에 우리나라의 꽹과리채와 비슷한 나무채를 가지고 공의 중앙에 튀어나온 부분을 치면서 연주한다. 이 악기는 태국의 선율타악기인 콩웡과 비슷하다.


네는 사잉와잉합주에서 쓰이는 유일한 관악기이다. 우리나라의 태평소와 같이 겹서(double reed)를 가졌고 나무로 만든 관 끝에 동으로 만든 나팔을 단 모양이다.


마웅은 나무틀에 매다는 큰 징의 일종으로 리듬을 연주하는 타악기이다. 연주자는 솜으로 감싼 나무채로 징의 중앙에 튀어나온 부분을 쳐서 소리를 낸다.


사잉와잉합주 외에 고전가곡의 하나로서 요다야(yo-daya)라 불리는 것이 있다. 이것은 비의 신이 싸움에서 이겨 천둥과 번개를 일으키고 큰 비를 내리게 한다고 하는 전설을 다룬 것이다. 또한 요다야양식에 속하는 것으로는 미얀마풍의 <라마야나> 이야기도 있다. 가곡의 반주로는 사웅이나 팟탈라(pat-tala)가 사용되고, 가수는 왼손에 와(wa)와 시(si)로 박자를 치면서 노래하는 경우가 많다.


미얀마 전통악기 사웅/ⓒ중앙일보


사웅은 13현을 가진 미얀마의 하프이다. 몸통은 배모양같이 생겼고 앞부분에는 기러기의 목처럼 생긴 긴 목이 달려 있다. 연주자는 무릎 위에 악기를 올려놓고, 왼손으로 목부분을 잡고 오른손으로 줄을 뜯어 연주한다.


팟탈라는 대나무로 만든 목금이다. 17개에서 24개의 대나무 조각을 실로 연결하여 흔들다리와 같이 양쪽을 묶어 늘어뜨리고 그 아래에 배모양의 공명통을 붙인 것이다.


요다야를 부를 때 가창자가 왼손에 들고 치는 와는 나무로 만든 작은 캐스터네츠를 말한다. 오른손으로 잡는 시는 작은 종으로, 2개의 종을 끈으로 연결하여 가볍게 흔들어 소리를 낸다. 미얀마음악에서 와는 강박에, 시는 약박에 해당한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캄보디아는 동쪽의 베트남과 북쪽의 라오스, 서쪽의 태국 사이에 놓여 있어 반도의 거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어 이미 선사시대에는 동고(銅鼓)를 시작으로 많은 악기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1세기 전후에는 크메르(Khmer)인에 의해서 최초의 통일국가인 부남(扶南)이 세워졌는데, 당시에는 인도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죽금, 구금, 공 등 많은 악기가 만들어졌다. 국가세력으로서도 말레이 반도나 미얀마에까지 그 판도를 넓혔다.


캄보디아 지도/ⓒ구글맵



그러나 본격적인 크메르문화의 기반이 형성된 것은 분열하고 있었던 크메르 왕국이 재통일된 자야바르만 2세(재위 802~850)의 시대이다. 이후 앙크로톰의 조영(9세기 말)부터 앙코르와트의 조영(12세기)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는 앙코르를 중심으로 하는 크메르문화의 황금시대로서, 국가세력도 인도차이나 반도의 거의 전역에 미쳤다. 인도문화를 배경으로 한 이 시기의 음악문화의 장려함은 앙코르 사원에 남아 있는 부조 등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후 크메르 왕국은 태국과 베트남으로부터 종종 침략당해 13세기 말경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 음악문화를 담당하는 궁중음악가와 무용수들이 다수 태국에 포로로 끌려가 크메르문화를 계승시키면서 태국음악문화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아유타야에 의한 수도 앙코르 점령으로 크메르 왕국은 멸망하여 앙코르시대는 끝이 났고, 그 후 19세기 중반까지의 약 400년간은 태국과 베트남의 압박에, 16세기 이후부터는 유럽의 간섭도 더해졌고, 마침내 19세기 말부터 반세기에 걸쳐 프랑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는 외환의 시대가 이어졌다. 1867년 이후 수도가 된 프놈펜(PhnumPenh)의 궁중에서 궁중음악과 예능을 보호, 육성해왔지만 그 음악이나 무용은 옛날의 크메르문화를 직접 전승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태국으로부터 역수입한 것이다.


태국과 마찬가지로 캄보디아의 음악은 하나의 독립된 예술분야라기보다는 무용극이나 인형극과 같은 종합예술 속에서 춤이나 연극에 수반되거나, 민중의 생활과 밀착한 관혼상제나 결혼식 등에서 연주된다. 또한 캄보디아 고전음악의 합주형태나 악기는 명칭만 다를 뿐 태국의 음악과 거의 같다. 전통적인 고전음악은 연주의 용도에 다라서 핀피트(pinpeat)합주와 모호리(mohori)합주라는 두 종류의 기악합주가 사용된다.


트로와 스코르/ⓒ캄보디아 시엠립 한인회


핀피트합주는 태국의 피파트합주에 해당하는 음악이다. 종교의식이나 무용, <라마야나>에 유래하는 캄보디아판 <라마 왕자의 모험> 등의 고전예능에 사용되는 중요한 앙상블이다. 단단한 나무나 대나무로 만든 배 모양의 목금인 로니트(roneat), 태국의 콩웡과 같이 17개의 공을 둥근 틀에 선서대로 벼열하여 만든 콩봉투치(kong vong tuch) 등의 선율타악기를 중심으로, 태평소와 비슷한 스랄라이(sralai)와 술통처럼 배가 튀어나온 북으로 양면을 치는 삼포(samphor), 단면북 2개를 한 쌍으로 연주하는 톤과 람마나, 작고 두꺼운 심벌즈인 칭 등의 리듬타악기가 사용된다.


모호리합주는 태국의 마호리합주에 해당하는 것이다. 핀피트합주에 비해 가벼운 성격의 앙상블로, 고전무용이나 연극에 사용되는 것과 함께 결혼식이나 연회 등 민중의 생활에 보다 밀착되어 사용된다. 이것은 이른바 관현악합주로, 선율타악기 외에 대나무 종적인 클로이(khloy), 태국의 자케에 해당하는 타케(takhe)라는 현악기, 2현의 찰현악기인 트로(tro), 단면북인 스코르 로모니(skor romonea), 칭으로 구성된다.


캄보디아 전통춤 압사라 댄스/ⓒwikiand.com


부조에 있는 캄보디아 전통춤 압사라 댄스/ⓒwikiand.com



핀피트합주를 반주로 하는 무용으로 대표적인 것은 압사라 춤(Apsara dance)이다. 압사라는 천상의 무희 또는 춤추는 여신을 의미하는데, 이는 '물 위(apsu)에서 태어났다(sara).'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대에는 캄보디아 왕실에서만 연행되었는데, 당시 압사라들은 천상의 존재를 표현하는 신성한 임무를 지닌 자들로 여겨져 결혼은 금지되었고 왕궁에서 기거해야했다. 압사라는 앙코르와트 사원의 외벽을 이루는 수많은 부조에 다양하고 섬세한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을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섬세하면서도 느린 압사라 춤은 핀피트합주에 맞추어 진행되는데, 무용수들의 움직이는 손동작이나 몸동작에는 각각 깊은 뜻이 담겨 있고, 특히 몸동작은 왕자, 공주, 거인, 원숭이 등 네 종류의 주체에 의해서 변화한다. 금색을 중심으로 하는 화려한 의상으로 신비감을 느끼게 하는 압사라 춤은 동작이 매우 까다로운 춤으로 알려져 있고, 캄보디아 주변국가의 전통무용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함께보기: 태국 음악]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태국은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와는 달리 서구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주독립적 국가를 유지해왔다. 지리적으로는 북쪽으로 중국, 북서부터 서쪽은 미얀마, 북동은 라오스, 동쪽은 베트남, 캄보디아, 남쪽은 말레이시아에 둘러싸여 있어, 주변국가의 영향을 받으면서 음악문화를 만들어왔다. 태국음악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것은 수도 방콕(Bangkok)을 중심으로 하는 고전음악으로, 타이족 최초의 강대한 국가로서 세력을 넓힌 수코타이 왕조(Sukhothai, 1238~1438)에 부리를 두고 있고, 이어 아유타야 왕조(Ayutthaya, 1351~1767) 시기에 발전한 것이다.


태국(Thailand)/ⓒ구글맵


오늘날의 태국음악의 기초가 구축된 것은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고 약 400년에 이르는 통치를 자랑하는 아유타야 왕조시대이다. 이 기간에 정치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큰 발전을 이루지만, 한편으로는 미얀마와 캄보디아 등 인접국가와의 교전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캄보디아 포로로서 수만명의 음악가와 무용가, 장인, 문인들이 태국에 억류해 있었는데, 이러한 사람들에 의해서 태국이 고전음악과 예술이 발전하게 되었다.


이들은 궁중의 보호를 받으며 궁중의 의식이나 관혼상제, 종교행사를 담당했다. 음악은 독자적으로 연주하지 않고 이러한 행사 때 행해지는 예능, 주로 콘(khon)과 라콘(lakhon)이라고 불리는 무용극 등에 부수되어 연주되었다. 콘의 제재는 인도의 서사시 <라마야나>에 유래하는 <라마 왕자의 모험>으로, 태국의 생활양식에 맞추어 쓰였고 400개 이상의 장면으로 나뉘어 필요에 따라 상연되었다.


라나트에크/ⓒ라쿠텐 글로벌 사이트


이러한 콘과 라콘의 음악을 수용한 것이 피파트(piphat)합주이다. 이것은 작은 놋쇠 공들을 둥근 나무틀에 음고(pitch)의 순서대로 배열하여 만든 선율타악기인 콩웡(khong wong)과, 우리나라의 태평소와 비슷한 피나이(pinai), 배 모양의 목금인 라나트에크(ranat ek) 및 이보다 저음인 목금 라나트툼(ranat thum), 술통같이 생긴 북 타폰(taphon), 매우 작고 두꺼운 심벌즈모양의 리듬타악기 칭(ching) 등을 조합시킨 이른바 관악기와 타악기의 합주로, 고전예능뿐 아니라 종교의식, 장례 등 중요한 장면에서 사용된다. 필요에 따라 악기의 종류나 수가 가감되어 대, 중, 소의 편성을 취한다.


칭(ching)/ⓒ짜요놀이몰


콘을 상연할 때 음악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우선 장면설정을 위한 배경이 되는 기악합주가 있고, 배우 또는 무용수의 동작이나 무용만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미묘한 마음의 움직임이나 장면의 상황을 설명하는 성악이 있으며, 그 위에 시의 형식으로 성우가 낭송하는 대사 등이 있다. 다만 콘의 대사는 고상한 옛 말투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는 이해하기 어려워 콘에서 점차 멀어지는 현상이 일고 있다. 최근에는 템포가 빠르고 라마 왕자와 악마의 왕 토사간이 싸우는 스릴 있는 전투장면, 원숭이 대장 하누만이 연기하는 코믹한 장면 등 흥미로운 장면만을 모아서 관광객용으로 상연하기도 한다. 이에 반해 라콘에서는 등장인물이 일상어를 사용하는데, 여기서도 상황설명은 노래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음악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라콘에서는 리드미컬한 빠른 부분과 느린 서정적인 부분이 대비적으로 나타나 가수의 기량을 엿볼 수 있다.


태국의 무용극 콘/ⓒkkday


피파트합주에 비해서 보다 일상생활에 밀착되어 연주되는 것은 크루앙사이(khrueang sai)라고 하는 현악기 중심의 앙상블이다. 크루앙사이합주는 악어처럼 생긴 몸통에 3줄을 지닌 자케(jakhe)라는 발현악기, 해금과 같이 줄을 문질러서 연주하는 2현의 소두앙(sau duang)과 소우(sawu), 대나무제 종적인 클루이(khlui), 단면 북인 톤(thon)과 람마나(rammana), 칭(ching)의 조합으로, 남성만으로 연주되는 피파트합주와는 달리, 연주자의 규제도 없고, 태국인의 생활 속에서 대중적으로 연주되고 있다. 결혼식이나 연회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앙상블로, 예전에는 취미로 크루앙사이의 악기를 배우는 여성들도 많았다.


크루앙사이합주와 비슷한 장소에서 연주되는 것으로 마호리(mahori)합주가 있다. 이것은 피파트합주와 크루앙사이합주를 합하고 이를 이끄는 악기로서 인도네시아의 레밥(rebab)처럼 하트모양의 몸통을 가진 3현의 찰현악기인 소삼사이(so sam sai)를 첨가한 것으로서, 대규모의 연주에 사용된다.


이렇게 극의 반주음악이나 연회, 의식 속의 음악으로서의 역할 외에 최근에는 순수한 음악으로서 합주하는 기회도 늘어나고 있다. 크루앙사이 합주나 마호리합주의 경우, 변주곡과 같이 주제를 발전시켜서 다양한 선율로 연주하기도 하고, 성악이 첨가되기도 한다. 또한 서양음악의 조고고가 같이 여러 가지 성격을 가진 선율이나 소곡을 조합하여 만든 것도 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인도네시아는 13,000개 이상의 섬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의 군도국가로, 300여 종족으로 구성된 국민들은 250여 종류의 방언을 사용한다. 인도네시아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미 기원전 2500년경부터 현재의 인도네시아 지역에 거주가 시작되어,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 철기시대에 이르는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 기원전 300년경 중앙아시아에 청동기술이 도입되자, 자바(Java)를 중심으로 청동과 철의 주조기술이 발달하여 크고 작은 다양한 악기제조가 가능하게 되었고, 이와 함께 고도의 연주기술이 합치되어 동남아시아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7세기경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앙코르 사원이나, 9세기부터 건설된 보로부두르의 장대한 석조사원의 조각에 보이는 여러 가지 악기의 연주부조 등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유적에서 오늘날 인도네시아문화의 바탕을 이루는 힌두자바문화의 뿌리를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 자바인(Javanese)/ⓒ위키백과



인도나 중국의 승려, 상인이 빈번하게 인도네시아를 왕래하게 된 것은 기원 1세기경으로, 이와 함께 불교, 힌두교 및 그와 수반된 문화가 유입되었고, 이것이 토착농경문화와 융합하여 각지에 뿌리를 내렸다. 가장 대표적인 예능으로는 인도의 2대 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 및 <마하바라타(Mahabharata)>를 기반으로 하는 무용극과 와양쿨릿(wayang kulit)이라는 그림자 인형극 그리고 선율타악기합주인 가믈란(gamelan)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힌두자바문화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3세기경부터 점차 이술람화가 시작되어, 힌두문화의 전성기(14세기) 이후 힌두교는 발리(Bali)에만 남았고, 자바를 시작으로 국민의 대부분은 이슬람교도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6세기 후반에는 이슬람의 왕국이 성립되었는데, 이와 함께 유럽세력이 진출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는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다라서 지금까지 생활양식 등에 네덜란드의 영향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수라카르타(Surakarta)나 요그야카르타(Yogjakarta) 왕국을 중심으로 번영했던 전통예술은 거의 이러한 영향을 받지 않고 오늘날까지 고유하게 전승, 발전해왔다. 동남아시아문화의 특징 중 하나로서 금속제 선율타악기를 중심으로 한 공(gong)이나, 종의 합주음악을 들 수 있는데,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인도네시아의 가물란음악이다.


가물란은 전통예술과 의식을 관장하는 대합주로, 그 어원은 '두드리다'를 의미하는 자바어 '가믈(gamel)'에서 나왔다. 현재에는 합주음악 외에 공 계통의 선율타악기를 주체로 하는 악기군도 의미한다. 원래 중앙자바의 왕궁을 중심으로 발전한 것이 일반화하여 인도차이나 반도나 필리핀에까지 퍼져간 만큼, 가믈란의 양식이나 악기구성, 연주형태 등은 매우 다양하다.


순다인들의 데궁 가믈란/ⓒ위키백과



가물란음악의 공통점은 금속 선율타악기 종류를 중심으로 목제 선율 타악기, 크고 작은 빙과 북, 현악기와 관악기를 조합한 합주로, 기본선율과 이를 발전시킨 선율이 동시에 연주됨으로써 미묘한 어긋남을 발산하여 다성음악적인 효과를 보이는 점이다. 가물란음악은 슬렌드로(slendro)라고 하는 5음 음계와 펠로그(pelog)라는 7음 음계로 연주하기 때문에, 연주시 두 종류의 악기세트를 준비하여 곡목에 따라 나누어 사용한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가물란은 크게 서부자바, 중앙자바, 동부자바, 발리의 네 갈래로 구분될 수 있는데, 이 중 가장 잘 갖추어진 양식으로 알려진 것은 왕궁이 있었던 중앙자바의 가물란이다. 프랑스의 작곡가 드뷔시(Debyssy)가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자바의 가물란을 처음 듣고 감명을 받아 그의 작품활동에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앙바바의 가물란은 다른 지역의 가물란에 비해서 대편성인 특징이 있다.


[함께보기: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


왕궁에서 전개되어온 중앙자바의 가물란음악은 비전(秘傳, 비밀스럽게 전해 내려옴)의 궁중무용 외에 다양한 궁중의례에서 사용되었고, 현재에는 일반민중 사이에서도 널리 수용되어 결혼식이나 크고 작은 민간의식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되었다. 또한 앞서 말한 <마하바라타>나 <라마야나>를 소재로 하는 그림자 인형국과 무용극의 반주음악으로도 사용된다.


가물란음악이 지역에 따라 비록 네 종류로 구분되고 있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같은 뿌리를 가졌기 때문에 악기편성이나 음구조가 서로 유사하다. 가물란 악기편성의 가장 큰 특징은 일정한 음정으로 조율된 타악기들이 현악기나 관악기보다 그 종류나 수에 있어서 월등히 많다는 점이다. 그럼 여기서 가물란에 사용되는 악기를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사론(saron)은 가물란합주에서 사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선율악기이다. 6개에서 8개의 직사각형 동판을 공명통 위에 나란히 배열한 청동 실로폰으로, 악기의 크기에 따라 물소뿔로 된 망치나 나무망치를 사용한다. 연주자는 오른손의 망치로 동판을 쳐서 소리를 내고 다음 음을 치면서 동시에 왼손의 엄지와 검지로 먼저 친 동판을 잡아서 여음을 막는다.


겐더(gender)는 사론과 함께 기본적인 선율을 연주하는 악기이다. 사론처럼 직사각형 동판을 나란히 배열한 선율타악기인데, 동판이 대나무로 만든 틀 위에 얹어 있다는 것이 사론과 구분되는 점이다. 겐더는 보통 7개의 동판으로 이루어지고, 두 옥타브짜리는 13개의 동판으로 구성된다. 연주자는 우리나라의 꽹과리채와 비슷한 채에 천을 감은 것으로 동판을 치는데, 연주방법은 사론과 같다.


보낭(bonang)은 주요 선율에 장식음을 부여하는 선율타악기이다. 꼭지가 달린 밥그릇 뚜껑처럼 생긴 청동제 공을 두 줄로 틀 위에 늘어놓은 것이다. 공은 10개(2열 5개), 12개(2열 6개), 14개(2열 7개)짜리가 있다. 이 악기는 2개의 기다란 채로 청동 공의 튀어나온 부분을 쳐서 소리를 낸다.


감방(gambang)은 보낭처럼 주요 선율의 장식음을 연주하는 선율타악기로, 단단한 나무를 사용하여 건반을 만든 목금이다. 이 악기는 나무로 만든 틀 위에 16개까지의 건반을 얹고 2개의 채로 두드린다. 감방의 모양은 겐더와 비슷하지만 겐더와는 달리 나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여음이 짧아서 소리가 울린 다음에 여음을 없애기 위해서 건반을 잡을 필요가 없고, 소리도 부드럽다.


케농(kenong)은 나무로 만든 네모상자 위에 꼭지가 있는 청동 공을 얹어놓은 타악기이다. 원래 케농은 가물란합주에 하나씩 있었는데 현재 5음 음계(슬렌드로)와 7음 음계(펠로그)의 2가지 음계를 연주할 수 있도록 음정이 다른 여러 개의 케농을 놓는다.


케툭(ketuk)은 케농보다 작은 청동 공을 나무상자 위에 얹어놓은 악기이다. 잔가락을 연주하는 것으로 케농보다 울림이 짧다.


공아겡(gong ageng)과 켐풀(kempul)은 나무틀에 매달아 놓은 큰 징들을 말한다. 공아겡은 가장 크고 저음을 내는 것으로 2개의 징(나무틀 양쪽)으로 구성되고, 켐풀은 공아겡보다 조금 작은 것으로 5개의 징(공아겡 사이)으로 이루어진다.


켄당(kendang)은 가물란합주에서 유일하게 가죽으로 만든 악기이다. 배가 불룩한 몸통의 양면에 가죽을 댄 북으로, 다른 타악기와는 다르게 손에 채를 쥐지 않고 손바닥으로 친다.


첼렘풍(celempung)은 가로로 긴 판에 철사 줄을 맨 현악기이다. 26개의 줄로 되어 있는 이 악기는 2줄이 같은 음 한 쌍으로 모두 13쌍을 이루고 있다. 연주자는 손가락으로 쇠줄을 튕겨서 소리를 낸다.


첼렘풍(delempung)/ⓒ위키백과


레밥(rebab)은 서역에서 비롯된 2줄의 현악기로 우리의 해금과 같이 활을 문질러서 연주한다. 악기의 울림통은 하트모양처럼 생겼고, 몸통의 끝에 첼로처럼 긴 막대가 달려 있어 이를 세우고 연주한다.


술링(suling)은 가믈란에 쓰이는 유일한 관악기이다. 대나무로 만든 이 악기는 우리나라의 단소처럼 세로로 잡고 부는데, 지공이 아래쪽에 뚫려 있기 때문에 취구와 멀리 떨어져 있어 연주자는 악기를 비스듬하게 잡고 연주한다.


지금까지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음악인 가물란합주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가물란과 같은 음악 이외에도 인도네시아에는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는 여러 예능들이 있으며, 그중 가장 대표적 무용극인 발리의 케착(kecak)과 그림자 인형극인 와양쿨릿에 대해서도 잠깐 살펴보면,


케착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행해지는 남성합창 또는 주술적인 무용인 상양(snaghyang)을 수반하는 무용극을 말한다. 원래 발리의 전통무용인 상양은 질병치료와 악귀제거를 위해 어린 여자이으를 매체로 선조의 영혼을 받들고 가호를 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케착은 <라마야나>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무용극의 양식으로 연행되고 있다.


발리의 남성합창 무용극 케착(kecak)/ⓒMardika Bali Tour



상반신을 벗고 허리에 천을 두른 수십 명, 많게는 200여 명의 남자들이 둥글게 둘러앉고 그 가운데에서 무용이 행해진다. 남성합창대는 손과 몸을 움직여 넋을 잃은 상태가 되어 가물란의 여러 악기소리를 흉내낸다. 케착의 합창은 단적으로 말하면 '타악기로 표현되는 리듬을 구음으로 노래하는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몸놀림과 말의 내용은 대부분 악귀를 쫓는 주문에서 온 것으로 알려진다. 케착은 한 사람이 "시리리리 푼 푼 푼"이라는 소리로 기본적인 4박자 리듬을 만들고, 다른 한 사람이 산율을 노래한다. 그리고 두 사람 이외의 전원이 네 파트로 나누어 앉아 원숭이 우는 소리를 모방한 음정을 갖지 않는 "찻" "찻"과 같은 소래를 낸다.


와양쿨릿은 인도네시아 자바와 발리에서 행해지고 있는 그림자 인형극이다. 인도네시아어로 와양(wayang)은 극을, 쿨릿(kulit)은 가죽(인형을 만들 때 사용하는 가죽)을 의미한다. 이 인형극은 힌두사원의 제례의식 등에서 행해지는데, <마하바라타>나 <라마야나> 등이 주로 공연되는 작품이다.


인도네시아 그림자 인형극 와양쿨릿(wayang kulit)/ⓒ위키백과



공연의 형태는 흰색 스크린 뒤에서 등불을 비추고 스크린과 불빛 사이에 와양쿨릿의 인형을 조정하면서 극을 연행해나가는 것이다. 관객은 불빛과 인형의 반대족에서 감상을 하므로 불빛에 비춰진 그림자를 보는 것이다. 스크린 뒤에서는 다란이라고 불리는 한 명의 인형조정자가 이야기를 하거나 효과음을 내면서 댜앙햔 인형을 조정한다. 인형을 스크린에서 멀어지게 하면 그림자는 커지게 되고 조금 희미해진다.


인형은 소가죽으로 만들어지고 부분적으로 세밀하게 구멍이 있어, 사람이나 동물의 형태는 단순히 전체의 그림자가 아니라 몸의 각 부분의 윤곽도 표현된다. 또한 인형에는 색을 칠하는데, 이 색은 당연히 객석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스크린 뒤쪽은 저승이라고 여겨져, 저승에서는 색이 있는 아름다운 세계가 현세에서는 흑백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형의 중심에는 막대가 달려 있고 막대의 끝은 뾰족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이기 때문에 인형조정자는 스크린 가까이에 인형을 꽂아놓을 수 있어 여러 인형이 함께 등장하고 있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인도양과 태평양 사이에 있는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필리핀은 말레이계의 인종을 모체로 하고 있다.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국민의 96%가 루손(Luzon) 섬이나 민다나오(Mindanao) 섬 등 주로 11개의 섬에 거주하고 있다.


필리핀은 300년이 넘게 스페인의 통치를 받은 결과 민족적으로 많은 혼혈을 발생시켰고, 생활, 언어, 음악 등 문화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유럽화되어, 동남아시아 중에서도 독특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20세기에 들어화서는 미국의 영향까지 더해져 현재 인구의 대다수가 향유하고 있는 음악은 만돌린, 기타, 키보드 등을 사용한 팝이나 가요곡풍의 노래가 압도적이고, 가톨릭교회의 음악이나 서양고전음악이 생활 속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이러한 서구의 영향을 받으며 스페인적인 색채를 남기면서도 새로운 필리핀양식이라고 불리는 음악과 무용이 생성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론달라(rondalla)이다. 론달라는 만돌린, 기타, 더블베이스를 기본으로 하는 민속적 성격의 합주인데, 스페인문화의 흔적을 보이고 있고, 노래의 가창방식이나 발성, 사교댄스적인 동작도 서양적이다. 또한 필리핀 하면 더올리는 티니클링(tinikling)이라는 대나무춤은 서양적으로 변용되어 전승되고 있다. 이것은 긴 두 개의 대나무 봉을 리드미컬하게 서로 부딪히게 하고, 무용수는 발이 사이에 끼지 않게 규칙적으로 스텝을 밟으며 추는 춤이다.


필리핀 전통무용 티니클링/ⓒ필리핀관광부 FaceBook



한편 필리핀에는 인구비율이 적기는 하지만 서양의 영햐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음악문화를 전승하고 있는 소수민족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은 루손 섬 북부의 산지민족 이로로트(Igorot)족과 남부의 민다나오 섬과 술루(Sulu) 열도에 살고 있는 여러 민족들이다.


필리핀 북부의 이로로트족이 살고 있는 칼링가(Kalinga)지역에서는 평평한 징이나 대나무로 만든 악기를 6명이 하나의 그룹이 되어 연주하는 형태가 있다. 합주의 원리는 비슷한 리듬을 차례대로 연주하여 겹쳐나가는 방식인데, 이러한 점은 인도네시아의 가물란과도 통하는 점이다. 다만 가믈란과 같이 선율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다양한 음색을 조합하여 그것을 일정한 리듬형에 얹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필리핀 북부 칼링가 지역/ⓒ위키백과



칼링가 지역음악세서 사용하는 악기는 강사(gangsa), 통가통(tongatong), 발링빙(balingbing), 사게이포(saggeypo), 쿨리빗(kulibit), 온낫(onnat), 통갈리(tongali), 팔동(paldong) 등이 있다.


강사는 평평한 면을 가진 징의 일종으로 6명이 함께 연주한다. 연주방법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강사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바닥으로 쳐서 소리를 내는 방법과 징에 끈을 달아서 왼손으로 들고 오른손의 채로 쳐서 소리를 내는 방법이다. 처음에 이 합주를 들으면 어떤하 ㄴ규칙도 없이 대충 치는 것같이 들리기도 하지만, 신체의 움직임과 음의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하면 이 합주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구성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통가통은 굵은 대나무통을 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는 악기로, 역시 6명이 한 조가 되어 연주한다. 대나무통 윗부분의 구멍을 손으로 막거나 열면서 변화의 폭을 넓히며 연주한다.


발링빙은 대나무의 한쪽을 쪼개서 만든 악기로, 좌선을 하는 승려들이 졸거나 딴 생각을 할 때 치는 죽비와 비슷하게 생겼다. 오른손으로 쪼개지 않은 부분을 잡고 왼손바닥에 가볍게 튕겨내듯이 치면 "비웅비웅"과 같은 울림이 난다. 이 악기도 6명이 함께 연주한다.


사게이포는 6명이 한 조가 되어 이루어지는 팬파이프이다. 지공이 없는 1개의 대나무관을 한 사람씩 연주하여 팬파이프와 같은 효과를 낸다. 연주자들은 복식호흡을 하면서 조금씩 시간을 어긋나게 하여 한 사람씩 참가해나가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쿨리빗은 대나무로 만든 현악기를 말한다. 굵은 대나무를 준비하고 그 표피를 가늘고 길게 잘라내어 줄로 사용하는데, 이때 양쪽 끝이 잘라지지 않게 주의하여, 만들어진 줄과 본체의 사이에 작은 줄 받침을 끼우면 줄에 장력이 생겨 훌륭한 현악기가 된다. 이것이 쿨리빗이다. 완성된 악기를 양손으로 잡고 엄지, 검지, 장지를 사용하여 현을 뜯는데, 양손을 사용하기 때문에 혼자 연주해도 2성부의 음악과 같이 들린다.


온낫은 칼링가에서 사용하는 구금(口琴), 즉 입으로 부는 현악기를 말한다. 구금은 대나무로 만들기도 하고, 금속으로 만들기도 한다. 대나무 구금의 경우, 잘게 잘라진 대나무의 끝을 손가락으로 튕기고 구강을 공명통으로 삼아 소리를 내는데, 입의 형태에 따라서 다른 소리가 나기 때문에 독주뿐 아니라 합주로도 즐길 수 있다.


통갈리는 코로 부는 대나무 피리를 말한다. 조상연혼과의 대화나 아름다운 사랑의 속삭임의 대용으로 사용되는 통갈리는 칼링가에서 매우 귀중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팔동은 대나무 종적으로 앞에 구멍이 3개, 뒤에 1개가 있다. 우리나라의 단소와 같은 계통으로 형태뿐 아니라 음색도 비슷하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1300년경에 접어들면서 유럽사람들은 중세와 전혀 다른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중세를 대표하던 그레고리오 성가와 전혀 다른 음악이 등장하게 된 것은 갑작스런 사건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 사회조직의 문제점들로 인해 사람들이 교회의 권위에 의심을 갖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1300년경에 등장한 새로운 예술, 아르스 노바 직전의 유럽은 오랜 기간 지속되어온 십자군전쟁(1096~1456)으로 피폐해져 있었다. 유럽 기독교인들의 성지인 예루살렘 순례금지를 빌미로 시작된 십자군전쟁은, 대외적으로는 성지탈환과 콘스탄티노플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국 당시 유럽으로 정치적, 군사적 힘을 확장시켜가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서유럽 사이의 정치적 대립이었다. 성지탈환이라는 목표를 금세 달성하리라 믿고 시작된 십자군전쟁은 당초 예상과 달리 백년 이상 계속되었고 십자군전쟁에 참전한 상당수의 봉건 귀족들과 기사들은 정치적, 사회적 기반을 상실하면서 여러 지역으로 떠돌게 된다.

게다가 아비뇽 유수(1309~1377), 흑사병 창궐(1348~1350) 같은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당시 사람들은 교황과 교회의 권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기사 가인들이 전해주는 십자군전쟁의 무용담, 연애이야기를 다루는 지방어의 세속노래, 인간적인 고뇌와 관점을 중심으로 서술한 단테(Alighieri Dante,1265~1321)의 '신곡'(1307)과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1375)의 '데카메론'(1353) 같은 지방어 문학, 비잔틴 미술의 관습을 거부한 자연주의 화가 지오토(Giotto, 1267~1337)의 등장으로 인본주의의 기운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어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1300년대 예술은 발아하는 인본주의 정신을 표방하기 시작하고 음악에서도 이전의 교회음악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음악이 관심을 끌게 된다.




시인 겸 음악가였던 필립 드 비트리(Philip de Vitry, 1291~1361)가 1300년대 초반 파리의 음악과 문학의 새로운 기운과 특징을 논한 '아르스 노바'(1316~1318)라는 책의 제목에서 유래한 1300년대의 '새로운 음악'이 이전 시대와 구분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세속노래가 크게 유행하였다는 점이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자연의 변화, 날씨, 사람들 사이의 관계(전쟁, 우정, 사랑)에 관심을 갖고 노래에 담아내기를 원했다. 그리고 음악가들은 기존의 음악 만들기 방식, 전통, 관습을 넘어서 자신들이 원하는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당시 교회가 허용하지 않던 파격적인 음악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당시 교회에서는 하느님의 3대 다른 인격, 즉 하느님, 예수님, 성령님의 동등함과 동일함을 강조하는 '삼위일체설' 때문에 3을 완전한 숫자로 생각했었다. 2라는 숫자는 삼위일체설의 3의 완전함에 으리지 못한 불완전한 숫자로 보았기 때문에, 음의 길이를 분할할 때 오늘날 사용하는 2분할체계 대신 3개 단위로 나누는 3분할체계만을 허용했다. 그러나 아르스 노바 시대의 음악가들은 신학적 교리에 따라 3분할 중심으로 발전되어 오던 중세의 리듬분할체계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중세교회에서 3박자 계열의 3/4, 3/8만 허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스 노바의 음악가들은 2/4, 4/4, 4/2 같은 2(4)박자 계열의 음악을 만들었다. 또한 4, 5도 외에 3, 6도 음정을 듣기 좋은 소리로 생각하여 작품에서 3, 6 음정을 특별한 제약 없이 자유롭게 사용하기 시작한다.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 1304~1377)


아르스 노바를 대표하는 작곡가로는 프랑스의 마쇼(Guillaume de Machaut, 1304~1377)와 이탈리아의 란디니(Francesco Landini, 1335~1397)가 있다. 예배나 교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부르고 듣기에 아름답고 편한 음악을 만들려고 했던 아르스 노바 당시의 음악가들은 당시 교회의 시각에서는 매우 도전적이고 파격적인 시대의 반항아로 보였을 것이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우리말에는 김치말고 '지'라는 말도 있다. 오이지, 짠지, 섞박지, 장아찌, 젓국지, 게국지 등의 여러 가지 김치 이름에 '지'가 붙고, 지금은 일본에서 유래된 다쿠앙도 단무지라고 부른다. '지'는 뒤에 붙기만 하는 말이 아니라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그대로 김치라는 뜻으로 쓰인다.

'지'는 '디히'에서 온 말로, 15세기 문헌에서 '겨울김치'를 '겨디히'라고 불렀다. 그 디히가 지히, 지이를 거쳐 지로 바뀐 것이다. 장아찌라는 말도 장에 절인 김치라는 뜻의 '쟝앳디히'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뀐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보다는 김치라는 말이 훨씬 더 많이 쓰이고 있다. '김치'라는 말은 '담근 채소'라는 뜻의 한자어 '沈菜'에서 유래되었고, 김장도 '침장(沈藏)'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런데 한자어 '沈菜'를 우리말로 어떻게 표기했는가 하는 것을 추적해 보면 김치의 유래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의 '沈菜'를 조상들이 어떻게 읽었는지는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침채의 한글 표기를 최초로 확인할 수 있는 문헌은 1527년에 편찬된 최세진의 '훈몽자회(訓蒙字會)'인데, 이 책에서 '저(菹)'를 '딤채 조'로 해석했다.


딤채(팀채) > 짐채(침채) > 김채(짐치) > 김치


그런데 1700년을 전후해서 '디'가 '지'로, '티'가 '치'로 바뀌는 구개음화가 진행되어 '딤채'는 '짐채'로 변했다.

그런데 '딤채'가 사용되던 시기에도 '沈菜'를 '팀채'로 읽은 사례가 적잖이 보인다. '훈몽자회'보다 약 50년 뒤에 간행된 '내훈(內訓)'이 그렇다. 물론 '팀채'도 1700년을 전후해서 구개음화의 진행으로 '침채'로 바뀌었다.

결국 '沈菜'는 초기에 '딤채' 또는 '팀채'로 불렸고, 18세기쯤에는 구개음화 현상으로 인해 '짐채' 또는 '침채'로 불렸다.

'딤채'와 '팀채'가 공존했던 16세기에 '沈'자의 공식적인 음은 '팀'이었다. 그런데 왜 일부 책에서 '딤채'라고 했을까? '딤채, 짐채'로 부른 '훈몽자회' '신증유합(新增類合)' '구황촬요벽온방(救荒撮要壁瘟方)' '두창경험방언해(痘瘡經驗方諺解' 등의 책은 어린이 또는 초보 학습자를 위해 간행한 책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일반서민들이 쉽게 보게 하기 위해 한글로 언해한 책들이다. 반면에 '팀채, 침채'로 부른 '내훈' '소학(小學)' '왜어유해(倭語類解)' '한청문감(漢淸文鑑)' 등의 책은 양반들의 수신서(修身書)이자 유교경전이며, 외국어 학습자들을 위한 전문서적이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치를 '딤채'라 불렀는데 양반 식자들이 김치는 '沈菜'라는 한자말에서 온 것이니까 '팀채'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팀채'라는 말은 책에만 있던 말이지 일반인들이 일생생활에서 실제로 썼던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짜장면'이라고 하는데 방송에서만 유독 '짜장면'이 중국어 '자쟝미엔(炸醬麵)'에서 유래된 것이니까 '자장면'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출처: 전통사회와 생활문화/이해준 정승모 정연식 전경목 송찬섭 공저)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